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제연구소 조남홍 목사 "반대교인도 책임져야 할 양""
페이지 정보
정보ㆍ2007-02-13 00:00관련링크
본문
미국의 동부, 서부, 중부에서 주요 한인교회의 교회분쟁의 소식이 언론에 계속 오르 내리고 있다. 교회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을 막는 방법은 없는가? 또 현재 교회분쟁에 있는 교회들이 참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멘넷은 "한국이민교회의 분쟁 문제에 대한 연구"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동부에서 '교회문제연구소'를 개설한 조남홍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교회분쟁에 대해 알아보았다.
● 본인의 학력과 경력을 소개해 주시죠?
신학교는 한국신학대학을 나와서 사역지를 찾는 중에 첫 목회지가 학교였습니다. 도농 중학교라 하는 서울 근교의 학교였는데 학원선교의 필요성을 느껴 목회지로 정했습니다. 학교의 배려로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어과 2 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공부 중 군목으로 가서 육군에서 3 년을 사역했고,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와 보니까 학교 재단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되어, 신학교 은사의 추천을 받아 마침 사람을 찾고 있던 이화여자 대학교 부속 중고등학교에서 약 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 카나다 유학을 준비하고 떠날려다 다니던 서울 대공원 앞에 있는 능동교회에 붙잡혀서 사역을 했습니다. 당시 교회를 건축 중이었는데 3년 후 건축이 다 마친 다음에 교회를 사임하고 카나다에 유학와 맥매스터 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었는데 집안에 변화가 생겨 다시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 칼가리 한인 장로교회에서 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워싱톤 지역에 내려와 매릴랜드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였고, 그 동안에 틈틈히 공부를 하여 워싱톤 디시에 있는 웻슬리 신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습니다.
목회 중에 교회 분규가 생겨 쓰라린 경험을 한 후에 교회 분쟁 문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미국 장로교 유니온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했고 "한국이민교회의 분쟁 문제에 대한 연구"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미국 장로교 대서양 한미노회 총무로 유급 사역을 하면서 갈릴리 교회라고 하는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 많은 목회분야가 있는데 어떻게 화해 사역에 나서게 되었습니까?
말씀 드린대로 목회중에 교회가 분열 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젊은 나이이고 사명에 불 탈때인데 교회가 도무지 교회 같지가 않았습니다. 초빙을 받아 간 교회를 가보니 선임자가 아주 저와는 맞지 않은 사역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구역 예배 시간에 술을 마신다든가, 주일 예배가 끝나면 새로온 사람들을 한 곳으로 데려가 술 대접을 하면서 그야 말로 이상 야릇한 교회였습니다. 물론 좋은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는 다 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처음에는 교회 분위기 대로 적응을 하여 가다가 한 삼년이 지난 다음에 선언을 했습니다. 이제 나는 목사가 가야 할 길을 갈 것이고 교회도 교회 다워졌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교회 답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정의가 다 다르겠지만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교회 말입니다. 교회는 문화 센터나 정보교류 센터나 친목단체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부수적으로 필요할지 모르지만 몇가지 고쳐야 할 점들을 고칠 것을 선언하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환영을 했고 그 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한신 출신 답지 않다고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과정 가운데 결국은 교인들이 양분 되어 서로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양자를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없고 화해 시킬 수도 없었는데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 큰 시련을 격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나같이 교회 분열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교회 싸움이 있는 곳이나 상담을 받으면 싸움 말리는 일에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교회문제연구소'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현재는 초기 상태이기 때문에 조직 중에 있습니다. 이 분야를 공부한 분이거나, 오랜 목회 경험을 가진 분들, 그리고 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각 분야별로 조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이사, 후원이사, 운영이사 형식으로 참여 할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 최근 교회문제연구소 홈페이지를 내셨는데 현재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교회문제 연구소의 사역은 사명 선언에 나와 있는 대로 '화해'와 '예방' 및 '중재'를 통해서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향하여 가도록 도움을 주는데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현재는 노회 총무라고 하는 풀타임 잡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내가 어려워서 인터넷 상으로 작게 시작했지만 전국적인 컨퍼런스같은 것을 열어서 훈련과 경험의 기회도 만들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평화 사역', '미디에이터 교육'등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여건이 허락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관심 있는 분들의 힘과 능력을 규합하여 함께 활동해 나가며 프로그램도 같이 할려고 합니다. 또한 앞으로 여건이 되는대로 서서히 활동 영역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다행히도 웹페이지를 연 후 다행이도 도와주시겠다고 하는 분들이나 연구원이나 컨설턴트로 참여하시겠다고 하는 노하우늘 가진 분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습니다. 연구소는 이러한 분들을 연결하여 구슬을 꿰듯 교회문제 예방과 화해 사역을 감당해 나갈려고 합니다. (홈페이지: http://www.romans58.net)
● 성경 말씀이 가르키는 '화해의 사역'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화해'의 문제는 신학의 큰 주제이기도 합니다. 신학의 흐름이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예수님은 '화해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 그것이 십자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막혔던 담을 헐고 화해자로 하나님과의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과의 문제도 십자가 상에서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를 떠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두가 알듯이 예수님 자신이 '화해자'로 사셨습니다. 중보자이셨고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화해 사역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스메이커가 되는 것은 신자들의 사명이요 본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화해'를 위해 돌아 가셨습니다. 아울렌의 조직신학은 바로 이 주제로 되어 있지요. 목회도 큰 그림에서 보면 '화해의 사역'입니다.
