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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 목사 “교회가 변해서 부흥하는데 어떤 원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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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8-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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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목사회 컨퍼런스 2일째를 맞아 5월 9일(금) 오전과 오후 권준 목사(시애틀 형제교회)의 세미나가 진행됐다. 권준 목사(시애틀 형제교회)는 30년 역사를 가진 교회의 담임으로 부임한 후 8년 만에 3천5백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권준 목사의 스토리는 저서 <우리교회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다>에서 볼 수 있다.

권 목사는 "하늘을 향해 열린교회, 서로를 향해 열린교회, 세상을 향해 열린교회"라는 책에 나오는 순서에 따라 강의를 했다.

다음은 권준 목사의 오전 세미나 내용이다. (오후 강의는 별도기사로 있습니다)

저는 자신을 행복한 목사라고 소개한다. 행복해 보이죠.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할수록 감사하다. 성도님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다. 성도가 없으면 어떻게 목회를 하나? 격려하는 성도가 감사하다. 다른 곳에 집회를 가서 우리교회 수요예배 시간이 됐을때 성도들이 교회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감사하다. 허급지급 비지니스 문을 닫고 예배 드리러 나오는 성도들이 감사하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지치지만 교회에 나간다.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됐나하는 생각이 든다. 답은 교회 안나까볼까봐.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고자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라는 직분을 허락하셨다. 우리가 목사의 능력이 있어서 목사가 됐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목사라는 직분까지 인도하신 것은 은혜이다. 생각할수록 너무 감사하다. 그래도 성도들이 있고, 아멘하는 성도가 있고, 은혜를 받았다는 성도들이 너무 감사하다.

다윗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했던 다윗의 모습은 양들을 지키는 모습, 목자의 심정이었다. 누가 보던지 안보던지 자기에게 맡겨진 양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는 목자의 마음을 보았다. 성령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그사람의 능력만으로는 안된다. 부으심이 있어야 한다. 목자가 중요하다. 한영혼을 사랑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이 목자의 심정이다. 목사가 돠고 싶다. 삯군이 되면 안된다. 한 영혼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안타가워 하는 목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다.

양들을 지키던 다윗은 위기의 시간때 나의 목자로 하나님을 만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목자이시라는 것을 안다. 목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에게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시고 놀라운 새로운 일에 하겠다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우리는 목회를 하고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도 은혜이다.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열망이다.

그런 가운데 생각할수록 행복하다. 목사가 행복한 것은 중요하다. 시애틀하면 형제교회가 생각이 나야 한다. 교회를 방문한 사람이 성도들의 얼굴이 다르네요라고 말했다. 교회가 살아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중요한 원리는 담임목사가 행복하면 다 행복하다. 중요한 원리이다. 가장이 행복하면 집안이 다 행복하다. 가장이 집에 인상쓰고 들어오면 아이들이 다 도망간다. 한 리더의 생각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실패와 절망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그렇게 된다. 승리의식을 가지고 말씀을 중요성을 능력의 약속임을 알고 선포할때 새역사가 일어난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내 인생을 결정해 나간다. 오늘이 나를 만들고 내일의 나를 만들어 나간다.

고등헉교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왔다. 시애틀에서 4년 살고 LA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고 95년 한국 온누리교회에 나가게 됐다. 한국목회가 좋은 경험이라 보고 나갔다. 4년반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됐다. 2000년 1월에 헹제교회에 부임해 8년이 지났다. 형제교회는 첫 이민와서 4년간 학생으로 다닌 교회이다. 16년만에 목사로 부임했다. 한국교회에 가서 두란노와 미국성공교회 방문 프로그램으로 오히려 이민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오히려 미국에 있을 때는 미국교회를 많이 다녀보지 못했다.

