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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기 목사 "찬양교회 장로들에게 감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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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3-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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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문장로교회(김용훈 목사)는 1월 6일부터 2월 15일까지 40일동안 더함(더불어 함께하는) 캠페인을 열고 있다. 더함 캠페인은 40일 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개인 묵상과 오이코스 참여, 그리고 주일예배와 금요집회등을 통하여 교회 공동체 성장과 실천을 목표로 한 전교인 캠페인이다.

2월 1일(금) 저녁에는 허봉기 목사(뉴저지 찬양교회)가 강사로 참가하여 에베소서 4장 13-15절을 본문으로 "함께 성장하라"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허 목사는 캠페인의 주제에 맞추어 설교를 했지만, '왜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성장하지 못하는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풀어나갔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같이 시작한 두사람이 몇년뒤 왜 달라지는가. 보고 배우는 신앙생활의 특성상 혼자 주님앞으로 달라나가는 신앙의 독불장군이 아니라 함께 신앙이 성장하여 아름다운 교회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라고 부탁했다.

다른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투사출신이 찬양교회에 오면 왜 양처럼 조용해 질수밖에 없는가. 허봉기 목사는 찬양교회의 예를 들어 신앙의 선배들은 본을 보이며 앞으로 달려나가고, 신앙의 후배는 그 모습을 보고 따라는 모습을 소개했다.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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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교회 허봉기 목사

신학교 동기 목회자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분이 책을 많이 쓰는데 책에 그 이야기를 실었다. 두딸이 아직 어릴때 작은 딸이 아버지보기에 못마땅한 행동을 했다. 아버지는 큰 딸을 향하여 작은 녀석을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으니 큰 딸이 "아빠, 잘하면 되요"라고 대답했다. 애가 너무 어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려서 그런것이니 자라서 철이들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다 알지만 철이 드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우리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오래전 딸이 못마땅한 행동을 했다. 9학년이었던 아들을 보고 '애는 왜 그러냐'고 하니, 아들이 '아버지의 딸(Your daughter)'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받아친다고 '네 동생(Your sister)'이라고 했다. 아들이 숨도 안쉬고 '자기 잘못이 아니다(Not my fault)'고 했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친구집에 있었던 이야기와 우리집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두개를 말했는데 두가지 이야기를 잘 기억하면 설교 마지막에 정리가 될것이다.

왜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는가?

우리 교회는 목장이라고 부르는 소그룹이 있는데 금요일 마다 모여 말씀을 나눈다. 그리고 지난 한주일동안 어떻게 생활했는지 삶을 나누고 마지막에는 기도제목을 내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다.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지 않은 자매하나가 기도제목을 내놓았다. 그 자매에게 아들이 하나있는데 공부를 잘하면 좋겠는데 엄마의 기대만큼 공부를 못했다. 그래서 '공부 좀 잘하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제목을 내놓기 민망하니 '우리 아들 철들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제목을 살짝 비틀어서 내놓았다. 그래서 그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목장에서 기도했다. 모임이 끝나자 나이가 더 많은 자매가 그 자매에게 '남자는 평생 철이 안들기에 기도제목을 바꾸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라지 않고 철이 안드는 것은 남자뿐이 아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철이 안들고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 만큼 신앙생활이 잘안되고 예수를 믿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사람과 구분이 잘안될 정도로 삶이 특별하지 않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 신앙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하면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세상에서는 10년한 사람과 30년한 사람하고 같을수 없다. 10년한 사람이 30년한 사람을 따라가기 힘들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앙생활은 10년한 사람과 30년한 사람과 별로 표가 안난다. 교회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30년짜리 또는 10년짜리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나는 겨우 5년되었는데 어느 세월에 저 30년 장로/권사님 신앙을 따라 갈수 있을것인가를 고민해 보았는가. 참 이상한 것은 신앙생활은 10년해도 그렇고 20년해도 그런것이 이해가 안된다. 신앙이 성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신앙생활을 한 사람과 30년 신앙생활을 한 사람과 차이가 별로 없다. 둘 다 화를 내는 대목도 비슷하고 기뻐하는 자리도 비슷하다. 삶에서 소원하는 것도 서로 비슷하다. 뭐 하나 구별이 안된다. 변화하고 성장하지 않는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면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것도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 본문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에베소서 4장 13-15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읽으면 참 은혜스럽다 하고 지나갈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곰곰히 읽고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기가 막힌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실때 아무 조건없이 자녀로 삼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때 이 가문이 엄청난 가문이니 너는 적어도 이런 사람이 되어주어야 겠는데 동의할수 있는가 혹은 적어도 여기 3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세상사람과 구별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사인을 해줄수 있겠는가 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아무 조건없이 그야말로 세상사람과 비교해도 조금도 나을것이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다. 조건없이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셨지만, 자녀된 우리에게 거시는 하나님의 기대가 얼마나 큰것인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 확인할수 있다.

