오정현 목사 “목회는 잘되어도 고민, 안되어도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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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07-07-23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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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할렐루야 대회 강사로 3일간 대회를 인도한 오정현 목사(서울 사랑의교회)가 7월 23일(월) 오전 10시30분 퀸즈장로교회(장영춘 목사)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다. 3일간의 대회를 마친 다음날 오전, 피곤한 모습의 오정현 목사는 세미나가 진행될수록 힘을 내 할렐루야대회와 마찬가지로 설득력 있는 세미나를 인도했다.
개척, 중형, 대형교회의 목회자를 거친 오정현 목사는 뉴욕교계의 목사들에게 "목회는 잘되어도 고민이고, 안되어도 고민이다"라는 말을 던졌다. 결국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 다음은 세미나 요약이다.
대형교회 목회를 하고 싶은가?
한 목회자가 25년의 목회의 결론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상처가 크면 그렇게 이야기를 했겠냐만은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목회자는 상처를 받으면 목회를 하지 못한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양육, 목회, 섬김으로 세울 수 있다는 '목회적 성선설'을 믿어야 한다.
사역을 잘 담당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사역관이 필요하다. 나는 23살에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의 대학부를 맡았으며, 33살때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개척했다. 나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들로 비가 새는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어른 한가정과 10여명의 젊은이들로 시작했다.
소형, 중형, 대형교회를 거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목회는 잘돼도 고민이고 안돼도 고민이라는 것.
사랑의교회에서 주일설교를 6번 한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는 토요일에 재충전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제는 토요일 밤이면 영적인 긴장으로 잠을 못이룬다. 옥한흠 목사님은 1분 설교를 위해 1시간을 투자한다. 나도 따라하다가 이빨도 빠지고 해서 1분 설교에 30분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목회 가치관이 없었다면 허물어 졌을 것이다. 나는 교회성장이 목표가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나의 목표는 주님과의 더 나은 관계이다.
목회는 잘되어도 안되어도 힘들고 고통스럽다. 목회의 좌절은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성인 4천명 청년 2천명이 모여도 본당이 다 안찬다고 사람이 오는 것을 걱정했다.
서울에 나가 보니 이제는 사람에 치여 허덕이게 되었다. 주일예배에 본당에 들어오려면 3대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죽어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목사도 있지만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그것이 그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더 나은 관계에서 목회의 보람을 느껴야 하며, 사역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또 한사람의 변화를 보며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피곤의 문제를 해결하라
목회자는 반드시 '피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피곤은 건강한 피곤이 있고 파괴적인 피곤이 있다. 건강한 피곤은 잠을 자고 나면 피곤이 풀린다. 하지만 파괴적인 피곤은 쉬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파괴적 피곤은 목양의 기회가 주어지면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수님처럼 피곤한 사역을 하신 분이 있는가? 놀라운 것은 예수님게서는 피곤하셨지만 목양의 기회를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다.
특히 심방은 타이밍에 맞추어 해야 한다. 하지만 힘들어 사역을 할 힘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파괴적 피곤을 건강적 피곤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부친은 43년간 목회를 하면서 온유와 평화로운 목회자 였다. 아버지는 주일에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에 하는 권투중계를 항상 보셨다.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를 한다. 아버지는 권투를 보며 대리만족을 얻으셨다.
만약 파괴적인 피곤을 해결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허한 상태가 되어 쓰나미가 몰려오면 감당하지 못하고 7계를 범하게 된다.
한국의 대형교회 후임은 전임을 모실때 효자가 안되면 못 모신다. 옛날이야기 대로 넙적다리를 전임을 위해 국을 끓이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임에게 효도하는 착하고 온유한 사람은 대형교회를 이끌 능력이 못된다. 효도하고 한 성질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한국 대형교회의 후임이 잘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옥한흠 목사님이 나를 품어 이런 문제가 해결됐다. 옥 목사님과 둘 사이에는 문제가 없지만 양 목회자와 사모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이다.
만약 파괴적 피곤일때 마귀가 들어오면 끝장이다. 건강한 피곤이 아니라 파괴적 피곤일 때 독재(고집)이 되거나 7계를 범하게 된다. 미국의 목회자들에 따르면 미국 목회자의 4분의 1이 칠계를 범한다. 이민교회도 남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삼손같이 머리가 짤리니 더 이상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21세기 3가지 문제
1. 유기적 교회의 문제이다: 가정은 유기체이며 고아원은 조직체이다. 둘다 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조직체에는 사랑이 없다. 조직체 교회는 직분과 조직으로 운영되지만, 유기적 교회는 소명과 사랑으로 사역을 한다.
