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뉴욕밀알선교단 김자송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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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1-12-22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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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밀알선교단 김자송 단장은 2007년 2월 남편 최병인 단장(현 이사)에 이어 단장으로 취임했다. 세계밀알 63개 지부에서 유일한 여성 단장이다. 부부가 단장을 이어하는 가운데 장애사역에 있어 김자송 단장이 더 전문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밀알은 세계밀알 총재 이재서 교수가 1979년 한국에서 시작했으며, 현재 전 세계에 63개 지부가 세워져 장애인들을 섬기고 있다. 뉴욕밀알선교단은 전문 장애단체의 지부라는 것이 뉴욕의 다른 장애단체와는 다른 점이다.
만약 '뉴욕밀알선교단 탄생이야기'라는 영화를 만든다면 그 스토리는 어떨까?
여주인공 김자송, 남주인공 최병인, 조연 이재서
1993년 6월 뉴욕밀알선교단의 탄생은 극적인 면이 있다. 당시 이재서 밀알 총재는 필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인 이 총재는 실명과 가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총신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 3학년때인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세웠다. 그는 전문적인 공부와 미국에 밀알 전진기지를 세우기위해 미국에 와 필라와 워싱톤 DC 밀알을 세웠다. 그리고 세계중심 뉴욕지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먼저 남자 주인공 최병인과 조연 이재서 총재의 만남을 보자. 최병인 이사가 이 총재를 처음 만날때 뉴욕의 일간신문 기자였다. 최 기자는 출석하는 교회에서 이재서 총재를 자주 초청해 집회를 가졌다. 그때 최 기자의 머리에는 이 총재의 장애사역 비전에 큰 그림으로 남았다.
영화의 한 모티브는 눈이었다. 최병인 기자는 겨울 포코노에서 열린 1박2일 필라 밀알선교단 간사수련회에 취재를 갔다. 그런데 눈이 너무 많이 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같이 하루를 보낼수 밖에 없었다. 최 기자는 밀알 수련회의 예배와 강의에 참여하면서 장애인 선교의 필요성을 알고 크게 도전을 받았다.
최병인 기자의 됨됨이를 눈여겨 살펴 본 이재서 총재는 최 기자에게 뉴욕 밀알의 책임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이 총재는 필라와 워싱톤 DC에 밀알지부를 세우고 뉴욕에 지부를 세우는 단계였다. 1993년 6월 최병인 기자는 뉴욕밀알선교단을 세우고 처음에는 총무로서 활동하다 다음해 초대 단장으로 취임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여자 주인공인 김자송 단장은 뉴욕밀알선교단이 탄생하고 4개월뒤인 1993년 10월 뉴욕밀알 장애인들을 위한 토요교실을 운영하기 위해 특수교사나 전문가를 찾는 과정에서 밀알을 처음 만났다. 당시 김자송 단장은 미국으로 유학와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가기전 1년간 필드에서 뛰며 경험을 쌓는 중이었다. 김 단장은 친구의 소개로 밀알을 알게되고 토요일 프로그램을 셋업하기 시작했다.
이재서 총재는 뉴욕밀알선교단을 방문하고 토요일 사랑의교실 디렉터인 김자송 단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사역의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장애인이 불행한 것은 육체적으로 장애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큰 도전을 받았다. 마침 김 단장은 어려운 유학생활을 통해 예수님에 크게 의지하며 신앙심이 좋을때 였다.
김자송 단장은 이재서 총재의 권유로 뉴욕밀알선교단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1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뉴욕밀알의 책임자였던 최병인 단장과 결혼함으로 인간의 러브스토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만 장애사역 동역자간의 결혼으로 하나님께서 장애인을 사랑하는 러브스트리는 더욱 힘을 받게 된다.
김자송, 남편에 이어 뉴욕밀알 단장이 되다
김자송 단장은 2007년 남편이 인터넷 신문 발행인으로 가고 뉴욕밀알선교단 단장으로 취임했다. 김 단장은 남편과 같이 17년간 뉴욕밀알에서 일했으므로 어떻게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습이라고 오해도 한다. 김 단장은 외부에 사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이라고 오히려 위로한다.
밀알 세계지부의 단장은 세계밀알 본부에서 임명한다. 이재서 총재도 17년간 일했으므로 충분히 자질이 있다고 보고 김자송 단장을 임명했다. 그런데 다른 밀알지부의 단장은 대부분 남성이며 목사이다. 세계 밀알지부에서 유일하게 여성 단장이 있는 곳이 바로 뉴욕밀알선교단이다.
