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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걸목사 "내 힘으로 신앙생활 하려말고 은혜의 바다에 잠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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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0-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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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A 뉴욕지역 한인교협(회장 김기호 목사) 연례행사인 연합부흥성회가 '어려울때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라는 주제로 3월 26일(금)부터 3일간 뉴욕신광교회(한재홍 목사)에서 열렸다.

강사 이용걸 목사(필라 영생장로교회)는 둘째날 에스겔 47장 1-12절을 본문으로 "성화의 삶"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필라델피아 지역의 한국인들의 사업은 대부분 유태인들이 경영하던 것을 인수 받은 경우가 많다. 지금은 그 사업체를 넘기고 싶어하는데 요즘 이민 온 한국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흑인지역의 사업을 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 남미 계통의 사람들에게 매매가 이루어 지는데 우리 교인이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목회를 하는 29년 동안 7-8분이 강도에 의해 세상을 떠난 성도님들이 있었다. 그 성도분도 11년간 이어온 가게를 팔기 위해 철야기도도 하고 가게를 팔기 위해 무척 애를 쓰셨는데 어느날 도미니카 사람이 와서 가게와 가게가 딸린 건물까지 사겠다는 제의가 왔다는 것이다. 너무 좋아서 승락을 했고 남미 사람들이 좋아 하는 현찰로 거래는 이루어 졌다.

돈을 받고 부부는 고민을 하다가 돈을 보자기에 싸고 둘둘 말아서 배에 차고 옷을 입었다. 죽이지 않으면 그 돈은 가져갈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두분은 30분 거리인 집에 가지 않고 1시간이나 걸리는 교회로 와서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교회는 평일이라서 거의 사람이 없었고 교회 사무원 한 분과 부교육자 한분만이 계셨고 파킹장도 비어 있는 상태 였다.

강도를 두번(?)밖에 당하지 않았고 무사히 가게를 팔게 되었으며, 뜻하지 않았던 가게 건물까지 팔게 되어 그들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막 나가려 하는데 파킹장에 낯선 자동차가 눈에 띠더라는 것이다. 차안에는 네명이 타고 있었고 아마 계속 미행을 했던 것으로 짐작을 하게 되었다.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온 부부는 일생에 그런 간절한 기도를 드린적이 없었던 기도를 드리고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을 했다.

기도를 마친 부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힘으로 마치 서부 영화에서나 나오듯 비장한 결심을 한채 교회문을 나와 딱 버티고 서니까 그들이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그들은 부부가 잠시 들어간 사이에 경찰에 신고를 한줄 알고 도망을 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이 교회에 오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죽지 않았으면 재산을 빼았기지 않았겠는가. 부부는 그제서야 교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을 했다.

교회를 통해서 가정을 축복하신다. 교회가 시험에 들면 가정이 편안하지 않다. 내 사업보다 교회를 더 중요 하게 생각해야 한다. 에스겔이 환상을 본다. 이스라엘의 생수가 성전 문지방에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축복은 교회로 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생수가 우편으로 흐른다. 우편은 말씀을 의미한다.

축복은 교회를 통해서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다. 말씀의 진리편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 주일을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이 축복을 받는다. 축복은 하나님께로 흐르는 것이다.

말씀에 보면 천사가 선지자와 함께 측량을 하여 발목에서 부터 헤엄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단계를 알아야 한다.

남들이 보면 내 신앙이 좋다고 하지만 내 신앙은 내가 아는 것이다. 물이 흐르면서 주변이 살아나는 것을 보여 준다. 영적으로 성화의 단계에 오를 수록 주변이 축복을 받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임종 환자를 많이 보는데 임종환자를 지켜 보면서 어떤 분도 돈을 가져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 적을 들어 본적이 없다. 돈을 벌지 못한 후회보다는 자신의 믿음 생할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한다.

우리 교회는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 한국에서 유학온 중고등부 수가 많아서 특별히 한국어 중고등부를 만들게 되었고 70명 정도가 나온다. 그 아이들 중에 3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에 나오는 아이가 있었다. 매일 새벽 5시30분이 되면 어김없이 한국에서 국제 전화로 그 아이를 깨우는 어머님이 계셨던 것이다. 전화 요금은 꽁짜 였다. 왜냐하면 벨만 울리지 그아이는 전화를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년 후 그아이가 어떻게 되었을까. 일류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당연한 일이다. 자녀 성공은 부모인 나에게 있다.

