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산 목사 ① 언약의 시작 그리고 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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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3-11-10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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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교회(노진산 목사)는 제4회 찬양이 있는 복음축제를 11월 10일(주일) 오후 5시 열었습니다. 노진산 목사는 한편의 말씀을 두번에 걸쳐 전했으며, 그 중간과 마지막에는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이날 '믿음으로 사는 교회'는 '복음으로 사는 교회'가 되었고 '언약으로 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노진산 목사는 설교의 앞부분에서 현대교회 교인들이 믿기 쉬운 짝퉁 복음에 대해 전했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시작에서 깨어짐, 그리고 언약의 회복과 완성까지 하나의 드라마를 통해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노 목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영광을 찾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목사는 교회의 사이즈와 프로그램에서 영광을 찾으려고 하고, 직장인은 직업에서 영광을 찾고, 학생은 학벌에서 영광을 찾고, 부모는 자녀에게서 영광을 찾는 세태를 지적하며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담대히 전했습니다.
▲동영상 / 설교 ① 언약의 시작 그리고 깨어짐
오늘 모인 것은 한가지 이유때문에 모였다. 축하(celebrate)를 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축하하는가. 복음을 축하하려고 한다. 오늘 모임의 이름은 '찬양이 있는 복음축제'이다. 찬양이나 음악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복음을 축하하는데 찬양이 같이 있는 것이다.
복음이 무엇일까. 목사생활을 20여년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물어볼때 그렇게 확실한 대답이나 확신이 있는 대답을 많이 듣지 못한 것 같다. 복음이 무엇이길래 축하해야 하는가. 교회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복음에 대해 착각할때가 있는 것 같다.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으로 생각하고 그 복음에 마음을 줄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현대교회의 짝퉁 복음들
현대교회에서 복음이 아닌 짝퉁 복음들이 있다. 먼저 '치유(therapy) 복음'이다. 복음을 마치 치유로 생각한다.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는 이민생활이다. 분명 다 인정한다. 저도 1976년에 이민을 와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볼티모어에서 부모님이 하는 가게를 도와드리면서 보냈다. 정말 이민생활이 힘들다. 그래서 교회와서 치유를 좀 느끼면 좋지 않을까. 분명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치유 복음에서는 복음을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여 우리가 해석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생각할때가 많은 것 같다.
복음을 치유이라고 생각할때, 어느 저자는 복음을 '해피 밀(Happy Meal)' 복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좀 귀찮게 하고 투정을 할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중 하나는 맥도날드에 가서 해피 밀을 사주는 것이다. 해피 밀에는 자기가 원하는 버거나 치킨너깃,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장난감이 들어가 있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그대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해피 밀을 바라고 왔을때 교회도 해피 밀을 주어야 한다고 그러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복음을 이 세상에 선포하실때 한번도 해피 밀을 주지 않으셨다. 해피 밀 복음은 잘못된 복음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짝퉁 복음은 '개스 가득채우기(Fill'er up) 복음'이 있다. 개스 스테이션에 가면 저는 게을러 개스를 가득채운다. 완전히 개스를 가득채운후 1-3주동안 사용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을 할때 1주일동안 너무나 힘들게 생활하다 보니 점점 엠티 게이지로 간다. 우리는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점점 더 게이지가 떨어지니 교회에 가서 가득 채우기를 기대한다. 교회에서 찬양한번 힘차게 하고 가득 채운후 일주일 동안 살아가려고 한다. 과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복음의 메세지가 그러한 메세지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가짜 복음은 '자판기(vending machine) 복음'이다. 우리들은 자판기를 사용할때 마다 동전을 집어넣고 원하는 것을 누른다. 그러면 동전을 넣은대로 음료수가 나온다. 그것이 자판기이다. 자판기는 우리가 돈을 넣은대로 나오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복음을 생각할때 영적 자판기, 마음좋은 자판기로 생각할때가 많이 있다. 하나님앞에 기도를 드리고 기도라는 동전을 넣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전을 넣었으니 무엇이 내려오기를 기대한다. 또 찬양이라는 동전을 넣었으니 무엇이 내려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헌신이라는 동전을 넣었을때는 조금 더 큰 것이 자판기에서 나오기를 기대할때가 있다. 우리가 이런 자판기 복음을 생각할때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한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때면 어떻게 할줄 몰라한다.