● 역사인 성경에 나타나는 교회분쟁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맼클로우라고 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성경 전체를 하나의 갈등 해결의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 계시록에 가서는 어린양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구약 성경에도 갈등의 문제는 여러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상에 나타나는 교회 분쟁은 초대교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보세요. 사도행전 6장에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으로 부터 나타나고 있고, 15 장에 예루살렘 회의의 논쟁 및 바울과 바나바의 분쟁등이 나타납니다. 바울 서신이나 초대 교회역사를 보면 성경상에 10 개의 중요한 교회분쟁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부흥사들이 외칩니다. 그런데 우리가 초대교회로 돌아가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중요한 갈등해결의 교과서라고들 말합니다. 2장의 성령강림과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사모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평화는 잠깐이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갈등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갈등을 통해서 역사 발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처럼 보입니다.
목회학에서도 그런 것은 그렇게 강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개발 되어야 하고 화해는 말로 되는 것이나,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훈련과 실제적인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무장은 물론이고, 훈련하고 예방하고 조정하는 그런 기술과 과정들을 함께 배우고 실습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는데 어느 상태에서 부터 '교회분쟁'이라고 부릅니까?
보통 교회 분쟁이라고 부를 때는 이미 갈등이 상당히 깊어져서 자기들 자신들로서는 해결이 어려운 상태를 가르킵니다. 그래서 교회 법정으로 가거나 사회 법정으로 가게 되지요.
그런데 좀더 갈등이 깊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교회 문제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작은 작은 '이슈'로 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 이슈의 단계를 거쳐서 '문제'로 넘어가고 문제를 넘어서 '갈등'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갈등 상태를 분쟁 상태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슈는 무엇이냐? 그것은 피차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어떤 사안이죠. 그것에서 좀더 깊어지면 문제로 발전하는데 이 '문제'는 어떠한 모양으로든 해결 해야 하는 이슈로 한 사람 혹은 한 사람과 집단 혹은 집단과 집단 사이의 상호 작용 가운데서 해결 되어야 하는 관심사입니다.
문제의 해결의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원만히 해결 되거나 win-win 상태로 해결 되지 않을 경우 한 당사자 혹은 한 집단이 다른 한 상대자나 집단을 제압할려고 하는데에서, 다시 말하면 상대방을 이길려고 하는 데에서 문제가 갈등으로 넘어갑니다. 이때는 벌써 문제와 사람을 동일시 하여 상대방을 없애거나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의 해결인 줄 압니다. 여기에 갈등 조정자가 필요하죠. 제 삼자의 개입이라 할까요?
이에 대한 이론도 길게 이야기 하면 많아 다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가? 문제는 외면적인데 갈등은 내면적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문제를 문제로 해결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없애거나 무너트리는 것이 문제의 해결로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인신 공격도 나오고 심하면 폭력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때를 우리가 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갈등으로 넘어가는 상태부터 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 교회문제연구소에서 교회갈등을 상담받고 그것을 해소하는 순서와 방법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교회와의 문제 혹은 교역자와의 문제는 개인적인 상담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길을 택하여 갈 수 있도록 비지시적인 방법을 안내합니다. 이것은 칼 로저스의 이론인데 그런 방법으로 하거나 아니면 쟌 듀이의 교육 이론에서 처럼 "문제 해결의 5 단계" 방법도 동원 될 것이고, 뭐 모든 방법이 동원 되겠지요.
그러나 한계가 있지요. 연구소가 개인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단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도 비슷하겠지만 사안이 들어오면 분쟁 당사자들 간의 합의와 서약 하에 교회문제 연구소 연구원이나 컨설턴트 팀의 중재나 조정을 받겠다는 전제 하에 공정하게 조정의 방법을 통하여 원만한 타협을 이루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가능한가?
사실 거기에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우리들에게 맞는 방법이 전혀 없진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문제 다 해결하고 살아왔으니까요. 그것도 아니면 미국에 성경적인 중재기관 혹은 사회 단체에서 하는 중재 기관들이 많은데 그런 곳에 의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가장 하고 싶은 방법은 '예방 훈련'입니다. 목회자는 은퇴할 때가지 갈등 문제에 대해서 외면하면 안 됩니다. 목회를 수십년 잘 해 놓고 마지막 단계에 가서 갈등에 휘말려 수십년의 명예에 일순간 먹칠하는 그런 사례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일단 분쟁이 일어나면 해결은 나기는 나되 비 생산적인 결과 혹은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때문에 예방이 중요한데 병들지 않도록 사전에 방어하거나 살짝 아파서 면역성이 생기게 하는 그런 방법이랄까요.
