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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규삼 목사 "미국 이민 교회가 특별히 힘써야 할 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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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9-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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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뉴저지초대교회 잡지인 PIONEERS에서 한규삼 목사가 담임목사로 결정된후 한 목사를 인터뷰 한 내용이다. 한규삼 목사의 신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 이민교회의 사명, 초대교회에서의 사역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Q 먼저 목사님께서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하시고 미국에 오신 뒤에 신학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법학의 길을 포기하고 신학을 전공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소명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법률가이셨던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뒤를 이어 법관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늘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표가 잠시 흔들렸던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시 지원을 하면서, 그때 인문학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졌지만, 어머님의 만류로 법과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하지만 법률 공부는 제게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고, 대학시절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교회 봉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4학년 여름방학 때 진로 문제로 기도하던 중에 콜링을 받았고 그 후 미국 이민을 결심했습니다. 가족들은 이미 먼저 이민을 갔고, 저 혼자만 서울에 있었는데. 그 당시 가족이 있는 미국에서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새롭게 시작한 신학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상당 기간 몰두해도 지치지 않을 만큼, 학문 연마에 대한 가속도로 인해 꽤 멀리까지 기독교 학문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Q 목회학 석사를 서부지역이나 동부지역에 있는 신학대학원을 선택하지 않고 미시간에 있는 칼빈 신학대학원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또 그 학교의 특징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제가 이민을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교회가 그리스천 리폼드 교회(CRC)였는데, 담임목사님께서 교단신학교인 칼빈을 권하셨고, 장학금 혜택도 좋을 뿐만 아니라 조금 시골(?)이라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점도 돋보였습니다. 저는 처음 신학을 접하는 미국 땅에서의 출발선상에서 칼빈 신학교를 통하여 귀한 교수님들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를 특별히 아껴 주셨던 분이 신약학 교수님이어서 제가 신약학을 계속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칼빈신학교는 화란 개혁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인데, 철저한 성경 원어 교육과 개혁주의란 신학의 확고한 틀을 잘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는 당시 외국 학생들을 인내로 받아 주어, 언어가 불편했던 시절이었지만 어려움을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Q 목사님께서는 이시대의 이민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민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이민교회의 사명이 보통의 교회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성도들은 견고한 예배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 예배는 주일을 넘어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배자로서 이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그려내야 합니다. 이런 구체적인 활동이 전도와 선교의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미국 이민 교회가 특별히 힘써야 할 부분은 세속주의가 주는 가공할 만한 힘의 도전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속의 가치관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민 교회는 대개 선교에 많은 힘을 기울이는데, 이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민 교회는 지역 사회에 미칠수 있는 영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힘이 대부분 선교로 옮겨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민교회란 현실에 맞는 '전략선교'를 하는 것도 이민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Q 초대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았을 때 여러가지 생각이 있으셨을 것으로 압니다. 청빙을 허락하신 이유는 어쩌면 뉴저지 초대교회에 대한 꿈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초대교회를 향한 비전을 말씀해 주십시요.

10년 쯤 목회를 하다보니 목회자로서의 저 자신에 대한 장점과 약점을 비교적 잘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청빙하려던 장로님들께 저는 '비전너리'가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꿈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의 꿈은 성도님들과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저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간 시무해온 세계로 교회는 이런 견고함에 이르는 틀이 마련되었다고 판단했기에,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견고한 교회'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초대교회의 청빙을 놓고 기도하던 중에 성령께서 뉴욕/뉴저지 지역을 위한 주님의 마음을 보여 주셔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곳 미동부 지역을 리드할 수 있는 교회이며, 이것은 초대교회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Q 작년에 두란노서원을 통해 <오깨>라는 신앙 서적을 출간하셨고 아직도 그 책을 가지고 LA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원래 출판에 관한 저의 관심은 성경의 특정 부분을 평신도들이 읽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책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 봄 두란노 출판사의 핵심팀이 LA를 방문할 때 만남을 가졌는데, 저의 목회관을 담은 책을 저술해 줄 것을 부탁받고 '오깨'를 쓰게 되었습니다.

'오깨'는 '깨자'로 시작하는 다섯개의 단어가 신앙을 견고히 하는데 필수적인 것이어서 이들을 한데 묶어 놓은 것입니다. 오깨는 '깨어짐, 깨달음, 깨어 있음, 깨끗함, 깨부숨'인데 한결같이 성경의 핵심 주제입니다. 이 책의 글쓰기 방식은 경험을 포함하여 읽기 쉽도록 했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는 한 개인 목사의 묵상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내용을 아우를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연구한 저의 신학이 담겨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Q 한국과 미국을 망라하여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신지요? 계신다면 그 분을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좋아하며 따르는 목사님은 남서울 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님입니다. 저는 홍 목사님께서 소유를 주장하지 않는 모습, 세상을 넓게 품는 교회관과 선교관을 사랑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박물관을 좋아하시는 점도 저와 같습니다.

Q 지난 1월에 신년 부흥회에 초대교회에서 은혜로운 말씀을 주셨는데 목사님게서 느끼신 뉴저지초대교회에 대한 인상은 어떠하셨는지요?

사실 지난 1월에는 계속되는 말씀사역에 집중하느라 교회의 다른 부분을 느껴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편협한 인상이 될 것 같은데, 제한된 범위의 경험 안에서 받았던 깊은 인상은 장로님들 이었습니다. 장로님들께서 교회를 위해 철저히 헌신하는 모습을 뵐 수 있었는데, 마치 하나의 몸과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맨하탄의 청년사역은 저를 흥분하게 하였고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Q 신앙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면 어떤 때이셨나요? 또 하나님과의 친밀한 간증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아버님이 좀 일찍 하나님 곁에 가신 것을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신학대학원 교수를 목표로 학문을 마치고 전임교수로 가르치던 중 LA '세계로 교회"의 부름을 받고 담임 목회를 시작했는데 처음 몇년 동안에는 어려운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어려움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엇습니다. 영성과 경험이 모두 부족한 저 때문에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당시 제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이 있어 '번 아웃'되는 현상을 겪은 적도 있어, 목회사역이란 환경을 떠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잠 1:23을 통해서 치유해 주셨고, 이 경험을 통해 행복하게 목회하는 비결을 약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Q 사모님과는 언제 결혼하셨고 자녀는 어떻게 되시나요?

저희는 1988년 여름에 LA에서 결혼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저는 신학교 졸업반이었고, 아내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LA 에서 성장한 1.5세인데, 신학생과 결혼할 의사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특별한 마음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아내는 현재 Librarian 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결혼한 이듬 해에 낳았고, 둘째 아이는 그 후 3년 뒤에 낳았습니다. 담임목회를 막 시작했을 때 큰 아들이 사춘기를 겪었는데, 저의 바쁜 목회 일정 때문에 첫째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일이 좀 아쉽지만, 지금은 든든하게 성장하여 뚜렷한 주관을 자기고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둘째 딸은 11학년인데,  예쁜 신앙인으로 하나님께서 바르게 키워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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