미국교회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민교회가 다인줄 알았는데 바깥에서 보니 전부가 아니었다. 1세가 열심히 일해서 감사하며 드린 헌금으로 교회가 꾸미고 세웠던 교회들이 이제는 젊은이들이 빠져 나간다. 한인교회의 부흥이 멈쳐지고 고착화되기 시작하고 고령화 되어가고 있다. 마음속에 기성교회도 부흥할수 있다는 모델을 창출하는 비전과 열정이 있었다. 기성교회 성공모델을 창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형제교회에 갔다. 가고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몰고 가셨다. 당시 형제교회는 28년 된 교회였다. 장년 2백명이 출석하는데 나보다 젊은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70세 이상으로 구성된 백합회 4-50명 있었으며, 장로님 평균연령이 60세가 넘었다. 형제교회 간다니까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성교회가 변하기 힘드니 오히려 개척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학생으로 다녔던 교회라서 반대도 있었다. 선지자도 고향에서는 대접을 못받았다. 일리는 있지만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으면 나는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회를 하기위해 부임한 곳이 형제교회이다.

부모님을 잘아는 분은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37세에 부임하여 나이가 많은 성도들 장례식 치루려고 교회에 나가냐고 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이제 매월 평균 5-6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예배시간에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감사하다. 양로원 같은 교회였다. 그런 교회 보다는 유치원 같아야 생명을 느낄수 있다. 그래서 새신자가 와야 한다. 새신자들은 교회를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새생명이 있을때 천국의 모형이 된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떻게 형제교회가 변해서 부흥하게 되었느가 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나누면서 내가 경험한 원리를 전하고자 한다. 새로운것이 아니라 다 아시는 내용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정리하고 "내가 잘하는가" 점검하고 하나님이 격려하시는 은혜를 받고자 한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정지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야단치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면 발가락이라도 움직인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움직인다. 가만히 있어도 변화한다. 가만히 있으면 퇴보라는 변화를 일으킨다. 변화를 못하는 교회는 무조건 변화를 추구하라. 변화를 추구하는 교회만 세상에 영향력을 줄수 있다, 고여 있으면 섞기 마련이다. 그래서 변해야 산다. 변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변화란 무엇인가? 세상의 물결속에서 변하는 것인가? 변화는 변질된것을 본질로 돌이키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본질이라고 할수는 없다. 익숙한 것이라도 복음이 아니라면 복음이라는 본질로 끓임없이 변해가야 한다. 지난해에는 맞았지만 올해에 복음의 진보를 못가져오면 복음의 진보를 위해 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37년 된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매년 복음의 진보를 기록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능력이 중요하다. 능력이 있어야지 모양도 중요하다. 아니면 위선이기에 다른사람에게 감동을 못 준다. 예배당도 능력이 없으면 건물이지 교회가 아니다.

과연 나로부터 은혜가 흐르는가? 경건의 능력으로 복음의 진보를 위해 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전 형제교회 예배당은 작은 건물이었다. 큰 장소라고는 2백명이 들어가는 본당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본당에서 4번의 예배가 진행된다. 젊은 예배/중고등부등은 예배를 드릴때 드럼을 사용하는데 성인예배때에는 조립을 풀어 보관한다. 어른들은 드럼셋트가 예배당에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들이 할수 없어서 교회에 나오지 독립할 힘이 되면 한인교회에 나오겠는가? 예배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다. 예배에서 없어야 할 물건이면 다음세대에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놔두라고 했다. 당시 형제교회는 그런 교회였다.

교회가 변해서 부흥하는데 어떤 원리가 있는가?

교회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목사의 리더십을 이야기할때 나는 허파에 바람을 넣을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전이라는 것은 손에 안잡히고 눈에 안보인다. 그런데 비전이 이루어질때 같이 붕~ 띄우는 것이 비전이다. 비전은 안보이는 것을 보는 통찰력이다. 담임이라면 비전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수준에서 멈쳐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주인이 되도록 인도할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에게 있어 전부이다. 교회는 생명의 대상이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다. 세상을 살릴수 있는 유일한 복음을 교회에만 주셨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때도 있고 비난을 당할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믿는 것은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기관은 교회이다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복음을 교회에 주었다.