예수닮은 사람이 되라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말씀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씀했다. 한마디로 하면 예수닮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라디아서 4장 19절)"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 일에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목표는 그리스도 처럼 되는 것이다. 예수닮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경건이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는 것이 영성이다. 어떤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인가 하면 예수님 닮은 사람이 영성있는 사람이다. 신앙성장의 목표는 예수님 처럼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 제일 뛰어난 장로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처럼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정해놓은 목표가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목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너무 잘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자녀로 삼으실때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존재인지, 얼마나 의지박약한 사람인지를 잘아신다. 우리는 정말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는 자녀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해도 그 결심이 3일이 가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잘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들에게 어머어마한 기대를 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닮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하나님도 영락없이 부모님이시라는 것을 확인했다. 자녀에 대한 부모님의 욕심은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심을 확인했다. 그래서 주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서 바울으의 입을 빌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피흘려 죽게하시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에게 걸어놓으신 삶의 기대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할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모든일에 빠짐없이 하나님 감사하다고 외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리처드 칼슨이 쓴 15년쯤에 유행했던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도 항상 행복하지 않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맞는 이야기이다. 세상을 살아보아서 알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도 항상 행복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녀들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항상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세상도 아시고 우리도 아시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불가능한 것 처럼 보이는 그런 소원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이땅에 사는 동안에도 항상 기뻐하고 행복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제가 가끔 묻는다. 이해가 되다가도 안되는 것은 한국의 부모들은 이민온 부모들 보다 더 애들을 잡는다. 한국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CNN의 믿거나 말거나 코너에 나오기도 했다. 가끔 교우들에게 묻는다. "아빠가 학교다닐때 30등을 했고, 엄마는 20등을 했다. 그러면 결혼하여 자녀가 태어나면 몇등하면 될까요." 25등하면 골고루 닮은것이다. 20등하면 우성유전이다. 나은쪽으로 닮은 것이다. 30등해도 아버지를 닮은 것이다. 10등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고 자녀를 족친다. 30등과 20등 부모사이에 10등하면 굉장한것이다. 왜 그럼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1등하기를 기대하는 것인가.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해가 안되는 일인데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세상사람보다 더 나아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다. 조금도 나을것이 없음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었다는 이유때문에 세상과 비교할수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 어디까지 성장하기를 바라시는가 하면 예수님의 꽉찬 분량까지 성장하기를 바라신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에 따라 어떻게 하든지 더 성장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할것이다.

예수닮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 예수닮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장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라고 하는 것은 스승의 인격을 닮는 것이고, 스승이 위임한 일을 계승하는 것이다. 스승의 사역을 계승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영적으로 성장하고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먼저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시고 기대하시는 일을 점점 더 잘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다 잘아시는 내용이지만 오늘 다음은 반드시 잡아라. "우리가 자라가야 하는데 우리 인생과 신앙생활에 가장 큰 문제는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크냐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꼭 닮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현실과 간격이 크다. 그래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교회에서는 그 중 낫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때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삶을 살다가 왔는지 물으실지 모르겠다. 그럴때 하나님은 보시다시피 우리 교회에서 제일 나았다는 대답을 듣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울같은 대답을 듣기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내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한것을 다 아신다. 우리가 이런 신앙성장의 목표를 거론한다고 해도 어디까지 성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 성장하는가는 문제가 안될것이다. '주님, 최선을 다했습니다. 날마다 애썼습니다.'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자삼는 제자가 되라

