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환 장로 “개신교의 위기와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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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ㆍ2006-08-13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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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위기와 장로
장로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한국 개신교의 위기를 맞아 장로들의 역할론과 책임론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담임목사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장로들이 책임을 다했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 나겠냐는 것.
한세대 전 만 해도 '장로'는 아름다운 희생과 성숙한 인격의 대명사였다. '장로'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람에게는 조건없는 믿음이 있었다.
장로는 교인을 대표하여 당회등에서 교회를 위해 재정과 행정적인 업무도 보며 담임목사를 도와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는 사역자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담임목사 혼자의 잘못이라기 보기 힘들다. 한국 개신교인 후퇴도 목회자와 장로가 만들어 낸 합작품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랑의 교회에서 10명의 장로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의외로 당시 담임 목사였던 옥함흠 목사는 한표도 나오지 않았고 4명이 동교회 배순호 장로를 찍었다. 배 장로는 사랑의 교회 선교부를 담당하다 선교지에 나갔다.
배 장로의 바른 삶이 "나도 그분처럼 되고 싶다"며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배순호 장로 같이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장로는 줄어들고 있다.
최근 뉴욕의 여러 교회에서 보듯 분쟁의 중심에는 장로가 있다.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역할에서 벗어나 장로가 담임목사를 좌지우지하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목회자와 문제가 생기면 장로는 깃발을 들고 다른 교회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 임직받은 교회에서 뼈를 묻겠다는 장로상은 사라졌다.
별세신앙 이중표 목사는 교회의 분란을 가져온 어느 장로에게 "장로는 죽으라고 세운 자리요.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으니 자기도 괴롭고, 목사도 괴롭고, 교회가 편치 않은 것이오. 일을 하려 하지 말고 먼저 당신을 죽이기를 힘쓰시오. 그러면 당신의 교회 뿐만 아니라 당신도 살 수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다.
은혜의 삶에 기초한 희생의 정신이 없는 장로들은 이제 환골탈퇴를 해야 한다. 섬김으로서의 장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직위로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신교는 만인 제사장론에 따라 조직속에 직분을 두지만 이것은 계급이 아니라 직능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장로는 교인들을 대표하는 직으로서 당회 아래서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도와주고 격려하며 교인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장로는 무엇보다 덕이 있어야 하고, 봉사와 헌신에 앞장섬으로 인하여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목사를 죽이는/살리는 장로
극동방송에서 최근 목회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목회하면서 가장 부담스럽고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은 장로(35%)라고 답했다. 뉴욕의 목회자들이 은퇴예배에서 목회 덕목으로 공통적으로 인내를 꼽았던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발생하는 목사와 장로간의 갈등의 주원인은 비 신앙적인 권위주의이다. 목사와 장로는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이다. 장로들이 겸손하게 섬기는 자로 나서야 교회도 살고 목사도 산다. 목회자는 장로의 발을 닦고, 장로는 목회자의 발을 닦아야 한다.
장로의 지나친 횡포와 전횡이 난무하는 교회일 수록 초대교회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직접 개척한 교회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청빙받아서 온 목회자는 당회가 무슨 이유를 들어 시비를 걸지 좌불안석이다.
목회자를 검증 절차를 거쳐 청빙했으면 담임목사가 소신껏 목회를 할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세운 교회인데"라는 식의 사고는 결국 파국으로 치딛는 지름길이다.
평신도 리더인 장로들은 담임목사가 하는 목회를 적극 도와야 한다. 목회자의 모자라는 부분을 꼬투리를 잡기 보다는 그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장로나 당회가 목회를 주도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만약 장로에게 양보할수 없는 목회 철학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담임목사의 목회와 충돌하게 된다. 장로에게는 섬김과 충성의 철학만 있을 뿐이다. 담임 목회자의 목회 철학에 동역해 건강한 교회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필요할 뿐이다.
한국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당회가 브레이크의 기능만 감당하고 액셀레이터의 기능은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당회가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의 기능을 적절히 사용할 때 교회는 가장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다.