교회가 하나님의 꿈을 잊어버려 세상이 어두워 졌다. 이민교회 성도들의 교회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 사람들은 교회의 상처와 분열로 교회에 대한 꿈을 잊어버렸다.

나는 비전 설교를 일년에 연초와 가을 두번한다. 똑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한다. 뼈대와 내용은 같다. 놀라운 것은 그 설교를 들을때 마다 성도들이 감동을 받는다. 목회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상과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의 싸움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야망인가 비전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비전인가? 혹시 박수를 받고자 하는 야망이 아닌가? 아망은 역겹지만 비전은 향기롭다. 비전을 이야기 하면 성도들이 감동을 받는다. 한 컨퍼런스 강사는 "반복해서 비전을 이야기를 해서 성도들이 지겹다고 느껴질때 성도가 비로소 비전을 생각할때이다"라고 말했다. 교인들과 비전을 계속 나누어야 한다. 왜 우리교회가 뉴욕에 존재하는지 비전을 나누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비전을 가지는가? 보아야 비전이 생긴다. 잘하는 비지니스를 보야야 내 가게 운영을 하는 그림이 생긴다. 그래서 부흥하는교회와 기업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참 남이 잘되는 것을 배가 아파한다.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 보다 깍아 내리는 것을 즐기며 좋아한다. 재벌을 부정축재라고 이야기 한다. 부흥한 교회를 보면 인간적이라며 깍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성공한 교회와 기업은 그래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서 부흥의 원리를 보고 배워야 한다. 아니면 도움이 안되고 나도 성장할수 없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저는 모방은 최대의 능력이라고 본다. 전혀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이다. 남들이 한 것을 보고 내것으로 소화하고 그래서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이다. 설교를 창조적으로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누가 했던 그 이야기를 내것으로 소화해서 함께 나누는 것이다. 나는 창조성이 없으며 카피의 도사가 됐다. 좋은 것이 있으면 배우고 철학과 신앙에 맞으면 내것으로 소화해서 나눈다. 베낄려면 제대로 소화해서 해야 한다. 컨퍼런스 갔다 와서 금세 그것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 내것으로 소화되지 않으면 잘 안된다. 교회에 2-3개월 적용하다 하다 우리에게 안맞는다고 그만둔다. 성도들은 목사님이 다시 그러면 목사님이 은혜를 받았다며 3개월만 참자고 말한다.

한 목사가 설교를 잘못했다. 유명 설교강사가 와서 집회에 거보니 강사가 "가슴에 안아본 가장 따듯한 여자는 남의 여자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사는 "그여자는 바로 나의 어머니입니다"라며 어머니 사랑에 대한 설교를 했다. 목사가 나도 해보아야지 하고 주일날 설교를 했다. 여자 이야기가 나오자 권사들이 뒤집어 졌다. 그래서 당황한 목사는 다음말이 생각이 안나 그여자를 잘모르겠다고 말하고 설교를 끝냈다.

보아야 비전이 생긴다. 내가 도전을 받은 교회는 시카고 윌로우크릭교회이다. 신학교때 케이스 스타디와 온노리 교회에 있으면서 투어를 하면서 도전을 받았다. 그곳에서 복음에 대한 눈물을 보았다, 영원을 향한 눈물이 있었다. 담임목사가 설교를 하다가 불신자라는 단어가 나오면 눈물이 돈다. 그 느낌이 뒤에 까지 전해져 온다. 안내하는 사람에게도 불신자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핑돈다. 나는 눈물이 없는데 그들은 영혼에 대한 눈물이 있다. 기독교의 문화수준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안믿는 사람을 교회로 불러들여서 제자로 만들겠다고 쏟아 붇는 교회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모양만 빼겨온다. 그들은 불신자를 전도하게 위해 본당이라고 부르지 않고 캠퍼스라고 부른다. 안믿는 영혼을 위해 쏟아 붇는 영혼을 향한 눈물이 있었다.