이번 캠페인을 보니 하나는 성장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더불어 성장하라는 것이다. 신앙성장은 거의 동반성장이다. 이번에 저도 성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앙성장은 더불어 성장이다. 신앙성장은 동반성장이다. 같이 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서로 다 자기가 알아서 하려고 하면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 생각해보자.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물론이고 온집안 식구가 다 그 아이에 촛점을 맞추고 신경을 써준다. 그래서 그 아이가 성장한다. 갓난아기는 혼자서는 자라는 것은 그만두고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 신앙성장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40일 캠페인을 마치면서 열린문교회는 이런 간증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 삶이 변했습니다. 성장했습니다. 내가 예수믿으면서 전에 경험하지 못한것을 신앙이 성장하면서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아무개 집사가 도와 주었습니다'는 이런 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알아서 자랐다', '내가 기도했거든요' 보다 더 은혜스러운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 성장을 도와주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제자이다. 마태복음 28장에 주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아있는 하나님의 사람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하신 말씀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은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 제자를 삼는다는 말은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전도와 양육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도록 성장을 도우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자삼으라 하셨다. 정리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제자삼는 제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삼는 제자가 정말 제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 예수님을 충실히 따라가면 좋은 제자인줄 잘못 생각한다.

12년전에 장로님과 대만에서 열린 D12 셀처치 컨퍼런스에 갔다. 그곳에 가서 대만교회가 얼마나 뜨거운지 깜짝 놀랐다. 4백명 정도 모인 컨퍼런스인데 대만교회 교인들이 아주 열심히 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광경이 있었다. 백인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대만에 파송된 선교사들이다. 그래서 너무 궁금하여 선교사에게 대만교회가 이렇게 뜨거운데 이런 교회에 당신같은 선교사가 필요한가를 물었다. 그 선교사의 대답이 그 컨퍼런스에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다. 선교사는 어느 지역에 언제 선교사를 투입할것인가 만큼 중요한것은 언제 어느 지역에서 선교사를 철수할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언제 선교사가 철수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선교사의 도움없이 교회가 자립할때' 라고 대답하자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선교사 철수시기는 선교사의 도움없이 현지 교회가 독자적으로 선교할 수 있을때라고 설명했다. 대만교회는 충분히 자립할만큼 뜨거운 교회이지만 아직도 홀로 선교할만큼 역량이 구축되지 못했기에 아직 우리가 좀 더 필요하다가 선교사가 대답했다. 그 대답들을 통해 큰 것을 깨닫았다.

이것은 마태복음 28장에 주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재생산 구조를 확보하는 사람이 제자이다. 제자는 자기만 주님을 잘따라 가는 것이 아니다. D12가 이 원리를 도입한것 같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두셨다. 그런데 제자 12명이 주님을 잘따라간다고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베드로가 자기의 수고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때 베드로가 정말 제자라는 말이다. 나만 예수님을 점점 더 가까이 따른다고 온전한 제자인것이 아니다. 내가 주님을 따르는 다른 제자를 삼을때 내가 주님의 제자다운 제자가 된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28장에 제자들에게 제자삼는 제자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에 있다.

주님은 점점 주님을 가까이 따르고 주님을 닮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우리가 세상에서도 그런일을 하고 살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그런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원리가 동반성장이라는 말이다.

신앙을 동반성장하라

아까 아들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동생이 잘못하니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몇년전 대학생일때 동생이 하는 한심한 짓을 보고 더이상 '자기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느 사람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성장하지 못한 그 사람만의 잘못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못한것은 우리의 문제이다.

서울에서 부목사를 할때 같은 날 신앙생활을 시작한 두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다른것을 보았다. 몇년이 지나니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한 사람은 그럴듯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는데 다른 사람은 영 아니다. 가만히 보니 두사람의 구역장이 다른 것이다. 한 사람이 단기간에 눈에 띄게 신앙이 성장한 것은 구역장이 좋았기 때문이다. 구역장에게서 이래라 저래라 배운것이 아니라 구역장이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며 신앙이 자란것이다. 다른 사람의 구역장은 신앙생활이 엉망이다. 그래서 그대로 따라하다 보니 몇년 지나도 신앙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은 신앙생활은 대충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해주는 것도 아닌데 보고 대충했고, 다른 사람은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 따로 말해주지도 않았지만 보고 열심히 해서 신앙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시원찮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내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목사가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목사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것이 분명하다. 한교회의 신앙은 목사 이상으로 넘어가기 힘들다.