● 한인이민교회들의 분쟁의 주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폐쇄적인 리더십의 문제", "재정의 불투명성", "독재적인 교회행정"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제가 조사 한 바에 의하면 교회 안에 12 가지 갈등의 원인이 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제 책 <교회 싸움>, 부제로 "교회내의 갈등과 그 처리 방안"에 간단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또 워싱톤 목회 연구원에서 내놓은 "이민 목회와 신학"이라는 책에 "교회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9 가지 공통 요인"이라는 글을 하나 썼는데 거기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 "목회자의 윤리성," "재정의 투명성", "교회 행정의 민주화" 등의 문제로 분쟁이 생기면 성경적으로 목회자가 가장 먼저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사가 명예 문제에 걸리면 교회를 사임하고, 재정 문제에 문제가 있으면 목사를 사임하고, 여자 문제가 있으면 인간을 사임하라는 말이 내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교회 문제의 알파와 오메가는 '목회자 자신'일 수 있습니다. 동역자들에게 욕 먹을 이야기입니다. 저만 성인군자인체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저도 그렇게 목회해 오지 못한 실패를 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이 모든 아픈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은 역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다 볼 때에 저 자신이 변화 했다고 할까요?
예를들면 교회가 분쟁하게 되니까 저를 지지 해 주는 쪽과 반대 하는 쪽으로 나누어 싸우는데 반대하는 사람들 참 미워 치리하고 짤라 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후회가 들어요. 그들은 아무리 신앙이 있던 없던 말썽 구러기던, 아니면 속썩이는 사람이든, 그들은 교회밖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주님 제가 죽을 죄인입니다. 제가 필요해서 제게 맡겨준 당신의 사람들을 저는 미워했습니다"라구요. 값비싸게 주고 산 교훈이었습니다.
아무리 속썩이고 나쁜 사람이라 할찌라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목회를 못하게 됩니다. 그를 미워 하는 만큼 나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왜 내가 영적으로 손해 보는 일을 합니까? 그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수 밖에요. 그리고 문제의 깊은 속에는 나 자신의 자기관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해방 되어야 하지요.
사실 요즘 유행하는 책처럼 "모두 내려 놓아야"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봅니다. 야고보는 문제와 분쟁의 근원을 욕심으로 보지 않습니까? 아주 잘 말씀했어요. 나중에 리인홀드 리버가 그것을 다시 이야기 했지만 말입니다. 분쟁의 원인, 문제의 원인은 사실 자기 관심(self-interest)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교인들이 편들어 준다고 좋아 할 것 없고 배척한다고 너무 실망 할 것 없다고 봅니다. 목사 위해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누구 때문에 싸우는지 정말 하나님 때문에 싸웁니까? 순교라도 할 것 처럼? 자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싸우고 자기 이해 관계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장해도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질문 하신 것이 아닌 엉뚱한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만 예수님 처럼 죽어야 다시 부활합니다. 그것이 얻은 진리입니다.
● 미국교회와 한인교회의 분쟁 원인이 문화적인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 문제, 우리는 죄인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미국 사람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미국 교회 분쟁 사례도 많습니다. 웻슬리 신학대학원과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대학원 도서관의 갈등관계 책을 모두 찿아 봤습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이 분야에 대한 책들을 펼쳐 보면 어느 책이나 비슷하고 공통점들이 많았습니다.
미국교회도 분쟁이 많이 있고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분쟁이 적은 것 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은 이러한 분쟁을 조정하는 방법을 잘 개발해 놓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제나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사안들을 연구하여 가이드라인이나 룰을 정해 놓고 그 룰대로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국교회는 제가 미국 장로교 목사이지만 그러한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을 적용하여 분쟁의 소지를 극소화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한국 교회는 싸웠다 하면 결국 갈라집니다. 룰을 잘 안지키고 반칙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가 갈라지는 것도 하나님편에서 보면 손해가 없다고 강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손해 안 보실까요? 숫자적으로 손해 안 본다는 말같은데, 하나님이 장사꾼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할 수 만 있으면 평화하라"는 말씀은 어디다 적용합니까? 그런 말은 그럴듯한 궤변에 지나지 않다고 봅니다.
● 분쟁과 교회의 크기와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작은 배는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고 큰 배는 작은 파도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큰 교회일수록 문제가 일어나거나 갈등이 생겨도 덩치가 크기 때문에 한쪽에서 좀 떠들어도 크게 표출 되지 않는 것이겠죠. 그래서 어지간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큰 교회가 흔들리면 아무리 떨어져 나가도 남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욱 세게 나가지요. 나갈 사람 다 나가라는 식이 되는데 그것을 영성화 시켜서 "알멩이는 남고 쭉정이는 다 날라가야 한다,"는 식으로 위장하죠.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세상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 일반적으로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면 분쟁의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분쟁의 상태가 어느 정도냐 사안이 어떤 사안이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분쟁의 상태를 지진으로 표현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지진의 진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기간도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안은 단기간에 어떤 분쟁은 장기화 되기도 합니다.