뉴욕의 주요 장애인 사역단체의 대표는 모두 여성이다. 장애인 사역에 여성이라는 것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먼저 김 단장은 여성이라기 보다는 특수교육을 공부한 전문가로서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장애인 사역자로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이 하는 장애사역은 총보다 강한 모정, 여성특유의 세밀한 면은 케어를 필요로 하는 장애사역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뉴욕밀알선교단과 김자송 단장
현재 뉴욕밀알선교단에 등록되어 있으며 매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인은 50명이다. 밀알의 사역을 살펴보자. 플러싱에 있는 복지홈은 형편상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위한 공간으로 현재 6명의 장애인들이 특별 재활 프로그램등에 참가하며 김자송 단장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토요일이면 뉴욕밀알선교단의 가장 큰 프로그램인 '토요 사랑의 교실'이 열린다. 이 프로그램에는 50여명의 장애인들과 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인다. 아동과 청소년들은 퀸즈한인교회에서 성인 장애인들은 뉴욕장로교회에서 모인다. 매일 오후 3시부터는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애 학생들에게 무료방과후 학교를 운영한다,
성인 장애인 프로그램으로는 직업재활프로그램, 요리교실, 문화체험, 화요모임등이 있다. 직업재활 프로그램은 3개 한인교회에서 밀알 장애인을 고용하여 주 1회이상 건물 청소용역을 맡기고 있다. 또 화요일에는 뉴욕의 교계목사들이 참가하여 설교를 하며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모여 친교를 나누고 예배를 드린다.
세계보건기구는 장애인을 인구의 10%로 본다. 10명이 있으면 그중 하나가 장애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장애인은 5%밖에 안된다. 밀알의 비전은 장애인 25%을 복음화 시키는 것이다. 밀알의 깃발을 보면 '장애인 전도, 봉사, 계몽'이라는 글이 나온다. 첫째가 '봉사'가 아니라 '전도'라는 사실이 밀알의 목적을 잘 말해주고 있다.
김자송 단장은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사역은 선교로 안여기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성탄절이라던가 연말에 성금이 모이면 일부를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뉴욕밀알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교회는 10여개 뿐이다. 뉴욕밀알선교단을 후원하는 곳은 주로 개인들과 기업들이다. 한인교회들이 후원비중은 가장 적다. 김자송 단장은 사역의 건전함의 유지와 노력에 의해 후원이 증가할수 있으므로 오히려 희망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자송 단장은 "지난 18년동안 밀알의 장애인 사역을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개인이나 교회의 도움으로 인해 장애우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관심과 사랑이 계속되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후원자와 중보기도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한인교회들이 더욱 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뉴욕밀알선교단
142-44 Bayside Ave, Flushing NY 11354
718-445-4442/718-445-4887
milal.us/nymilal@hotmail.com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밀알은 세계밀알 총재 이재서 교수가 1979년 한국에서 시작했으며, 현재 전 세계에 63개 지부가 세워져 장애인들을 섬기고 있다. 뉴욕밀알선교단은 전문 장애단체의 지부라는 것이 뉴욕의 다른 장애단체와는 다른 점이다.
만약 '뉴욕밀알선교단 탄생이야기'라는 영화를 만든다면 그 스토리는 어떨까?
여주인공 김자송, 남주인공 최병인, 조연 이재서
1993년 6월 뉴욕밀알선교단의 탄생은 극적인 면이 있다. 당시 이재서 밀알 총재는 필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인 이 총재는 실명과 가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총신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 3학년때인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세웠다. 그는 전문적인 공부와 미국에 밀알 전진기지를 세우기위해 미국에 와 필라와 워싱톤 DC 밀알을 세웠다. 그리고 세계중심 뉴욕지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먼저 남자 주인공 최병인과 조연 이재서 총재의 만남을 보자. 최병인 이사가 이 총재를 처음 만날때 뉴욕의 일간신문 기자였다. 최 기자는 출석하는 교회에서 이재서 총재를 자주 초청해 집회를 가졌다. 그때 최 기자의 머리에는 이 총재의 장애사역 비전에 큰 그림으로 남았다.
영화의 한 모티브는 눈이었다. 최병인 기자는 겨울 포코노에서 열린 1박2일 필라 밀알선교단 간사수련회에 취재를 갔다. 그런데 눈이 너무 많이 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같이 하루를 보낼수 밖에 없었다. 최 기자는 밀알 수련회의 예배와 강의에 참여하면서 장애인 선교의 필요성을 알고 크게 도전을 받았다.