교회에 오면 복음을 통해 치유가 있어야 하고, 복음을 통해 아이들에게 해피 밀을 사주는 것 처럼 기분좋게 해주어야 하고, 그리고 자판기 처럼 우리가 무엇을 집어넣으면 내가 원하는대로 딱딱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당황한다. 교인들은 서로 어떻게 할 줄 몰라한다. 왜 이런 어려움이 일어나는가. 왜 이런 슬픔이 있는가. 분명히 자판기이어야 하는데, 해피 밀이어야 하는데, 분명히 가득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언약의 시작, 언약의 깨어짐
성경에는 복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짝퉁 복음을 믿는 것은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정직하고 솔직하고 진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복음은 관계에서 이해된다. 복음은 스토리 라인이 있다. 복음은 하나의 역사적인 드라마이다. 역사적인 드라마로 복음을 이해하고, 또 역사적인 드라마에서 관계가 있는 것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언약이라는 단어는 약속이라는 말과 같다. 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의 스토리를 가지고 드라마를 펼쳐 주신다. 하나님은 그 드라마를 통해 복음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복음을 드라마로 볼때 4개의 장으로 볼 수 있다. 언약의 시작, 언약의 깨어짐, 언약의 회복, 언약의 완성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드라마를 펼쳐주시고 3장에 있는 복음의 회복이 바로 복음의 내용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오늘의 본문은 창세기 1:1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해주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후에 인간과의 언약을 맺어주셨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다 만드신후에 모든것이 보기좋다고 평가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만 보기좋다고 하지 않으시고 모든 피조물을 보시고 참 보기좋다고 하셨다. 그것을 요새 나오는 성경의 한 단어로 표현하면 '샬롬'이다. 인사할때 이메일을 할때 '샬롬'이라고 인사하는 분이 많다.
샬롬은 무슨 의미인가. 샬롬은 창세기 1:1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보기좋고 아름다운 그리고 완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샬롬이라고 한다. 샬롬으로 가득찬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은 보기좋다고 하셨다. 언약의 시작은 샬롬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언약의 시작은 그 샬롬이 시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 모든 피조물의 관계에서, 우주와 지구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샬롬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언약이 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샬롬이 깨어졌다. 창세기 1:31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는 말씀이 있고, 창세기 2:25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둘 다 벌거벗었으나 수치심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씀이 있다.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커플들을 상담하거나 결혼식 주례를 설때마다 이 성경구절을 항상 사용한다. 둘 다 벌거벗었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몰랐다. 이것이 샬롬이다. 창세기 3:7에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숨었다.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제 감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이제는 감춤을 하게된다. 깨어짐때문에 감춤을 하는 것이다. 깨어진 것이 없을때는 다 드러낼수 있는데 이제는 깨어져서 깨어짐을 보일수가 없기에 감춤을 하기위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체면으로, 우리의 학벌로, 우리의 지위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것으로 자꾸만 치마를 만들때가 많다. 우리 모두가 샬롬이 이 세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이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샬롬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 샬롬이 깨어진것을 성경은 죄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둔 것에서 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고 어그러지는 것을 죄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중심이 되고 하나님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외에 다른것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죄라는 말이 있다. 죄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것들은 죄의 결과이고 죄의 모습이고 죄의 행동이다. 하나님외에 다른것에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을 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죄는 우리를 결박한다. 죄는 우리를 정죄한다. 죄때문에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죄에 눌려있다. 그래서 우리가 중심이 되려고 한다. 그렇기에 이세상에는 전쟁 굶주림 가난 불의 인종차별등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아픔 절망 질병 죽음등은 죄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있다.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을까. (2번째 말씀 '언약의 회복 그리고 완성'이 이어집니다.)