성회의 첫번째 단계는 발목 단계

내 신앙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야 한다. 성화의 단계가 발목의 단계에 있일수도 있다.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은혜의 체험이 없다면 발목의 단계이다. 믿어주는 것인지 예수를 믿는 것이지 성령의 열매가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육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 점검해야 한다.

지금은 필라에 한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셔틀 버스가 JFK 공항까지 데려다 주지만, 예전에는 직접 JFK까지 가야 했다. 목회를 하다보면 공항 픽업을 많이 가게 된다. 목회 초창기에 조카가 목회를 많이 도와 주었는데 친구가 유학을 오게 되어 픽업을 나가게 되었다. 조카는 집안이 부유했지만 참 열심히 사는 아이였다.

공항에 나가서 도착한 아이를 보자마자 공부하고는 썩 거리가 먼 학생임을 한눈에도 알게 되었다. 가져온 보따리만 이민백으로 6개로 자동차안에 다 들어가지 못해 지붕에 2개를 가까스로 올리고 있는데 그 학생이 깨질것이 많으니 조심을 하라는 말을 했다. 조카가 삼촌이 짐꾼 대우를 당하는것에 화를 냈다. 한국에서 잘나가던 삼촌 목사가 이렇게 까지 목회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 유학생은 한달 나오고 안나올 것이라며, 한대 때리고 싶은 것을 참았다고 했다. 나는 조카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후에도 조카는 6년동안 열심히 봉사를 하고 지금은 하나님의 축복속에 화장실만 7개 반이나 되는 집에서 살고 있다.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을 하신다.

그런데 그 유학생이 2주 나오고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심방을 갔다. 잘 있었냐는 질문에 잘 있다는 대답과 함께 2주 정도 나가주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말했다. 교회는 목사를 위해 나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이다. 의존적인 신앙은 안된다.

총독이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려다 죄인이 아님을 알고 사면의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되었다. 바울은 그 자리에서 예수를 믿어 나와 같이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말을 한다. 어떻게 보면 미친 짓이다. 제정신이면 그런 자리에서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도 예수에게 미쳤다 하는 소리를 한번은 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실 미친 사람은 겁이 없다. 미친사람이 암환자인 것을 본일이 있는가. 본인은 마냥 행복한 것이다.

암의 3대 원인은 스트레스, 유전, 음식물이라고 한다. 앞으로 남자는 두명에 한명, 여자는 세명에 한명이 암으로 사망을 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암세포와 같이 살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암세포가 번식하여 암에 걸린다. 이런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5가지 오기를 부려야 한다. 1.감사하기 2.기뻐하기 3.기도하기 4.잘 먹기 5.잘 자기. 못 먹어서 곡기를 놓치다 숟가락 놓으면 죽는 것이다. 이런 5기만 있으면 암을 극복한다.

요즈음 세상이 미쳐 있다. 제정신으로 살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자녀들은 계절마다 옷을 사달라고 조른다. 냉장고 문을 마음대로 열고 꺼내 먹으며 부족한 것은 당당하게 사달라고 조른다. 왜 그렇까. 자녀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작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주 어려웠다. 그런 자녀의 특권을 누려 보지 못했다. 어려워서 무릎이 헤어진 바지를 감추고 다니느라 애를 썼다. 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일부러 무릎이 찢어진 바지를 입는다. 내가 유행의 첨단을 걸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한 곤충학자가 특수 카메라로 개미들을 일련 번호를 매겨서 개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중 열심히 일을 하는 개미는 단지 15%이며 나머지 85% 덩달아 왔다 갔다만 하더라는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덩달아 왔다 갔다에 해당하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왕 믿을 바에는 미친듯이 믿어야 한다.

유태인들은 매년 명절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은 맨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많은 돈을 받는다. 앞자리는 은혜의 소낙비를 받는 곳이며, 뒷자리는 왔다갔다 하는 이들은 이슬비의 은혜를 받는 곳이다.

