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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관 목사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는 3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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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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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A 한인동북부노회 뉴욕시찰회 연합 청지기 수련회가 1월 20일(주일) 오후 5시 뉴욕새순교회(석중훈 목사)에서 열렸다.

뉴욕시찰장 석중훈 목사는 "분열과 미움가 거짓으로 지쳐가는 세상속에서 연합과 사랑과 헌신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연합하게 되었다"라며 선한 청지기의 삶을 고백하고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시찰회에는 뉴욕광염교회, 뉴욕남교회, 뉴하트선교교회, 뉴욕새순교회, 뉴욕예본교회, 웨체스트반석교회, 뉴욕은총장로교회, 뉴욕주나목교회, 주님의교회등이 소속되어 있다.

청지기 수련회의 하아라이트는 설교이다. 강사로 초청된 최형관 목사(필라델피아 낙원장로교회)는 고린도전서 4장 1-2절을 본문으로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최 목사는 말씀을 통해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는 3가지 방법을 전했다. 3가지 비법은 첫째 주인의 마음을 아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주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셋째 주인의 뜻을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등이다. 다음은 말씀내용이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장 1-2절)"

창세기 1장에는 우주만물의 기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만물은 피조물이다. 이 말은 우리가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믿고 구원받게 하시고 충성되게 여겨서 귀한일을 맡겨주셨다. 본문에 '맡은 자'라는 말의 헬라어의 의미는 주인의 소유를 맡은 집사 또는 관리자라는 의미가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청지기이다. 이 말은 세상을 살아갈때 청지기의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지헤로운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럴려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가를 생각해보자.

1.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려면
주인의 마음을 아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왜 주인이 나에게 이일들을 맡겨주셨을까. 주인의 마음을 모르면 엉뚱한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에 따라서 할 수 있다. 교회안에서 많은 직분자들이 주님의 일을 할때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자신의 뜻에 따라서 하는 사람이 많다. 누가복음 12장 42절 이하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혜로운 청지기의 모습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지혜로운 청지기가 누구인가. 지헤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주인의 뜻을 따라서 종들을 맡아서 때에 따라서 양식을 잘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는데 너희들도 이런 지헤로운 청지기같이 깨어서 잘준비하는 청지기가 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수 있다. 청지기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자신의 뜻을 따라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따라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인의 마음을 잘알아야 한다.

그럴려면 그분이 하신 말씀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다.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은 말을 들어보면 안다.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의식과 삶의 가치관은 그 사람의 말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알기위해서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잘알아야 한다.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고 나타내는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안에서는 주님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있다. 말씀을 잘알때 그리스도의 바른 청지기로 살아갈수 있다는 것이다. 말씀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때 바른 방향을 아르켜 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잘알아야 한다. 그러기위해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한다. 다른말로 하면 말씀을 늘 가까이 대하라. 말씀을 사랑하라.

말씀을 즐거워 하라는 것이다. 다윗은 얼마나 말씀을 즐거워 했는지 사ㅣ편 119편 103절을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굴보다 더 달게 심령속에 다가왔다는 것이다. 참 귀한 말이다. 이 세상에서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을 제일 잘하는 민족중의 하나라고 한다. 특별히 자녀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탁월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처음 들어가면 아버지가 어린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간다. 처음에는 히브리어 글자를 쓰면서 공부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글자위에 꿀을 바른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매일 꿀보다 더 달게 먹으라. 그러면 네게 복이되고 생명이 된다"고 교육한다. 꿀을 히브리어 글자위에 발라놓고 글자를 익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꿀같이 생각하면서 매일 먹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생명이 넘쳐흐른다는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릴때부터 교육을 시키니 아이들이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고 자란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느껴본적이 있는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 즐거움으로 다가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임하기를 축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을 향하여 공부잘하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틀린말이 아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게 될때 자녀들의 미래가 보장될 학률이 많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희망찬 미래가 자녀들앞에 펼쳐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자녀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말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기쁨이 넘친다. 말씀이 즐겁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말씀을 믿기에 말씀대로 사는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들이 가는 곳이면 다 쫓아간다. 부모를 따라가면 무엇이 생기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을 즐거워하면 주님이 너무 좋아하신다. 어떤때는 요구하지 않는 것을 주시기도 한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가까이 대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하는 그 마음을 우리에게 나타내주실줄 믿는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게될때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게 된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주님과 화목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성공의 열쇠는 관계에 있다.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한다. 우리는 먼저 주님과의 관계를 잘해야 한다. 주님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가 화목해야 한다. 주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아무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주님의 마음을 알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맡겨주신 일도 제대로 감당할수가 없다.

