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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 목사 "목회자의 창조적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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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1-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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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목사회(회장 김용익 목사)는 10월 11일(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뉴욕실로암장로교회(김종덕 목사)에서 권준 목사(시애틀형제교횤)를 초청하여 "부흥의 원칙과 목회자의 창조적 변화"라는 주제로 목회자 세미나를 열었다.


▲권준 목사 - 목회자의 창조적인 변화

권 목사는 2008년에도 뉴욕목사회 세미나 강사로 참가한 한 바 있다. 권 목사는 뉴욕을 방문후 뉴욕과 뉴저지 4기 목회자 아버지학교 강사로 서며, 10월 21일부터 3일간 뉴저지 한소망교회(이승준 목사)에서 부흥회를 인도한다

권준 목사는 뉴욕실로암장로교회에서 열린 첫번째 강의에서는 "목회자의 창조적 변화"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으며, 금강산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점심삭사후 열린 세미나에서는 "교회부흥의 삼대원칙"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다.

다음은 "목회자의 창조적인 변화"라는 제목의 강의내용이다.

먼저 목회하면서 '행복한 목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사랑의 메세지가 나오겠는가. 못마땅하니 사랑의 메세지가 안나오고 율법적으로 가르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말씀으로 때린다. 행복한 목사가 중요하다. 탈무드에는 미소짓지 않으려면 장사를 시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얼굴에 미소가 없다면 어떻게 목회가 되겠는가. 힘든 시대에 사는 성도들이 목회자의 삶에서 나오는 기쁨과 평안과 행복에서 소망을 얻는다. 목회자들이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는 능력과 평안이 풍겨지지 않을때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어떻게 가질수 있겠는가. 목사가 행복해야 행복한 목회가 가능하다.

목회자의 친밀함과 영적귄위

행복한 목회가 더불어 중요한것은 목회적인 리더십이다. 행복한 목사가 줄수있는 리더십이 무엇이겠는가. 21세기 리더십은 친밀감 더하기 권위이다. 21세기 리더십에는 함께 할수있는 진솔한 대화를 나눌수 있는 친밀감이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목회자가 성경만 끼고 있어도 거룩함을 인정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한 목회자의 모습이 나오다 보니 교회의 이미지가 추락됐다. 그런 가운데 거룩의 모양이 아니라 정말 함께 할수있는 다가갈수 있는 친근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페이스북를 하는데 느끼는 것은 이시대는 더이상 권위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진솔한 대화가 오고갈때 친구가 맺어지고 함께 대화를 나눌수 있다. 친밀감이 중요하다.

그런데 친밀감만 있으면 안된다. 평신도와 나와 무엇이 다른가 하면 안된다. 친밀감 플러스 권위가 있어야 한다. 같은것 같은데 뭔가 다른 어떤 감동을 주는 것은 권위에서 온다. 권위주위는 나쁜것이지만 귄위는 놓쳐서는 안된다. 권위는 말씀과 기도에서 오는 영적권위이다. 하나님의 교제에서 영적인 귄위가 나온다. 성도가 목회자를 만나서 뭔가 소망과 힘을 얻는 귄위이다. 21세기 목회자 리더십은 더 힘들다. 그러나 권위는 놓칠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행복한 가운데 친근한 가운데서 줄수있는 영적귄위, 뭔가 감동을 줄 수 있는 우리의 모습, 그것은 결국 말씀과 기도에서 부터 주어지는 영적권위이다.

목자와 기름부으심

한가지 더 말하자면 결국 그렇기에 우리가 끓임없이 소망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다. 2000년 형제교회에 부임하여 올해 12년째가 되어가는데 형제교회 부흥을 말할때 하나님의 은혜외에 무엇으로 설명할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면 동역자는 은혜인줄 알겠는데 그런데 어떻게 했는가를 묻는다. 정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에 관심이 떨어진다. 단지 노하우만 관심을 가진다. 하나님과의 기름부으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오늘도 사모해야 할것은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는 하나님과의 1대 1의 만남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가운데 영적인 은혜 즉 기름부으심이 있다.

왜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부음을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목자의 심정이다. 놓칠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다윗은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위해서 목자의 심정으로 생명을 던졌다. '목사'라는 칭호보다 우리가 놓칠수 없는 들어야 하는 칭호는 '목자'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한 영혼을 예수그리스도 제자를 세우고, 그 삶속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로 살며,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목자의 심정. 삵군이 되면 안된다. 목자가 되어야 한다. 한 영혼을 위해 가슴앓이하는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

성도들이 정말 저분이 나의 영적인 목자라고 느낄수 있는 목자의 정신을 우리는 놓칠수 없다. 다윗은 어려움을 당할때 하나님을 목자로 만난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삶속에서 양들을 돌보며 목자를 삶으로 경험했던 그는 자신이 곤고할때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다.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앞에 서는 순간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은 목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목자되신 예수그리스도의 흉내라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성도들을 푸른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성도들의 삶에 목자이신 하나님을 각인시켰으면 좋겠다. 이자리에 서면서도 같은 동역자들과 행복을 함께 노래할수 있고 그리고 목자로서 하나님에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했으면 좋겠다.