또 기간을 얼마라고 확정 지을 수 없는 것은 최근 교회 싸움이 20년까지 가서야 해결 된 (물론 재산문제여서 그렇지만)예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단순간에 끝나는 상태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쟁 기간은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느냐도 관계가 있습니다. 교단이 개입하면 개인은 이기기 힘듭니다. 이경우 교회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최근 어떤 글에 의하면 분쟁이 길 수록 교역자에게 유리하다는 연구가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다 나가도 끝까지 교회를 붙들고 있으면 다시 회복 된 다는 것이지요. 일반 교인들은 뭉쳐주는 핵이 없기 때문에 흩어지기 쉽습니다.
● 가장 기억이 나는 분쟁교회의 사례를 설명해주시죠?
주위에 하도 많은 교회들이 분쟁 속에 있기 때문에 예를 들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일어난 분쟁의 사례가 가장 기억이 남고 그 뒷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서 낼려고 했는데 관계 인물들이 아직 살아 있으니 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주위 동역자들의 충고로 접어 둔 일이 있습니다. 목회 중에 단 한번 있었던 가슴 아픈 추억입니다.
● 교회분쟁이 닥쳤을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마지막 결과는 무엇입니까?
분쟁이 일어나면 누가 조정해 주거나 손을 대지 않아도 결국 어떤 모양으로든지 결론이 납니다. 손을 대고 화해 시킬려고 하는 것은 건설적인 결말이 나도록 도와 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기가 곧 기회이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결말을 가져 오도록 도와 주려고 하는 것인데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보통은 파괴적인 결말이 납니다.
극단적인 경우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목사가 장로를 총으로 쏴 죽인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주 극단적인 일이고, 보통은 갈라지거나 흩어지는게 보통이죠. 그리고 이긴자 진자가 없게 됩니다. 싸우면 모두가 패자가 됩니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닙니다. 싸움의 상처는 이세상 끝날까지 가게 되는 아주 깊은 상처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목회자나 평신도 리더십들에게는 말입니다.
● 최근 분쟁교회의 반대파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것의 장단점이 있을텐데?
장점이라면 언로가 트이는 것이라 하겠죠.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대화가 안 되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보통 싸움이 일어나면 상대방 이야기는 안들을려고 하는데 사실은 들어봐야 합니다. 내가 잘 못 한 것은 내가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해 주어야 알게 되죠. 우리는 대화 할 줄 모르는 민족 아닙니까? 버럭 성질부터 내는 것이 우리 민족성인데 물론 사람 마다 다르긴 하겠지만요. 교회마다 게시판을 두려워 하고 폐쇄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운용을 하여 커뮤니케이션의 채널로 양성화 시키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단점이라면 기독교인으로서 담을 수 없는 너무 인신 공격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실 확인도 문제이고 그리고 개인감정의 표출로 인하여 문제의 핵심을 잃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종의 분풀이성 글들이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일종의 분쟁 상태의 확전이라고 봅니다. 여론화 시켜서 상대방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을 분쟁이론에서 컴뮤날 파워라고 하는 것 같애요.
● 분쟁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이성적인 논리를 찾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많은데 지금 분쟁중인 교회에 충고의 말씀 해주시죠?
제가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을 바꾸어 신으면 저도 그렇게 될찌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경험을 통해 한마디 할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교회에서 쫓겨 나가는 사람은 교인들이 아니라 목회자가 아니라, '예수님이요, 하나님이요,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그 싸움을 정의로 위장하고 있지나 않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성화 시켜 나를 반대하는 자들은 다 마귀요, 나를 찬성 하는 이들은 다 신자라고 하는 이분법에 서있는지? 또는 이 상황에서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혼자 잘난체 한다고 한마디 들을 것 같습니다.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경험한 것과 같은 실패자가 되지 말라고 하고 싶어서입니다.
● 분쟁이 일어난 교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소속노회등 교단이 개입을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제 사견에는 미국내 한국 교단의 문제 처리에는 신뢰성을 많이 두지 않습니다. 공명정대, 민주적인 처리 보다는 정실과 연줄이 더 작용합니다. 때문에 불공정한 처리로 인하여 '노회가 목사들의 노조'란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무얼 두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한국인끼리 하는 미국내 교단은 '위기 관리' 에 대해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보입니다.
교만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서 하던 식 그대로 미국 이민교회도 적용할려고 하는데 이민 교인들은 다르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파마다 다르긴 하지만 미국 교단들은 저마다 위기 관리나 갈등 해결의 가이드라인이 있고 훈련도 많습니다. 목회자나 교인들 양쪽 모두를 배려하기 위해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위기관리'가 제법 잘 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분쟁을 막기위해 목회자와 평신도가 각각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힘들고 광대한 질문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자 노릇을 잘하고 평신도는 평신도 노릇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막연하지만 그 속에 다들어 있지 않을까요? 모든 일에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되지요.