그런데 목사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목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로와 권사도 본다. 그리고 보는대로 따라한다. 장로와 권사가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다시 말해서 장로와 권사가 날마다 그 타령이면 그것은 장로 한분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교회의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사람은 보고 그대로 한다. 여러분이 만약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내 신앙생활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교재로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라. 누군가 여러분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다.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목사이다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이 목사이다. 주위의 문제있는 교회를 보면 교재로 사용되는 사람들의 교재가 안좋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저는 모자라는 것이 많고 실수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장로님들이 목사님이 왜 그러느냐고 이야기 하는 것을 한번도 안들어 보았다. 한번은 세례를 주는데 선포를 안하고 축도할때 생각이 나서 다시 나오라고 해서 선포하고 끝낸적도 있다. 그렇게 실수해도 한번도 뭐라고 하는 분이 없다.

처음 찬양교회에 부임해서 2년간 변화가 컸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미쳤지 할 정도인데 장로님들이 다 수용하셨다. 장로님들이 왠만하면 예스했다. 재정이 적자인 교회에 와서 한달 반만에 1,300만불짜리 예배당 짓자고 했다. 정신이 나간 일인데도 장로님들이 예스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목사가 미쳤으면 그냥 쫓겨나고 끝날일을 장로들까지 같이 미치니 일이 된다.

에피소드가 있는데 나중에 건너 듣고 눈물이 났다.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 하는 일에 무조건 예스하는 우리가 장로노릇을 잘하고 있는가를 반문했다. 그런데 다른 장로님 한 분이 우리가 목사님 말씀에 다 예스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이 가만히 보니 목사가 시원치 않는데 장로들이 왠만하면 예스하고 한다.

우리교회가 규모가 커지니 다른교회 투사출신이 많다. 어떤분은 '찬양교회는 이제 큰일났다. 아무개가 갔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오면 다 조용하다. 저는 그 이유를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안보아도 다 본다. 장로들이 목사에게 어떻게 하는지 다보고 있다. 목사가 틀림없이 시원찮은데 예스하고 순종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는가 보다 하고 그렇게 한다. 교재가 좋아서 그렇다. 어떤 이웃교회를 보니 담임목사가 한마디 하면 장로가 열마디 한다고 한다. 교인들이 그것을 다 본다. 그러니 너나할것 없이 목사가 한마디하면 다 한마디씩 한다. 그러니 교회가 안된다. 교재가 안좋기 때문이다.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들의 신앙성장이 자기 하나만의 문제로 끝나는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면 누구보고 배우라 안해도 다른 사람의 신앙이 여러분을 보고 성장한다. 그런데 직함은 장로이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데도 신앙이 성장하지 못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며 조금도 예수닮는 모습이 보이지 못하면 그 사람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다.

목사닮는 성도, 부모닮는 자녀

자녀들은 보통 부모를 닮는다. 누구를 닮아 저러냐 싶겠지만 다 부모를 닮았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 대개는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교인들도 좋든 안좋든 목사를 많이 닮는 것 같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 우리교회는 못된것을 닮는지 교인들이 이야기하다가 생각이 안나오면 '나도 허 목사님을 닮았나 봐' 한다. 누군가를 닮게되어 있다. 그래서 신앙에 앞장 서 가는 분이 진도를 뽑아주어야 한다.

교회에서 보니 어떤 모임에 한사람만 대단한 사람이 있어도 그 모임이 달라진다. 천명교인에 한사람만 달라져도 교회가 달라진다. 목사가 아니라 집사님이라도 마찬가지이다. 헌신적인 그 분,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그 분 한 분만 있어도 교회가 달라진다. 함께 성장하라는 모토를 걸어놓고 기도하는데 여러분들이 먼저 진도를 뽑았으면 좋겠다. '주님, 내가 먼저 성장하게 해주세요. 내가 먼저 진도나가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라.

갈 길이 먼데 우리는 진도를 잘 못나간다. 바울처럼 평생을 그렇게 씨름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내가 잡은 것이 아니다 앞에 있는 푯대를 쫓아간다고 말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다. "주님, 저 사람이 성장하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제 문제입니다. 주님, 제가 먼저 진도나가게 해주세요. 이제는 성장하고 철들게 해주세요. 해가 바뀔수록 조금씩이라도 낫게 해주세요.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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