열린 예배를 온누리교회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름을 열린예배라고 부르니 우리 예배는 닫혔냐고 욕을 먹었다. 처음에는 구도자 예배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했지만 불신자에게는 아려운 단어였다. 당시 인기프로그램인 열린음악회에서 이름을 따와 열린예배라고 불렀다. 열린음악회는 관객들이 편안한 자세에서 물흐르듯이 진행된다. 열린예배는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예배. 문턱이 낮아져 누가와도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예배를 지향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양을 카피한다. 왜 열린예배를 하는가를 보지 않는다. 월로우크릭교회에 갔다가 청바지 입는 것만 배워서 오는 경우도 있다. 열린예배는 1시간 15분동안 설교가 40-45분이다. 사람은 말씀에 의해 변화되기 때문에 열린예배는 말씀에 승부를 건다. 말씀외에 나머지는 준비일뿐이다. 인간은 말씀에 부딪힐대 변한다. 원리가 아니라 모양을 카피하면 안된다.

처음 형제교회에 부임하여 3개월간 비전나누기를 가졌다. 목회철학과 교회론에 대해서 나누었다. 당시 교회에서느 밥을 먹지 못했지만 비번나누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그래서 밥벅고 그냥가기 미안하고 궁금해서 많은 교인들이 참석을 했다. 그때 월로우크릭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월로우크릭교회 세미나에 교인 7명과 같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놀라운 것은 2백여명 교인이 모일때 59명이 참석하겠다고 나섰다. 내가 놀랐다. 단일 한인교회가 컨퍼런스에 이렇게 많이 가본 역사가 없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동기부여가 되면 움직인다는 것이다. 비전이 주어지면 사람이 움직일수 있다. 15인승 밴 4대를 렌트하여 59명이 시카고로 갔다. 대부분 60살이 넘으신 분들이다. 그분들이 노트에 강의내용을 적어가면서 집중하는 모습을 볼때 얼마나 감동스럽겠는가? 집회가 끝나고 느끼고 배운것을 나누니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목사님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직접 보니까 알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도 이런 컨퍼런스를 하자는 것이다. 기성교회가 부흥한 모델이 되는 소망을 나누고 나라를 섬기는 교회가 되자는 비전을 가졌다. 결국 2000년 당시의 꿈이 지난해에 이루어져 첫 컨퍼런스를 열었다, 올해도 6월에도 다시 연다. 꿈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잘되는 교회와 기업을 배워야 하고 모양이 아니라 원리를 배우야 한다. 원리는 적용하고 문화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배의 목숨을 건다

결국 예배가운데 비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누어 진다. 힌든 가운데 성도들이 예배 드리는 모습이 안타갑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 시달렸는데 주일날 쉬지 안호고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가운데 치유되고 회복해야 하는데 아무런 감동없이 다시 일주일을 생활해야 하는 성도들이 안타갑다.