그러나 실무적인 입장에서 말해 본다면, 무너뜨리는 일보다는 세우는 일에 서로 힘써야 할 것이고, 교회가 사유화 되거나 몇 사람의 독무대, 몇 가족의 소유가 아닌 믿음 공동체로서 문제의 소지나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안들은 미리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공평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 문제가 발생하면 곧 바로 개입하여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평신도 리더십, 그리고 평화교육 등이 필요하겠지요.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아멘넷은 "한국이민교회의 분쟁 문제에 대한 연구"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동부에서 '교회문제연구소'를 개설한 조남홍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교회분쟁에 대해 알아보았다.
● 본인의 학력과 경력을 소개해 주시죠?
신학교는 한국신학대학을 나와서 사역지를 찾는 중에 첫 목회지가 학교였습니다. 도농 중학교라 하는 서울 근교의 학교였는데 학원선교의 필요성을 느껴 목회지로 정했습니다. 학교의 배려로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어과 2 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공부 중 군목으로 가서 육군에서 3 년을 사역했고,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와 보니까 학교 재단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되어, 신학교 은사의 추천을 받아 마침 사람을 찾고 있던 이화여자 대학교 부속 중고등학교에서 약 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 카나다 유학을 준비하고 떠날려다 다니던 서울 대공원 앞에 있는 능동교회에 붙잡혀서 사역을 했습니다. 당시 교회를 건축 중이었는데 3년 후 건축이 다 마친 다음에 교회를 사임하고 카나다에 유학와 맥매스터 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었는데 집안에 변화가 생겨 다시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 칼가리 한인 장로교회에서 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워싱톤 지역에 내려와 매릴랜드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였고, 그 동안에 틈틈히 공부를 하여 워싱톤 디시에 있는 웻슬리 신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습니다.
목회 중에 교회 분규가 생겨 쓰라린 경험을 한 후에 교회 분쟁 문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미국 장로교 유니온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했고 "한국이민교회의 분쟁 문제에 대한 연구"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미국 장로교 대서양 한미노회 총무로 유급 사역을 하면서 갈릴리 교회라고 하는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 많은 목회분야가 있는데 어떻게 화해 사역에 나서게 되었습니까?
말씀 드린대로 목회중에 교회가 분열 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젊은 나이이고 사명에 불 탈때인데 교회가 도무지 교회 같지가 않았습니다. 초빙을 받아 간 교회를 가보니 선임자가 아주 저와는 맞지 않은 사역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구역 예배 시간에 술을 마신다든가, 주일 예배가 끝나면 새로온 사람들을 한 곳으로 데려가 술 대접을 하면서 그야 말로 이상 야릇한 교회였습니다. 물론 좋은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는 다 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처음에는 교회 분위기 대로 적응을 하여 가다가 한 삼년이 지난 다음에 선언을 했습니다. 이제 나는 목사가 가야 할 길을 갈 것이고 교회도 교회 다워졌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교회 답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정의가 다 다르겠지만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교회 말입니다. 교회는 문화 센터나 정보교류 센터나 친목단체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부수적으로 필요할지 모르지만 몇가지 고쳐야 할 점들을 고칠 것을 선언하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환영을 했고 그 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한신 출신 답지 않다고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과정 가운데 결국은 교인들이 양분 되어 서로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양자를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없고 화해 시킬 수도 없었는데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 큰 시련을 격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나같이 교회 분열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교회 싸움이 있는 곳이나 상담을 받으면 싸움 말리는 일에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교회문제연구소'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현재는 초기 상태이기 때문에 조직 중에 있습니다. 이 분야를 공부한 분이거나, 오랜 목회 경험을 가진 분들, 그리고 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각 분야별로 조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이사, 후원이사, 운영이사 형식으로 참여 할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 최근 교회문제연구소 홈페이지를 내셨는데 현재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교회문제 연구소의 사역은 사명 선언에 나와 있는 대로 '화해'와 '예방' 및 '중재'를 통해서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향하여 가도록 도움을 주는데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현재는 노회 총무라고 하는 풀타임 잡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내가 어려워서 인터넷 상으로 작게 시작했지만 전국적인 컨퍼런스같은 것을 열어서 훈련과 경험의 기회도 만들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평화 사역', '미디에이터 교육'등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여건이 허락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관심 있는 분들의 힘과 능력을 규합하여 함께 활동해 나가며 프로그램도 같이 할려고 합니다. 또한 앞으로 여건이 되는대로 서서히 활동 영역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다행히도 웹페이지를 연 후 다행이도 도와주시겠다고 하는 분들이나 연구원이나 컨설턴트로 참여하시겠다고 하는 노하우늘 가진 분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습니다. 연구소는 이러한 분들을 연결하여 구슬을 꿰듯 교회문제 예방과 화해 사역을 감당해 나갈려고 합니다. (홈페이지: http://www.romans58.net)
● 성경 말씀이 가르키는 '화해의 사역'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화해'의 문제는 신학의 큰 주제이기도 합니다. 신학의 흐름이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예수님은 '화해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 그것이 십자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막혔던 담을 헐고 화해자로 하나님과의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과의 문제도 십자가 상에서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를 떠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두가 알듯이 예수님 자신이 '화해자'로 사셨습니다. 중보자이셨고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화해 사역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스메이커가 되는 것은 신자들의 사명이요 본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화해'를 위해 돌아 가셨습니다. 아울렌의 조직신학은 바로 이 주제로 되어 있지요. 목회도 큰 그림에서 보면 '화해의 사역'입니다.