목사와 장로의 상호 견제기능
목회자가 잘하는데 장로들이 무분별한 딴지걸기도 문제지만 무조건 목회자에게 맹종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최근 여러문제로 한국 사회에 지탄을 받은 교회의 장로들은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를 옹호하는 것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장로와 당회는 담임목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종으로 시녀가 되어서는 안된다. 당회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는 정당한 목회의 견제이다. 당회의 정당한 목회 견제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아서 목회와 교회의 안전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한 취재원 장로는 "우리교회 장로들은 담임목사에 대한 견제의 기능을 잃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교회는 목사의 반대하는 장로들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예스맨 중심으로 꾸며져 견제의 기능이 없어졌다. 담임목사의 카리스마가 강한 대형교회일수록 이런 일은 더 많이 일어난다.
목회자가 누구나 이해할수 있도록 합당하게 요구한다면 순종해야 하지만 말씀에서 벗어날 때는 장로들은 올바른 견제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만약 그러한 용기가 있었다면 지금의 교회의 문제는 최소화 되었을 것이고 미래의 교회의 문제또한 염려가 적다.
독재적인 교회일수록 담임 목회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임직시키거나 측근을 재정담당자에 선임해 교회를 자의적으로 이끈다. 그런 교회의 목회자일수록 교회 물질을 마음대로 쓰는 경우가 발생하며 결국 교회 내분의 원인을 유발시킨다.
담임 목회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눈치보기에 바쁘면 그들이 볼수 없는 여러 단점들이 교인들에 의해 지적된다. 족벌운영이라는 비판받고 있는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난다면 문제의 책임은 목회자만큼 목회자의 편법을 눈감아준 장로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장로의 임직자격과 재신임
정말 존경 받을 만한 장로는 줄어들고 있다. 출석 교회에서 장로가 안되니 교회를 옮겨 장로가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장로 임직에 신중해야 한다. 임직자를 세울 때는 목회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교회 출석, 헌금, 봉사 등 객관적인 자격을 제도화 해야 한다.
장로제도가 있는 많은 교회는 장로직은 항존직으로 영원한 면류관이 되어 버렸다. 장로들도 전문성을 두어 교회에 봉사할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작년 뉴욕의 한 교회는 시무장로의 정년도 65세로 조정했다. 시무장로는 사역을 시작된지 7년과 65세 정년 중 먼저 해당하는 것에 따른다. 따라서 7년이상 교회 행정에 관여할 수 없으며 그 이후는 교회의 사역을 돕게 된다.
교회는 장로의 재신임제도를 통하여 교회의 주권을 교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장로는 교인의 대표이지 교회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장로는 교회의 대표이자 교회의 주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교만하게 되었고 나태하게 되었다.
지금과 같이 한번 위임을 받고 투표를 받으면 70세까지 자리가 보장되는 제도로서는 문제가 있다. 몇 년에 한번 씩 교인들의 신임을 물어야만 한다. 목사와 장로의 계속 시무 여부가 여전히 교인들의 손에 달려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목사와 장로가 겸손하고 성실해 질 수 있다.
목사와 장로 즉 당회가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쓸데없이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실갱이를 하지 말고, 그리하여 목사가 할 일과 장로가 할 일 그리고 집사가 하여야 할 일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당회가 되지 말고 하나님과 교인 앞에서 정직하고 바로서는 당회가 되어야만 한다.
올바른 장로상 세우기
장로들은 기도하는 야고보장로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장로가 기도하지 않으면 항상 불평하고, 쉬지 않고 불평하고, 범사에 불평하는 장로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신앙 깨지고 교회가 문제가 일어난다.
또 장로들은 봉사하는 바나바 장로가 되어야 한다. 바나바의 믿음 충만, 성령 충만은 교회를 위한 봉사를 의미한다. 봉사의 사도로서의 바나바 장로 상은 새 시대, 새 교회의 장로의 역할을 잘보여 준다.
사랑의 교회 초기에 도둑이 주일헌금을 든 금고를 튼 일이 일어났다. 장로들은 서로 의논하여 우리가 돈을 취급한 책임이 있다며 전액을 배상해 냈다. 성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 교회와 장로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장로들은 성도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장로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한국 개신교의 위기를 맞아 장로들의 역할론과 책임론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담임목사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장로들이 책임을 다했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 나겠냐는 것.
