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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목사,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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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7-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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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순복음뉴욕교회 담임인 김남수 목사가 지난 2004년 8월 아멘넷 제휴사인 뉴스파워와 한 인터뷰이다. 김 목사는 한반도의 현실, 한국교회의 현실, 교회의 정치참여등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을 개진했다. 다음은 기사내용이다.

순복음 뉴욕교회 김남수 목사, 한국 교회의 나아갈 길 제시해

"지금 우리 나라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 혼란의 책임은 한국교회에 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파종하지 않은데 있다"

순복음 뉴욕교회 담임목사로 28년째 사역하면서 한국 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김남수 목사. 한국 교회가 한 세대를 내다보고 사역을 했어야 하는데, 목회 성공과 교회 성장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다음 세대를 책임질 어린이 교육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미국은 교회학교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조국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친다. 한국 교회도 애국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또 한국 교회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어린이교육선교, 빈민선교, 세계선교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남수 목사는 현재 케냐,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과테말라, 도미니카, 온두라스 에 10여개의 학교를 세워 1만명의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전세계 2,300명의 고아들을  돕고 있다. 앞으로 100개의 학교를 빈민국가에 세우겠다는 비전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조국 교회 청소년들을 깨우기 위해 미국인 크리스천 문화운동가들을 초청하여 대규모 콘서트와 전도대회 등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번에 걸친 만남에서 김남수 목사는 한국 교회의 나아갈 길을 진솔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교회사를 거울 삼아 그 길을 제시했다.

Q. 오늘 이 대담은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 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어떻게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사실 기독교가 1885년에 한국에 들어오고 30년 안에 민족해방 운동이 일어났다. 그 당시 한국 교회는 민족의 아픔을 안고 민족의 억울함과 눈물과 한을 가슴에 안고 이 민족적 수난을 목숨을 걸고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교회였다. 그 때에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 2%가 안되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나라의 고통을 가슴에 걸머지고 울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은 순교적 각오를 가지고 달려갔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민족의 가슴 깊이 기독교가 믿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람들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오늘도 많은 민족이 그리고 우리가 당하고 있는 수난과 역경을 교회가 짊어지고 책임지며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한국 민족사에 가치 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를 포함해서 교회가 민족의 역사 앞에 지난 시간들, 우리가 실수했던 것이 무엇이며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거기서 파생된 문제들을 고쳐갈 수 있기를 바란다.

Q. 한국 교회의 뿌리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1876년 일본에 개항한 조선은 1880년대 들어 서구열강들에게 연이어 문을 열었다. 미국은 1882년 조선과 수호조약을 맺게 되고 이때부터 미국 내 개신교 단들이 조선선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결과 의료선교사로 미리 와있던 알렌의 뒤를 이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와 미국 북장로회선교사 언더우드가 개신교 선교사로서 가장 먼저 조선에 입국하였다.

언더우드 목사는 처음 얼마 동안 목사라는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알렌이 세운 광혜원 일을 도왔으나 한국말을 조금 배우고부터는 길에 나가 노방전도에 힘썼다. 당시 조선정부는 기독교를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얼마 동안 미국 선교사 들은 병원과 학교에서만 전도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정부 관리들은 선교 활동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해주자 이에 선교사들은 점차 노방 전도를 본격화하게 되었다.

최초의 조직교회 설립은 1887년 9월 27일 저녁 서상륜이 전도한 서울 신자 등 14명이 만주에서 사역하던 로스 목사와 함께 언더우드 목사의 사랑방에 모였다. 그 중 한 명이 언더우드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으며 두 사람은 장로로 선출 되었다.

처음 교회를 구성한 14명중 13명은 서상륜이 인도한 소래지방에서 온 교인들이었으며, 이 날이 새문안교회의 출발이 된 것이다. 그리고 10월 2일에는 장로 안수식이 열렸다. 또 이 교회에서는 한국개신교 역사상 처음으로 1887년 크리스마스에 성찬식이 거행됐다. 그 후 새 문안교회는 계속 번창하여 창립 1년 뒤에는 교인 수가 50명으로 늘 어 났으며, 그 중 11명이 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904년 10월 송 순면 장로 장립과 더불어 당회가 조직되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게 됐다.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공동체적 의미의 교회는 황해도 소래교회를 첫번째로 꼽기도 하지만 당회를 구성한 조직을 갖춘 교회로는 새문안교회가 처음이라는데 이견(異見)이 없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전도에 힘썼으며 여러 곳에 지교회(支敎會)를 설립했다. 새문안 교회는 1910년대에 홍제동, 한강, 교북동, 김포, 행주, 동막, 파주 등 7 개소에 예배처를 갖고 있었으며 이곳들은 후에 모두 독립 교회로 발전했다.

언더우드는 1886년 5월 자기집에 영국 고아학교 형태의 한국 최초 고아원인 '예수교학당'을 열고 학비와 옷, 음식을 제공하면서 한글성경을 가르쳤다. 원생 1명으로 시작한 이 고아원은 두 달 만에 원생이 10명으로 늘어났으며, 이에 언더우드는 교회당 창립을 서두르게 되었다. 고아원 명칭은 후에 '구세학당'으로 바뀌고 다시 1901년 연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경신학교'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경신중고등 학교의 전신이다.