● 역사인 성경에 나타나는 교회분쟁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맼클로우라고 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성경 전체를 하나의 갈등 해결의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 계시록에 가서는 어린양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구약 성경에도 갈등의 문제는 여러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상에 나타나는 교회 분쟁은 초대교회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보세요. 사도행전 6장에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으로 부터 나타나고 있고, 15 장에 예루살렘 회의의 논쟁 및 바울과 바나바의 분쟁등이 나타납니다. 바울 서신이나 초대 교회역사를 보면 성경상에 10 개의 중요한 교회분쟁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부흥사들이 외칩니다. 그런데 우리가 초대교회로 돌아가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중요한 갈등해결의 교과서라고들 말합니다. 2장의 성령강림과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사모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평화는 잠깐이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갈등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갈등을 통해서 역사 발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처럼 보입니다.
목회학에서도 그런 것은 그렇게 강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개발 되어야 하고 화해는 말로 되는 것이나,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훈련과 실제적인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무장은 물론이고, 훈련하고 예방하고 조정하는 그런 기술과 과정들을 함께 배우고 실습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는데 어느 상태에서 부터 '교회분쟁'이라고 부릅니까?
보통 교회 분쟁이라고 부를 때는 이미 갈등이 상당히 깊어져서 자기들 자신들로서는 해결이 어려운 상태를 가르킵니다. 그래서 교회 법정으로 가거나 사회 법정으로 가게 되지요.
그런데 좀더 갈등이 깊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교회 문제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작은 작은 '이슈'로 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 이슈의 단계를 거쳐서 '문제'로 넘어가고 문제를 넘어서 '갈등'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갈등 상태를 분쟁 상태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슈는 무엇이냐? 그것은 피차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어떤 사안이죠. 그것에서 좀더 깊어지면 문제로 발전하는데 이 '문제'는 어떠한 모양으로든 해결 해야 하는 이슈로 한 사람 혹은 한 사람과 집단 혹은 집단과 집단 사이의 상호 작용 가운데서 해결 되어야 하는 관심사입니다.
문제의 해결의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원만히 해결 되거나 win-win 상태로 해결 되지 않을 경우 한 당사자 혹은 한 집단이 다른 한 상대자나 집단을 제압할려고 하는데에서, 다시 말하면 상대방을 이길려고 하는 데에서 문제가 갈등으로 넘어갑니다. 이때는 벌써 문제와 사람을 동일시 하여 상대방을 없애거나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의 해결인 줄 압니다. 여기에 갈등 조정자가 필요하죠. 제 삼자의 개입이라 할까요?
이에 대한 이론도 길게 이야기 하면 많아 다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가? 문제는 외면적인데 갈등은 내면적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문제를 문제로 해결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없애거나 무너트리는 것이 문제의 해결로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인신 공격도 나오고 심하면 폭력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때를 우리가 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갈등으로 넘어가는 상태부터 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 교회문제연구소에서 교회갈등을 상담받고 그것을 해소하는 순서와 방법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교회와의 문제 혹은 교역자와의 문제는 개인적인 상담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길을 택하여 갈 수 있도록 비지시적인 방법을 안내합니다. 이것은 칼 로저스의 이론인데 그런 방법으로 하거나 아니면 쟌 듀이의 교육 이론에서 처럼 "문제 해결의 5 단계" 방법도 동원 될 것이고, 뭐 모든 방법이 동원 되겠지요.
그러나 한계가 있지요. 연구소가 개인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단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도 비슷하겠지만 사안이 들어오면 분쟁 당사자들 간의 합의와 서약 하에 교회문제 연구소 연구원이나 컨설턴트 팀의 중재나 조정을 받겠다는 전제 하에 공정하게 조정의 방법을 통하여 원만한 타협을 이루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가능한가?
사실 거기에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우리들에게 맞는 방법이 전혀 없진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문제 다 해결하고 살아왔으니까요. 그것도 아니면 미국에 성경적인 중재기관 혹은 사회 단체에서 하는 중재 기관들이 많은데 그런 곳에 의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가장 하고 싶은 방법은 '예방 훈련'입니다. 목회자는 은퇴할 때가지 갈등 문제에 대해서 외면하면 안 됩니다. 목회를 수십년 잘 해 놓고 마지막 단계에 가서 갈등에 휘말려 수십년의 명예에 일순간 먹칠하는 그런 사례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일단 분쟁이 일어나면 해결은 나기는 나되 비 생산적인 결과 혹은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때문에 예방이 중요한데 병들지 않도록 사전에 방어하거나 살짝 아파서 면역성이 생기게 하는 그런 방법이랄까요.