주님은 우리를 선한 청지기로 하셔서 금년에도 많은것들을 맡겨 주셨다. 우리가 충성된자가 아닌데도 충성되게 여기시고 많은 것을 맡겨주셨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이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화목해야 한다. 주님과 화목한자가 지혜로운 청지기이다. 주님은 만군의 주인되시는 분이다. 주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어떤일도 이룰수 없다. 우리는 주님과 살아가면서 불화할때가 많다. 무엇이 주님과 우리 사이를 불화하게 만드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그 원인을 죄라고 말한다. 죄의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막고 있다고 말한다. 죄가 우리와 주님사이를 블화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때 하나님은 회복의 길을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너무 사랑하시고 화목하기를 원하시기에 그렇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목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제사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되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예배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어 성공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것 같지만, 주님이 받으시는 에배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고 했다. 예배를 통해 주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주님의 은혜안에 거하게 된다.

어느 교회 주일예배에 많은 성도들이 참가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를 했다. 한 선교사님이 방문하여 선교사역 소개와 더불어 말씀을 증거할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어느때보다 더 뜨겁게 찬양하고 말씀을 들었다. 감격적인 예배였다. 예배후 한 어린소년이 선교사를 만나고자 요청을 한다. 많은 성도들이 선교사를 찾는 어린 소년을 보면서 흐뭇해 했다. 소년이 장차 허드슨 테일러같은 훌륭한 선교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어린 소년의 방문을 받은 선교사도 마음이 흐뭇했다. 그런데 그 소년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선교사를 바라보면서 "선교사님 오래 외국생활을 했으니, 외국우표가 있으면 주세요. 저는 우표수집이 취미예요"라고 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배를 드리지만 소년같이 이런 종류의 에배를 드리는 사람이 많다. 자기에게 필요한것만 원해서 주님앞에 예배드리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원하는것만 얻을려고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하나님과 맺는 관계이다. 예배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깊이 사귈수 없고, 만날수도 없고, 깊은 교제를 할수도 없다. 예배없는 신앙생활은 사교모임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를 드릴수 있을까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가하지만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않을때가 많다. 나는 왜 예배드리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릴수 있다.

주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와 깊이 사귀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예배를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다.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더 깊은 관계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다. 그럴때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과 뜻을 보여주실줄 믿는다.

2.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려면
주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본문 1절을 보면 '일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헬라어의 의미는 배밑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다. 그들은 선장이 말하는대로 상하좌우로 노를 저어야 한다. 선장이 말하는대로 노를 저어야 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 만약 자기생각대로 노를 저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꾼'은 '종'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말씀앞에 절대적인 순종이 삶을 사는지 점검해야 한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사용하실때에는 절대적인 순종의 모습을 기대하신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고 자기가 원하는것을 행한다면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꾼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꾼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일꾼인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무엇인가 이루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주님의 뜻대로 하신 일이 아닌가 생각해야 한다. 종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혜를 주장할수 없다. 주님이 하시라는대로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다. 절대적인 순종이다. 순종의 삶은 자신의 모든것을 내려놓는 삶이다.

창세기 12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 명령을 주실때 아브라함은 75세였다. 그 나이에 떠난다는 말은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말이다.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된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가야 할 길은 먼거리이다. 모든것을 내려놓고 가야한다. 살고있는 뉴욕이나 필라에서 새로운 가게 하나를 셋업하려고 해도 힘들어 한다. 모험이다. 기존의 가게를 사는것은 그래도 쉬운데 아무것도 없는데 새로 세우는 것은 어렵다.

아브라함이 모든것을 버리고 자기의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곳으로 가는것은 어렵다. 하나님은 어디로 가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지시하시는 대로 하루하루 가라는 것이다. 어디인지는 도착해서 아는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것을 내려놓고 고향을 떠난다.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는 것이다. 순종은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는것이다. 사람에게는 자기의 생각이 항상 우선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할수 없다. 사람의 지혜, 지식, 경험이 얼마나 하나님앞에 초라한것인지 알아야 한다. 다 맞는것 같지만 잘못된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다. 잘못한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나간다. 고집이 생각보다 강하다. 아무리 권면하고 말을 해도 자기생각에 잡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종은 경험도 내려놓아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는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 경험은 주관적이다. 사람에 따라 경험한것이 같아도 느끼는것이 다를수 있다. 한사람이 경험한것이 그대로 다른사람에게 적용되지 않을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경험이 주님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주님의 말씀앞에 경험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과 경험까지도 말씀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간것을 깊이 주목해야 한다. 이 결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말씀앞에서 순종했다.