▲동영상 / 목관 2중주 박병섭, 여경순
▲동영상 / 찬양 조이찬양대, 지휘 전경배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노진산 목사는 설교의 앞부분에서 현대교회 교인들이 믿기 쉬운 짝퉁 복음에 대해 전했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시작에서 깨어짐, 그리고 언약의 회복과 완성까지 하나의 드라마를 통해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노 목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영광을 찾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목사는 교회의 사이즈와 프로그램에서 영광을 찾으려고 하고, 직장인은 직업에서 영광을 찾고, 학생은 학벌에서 영광을 찾고, 부모는 자녀에게서 영광을 찾는 세태를 지적하며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담대히 전했습니다.
▲동영상 / 설교 ① 언약의 시작 그리고 깨어짐
오늘 모인 것은 한가지 이유때문에 모였다. 축하(celebrate)를 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축하하는가. 복음을 축하하려고 한다. 오늘 모임의 이름은 '찬양이 있는 복음축제'이다. 찬양이나 음악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복음을 축하하는데 찬양이 같이 있는 것이다.
복음이 무엇일까. 목사생활을 20여년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물어볼때 그렇게 확실한 대답이나 확신이 있는 대답을 많이 듣지 못한 것 같다. 복음이 무엇이길래 축하해야 하는가. 교회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복음에 대해 착각할때가 있는 것 같다.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으로 생각하고 그 복음에 마음을 줄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현대교회의 짝퉁 복음들
현대교회에서 복음이 아닌 짝퉁 복음들이 있다. 먼저 '치유(therapy) 복음'이다. 복음을 마치 치유로 생각한다.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는 이민생활이다. 분명 다 인정한다. 저도 1976년에 이민을 와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볼티모어에서 부모님이 하는 가게를 도와드리면서 보냈다. 정말 이민생활이 힘들다. 그래서 교회와서 치유를 좀 느끼면 좋지 않을까. 분명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치유 복음에서는 복음을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여 우리가 해석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생각할때가 많은 것 같다.
복음을 치유이라고 생각할때, 어느 저자는 복음을 '해피 밀(Happy Meal)' 복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좀 귀찮게 하고 투정을 할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중 하나는 맥도날드에 가서 해피 밀을 사주는 것이다. 해피 밀에는 자기가 원하는 버거나 치킨너깃,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장난감이 들어가 있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그대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해피 밀을 바라고 왔을때 교회도 해피 밀을 주어야 한다고 그러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복음을 이 세상에 선포하실때 한번도 해피 밀을 주지 않으셨다. 해피 밀 복음은 잘못된 복음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짝퉁 복음은 '개스 가득채우기(Fill'er up) 복음'이 있다. 개스 스테이션에 가면 저는 게을러 개스를 가득채운다. 완전히 개스를 가득채운후 1-3주동안 사용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을 할때 1주일동안 너무나 힘들게 생활하다 보니 점점 엠티 게이지로 간다. 우리는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점점 더 게이지가 떨어지니 교회에 가서 가득 채우기를 기대한다. 교회에서 찬양한번 힘차게 하고 가득 채운후 일주일 동안 살아가려고 한다. 과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복음의 메세지가 그러한 메세지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가짜 복음은 '자판기(vending machine) 복음'이다. 우리들은 자판기를 사용할때 마다 동전을 집어넣고 원하는 것을 누른다. 그러면 동전을 넣은대로 음료수가 나온다. 그것이 자판기이다. 자판기는 우리가 돈을 넣은대로 나오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복음을 생각할때 영적 자판기, 마음좋은 자판기로 생각할때가 많이 있다. 하나님앞에 기도를 드리고 기도라는 동전을 넣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전을 넣었으니 무엇이 내려오기를 기대한다. 또 찬양이라는 동전을 넣었으니 무엇이 내려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헌신이라는 동전을 넣었을때는 조금 더 큰 것이 자판기에서 나오기를 기대할때가 있다. 우리가 이런 자판기 복음을 생각할때 하나님에게 실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한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때면 어떻게 할줄 몰라한다.