● 한인이민교회들의 분쟁의 주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폐쇄적인 리더십의 문제", "재정의 불투명성", "독재적인 교회행정"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제가 조사 한 바에 의하면 교회 안에 12 가지 갈등의 원인이 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제 책 <교회 싸움>, 부제로 "교회내의 갈등과 그 처리 방안"에 간단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또 워싱톤 목회 연구원에서 내놓은 "이민 목회와 신학"이라는 책에 "교회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9 가지 공통 요인"이라는 글을 하나 썼는데 거기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 "목회자의 윤리성," "재정의 투명성", "교회 행정의 민주화" 등의 문제로 분쟁이 생기면 성경적으로 목회자가 가장 먼저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사가 명예 문제에 걸리면 교회를 사임하고, 재정 문제에 문제가 있으면 목사를 사임하고, 여자 문제가 있으면 인간을 사임하라는 말이 내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교회 문제의 알파와 오메가는 '목회자 자신'일 수 있습니다. 동역자들에게 욕 먹을 이야기입니다. 저만 성인군자인체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저도 그렇게 목회해 오지 못한 실패를 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이 모든 아픈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은 역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다 볼 때에 저 자신이 변화 했다고 할까요?
예를들면 교회가 분쟁하게 되니까 저를 지지 해 주는 쪽과 반대 하는 쪽으로 나누어 싸우는데 반대하는 사람들 참 미워 치리하고 짤라 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후회가 들어요. 그들은 아무리 신앙이 있던 없던 말썽 구러기던, 아니면 속썩이는 사람이든, 그들은 교회밖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주님 제가 죽을 죄인입니다. 제가 필요해서 제게 맡겨준 당신의 사람들을 저는 미워했습니다"라구요. 값비싸게 주고 산 교훈이었습니다.
아무리 속썩이고 나쁜 사람이라 할찌라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목회를 못하게 됩니다. 그를 미워 하는 만큼 나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왜 내가 영적으로 손해 보는 일을 합니까? 그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수 밖에요. 그리고 문제의 깊은 속에는 나 자신의 자기관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해방 되어야 하지요.
사실 요즘 유행하는 책처럼 "모두 내려 놓아야"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봅니다. 야고보는 문제와 분쟁의 근원을 욕심으로 보지 않습니까? 아주 잘 말씀했어요. 나중에 리인홀드 리버가 그것을 다시 이야기 했지만 말입니다. 분쟁의 원인, 문제의 원인은 사실 자기 관심(self-interest)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교인들이 편들어 준다고 좋아 할 것 없고 배척한다고 너무 실망 할 것 없다고 봅니다. 목사 위해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누구 때문에 싸우는지 정말 하나님 때문에 싸웁니까? 순교라도 할 것 처럼? 자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싸우고 자기 이해 관계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장해도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질문 하신 것이 아닌 엉뚱한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만 예수님 처럼 죽어야 다시 부활합니다. 그것이 얻은 진리입니다.
● 미국교회와 한인교회의 분쟁 원인이 문화적인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 문제, 우리는 죄인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미국 사람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미국 교회 분쟁 사례도 많습니다. 웻슬리 신학대학원과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대학원 도서관의 갈등관계 책을 모두 찿아 봤습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이 분야에 대한 책들을 펼쳐 보면 어느 책이나 비슷하고 공통점들이 많았습니다.
미국교회도 분쟁이 많이 있고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분쟁이 적은 것 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은 이러한 분쟁을 조정하는 방법을 잘 개발해 놓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제나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사안들을 연구하여 가이드라인이나 룰을 정해 놓고 그 룰대로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국교회는 제가 미국 장로교 목사이지만 그러한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을 적용하여 분쟁의 소지를 극소화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한국 교회는 싸웠다 하면 결국 갈라집니다. 룰을 잘 안지키고 반칙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가 갈라지는 것도 하나님편에서 보면 손해가 없다고 강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손해 안 보실까요? 숫자적으로 손해 안 본다는 말같은데, 하나님이 장사꾼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할 수 만 있으면 평화하라"는 말씀은 어디다 적용합니까? 그런 말은 그럴듯한 궤변에 지나지 않다고 봅니다.
● 분쟁과 교회의 크기와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작은 배는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고 큰 배는 작은 파도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큰 교회일수록 문제가 일어나거나 갈등이 생겨도 덩치가 크기 때문에 한쪽에서 좀 떠들어도 크게 표출 되지 않는 것이겠죠. 그래서 어지간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큰 교회가 흔들리면 아무리 떨어져 나가도 남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욱 세게 나가지요. 나갈 사람 다 나가라는 식이 되는데 그것을 영성화 시켜서 "알멩이는 남고 쭉정이는 다 날라가야 한다,"는 식으로 위장하죠.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세상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 일반적으로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면 분쟁의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분쟁의 상태가 어느 정도냐 사안이 어떤 사안이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분쟁의 상태를 지진으로 표현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지진의 진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기간도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안은 단기간에 어떤 분쟁은 장기화 되기도 합니다.