나는 제직회를 부흥회처럼 한다. 지난달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축복의 찬양과 앞으로 주실 은혜를 위해 기도한다. 사역보고와 재정보고로 이어진다. 은혜가 충만하니 재정보고 때에도 큰 것만 하고 넘어가자고 한다. 팀별로 위크샵을 하고 대표가 나와 나눔을 한다.
이민교회는 철저한 유기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머리를 찾아야 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2.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건강하기 위한 훈련소이다. 병들고 나면 치유가 힘들다. 교회에서 땀 한방울이 사회에서 피 한방울이다.
그래서 예방목회가 중요하다. 보호목회는 성도의 약점을 보고 사역한다. 그러면 성도들은 목사만 바라보게 된다. 주바라기(주님을 바라보는)를 해야지 목바라기(목사를 바라보는)를 해서는 되겠는가? 성도의 약점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강점을 가지고 사역해야 한다.
사랑의교회 성도중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있다. 그는 사업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경영은 다른사람을 시켜서는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업을 한 현대는 문제가 있고 경영을 한 삼성은 잘나간다.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날마다 땜방하는 것은 사업목회이다. 성도를 교육하며 재생산이 일어나는 영적경영을 해야 한다.
3. 성도는 지체이다: 성도는 교회를 떠나면 죽는다. 이런 교회관이 없는 성도는 날마다 교회를 찾아다닌다. 역사의 중심은 교회이며 역사는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좋은 예배자가 좋은 예배를 만든다. 좋은 예배자가 있으면 작은 학고방에서 예배를 드려도 눈물이 나온다. 열린예배등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예배자가 있어야 한다. 내가 훈련을 시킨 성도가 많은 예배에 더 영감이 있다. 좋은 예배자가 되지 못하면 오늘 목사의 설교가 어떤가 하고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게 된다.
강단에 목사는 몸이 올라가지만 성도들은 마음을 올린다. 그리고 목사의 설교를 위해 눈물로 기도를 한다. 오 목사의 설교에 비해 나의 설교는 조족지혈이다. 하지만 성도들이 은혜를 받으로 왔기에 내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
유기적 설교
유기적 설교는 들리는 설교이다. 성도의 삶과 동떨어진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목사도 성도의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설교를 듣는 성도중 초신자와 젊은이가 많으면 유기적인 설교이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개척, 중형, 대형교회의 목회자를 거친 오정현 목사는 뉴욕교계의 목사들에게 "목회는 잘되어도 고민이고, 안되어도 고민이다"라는 말을 던졌다. 결국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 다음은 세미나 요약이다.
대형교회 목회를 하고 싶은가?
한 목회자가 25년의 목회의 결론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상처가 크면 그렇게 이야기를 했겠냐만은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목회자는 상처를 받으면 목회를 하지 못한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양육, 목회, 섬김으로 세울 수 있다는 '목회적 성선설'을 믿어야 한다.
사역을 잘 담당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사역관이 필요하다. 나는 23살에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의 대학부를 맡았으며, 33살때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개척했다. 나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들로 비가 새는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어른 한가정과 10여명의 젊은이들로 시작했다.
소형, 중형, 대형교회를 거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목회는 잘돼도 고민이고 안돼도 고민이라는 것.
사랑의교회에서 주일설교를 6번 한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는 토요일에 재충전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제는 토요일 밤이면 영적인 긴장으로 잠을 못이룬다. 옥한흠 목사님은 1분 설교를 위해 1시간을 투자한다. 나도 따라하다가 이빨도 빠지고 해서 1분 설교에 30분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목회 가치관이 없었다면 허물어 졌을 것이다. 나는 교회성장이 목표가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나의 목표는 주님과의 더 나은 관계이다.
목회는 잘되어도 안되어도 힘들고 고통스럽다. 목회의 좌절은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성인 4천명 청년 2천명이 모여도 본당이 다 안찬다고 사람이 오는 것을 걱정했다.