변화하는 교회

변화에 대해 나누자. 생명이 있다는 것은 끓임없이 움직이며 변화가 일어난다. 가만히 있어도 변화가 있다. 현상유지가 아니라 퇴보라는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기에 변해야 산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부흥하지 못하는 교회의 특징은 무조건 변화를 싫어한다. 왜람된 말씀이지만 마음속에 형제교회에 부임하고 기성교회도 변화해서 부흥한다는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이민 전통교회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 1세대가 수고하면서 예물을 드리고 교회를 건축하고 성장의 기쁨을 누렸는데 언젠가부터 교회가 정체되고 하향화된다. 젊은이가 교회를 빠져나가고 고령화되는 것을 보면 이렇게 가다간 교회가 다시 공장으로 팔릴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기성교회도 부흥가능하다는 것을 모델을 보여주고 기성교회에 꿈을 주고 싶었다.

부임했을때 형제교회는 28년된 교회였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쉽게 변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기성교회가 쉽게 변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어떻게 교회가 변했는지 와서 집회를 인도해달라고 했다. 어느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면서 느끼는것은 이 교회는 예수님이 와도 어렵고 쫓겨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흥하지 못하는 교회의 특징은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를 추구하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고인물은 썪고 퇴보하기 마련이다.

변화는 세상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질된것을 본질로 돌이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아무리 익숙하고 편하다 하더라도 본질인 복음을 지키고 전하기위해 필요하면 변화해야 한다. 우리의 시스템이 과연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는가. 과거를 무시하면 실패한다. 과거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그렇게 전통적으로 해왔던것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데 지키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국 복음의 진보와 영혼구원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형제교회는 2주전에 40주년 예배를 드렸다. 40년에 대한 무엇인가 자부심이 있다. 우리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지키기위해 노력하는 교회가 아니라 매년 어떻게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는가를 기억하는 교회가 되자고 했다. 과거의 역사와 전통이 현재와 미래의 걸림돌이 아니라 부흥의 디딤돌이 될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끓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오늘 하고 있는 것이 과연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는가. 그러한 변화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복음의 진보가 없으면 건물만 남는다. 변하지 않으면 죽음이다. 그렇기에 고정관념의 벽을 깨고 창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포도주와 부대

복음의 진보없는 과거의 시스템을 부셔야 한다. 업그레이드되던지 아니면 새롭게 가야한다. 벽은 높이 쌓을수록 안전함을 느끼지만 그 벽이 나를 억압할수도 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다, 낡은 부대를 담으면 부대가 터져서 다 잃게된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한 말씀이다. 포도주는 일차적인 것이다. 포도주때문에 부대가 만들어 진 것이다.

일차적인 것은 복음이다. 부대는 복음을 둘러싸고 형성된 조직 형식 형식 문화이다. 복음을 잘지키고 전하기위해 만들어진 조직 형식 양식 문화이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위해 만든 부대가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그 상황에서 부대가 어느때부터 복음의 장애물이 되었다. 복음의 진보를 위해 끓임없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럴때 부대가 의미가 있다. 그때야 포도주라는 복음을 증거할수 있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경건의 모양보다 중요한것은 경건의 능력이다. 능력있을때야 모양도 의미가 있다. 우리교회가 지금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는가. 복음의 진보를 위해 무엇이 변화되어야 하는가. 변화의 과정중에 경험한것은 첫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성도들에게 교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한다

성도들에게 왜 우리교회가 이시대에 존재하는지 사명을 확인시키고 비전 즉 꿈을 가지게 한다. 목회자는 특히 담임은 비저너리가 되어야 한다. 비전을 나눌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반드시 있어야 할 담임의 중요한 은사이다. 성도들과 비전을 못나누면 대부분 행정가이다. 담임목사라면 왜 우리교회가 존재하는지 비전을 선포하고 공유할수 있어야 한다.

저는 비전 스테이트먼트를 대해 일년에 거의 같은 설교를 두번한다. 그러다보니 이 설교를 다시 할 필요가 있을까 성도들이 지겨워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참가한 컨퍼런스 강사의 말을 들으며 확신한다. 그는 비전 나눔을 강조하고 "목사가 비전을 하도 말하여 성도들이 지겨워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시점이 바로 성도들이 우리교회 비전이 이것일까 생각하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비전은 끓임없이 나누어야 한다. 담임은 비전나눔을 할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비저너리는 상대방 허파에 바람을 넣을수 있어야 한다. 비전이라는 것은 안잡히고 안보이지만 손에 쥔 것 같이 느낄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허파에 바람 넣는듯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비전은 작은 씨앗에서 수많은 열매를 보는 것이다. 지평선 너머를 보게할수 있어야 한다. 끓임없이 비전을 나눌수 있어야 한다.