또 기간을 얼마라고 확정 지을 수 없는 것은 최근 교회 싸움이 20년까지 가서야 해결 된 (물론 재산문제여서 그렇지만)예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단순간에 끝나는 상태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쟁 기간은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느냐도 관계가 있습니다. 교단이 개입하면 개인은 이기기 힘듭니다. 이경우 교회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최근 어떤 글에 의하면 분쟁이 길 수록 교역자에게 유리하다는 연구가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다 나가도 끝까지 교회를 붙들고 있으면 다시 회복 된 다는 것이지요. 일반 교인들은 뭉쳐주는 핵이 없기 때문에 흩어지기 쉽습니다.
● 가장 기억이 나는 분쟁교회의 사례를 설명해주시죠?
주위에 하도 많은 교회들이 분쟁 속에 있기 때문에 예를 들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일어난 분쟁의 사례가 가장 기억이 남고 그 뒷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서 낼려고 했는데 관계 인물들이 아직 살아 있으니 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주위 동역자들의 충고로 접어 둔 일이 있습니다. 목회 중에 단 한번 있었던 가슴 아픈 추억입니다.
● 교회분쟁이 닥쳤을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마지막 결과는 무엇입니까?
분쟁이 일어나면 누가 조정해 주거나 손을 대지 않아도 결국 어떤 모양으로든지 결론이 납니다. 손을 대고 화해 시킬려고 하는 것은 건설적인 결말이 나도록 도와 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기가 곧 기회이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결말을 가져 오도록 도와 주려고 하는 것인데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보통은 파괴적인 결말이 납니다.
극단적인 경우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목사가 장로를 총으로 쏴 죽인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주 극단적인 일이고, 보통은 갈라지거나 흩어지는게 보통이죠. 그리고 이긴자 진자가 없게 됩니다. 싸우면 모두가 패자가 됩니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닙니다. 싸움의 상처는 이세상 끝날까지 가게 되는 아주 깊은 상처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목회자나 평신도 리더십들에게는 말입니다.
● 최근 분쟁교회의 반대파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것의 장단점이 있을텐데?
장점이라면 언로가 트이는 것이라 하겠죠.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대화가 안 되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보통 싸움이 일어나면 상대방 이야기는 안들을려고 하는데 사실은 들어봐야 합니다. 내가 잘 못 한 것은 내가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해 주어야 알게 되죠. 우리는 대화 할 줄 모르는 민족 아닙니까? 버럭 성질부터 내는 것이 우리 민족성인데 물론 사람 마다 다르긴 하겠지만요. 교회마다 게시판을 두려워 하고 폐쇄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운용을 하여 커뮤니케이션의 채널로 양성화 시키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단점이라면 기독교인으로서 담을 수 없는 너무 인신 공격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실 확인도 문제이고 그리고 개인감정의 표출로 인하여 문제의 핵심을 잃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종의 분풀이성 글들이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일종의 분쟁 상태의 확전이라고 봅니다. 여론화 시켜서 상대방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을 분쟁이론에서 컴뮤날 파워라고 하는 것 같애요.
● 분쟁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이성적인 논리를 찾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많은데 지금 분쟁중인 교회에 충고의 말씀 해주시죠?
제가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을 바꾸어 신으면 저도 그렇게 될찌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경험을 통해 한마디 할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교회에서 쫓겨 나가는 사람은 교인들이 아니라 목회자가 아니라, '예수님이요, 하나님이요,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그 싸움을 정의로 위장하고 있지나 않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성화 시켜 나를 반대하는 자들은 다 마귀요, 나를 찬성 하는 이들은 다 신자라고 하는 이분법에 서있는지? 또는 이 상황에서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혼자 잘난체 한다고 한마디 들을 것 같습니다.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경험한 것과 같은 실패자가 되지 말라고 하고 싶어서입니다.
● 분쟁이 일어난 교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소속노회등 교단이 개입을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제 사견에는 미국내 한국 교단의 문제 처리에는 신뢰성을 많이 두지 않습니다. 공명정대, 민주적인 처리 보다는 정실과 연줄이 더 작용합니다. 때문에 불공정한 처리로 인하여 '노회가 목사들의 노조'란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무얼 두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한국인끼리 하는 미국내 교단은 '위기 관리' 에 대해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보입니다.
교만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서 하던 식 그대로 미국 이민교회도 적용할려고 하는데 이민 교인들은 다르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파마다 다르긴 하지만 미국 교단들은 저마다 위기 관리나 갈등 해결의 가이드라인이 있고 훈련도 많습니다. 목회자나 교인들 양쪽 모두를 배려하기 위해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위기관리'가 제법 잘 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분쟁을 막기위해 목회자와 평신도가 각각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힘들고 광대한 질문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자 노릇을 잘하고 평신도는 평신도 노릇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막연하지만 그 속에 다들어 있지 않을까요? 모든 일에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되지요.
그러나 실무적인 입장에서 말해 본다면, 무너뜨리는 일보다는 세우는 일에 서로 힘써야 할 것이고, 교회가 사유화 되거나 몇 사람의 독무대, 몇 가족의 소유가 아닌 믿음 공동체로서 문제의 소지나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안들은 미리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공평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 문제가 발생하면 곧 바로 개입하여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평신도 리더십, 그리고 평화교육 등이 필요하겠지요.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