서울에 나가 보니 이제는 사람에 치여 허덕이게 되었다. 주일예배에 본당에 들어오려면 3대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죽어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목사도 있지만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그것이 그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더 나은 관계에서 목회의 보람을 느껴야 하며, 사역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또 한사람의 변화를 보며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피곤의 문제를 해결하라
목회자는 반드시 '피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피곤은 건강한 피곤이 있고 파괴적인 피곤이 있다. 건강한 피곤은 잠을 자고 나면 피곤이 풀린다. 하지만 파괴적인 피곤은 쉬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파괴적 피곤은 목양의 기회가 주어지면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수님처럼 피곤한 사역을 하신 분이 있는가? 놀라운 것은 예수님게서는 피곤하셨지만 목양의 기회를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다.
특히 심방은 타이밍에 맞추어 해야 한다. 하지만 힘들어 사역을 할 힘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파괴적 피곤을 건강적 피곤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부친은 43년간 목회를 하면서 온유와 평화로운 목회자 였다. 아버지는 주일에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에 하는 권투중계를 항상 보셨다.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를 한다. 아버지는 권투를 보며 대리만족을 얻으셨다.
만약 파괴적인 피곤을 해결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허한 상태가 되어 쓰나미가 몰려오면 감당하지 못하고 7계를 범하게 된다.
한국의 대형교회 후임은 전임을 모실때 효자가 안되면 못 모신다. 옛날이야기 대로 넙적다리를 전임을 위해 국을 끓이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임에게 효도하는 착하고 온유한 사람은 대형교회를 이끌 능력이 못된다. 효도하고 한 성질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한국 대형교회의 후임이 잘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옥한흠 목사님이 나를 품어 이런 문제가 해결됐다. 옥 목사님과 둘 사이에는 문제가 없지만 양 목회자와 사모에게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이다.
만약 파괴적 피곤일때 마귀가 들어오면 끝장이다. 건강한 피곤이 아니라 파괴적 피곤일 때 독재(고집)이 되거나 7계를 범하게 된다. 미국의 목회자들에 따르면 미국 목회자의 4분의 1이 칠계를 범한다. 이민교회도 남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삼손같이 머리가 짤리니 더 이상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21세기 3가지 문제
1. 유기적 교회의 문제이다: 가정은 유기체이며 고아원은 조직체이다. 둘다 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조직체에는 사랑이 없다. 조직체 교회는 직분과 조직으로 운영되지만, 유기적 교회는 소명과 사랑으로 사역을 한다.
나는 제직회를 부흥회처럼 한다. 지난달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축복의 찬양과 앞으로 주실 은혜를 위해 기도한다. 사역보고와 재정보고로 이어진다. 은혜가 충만하니 재정보고 때에도 큰 것만 하고 넘어가자고 한다. 팀별로 위크샵을 하고 대표가 나와 나눔을 한다.
이민교회는 철저한 유기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머리를 찾아야 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2.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건강하기 위한 훈련소이다. 병들고 나면 치유가 힘들다. 교회에서 땀 한방울이 사회에서 피 한방울이다.
그래서 예방목회가 중요하다. 보호목회는 성도의 약점을 보고 사역한다. 그러면 성도들은 목사만 바라보게 된다. 주바라기(주님을 바라보는)를 해야지 목바라기(목사를 바라보는)를 해서는 되겠는가? 성도의 약점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강점을 가지고 사역해야 한다.
사랑의교회 성도중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있다. 그는 사업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경영은 다른사람을 시켜서는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업을 한 현대는 문제가 있고 경영을 한 삼성은 잘나간다.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날마다 땜방하는 것은 사업목회이다. 성도를 교육하며 재생산이 일어나는 영적경영을 해야 한다.
3. 성도는 지체이다: 성도는 교회를 떠나면 죽는다. 이런 교회관이 없는 성도는 날마다 교회를 찾아다닌다. 역사의 중심은 교회이며 역사는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좋은 예배자가 좋은 예배를 만든다. 좋은 예배자가 있으면 작은 학고방에서 예배를 드려도 눈물이 나온다. 열린예배등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예배자가 있어야 한다. 내가 훈련을 시킨 성도가 많은 예배에 더 영감이 있다. 좋은 예배자가 되지 못하면 오늘 목사의 설교가 어떤가 하고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게 된다.
강단에 목사는 몸이 올라가지만 성도들은 마음을 올린다. 그리고 목사의 설교를 위해 눈물로 기도를 한다. 오 목사의 설교에 비해 나의 설교는 조족지혈이다. 하지만 성도들이 은혜를 받으로 왔기에 내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
유기적 설교
유기적 설교는 들리는 설교이다. 성도의 삶과 동떨어진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목사도 성도의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설교를 듣는 성도중 초신자와 젊은이가 많으면 유기적인 설교이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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