한세대 전 만 해도 '장로'는 아름다운 희생과 성숙한 인격의 대명사였다. '장로'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람에게는 조건없는 믿음이 있었다.
장로는 교인을 대표하여 당회등에서 교회를 위해 재정과 행정적인 업무도 보며 담임목사를 도와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는 사역자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담임목사 혼자의 잘못이라기 보기 힘들다. 한국 개신교인 후퇴도 목회자와 장로가 만들어 낸 합작품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랑의 교회에서 10명의 장로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의외로 당시 담임 목사였던 옥함흠 목사는 한표도 나오지 않았고 4명이 동교회 배순호 장로를 찍었다. 배 장로는 사랑의 교회 선교부를 담당하다 선교지에 나갔다.
배 장로의 바른 삶이 "나도 그분처럼 되고 싶다"며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배순호 장로 같이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장로는 줄어들고 있다.
최근 뉴욕의 여러 교회에서 보듯 분쟁의 중심에는 장로가 있다.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역할에서 벗어나 장로가 담임목사를 좌지우지하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목회자와 문제가 생기면 장로는 깃발을 들고 다른 교회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 임직받은 교회에서 뼈를 묻겠다는 장로상은 사라졌다.
별세신앙 이중표 목사는 교회의 분란을 가져온 어느 장로에게 "장로는 죽으라고 세운 자리요.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으니 자기도 괴롭고, 목사도 괴롭고, 교회가 편치 않은 것이오. 일을 하려 하지 말고 먼저 당신을 죽이기를 힘쓰시오. 그러면 당신의 교회 뿐만 아니라 당신도 살 수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다.
은혜의 삶에 기초한 희생의 정신이 없는 장로들은 이제 환골탈퇴를 해야 한다. 섬김으로서의 장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직위로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신교는 만인 제사장론에 따라 조직속에 직분을 두지만 이것은 계급이 아니라 직능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장로는 교인들을 대표하는 직으로서 당회 아래서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도와주고 격려하며 교인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장로는 무엇보다 덕이 있어야 하고, 봉사와 헌신에 앞장섬으로 인하여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목사를 죽이는/살리는 장로
극동방송에서 최근 목회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목회하면서 가장 부담스럽고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은 장로(35%)라고 답했다. 뉴욕의 목회자들이 은퇴예배에서 목회 덕목으로 공통적으로 인내를 꼽았던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발생하는 목사와 장로간의 갈등의 주원인은 비 신앙적인 권위주의이다. 목사와 장로는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이다. 장로들이 겸손하게 섬기는 자로 나서야 교회도 살고 목사도 산다. 목회자는 장로의 발을 닦고, 장로는 목회자의 발을 닦아야 한다.
장로의 지나친 횡포와 전횡이 난무하는 교회일 수록 초대교회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직접 개척한 교회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청빙받아서 온 목회자는 당회가 무슨 이유를 들어 시비를 걸지 좌불안석이다.
목회자를 검증 절차를 거쳐 청빙했으면 담임목사가 소신껏 목회를 할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세운 교회인데"라는 식의 사고는 결국 파국으로 치딛는 지름길이다.
평신도 리더인 장로들은 담임목사가 하는 목회를 적극 도와야 한다. 목회자의 모자라는 부분을 꼬투리를 잡기 보다는 그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장로나 당회가 목회를 주도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만약 장로에게 양보할수 없는 목회 철학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담임목사의 목회와 충돌하게 된다. 장로에게는 섬김과 충성의 철학만 있을 뿐이다. 담임 목회자의 목회 철학에 동역해 건강한 교회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필요할 뿐이다.
한국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당회가 브레이크의 기능만 감당하고 액셀레이터의 기능은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당회가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의 기능을 적절히 사용할 때 교회는 가장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다.