예수님의 삶을 지배한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로 순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순종의 삶은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경험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말씀을 따르는것이다. 때로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만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서 말씀을 버리고 자신의 생각을 쫓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씀이 이해가 되는데도 내가 손해보는 일에는 쫓아가지 않는다. 말씀이 이해되고 납득되고 순종하고 싶은데도, 내가 손해보고 이익이 없다면 말씀을 안쫓아가고 자기의 이익과 생각을 쫓아간다. 우리는 이해가 되지않는 일을 하려고 시작도 안한다. 더구나 자신이 손해보는 일은 안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쫓는 사람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다.

아브라함의 클라이막스는 100살에 얻은 아들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바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것이다. 다른것은 다해도 이것만은 못하겟다고 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성적인 생각과 경험에 맞지 아니하면 어떤일도 믿지 못하며 하려고 시도도 안한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생각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결코 주님의 말씀이 절대적이지 않다. 주님의 말씀은 삶의 작은 부분밖에 안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부분도 안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삶에 전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더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순종의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본문에 '충성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헬라어로 '믿음'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충성하는 사람은 믿음있는 사람이고, 믿음있는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충성이라는 말 자체가 믿을만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순종의 삶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한사람에 대한 믿음은 그 사람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만든다.

만일 아브라함이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쫓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아브라함은 신앙이 크게 있다고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주님이 지시한대로 갔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약한 믿음이라도 믿음이 있었다. 말씀과 믿음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출발한다. 여러분들이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기 원한다면 말씀을 듣는데 힘을 쓰기 바란다. 말씀을 듣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믿음이 생길때 주님의 뜻에 순종할수 있게 된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주님과 우리사이의 관계를 깊게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게한다. 그럴때 주님이 우리가 가는 인생길을 열어주실것이다.

3.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려면
주인의 뜻을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은 복음을 가르키는 말이다. 복음의 비밀을 맡은 청기기로 꿈과 비전과 환상을 가져야 한다. 주님은 그의 백성에 꿈과 비전과 환상을 주시는 분이다. 여러분에게 꿈이 있는가, 비전이 있는가, 하나님의 환상이 있는가. 다 비슷하고 같은 말이다.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사도행전 2장17절). 그것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과 환상은 우리들을 살리는 것이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살릴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온세상을 바라보는 영적이 안목이 열려 주님의 꿈과 비전과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녀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꿈이 없는 사람과 민족은 망한다고 했다. 금년에 하나님의 꿈과 비전과 환상으로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성경에서 꿈의 사람이라고 하면 요셉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살고 이룬 사람이다. 요셉이 두번의 동일한 꿈을 꾼것은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요셉은 그 꿈을 간직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방향을 정립한 사랍이다. 삶의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이 없이 산다. 그러다보니 방향성이 없이 산다. 그리스도인들은 방향감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것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요셉에게 꿈을 주셨듯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꿈과 비전을 주신다.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믿어라.

꿈이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낙심하고 좌절하지 않는다. 요셉은 고난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꿈때문에 형들이 미움받아서 애굽에 팔려갔지만 그 꿈을 버리지 않앗다. 꿈이 있는 사람은 환경때문에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의 환경에서 더 진가를 발휘한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 충성을 다하는 청지기였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그럼에도 성실하게 자신이 해야 할일을 한다. 그는 어떻게 감옥에서 의연할수 있었을까.

한국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중 하나가 자살하는 것이다. 통계를 보니 하루에 36명이 자살한다. 좌절해서 낙심해서 절망해서 죽는다. 꿈이 없어서 죽고, 비전이 없어서 죽는다. 그런데 요셉은 감옥에서 의연하게 자기일을 해서 옥사장의 인정을 받았다. 주님이 주신 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꿈을 붙잡았다. 고난이 다가올수록 주님의 꿈이 빛나고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어두운 환경에서도 주님의 꿈을 잡으면 소망이 있다. 하나님의 꿈을 우리의 비전으로 정해야 한다. 어떻게 꿈을 가질수 있는가.

요셉때에는 계시인 성경이 없었다. 하나님은 꿈과 환상과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시고 임재하심을 보여주신다. 그런데 오늘날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완전한 계시인 성경이 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꿈과 비전과 환상을 보고 가질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묵상하다가 꿈을 얻어 성공했다. 꿈과 비전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고 간직하고 이루어 나갔다. 어떤 상황에도 주님이 주신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나간 사람에게는 주님이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실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보여주실것이다. 하나님은 주신 비전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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