바전을 나누기위해 소통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소통의 어려움이다. 목사가 어떤 꿈을 꾸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꿈이 무엇인지를 소통할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 같은 일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저는 부임후 매주 목양칼럼을 11년째 쓴다. 홈페이지에 권준목사의 아침편지라고 해서 중간에도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나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마음과 생각을 전달한다. 저는 내가 할수있는 것을 다 동원해서 성도와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목회를 하면서 중점적으로 놓칠수 없는것은 당회이다. 장로와 소통을 이루는것이 중요하다. 부부가 행복하면 자녀가 신경을 안쓰는 것 처럼. 목사와 장로와 행복하면 교회 성도들도 편안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장로들과 모임을 가진다. 다음날이 주일이니 끓임없이 내가 생각하는 내용들을 전한다. 교회가 이렇게 가면 좋겠다하는 것을 장로님과 나눈다. 결정할 내용에 대해서도 목사의 생각을 자주 나눈다. 그래서 회의하는 시간이 30분이상을 안넘긴다. 대부분이 이미 나누었던 이야기이다. 대부분 목사가 원하는 것이니 따라준다.

내 목회철학은 힘든 사람과 밥을 먹을줄 알아야 한다. 물론 힘든 것이다. 결정에 힘들어하는 분이 있으면 전화를 해서 식사하자고 해서 내가 내는것이다. 식사는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다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문제가 생긴다. 의견을 안맞는다고 해도 목숨걸일이 아니다. 장로님 의견도 일리가 있으니 조절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리더십과 소통을 이룰수 있을까 하는 것이 교회에 대한 비전을 나누는데 중요하다.

복사하고 소화하라

교회가 변화하는데 가장 중요한것은 비전나눔이 되어야 한다. 비전은 보아야 가질수 있는데 안보이는데 어떻게 볼수있는가. 잘하는 교회와 사업을 잘하는 기업을 보아야 내가 있는 장소와 상황에서 어떻게 해나갈까 하는 그림을 그릴수 있다. 그래서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안보고 어떻게 그림을 그려나가는가. 보고 배우며 내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이 그 자리에 오고 교회가 성장부흥할때 사람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업이나 교회가 그 위치에 갈때까지 그들의 흘린 땀방울과 눈물이 있음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원리와 철학을 배우고 내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 교육을 공부했는데 기억나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원리는 모방이다. 모방은 최고의 능력이다, 나는 카피의 도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보고 배우고 내것으로 소화하여 그것을 만들어 간다. 자기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열정에 넘쳐서 흥분해서 시작하는데 문제가 있다. 장벽이 있을때 어떻게 뛰어넘을까 하는 노하우를 배우고 내것으로 소화해서 적용해야 하는데 소화를 안하고 하니 장벽에 부딪치니 어려워 진다. 자기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베낄려면 제대로 하자. 카피의 도사가 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목사의 확신으로 따라간다. 교회에 대해 배운 교회는 윌로우크릭커뮤니티 처치이다. 저는 그곳에서 눈물을 보았다. 우리는 껍데기를 베긴다. 열린예배의 껍데기만 빼겨온다. 윌로우크릭커뮤니티 처치는 1시간 5분-10분 동안 에배를 드리는데 설교가 40-45분이다. 그들의 원리는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변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말씀을 여는 도구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씀을 중요히 여기지 않고 다른것만 준비하는데 애를 쓴다. 여러가지 문화적인 요소를 가미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저는 그곳에서 눈물을 보았다. 빌하이벨 목사는 입에서 '비신자'라는 단어만 나오면 눈물을 보인다. 자원봉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영혼을 향한 눈물을 보았다. 어떻게 비신자를 교회에 나오게하고 예수믿고 세우게 하는지가 그들의 온 관심이다.

우리는 끓임없이 보고 배우고 성도들에게 보여줄수 있어야 한다. 부흥하는 교회를 보여주고 보고 깨닫을때 나름대로 그림을 같이 그려갈수 있다.

신앙성숙을 위한 양육과 감동주는 목사

다른 것은 변화에 있어서 결국 신앙성숙을 위한 노력이다. 양육이다. 우리는 성도들을 교회다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영향력이 있는 제자로 세우는가. 우리에 맡겨진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영향을 주기위해 말씀에 혼신을 다해야 한다.