성화의 두번째 단계는 무릎까지 오는 단계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을 죄라고 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기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 머리털 까지도 세수하시는 분인데 '알아서 주십시요'라고 기도한다. 기도하지 않고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주시지 않는다. 여리고를 지나가면서 주님은 소경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소경에게 소원은 당연히 눈을 뜨는 것이지만 주님은 무엇인지를 물으셨다. 구하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알아서 주시지 않는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들 받는다. 왜 북한이 기근에 허덕이는가. 많은 국가들이 도움을 주어도 하나님은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한 북한에게 땅의 소산물을 내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멀쩡하던 장로님이 죽음을 맞았다. 해마다 미국에서는 의료 실수로 30만명 이상이 죽는 다고 한다. 의사도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어느 권사님이 목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는데 혹이 계속해서 자라 여러번 제거수술을 했다. 수술을 집도한 외과의사가 내게 기도를 부탁했다.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난 권사님과 외과의사를 위해 기도했다. 그 외과의사는 수술중에 혹의 원인을 발견했다. 식도에 바늘 구멍만한 구멍이 생겨 자꾸 음식물 찌꺼기가 쌓여 혹이 생겼던 것이다. 그 수술 후 10년이 지났지만 권사님은 다시 재발하지 않았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한 비유중에 밤중에 친구가 방문해 대접할 것이 없자 그는 손님을 위해 옆집에 가서 떡을 구했다. 그러자 그 옆집 사람은 지금은 밤이라 식구들이 다 잠에서 깰 수 있으니 다음날 오라고 했다. 사실 그당시 유태인들도 한 이불속에서 온 식구들이 다 잠을 잤다. 우리도 그랬다. 기억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옛날엔 모두 한 이불속에서 식구가 잠을 잤던 시절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사람은 문을 두드리며 간절히 떡을 구했다. 결국 옆집사람은 떡을 주며 너의 강청함으로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강청을 안했으면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고집스럽게 뻔뻔하게 끈질기게 강청해야 한다.

피난시절 대구에서 문둥이 거지와 신사 거지가 있었다. 신사 거지는 언제나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구걸을 했다. 신사거지는 주면 받고 안주면 그만이었지만 문둥이 거지는 달랐다. 문둥이 거지는 주지 않으면 직접 부억으로 가서 먹을 것에 손을 대고 난리를 쳤다. 어쩔수 없이 사람들은 음식뿐만 아니라 문둥이가 만진 그릇채로 내어 주었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행여 먹을 것에 손을 댈까봐 안주고 못배기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주시면 받고 안주시면 제힘으로 하겠습니다 하면 절대 받지 못한다. 왜 골방에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나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신학교 다닐때 이야기이다. 시절이 어려워서 많은 학생들이 제대로 등록금을 내지 못했다. 신학교 등록금 안낸다고 퇴학은 시키지 않지만 등록금을 내지 못한 사람의 명단은 학교 게시판에 올라가 있었다. 7년 동안 난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아마 그때 내 이름을 모르는 학생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등록금 못낸 유명한 학생이었다.

결국 난 삼각산에 들어가 등록금을 위해 기도했다. 그때 당시에는 기도를 하려면 소나무 한그루는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원래 소나무는 부러지지 않는다. 단지 휘어지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한국인을 소나무에 비유했는지 모른다.

어디서 작은 소나무를 발견하고 기도 첫날 난 그 소나무를 뽑기 위해 간절히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아니 단지 등록금만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첫째날 소나무는 뽑아지지 않았고 둘째날도 역시 소나무는 뽑히지 않았다. 마지막날 허탈해서 바위에 누워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난 드디어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줄 았았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산 아래서 친구가 내려오라는 손짓을 하며 부르는 것이었다.

전화교환소를 다니던 친구였는데 가입비 5만원을 받은 날 저녁, 귀에서 소리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돈을 자꾸 내 등록금으로 주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록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내 일생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해 본적이 없었다. 히스기야는 벽에 대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반드시 응답을 하신다

감기에 들면 병원에 가야 한다. 그래야 병원도 먹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도 손을 놓는 병이라면 무조건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의사도 자신이 암에 걸린다면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때 낮에는 일거리가 없어 땅을 파고 밤에 야간학교를 다녔다. 그때 난 유학을 가겠다는 꿈을 일기장에 적었다. 누가 내 일기장을 봤으면 한심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유학을 오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하고 학위까지 받게 되고 동시에 목회를 할수 있게 되었다. 어린시절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다.