왜 교회에 나오는가? 나를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분을 예배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다. 예배는 교회의 심장이다. 교회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회개의 눈물이 있고 축제가 있는 것이 예배이다.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이 예배순서를 잘지키는 것을 예배 잘드렸다 하고 나간다. 내거 좋으면 예배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좋아하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가? 인간이 좋아하는 모습이 아니라 신령과 임재를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의 변화를 힘들어 하는 교회가 많다. 순서에 지키는 것이 전통화 되고 익숙해져 있다. 순서도 문화이다. 하지만 문화가 가장 성경적인 양 그것을 바꾸면 큰일 나는것 같이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형식이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인가? 교회가 순서 매너리즘에 빠져있지는 않는가? 순서 하나가 바뀌면 큰일날 것 같이 형식이 예식화 되어 있는 것에서 탈피하여 하나님을 만나는것에 집중해야 한다. 예배변화에 끓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부임전 한번 형제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니 다음주에는 다시 예배를 드를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임하면서 다른것은 몰라도 예배는 바꾸겠다고 생각했다. 부임 첫주부터 예배를 바꾸었다. 하지만 장로리더십의 순종과 희생이 없으면 하겠는가? 어느 목사도 장로들이 3번 브레에크를 걸면 안하게 된다. 60살이 넘은 장로들이 헌신했다. 에배를 간소화했고 말씀에 집중하게 했다. 지금도 끓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애배에서 은혜를 받으면 본질에 목숨을 걸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다. 그것을 뛰어 넘는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제자인줄 안다. 가장 귀한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위로하고 섬기기에 교회에 사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불신자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이고 예배이다.

문제가 생기면 쉽게 깨지는 교회는 예배가 문제이다. 예배를 통해 쏟아지지 못한 에너지가 상대를 향해 쏟아진다.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취임후 4주쯤 지났다.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과 악수를 한다. 먼저 70살이 넘은 백합회원이 내려 온다. 평균이 80세 이다. 악수를 하려고 하니 갑자기 너무 사랑스러워 진다. "권사님 건강하세요"라고 진심으로 말이 나온다.

머리에 이것이 목양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는 사랑에 의해 이루어 지는 과정이다. 비전자체가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힘으로 같이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현장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이미 기차가 출발했다. 성도들은 기차에 올라타야 한다. 비전을 향해 달리는데 올라 탄다.

회의를 해보면 사람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움직인다. 목사를 사랑하니, 신뢰하니 목사가 하자고 하면 아멘하고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다 이해하고 가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한다니 반응하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적이다. 사랑이 공동체이다.

경배와 찬양을 하며 예배에 나아간다. 50살이 넘으면 안주하려고 한다. 그분들에게 경배와 찬양은 쉽지 않다. 그런데 가야할 길이다. 백합회원들이 나의 팬들이다. 내가 손들고 찬양하면 백합회원들도 손을 들고 찬양한다. 왜 그 교회에 출석하느냐 하고 물으면 목회자로서 듣고 싶은 말은 그 교회에 가면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사랑의 힘으로 움직여 간다.

주인의식을 가진다

잘못된 주인의식이 잇다. 내가 개척멤버인데? 내가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데? 내가 이교회에 몇년 다녔는데? 새로운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도 말을 못붙인다.

주인은 안 앉아 있는다. 자기 가게 앞에 주차하지 않는다. 구석에 주차하고 손님이 주차를 편하게 하도록 양보하고 배려한다. 주인이 아래목에 앉아 폼을 잡는가? 주인은 먹지 않아도 손님이 잘먹으면 배부르다. 새신자들은 힘들다. 처음에는 교회에 성도들이 늘어나니 좋아하다가 얼마 안지나 새로운 사람을 싫어한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주차도 힘들다. 무의식적으로 새신자를 싫어한다. 그래서 주인의식을 가져 새신자에게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

어떤경우는 새신자에게 내자리 앉았다고 툭 친다. 어떤 자매는 상처를 받아 교회에 못나온다. 부엌에서 봉사하려고 칼을 잡았다가 무안을 당한 것이다.

예배당에 자리가 없으니 앞에 앉아있던 장로님들이 기둥뒤에 서서 예배를 드린다. 옮겨간 곳에서는 단상이 높으니 장로들이 가장 불편한 앞자리에서 앉는다.

사람들이 오면 그중에 탁월한 사람도 있다. 성품이 있고, 사역을 잘 감당하는 사람도 있다. 기성 신자가 자리를 양보하면 좋겠지만 자리를 못 내어 놓는다. 놓으면 나는 무엇인가 생각한다. 그래서 양보를 못한다. 주인의식을 가지면 문제가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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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목사는 누구인가?