이민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유혹이 있다. 1세대의 삶을 너무나 잘안다. 그들의 노동의 삶을 잘안다. 우리성도들을 힘들게 생활하는데 교회에 또 나오라하고 집회 기도 교육하느냐. 힘든데 집에서 쉬게하지. 하지만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추구하는 것은 '편안'이 아니라 '평안'이다. 세상의 힘듬을 뛰어 넘을수 있는 하늘로 부터 오는 평안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다. 제자훈련에 헌신했던 고 옥한흠 목사가 "진돗개 순종도 훈련받지 않으면 똥개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빈깡통이 소리를 낸다.

다녀보니 어려운 교회의 특징은 그 교회에 양육시스템이 없다. 양육의 목표는 성숙이다. 성숙하면 문제에서 이겨내는 능력이 주어진다. 사람이 크는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어떻게하면 제자를 세울수 있는가. 그래서 성도들에게 배우던지 가르치던지 하라고 한다. 말씀을 배우고 훈련받고 함께 한다. 양육을 통해 성숙한다. 성숙하면 우리는 인격만 생각한다. 성숙은 인격만이 아니라 실력이다. 양육은 인격과 실력이다. 양육을 받았다는 것은 실력을 쌓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격좋은 의사를 찾아가지 않고 실력있고 의사를 찾아간다. 양육의 목표는 성숙인데, 성숙은 인격과 실력이다.

성도들이 복음을 대해 나누고 이야기할수 있는 실력이 주어져야 한다. 30년 교회를 다녀도 복음에 대해 5분도 이야기 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교회는 다니지만 마치 다람쥐 체바퀴 도는 것 처럼 다니는 것이 안타깝다. 끓임없는 성숙을 위한 말씀공부를 해야 한다. 결국 이런것이 비전을 가지게 하고 말씀으로 훈련을 받게 해준다. 성도들의 삶속에 공동체 속에 변화를 가져오는 역사를 일으키는 내용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끓임없이 배우고 성숙해 가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저도 일년에 두차례는 컨퍼런스에 참석한다. 리더의 수준이 공동체 수준을 이끈다. 내가 변하지 않고 성숙하지 않으면 교회는 그 수준에 머물기 마련이다. 그러면 썩기 마련이다. 보고 배우는데 있어 중요한것은 문화나 모양이 아니라 원리를 철학이다. 목회에서 어떻게 내것으로 소화하여 나갈수 있는가. 끓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목사의 그런 노력이 성도들에게 감동을 준다.

성도들이 가금 우리목사 설교가 좋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목사 설교를 들어보라고 한다. 인터넷에 보면 더 탁월한 설교가 많다. 왜 담임목사의 설교가 좋다고 할까. 양떼들에게 잘 먹여주려는 목자의 노력과 심정과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설교가운데 느껴진다. 그러니 목사가 나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러니 목회자에 대한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교회와 양떼들을 사랑해서 끓임없이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이다.

정필도 목사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새벽예배를 강조하면서 새벽에 나오는 사람이 너무나 귀하다. 새벽예배 나오는 사람에게 절대 찬밥을 먹이지 말고 따뜻한 것을 잘먹이라고 한다. 그 말이 도전이 된다. 물론 다른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열심과 열정으로 수고하는 땀흘리는 모습이 보인다. 코카콜라 사장은 내 혈관에는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른다고 했다. 결국 미쳐야 한다. 제 정신가지고 살면서 어떻게 영향력을 미치겠는가. 미쳐야 산다. 하나님의 생명에 미쳐야 한다.

하용조 목사의 복음에 대한 열정

존경하고 사랑하는 멘토인 하용조 목사가 소천했는데, 5년동안 온누리교회에 있으면서 하용조 목사에서 배운것이 있다. 하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좋은가를 물었다. 온누리교회는 사역이 왕성하다. 그래서 사역을 잘못하면 교회에 있기가 힘든 문화요소가 있다. 하 목사가 충성하는 사람이 좋다고 대답했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실력이 조금 없더라도 무엇인가 해보려고 노력하는 충성하는 사람이 좋다고 대답했다.

돌아가기전 하 목사님을 지난 여름에 보았을때 11월중 간과 신장 이식수술을 받으려 했다. 하 목사님이 원한 것은 5년간 더 70세까지 목회를 하면서 건축을 마치고 후임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며 이식수술을 받고자 했다. 왜냐하면 일주일에 3-4번을 투석하니 다른곳에 다니지를 못한다. 하 목사는 복음을 전하러 다니고 싶어했다. 부르는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싶어 했다. 하 목사님이 오래살려고 수술받으려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을 하려고 수술을 받는 것이다. 좀 더 멋지게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앞에 가고 싶어했다.

하 목사님은 자신이 건강하지 못했으니 저에게 너무 피곤하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불태웠다. 목회자들이 다 그렇다. 물론 건강해야 하지만 부름을 받은 몸으로 부르는 곳에 가야할곳에 가야하고 잠자는 시간가지 쪼개가면서 목회한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이 미친 열정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에 주신것을 향해가는 열정으로 끓임없는 노력으로 성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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