세번째 물이 허리 단계에 이르는 섬김의 은사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우리도 교회를 세워가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봉사는 내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봉사부터 하려하지 말고 예배를 잘 드린 후에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 신학의 주된 요지는 상급에 관한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옆에서 단 한번으로 구원을 받은 강도가 바울과 같은 상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은 저들이 눈물로 섬김을 기억하시고 잊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학창시절 나는 다섯번의 수학여행의 기회가 있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마지막 신학교 수학여행때에는 정말 가고 싶었다. 비용도 전도사로 일하던 교회에서 대신 내주었기 때문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수학여행 일정은 내가 맡고 있는 청소년 베델기도원 기도 일정과 맞물리게 되었다. 난 갈등하다가 결국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기도원에 가서 난 통곡을 했다. 억울해서 울었는데 아이들은 내가 울자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 후에 합동측에서 제주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고, 7개 개척교회중 첫번째로 제성교회를 신축하고 첫 부흥회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많은 유명한 강사님들이 계신데도 내가 초청을 받았다. 주님은 이렇게 갚아 주시는 분이다. 아마 나처럼 세계 여행을 많이 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타코마는 군대가 집결되어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그래서 그 지역의 한인교회는 대부분이 여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곳에서 목회를 하시던 목사님이 자살을 여러번 시도한 한 여인에 대해 말씀한 적이 있다. 그 여인은 그렇게 살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 매일처럼 교회의 강대상을 닦는 일로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 전하고 싶어했다고 했다.

매일 기도하면서 강대상을 닦는데 하루는 그 지역에서 큰 약국을 4개나 운영하는 장로가 잠시 기도하기 위해 교회에 들러서 그녀를 보게 되고 기침하는 그녀에게 감기약을 전해 주었다. 얼마 후에 다시 교회에 기도하기 위해 들렀다가 그 여인이 똑같은 모습으로 강대상을 닦는 것을 보고 점심을 먹자는 권유를 하고 맥도날드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식사전 기도 후에 그 여인이 사방을 두리번 거리자 그 장로가 이유를 물었다. 어디서 웨딩마치 사운드가 들린다고 그녀는 말을 했다. 사실 그 장로님도 기도중에 똑같은 소리를 듣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장로님은 부인과 사별을 하고 새로운 배후자를 찾아 달라고 교회에 기도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 후에 타코마의 교회에는 강대상을 닦는 봉사자로 200명이 몰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마지막 단계는 헤엄을 치는 단계

물이 깊으면 헤엄을 잘 칠수 있다. 가끔 YMCA에 가서 수영을 하곤 하는데 자주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할머니들 때문이다. 난 한바퀴를 돌고나면 힘이 빠져 쉬어야 하는데 할머니들은 너무 여유롭게 여러번 왕복을 하면서 나를 놀려대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지치고 그 할머니들은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것일까. 할머니들은 물의 부력으로 떠다니듯이 수영을 하기 때문이었다. 신앙을 내힘으로 하려면 1년도 버틸 수 없다. 그냥 은혜의 바다에 잠겨야 한다. 전적으로 잠기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니까 힘이 드는 것이다.

한국에 부흥강사로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다. 공항에 도착을 했는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설마해서 다시 한바퀴를 돌고오니까 어떤 키가 작은 목사님이 들고 있는 손바닥만한 종이에서 내 이름을 발견 할수 있었다. 혼자 나오셔서 말씀도 없으시고 부흥회를 하는 동안에도 참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이 되었다.

마지막 날 부흥회 일정이 다 끝나자 한숨을 내쉬면서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했다. 7년전 이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었는데 초대된 강사분이 첫날 강단에 서서 장로님을 호명해서 나오라고 하더니 빰을 쳤다는 것이다. 그 장로님은 왼쪽을 내어 주는 대신 왜 때리는지 항의를 하는 바람에 부흥회는 그것으로 끝이 나고 그 후 무서워서 부흥회를 한번도 열지 못해다고 했다.

7년이나 부흥회를 하지 않자 교인의 성화에 못이겨 부흥회를 계획하기는 했지만 장로님들이 반대하는 부흥회여서 자기 목사직까지 내 걸고 하게 되었으며 행여 그때 같은 일이 반복이 될까 노심초사 했는데 공항에서 처음 본 내 모습이 그때 7년전 부흥강사와 똑같이 닮아서 부흥회가 끝나는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거의 나의 간증을 토대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한다. 자아가 깨어지고 자존심이 깨져야 한다. 말은 있지만 글이 없는 지역의 선교를 위한 성경번역 선교회라는 곳이 있다. 글이 없는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정말 어려운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2025년이 되면 이 지구상에 모든 이들에게 성경이 전파될 것이라고 하셨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한다는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렸다.

마지막으로 요즘처럼 계속해서 강한 지진이 일어난 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주님 주는 강한 멧세지로 들어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언제든지 재림신앙으로 무장이 되어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무디어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되어 여러분과 함께 서로 앞서며 뒤서며 주님 앞에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 2010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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