목사와 장로의 상호 견제기능
목회자가 잘하는데 장로들이 무분별한 딴지걸기도 문제지만 무조건 목회자에게 맹종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최근 여러문제로 한국 사회에 지탄을 받은 교회의 장로들은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를 옹호하는 것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장로와 당회는 담임목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종으로 시녀가 되어서는 안된다. 당회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는 정당한 목회의 견제이다. 당회의 정당한 목회 견제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아서 목회와 교회의 안전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한 취재원 장로는 "우리교회 장로들은 담임목사에 대한 견제의 기능을 잃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교회는 목사의 반대하는 장로들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예스맨 중심으로 꾸며져 견제의 기능이 없어졌다. 담임목사의 카리스마가 강한 대형교회일수록 이런 일은 더 많이 일어난다.
목회자가 누구나 이해할수 있도록 합당하게 요구한다면 순종해야 하지만 말씀에서 벗어날 때는 장로들은 올바른 견제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만약 그러한 용기가 있었다면 지금의 교회의 문제는 최소화 되었을 것이고 미래의 교회의 문제또한 염려가 적다.
독재적인 교회일수록 담임 목회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임직시키거나 측근을 재정담당자에 선임해 교회를 자의적으로 이끈다. 그런 교회의 목회자일수록 교회 물질을 마음대로 쓰는 경우가 발생하며 결국 교회 내분의 원인을 유발시킨다.
담임 목회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눈치보기에 바쁘면 그들이 볼수 없는 여러 단점들이 교인들에 의해 지적된다. 족벌운영이라는 비판받고 있는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난다면 문제의 책임은 목회자만큼 목회자의 편법을 눈감아준 장로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장로의 임직자격과 재신임
정말 존경 받을 만한 장로는 줄어들고 있다. 출석 교회에서 장로가 안되니 교회를 옮겨 장로가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장로 임직에 신중해야 한다. 임직자를 세울 때는 목회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교회 출석, 헌금, 봉사 등 객관적인 자격을 제도화 해야 한다.
장로제도가 있는 많은 교회는 장로직은 항존직으로 영원한 면류관이 되어 버렸다. 장로들도 전문성을 두어 교회에 봉사할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작년 뉴욕의 한 교회는 시무장로의 정년도 65세로 조정했다. 시무장로는 사역을 시작된지 7년과 65세 정년 중 먼저 해당하는 것에 따른다. 따라서 7년이상 교회 행정에 관여할 수 없으며 그 이후는 교회의 사역을 돕게 된다.
교회는 장로의 재신임제도를 통하여 교회의 주권을 교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장로는 교인의 대표이지 교회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장로는 교회의 대표이자 교회의 주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교만하게 되었고 나태하게 되었다.
지금과 같이 한번 위임을 받고 투표를 받으면 70세까지 자리가 보장되는 제도로서는 문제가 있다. 몇 년에 한번 씩 교인들의 신임을 물어야만 한다. 목사와 장로의 계속 시무 여부가 여전히 교인들의 손에 달려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목사와 장로가 겸손하고 성실해 질 수 있다.
목사와 장로 즉 당회가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쓸데없이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실갱이를 하지 말고, 그리하여 목사가 할 일과 장로가 할 일 그리고 집사가 하여야 할 일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당회가 되지 말고 하나님과 교인 앞에서 정직하고 바로서는 당회가 되어야만 한다.
올바른 장로상 세우기
장로들은 기도하는 야고보장로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장로가 기도하지 않으면 항상 불평하고, 쉬지 않고 불평하고, 범사에 불평하는 장로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신앙 깨지고 교회가 문제가 일어난다.
또 장로들은 봉사하는 바나바 장로가 되어야 한다. 바나바의 믿음 충만, 성령 충만은 교회를 위한 봉사를 의미한다. 봉사의 사도로서의 바나바 장로 상은 새 시대, 새 교회의 장로의 역할을 잘보여 준다.
사랑의 교회 초기에 도둑이 주일헌금을 든 금고를 튼 일이 일어났다. 장로들은 서로 의논하여 우리가 돈을 취급한 책임이 있다며 전액을 배상해 냈다. 성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 교회와 장로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장로들은 성도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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