권준 목사(시애틀 형제교회)는 30년 역사를 가진 교회의 담임으로 부임한후 8년만에 3천5백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권준 목사가 고등학교때 미국이민을 와 첫발을 디딘곳이 시애틀이다. 그는 신학교에 가기위해 LA로 떠나기전 4년동안 시애클에 있으면서 현재 담임으로 있는 형제교회에 출석한 인연이 있다.

LA로 온 권 목사는 바이올라 대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전공했으며, 탈봇신학대학원과 퓰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권 목사는 잘배워 이민교회를 섬겨야 겠다는 생각으로 2년 목표로 한국 온누리교회로 갔지만 5년동안 아버지학교와 바이블칼리지 학장을 비롯해 여러 사역을 감당했다. 그런면에서 온누리교회 출신으로 미주동부 뉴저지 초대교회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는 이재훈 목사와 비슷하다.

권 목사는 한국교회들의 청빙에도 불구하고 형제교회로 돌아갔다. 권 목사는 미국에 있을때는 오히려 한인교회를 돌아볼 경험이 없었지만 온누리교회에 있으면서 세미나를 인도하며 이민교회의 아픔을 보고 이민자로 이민교회를 세워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권준 목사는 자신이 학생때 출석했던 교회의 담임목사로 2000년 이민교회로 돌아왔다.

권 목사는 특히 기성교회 부흥 모델을 창출하고 싶었다. 그가 돌아온 당시 형제교회는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350여명이 출석하던 기성교회이다.

대부분의 뉴욕소재 한인교회들도 기성교회이다. 교회부흥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담임목사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볼때 교회에 새로 부임한다는 자세로 컨퍼런스에 임할때 큰 은혜가 임할것이라고 믿는다.

그 다음의 권준 목사의 성공스토리는 저서 <우리교회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다>에서 볼수 있다.

책은 하늘을 향해 열린교회, 서로를 향해 열린교회, 세상을 향해 열린교회등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소제목을 보면 내용을 짐작할수 있다.

Part 1. 하늘을 향해 열린교회
예배에 목숨 걸자. 본질로 돌아가자. 비전을 품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회개하자, 한마음이 되지 못했던 것을. 기도 응답을 경험하자. 헌금보다 마음을 드리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자.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사모하자

Part 2. 서로를 향해 열린교회
사랑으로 이끌자. 당회와 하나 되자. 다음 세대와 연합하자. 다음 세대를 독립시키자. 배우자, 가르치자. 건강하게 자라도록 훈련시키자. 사람을 키우는 교회가 되자. 섬기는 리더가 되자.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섬기자. 부흥의 결과에 대비하자. 팀으로 섬기자.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자.

Part 3. 세상을 향해 열린교회
건강한 가정을 세우자. 삶의 보람을 찾아 주자. 세상에 감동을 주자. 건물에 속지 말자. 교회를 지역사회의 명소로 만들자. 빛나는 얼굴로 전도하자

권준 목사는 7년만에 10배가 성장한 교회성장의 동력을 어떻게 볼까? 권 목사는 "교인의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변하한것이 자랑스럽다. 부흥의 근본적인 힘은 서로 사랑하는 목자의 사랑의 심정이다. 그리고 목자와 하나가 되는 성도의 연합과 사랑이다"고 말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열린교회, 서로를 향해 열린교회, 세상을 향해 열린교회란 무엇인가? 권 목사는 단계적으로 그것을 설명하며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때 내 자아와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된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나아가 음성을 들을때 서로를 향해 열린마음이 된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될때 그힘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했다.

권준 목사는 "교회에 사랑이 있음을 알고 세상사람이 몰려오느 교회"를 꿈꾼다고 말한다. 억지로 하는 구제나 포장된 복음이 아닌 세상으로 나갈수 밖에 없는 사랑이 필요하다.

ⓒ 2008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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