최병인 기자의 됨됨이를 눈여겨 살펴 본 이재서 총재는 최 기자에게 뉴욕 밀알의 책임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이 총재는 필라와 워싱톤 DC에 밀알지부를 세우고 뉴욕에 지부를 세우는 단계였다. 1993년 6월 최병인 기자는 뉴욕밀알선교단을 세우고 처음에는 총무로서 활동하다 다음해 초대 단장으로 취임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여자 주인공인 김자송 단장은 뉴욕밀알선교단이 탄생하고 4개월뒤인 1993년 10월 뉴욕밀알 장애인들을 위한 토요교실을 운영하기 위해 특수교사나 전문가를 찾는 과정에서 밀알을 처음 만났다. 당시 김자송 단장은 미국으로 유학와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가기전 1년간 필드에서 뛰며 경험을 쌓는 중이었다. 김 단장은 친구의 소개로 밀알을 알게되고 토요일 프로그램을 셋업하기 시작했다.
이재서 총재는 뉴욕밀알선교단을 방문하고 토요일 사랑의교실 디렉터인 김자송 단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사역의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장애인이 불행한 것은 육체적으로 장애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큰 도전을 받았다. 마침 김 단장은 어려운 유학생활을 통해 예수님에 크게 의지하며 신앙심이 좋을때 였다.
김자송 단장은 이재서 총재의 권유로 뉴욕밀알선교단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1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뉴욕밀알의 책임자였던 최병인 단장과 결혼함으로 인간의 러브스토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만 장애사역 동역자간의 결혼으로 하나님께서 장애인을 사랑하는 러브스트리는 더욱 힘을 받게 된다.
김자송, 남편에 이어 뉴욕밀알 단장이 되다
김자송 단장은 2007년 남편이 인터넷 신문 발행인으로 가고 뉴욕밀알선교단 단장으로 취임했다. 김 단장은 남편과 같이 17년간 뉴욕밀알에서 일했으므로 어떻게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습이라고 오해도 한다. 김 단장은 외부에 사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이라고 오히려 위로한다.
밀알 세계지부의 단장은 세계밀알 본부에서 임명한다. 이재서 총재도 17년간 일했으므로 충분히 자질이 있다고 보고 김자송 단장을 임명했다. 그런데 다른 밀알지부의 단장은 대부분 남성이며 목사이다. 세계 밀알지부에서 유일하게 여성 단장이 있는 곳이 바로 뉴욕밀알선교단이다.
뉴욕의 주요 장애인 사역단체의 대표는 모두 여성이다. 장애인 사역에 여성이라는 것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먼저 김 단장은 여성이라기 보다는 특수교육을 공부한 전문가로서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장애인 사역자로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이 하는 장애사역은 총보다 강한 모정, 여성특유의 세밀한 면은 케어를 필요로 하는 장애사역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뉴욕밀알선교단과 김자송 단장
현재 뉴욕밀알선교단에 등록되어 있으며 매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인은 50명이다. 밀알의 사역을 살펴보자. 플러싱에 있는 복지홈은 형편상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위한 공간으로 현재 6명의 장애인들이 특별 재활 프로그램등에 참가하며 김자송 단장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토요일이면 뉴욕밀알선교단의 가장 큰 프로그램인 '토요 사랑의 교실'이 열린다. 이 프로그램에는 50여명의 장애인들과 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인다. 아동과 청소년들은 퀸즈한인교회에서 성인 장애인들은 뉴욕장로교회에서 모인다. 매일 오후 3시부터는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애 학생들에게 무료방과후 학교를 운영한다,
성인 장애인 프로그램으로는 직업재활프로그램, 요리교실, 문화체험, 화요모임등이 있다. 직업재활 프로그램은 3개 한인교회에서 밀알 장애인을 고용하여 주 1회이상 건물 청소용역을 맡기고 있다. 또 화요일에는 뉴욕의 교계목사들이 참가하여 설교를 하며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모여 친교를 나누고 예배를 드린다.
세계보건기구는 장애인을 인구의 10%로 본다. 10명이 있으면 그중 하나가 장애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장애인은 5%밖에 안된다. 밀알의 비전은 장애인 25%을 복음화 시키는 것이다. 밀알의 깃발을 보면 '장애인 전도, 봉사, 계몽'이라는 글이 나온다. 첫째가 '봉사'가 아니라 '전도'라는 사실이 밀알의 목적을 잘 말해주고 있다.
김자송 단장은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사역은 선교로 안여기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성탄절이라던가 연말에 성금이 모이면 일부를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뉴욕밀알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교회는 10여개 뿐이다. 뉴욕밀알선교단을 후원하는 곳은 주로 개인들과 기업들이다. 한인교회들이 후원비중은 가장 적다. 김자송 단장은 사역의 건전함의 유지와 노력에 의해 후원이 증가할수 있으므로 오히려 희망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자송 단장은 "지난 18년동안 밀알의 장애인 사역을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개인이나 교회의 도움으로 인해 장애우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관심과 사랑이 계속되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후원자와 중보기도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한인교회들이 더욱 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뉴욕밀알선교단
142-44 Bayside Ave, Flushing NY 11354
718-445-4442/718-445-4887
milal.us/nymila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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