교회에 오면 복음을 통해 치유가 있어야 하고, 복음을 통해 아이들에게 해피 밀을 사주는 것 처럼 기분좋게 해주어야 하고, 그리고 자판기 처럼 우리가 무엇을 집어넣으면 내가 원하는대로 딱딱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당황한다. 교인들은 서로 어떻게 할 줄 몰라한다. 왜 이런 어려움이 일어나는가. 왜 이런 슬픔이 있는가. 분명히 자판기이어야 하는데, 해피 밀이어야 하는데, 분명히 가득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언약의 시작, 언약의 깨어짐
성경에는 복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짝퉁 복음을 믿는 것은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정직하고 솔직하고 진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복음은 관계에서 이해된다. 복음은 스토리 라인이 있다. 복음은 하나의 역사적인 드라마이다. 역사적인 드라마로 복음을 이해하고, 또 역사적인 드라마에서 관계가 있는 것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언약이라는 단어는 약속이라는 말과 같다. 약속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의 스토리를 가지고 드라마를 펼쳐 주신다. 하나님은 그 드라마를 통해 복음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복음을 드라마로 볼때 4개의 장으로 볼 수 있다. 언약의 시작, 언약의 깨어짐, 언약의 회복, 언약의 완성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드라마를 펼쳐주시고 3장에 있는 복음의 회복이 바로 복음의 내용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오늘의 본문은 창세기 1:1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해주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후에 인간과의 언약을 맺어주셨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다 만드신후에 모든것이 보기좋다고 평가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만 보기좋다고 하지 않으시고 모든 피조물을 보시고 참 보기좋다고 하셨다. 그것을 요새 나오는 성경의 한 단어로 표현하면 '샬롬'이다. 인사할때 이메일을 할때 '샬롬'이라고 인사하는 분이 많다.
샬롬은 무슨 의미인가. 샬롬은 창세기 1:1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보기좋고 아름다운 그리고 완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샬롬이라고 한다. 샬롬으로 가득찬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은 보기좋다고 하셨다. 언약의 시작은 샬롬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언약의 시작은 그 샬롬이 시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 모든 피조물의 관계에서, 우주와 지구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샬롬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언약이 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샬롬이 깨어졌다. 창세기 1:31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는 말씀이 있고, 창세기 2:25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둘 다 벌거벗었으나 수치심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씀이 있다.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커플들을 상담하거나 결혼식 주례를 설때마다 이 성경구절을 항상 사용한다. 둘 다 벌거벗었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몰랐다. 이것이 샬롬이다. 창세기 3:7에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숨었다.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제 감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이제는 감춤을 하게된다. 깨어짐때문에 감춤을 하는 것이다. 깨어진 것이 없을때는 다 드러낼수 있는데 이제는 깨어져서 깨어짐을 보일수가 없기에 감춤을 하기위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체면으로, 우리의 학벌로, 우리의 지위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것으로 자꾸만 치마를 만들때가 많다. 우리 모두가 샬롬이 이 세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이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샬롬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 샬롬이 깨어진것을 성경은 죄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둔 것에서 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고 어그러지는 것을 죄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중심이 되고 하나님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외에 다른것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죄라는 말이 있다. 죄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것들은 죄의 결과이고 죄의 모습이고 죄의 행동이다. 하나님외에 다른것에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을 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죄는 우리를 결박한다. 죄는 우리를 정죄한다. 죄때문에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죄에 눌려있다. 그래서 우리가 중심이 되려고 한다. 그렇기에 이세상에는 전쟁 굶주림 가난 불의 인종차별등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아픔 절망 질병 죽음등은 죄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있다.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을까. (2번째 말씀 '언약의 회복 그리고 완성'이 이어집니다.)
▲동영상 / 목관 2중주 박병섭, 여경순
▲동영상 / 찬양 조이찬양대, 지휘 전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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