1895년 여름 전국에 콜레라가 퍼졌을 때 새문안교회 신도들은 의료 선교사를 도와 진료소에서 간호와 구호활동을 벌였다. 지난 1세기 동안 새문안교회의 선교 와 전도의 방향이 소외된 이웃을 위했던 이유는 바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고아들을 위한 특수선교로 시작한 교회의 창립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구한말 이 땅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된 데에 서양선교사 들의 업적이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초기 국내 선교에서 선교사들이 큰 역할은 담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양 선교사들이 펼쳐놓은 기독교라는 잔칫상을 조선인 들이 그저 편하게 앉아 넙죽 받아먹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양 선교사들이 본격적인 조선선교를 펼치기에 한발 앞서 국내에 기독교를 전파했던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었다.

나라의 감시를 피해가며 기독교를 전파하던 우리 조상들은 외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교회당을 지어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탄생한 교회가 바로 소래교회다. 소래교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라는 점도 큰 의미를 지니지만, 이 최초의 교회가 한국의 자생적 토착교회였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소래교회가 가진 이 같은 두 개의 커다란 의미는 현재 소래교회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소래교회설립약사의 첫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본 소래교회는 순수한 우리 조상들에 의하여 이 강산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요, 한국교회의 뿌리가 되는 교회이다."

일반적으로 소래교회의 시작은 산간 구석에 세워진 초라한 초가집에 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무리 관청의 눈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작은 마을이지만, 국금(國禁)에 속하는 기독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남의 눈을 피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세는 이미 바뀌어 버렸다. 기독교는 급속히 전파됐다. 고종은 마침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로 결심 했다. 소래교회가 세워진 것과 비슷한 시기에 입국한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알렌(H. N. Allen)은 고종이 기독교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언더우드는 조선 땅에 최초로 내한 한(1885년 4월 5일) 정식 선교사로 기록된다. 1896년 7월 25일에는 한국교회가 고종탄신 기념 경축예배를 드릴 정도였다.

Q.요즘 들어 한반도 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국에서 최근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구한말의 수구파와 개화파, 8.15 해방 직후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의 대결과 같은 보수와 진보의 이전투구 상황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 찬성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길거리에 나와서 데모를 하고 도대체 이 나라의 앞길이 어떻게 되며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도 우리가 걱정하고 또 이럴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떤 자세와 무슨 기도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분석을 하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나의 교회를 사랑하는 이 사랑은 과연 어떻게 실천하며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가 되겠다.

사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냥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성경이 말하고 있다. 또 오늘 된 것은 오늘 된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되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온 것인데 그래서 문제가 생긴 당시에 문제만 본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 면만 보게 된다. 그러나 그의 배경과 과정과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게 된 과정을 보면 오늘 현실을 분명히 볼 수 있고 오늘을 정확히 분석하면 내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행동의 방향이 생기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과 국제적인 정세와 한국의 정세들을 살펴 보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럴 때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판하기 쉽다. 그리고 부정적으로 마구 말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올바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 사랑한다는 것은 반드시 희생과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동에 옮기지 아니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희생을 감수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거짓된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반드시 피와 땀과 눈물 과 수고를 요청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나라를 사랑하는 것, 교회를 사랑하는 것, 이 사랑하는 것에는 반드시 희생과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에 몇 가정이 이라크 전쟁에 가서 희생된 가족들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나와서 내 아들은 부시가 죽였다고 데모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우리 남편, 내 자식의 희생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흘린 고귀한 희생이다. 또는 이 나라를 위해서 바쳐진 고귀한 희생 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과연 누가 역사를 바로 본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무튼 한국정세나 우리 민족의 현실을 과연 어디서부터 풀어갈 것인가? 물론 이것이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 모든 민족과 나라가 들어야 되고 분석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한국의 중대한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교회의 문제인 것이다.

Q.공산주의와 모슬렘, 카톨릭의 교육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엔에 나와 있는 북한의 대표단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북한에 가서 하나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주체사상을 가르치니 일생 동안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계속해서 행하니까 이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보고 와서 나는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 내 일생을 걸고 우리 교회에 전심을 다해 기독교 복음을 위해서 어렸을 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나는 우리 교회가 왜 이것을 잊어버렸는지 나도 모르겠고 부끄럽습니다 했더니 그 분이 목사님은 기독교의 100년 대계(大計)를 지금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회교도는 30년을 내다본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나라에 가든지 당장 모스크를 짖고 당장 선교를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조용히 학교를 짖는다. 그리고 아이들 5살, 10살 미만의 아이들을 아주 친절하고 정성을 드려 그들을 잘 가르친다. 그 마을의 아이들을 다 교육시켜 회교도로 만들고 천천히 회교도가 과반수가 넘으면 그 나라는 투표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모슬렘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고 그러면 그 나라는 다른 모든 종교를 청산하고 모슬렘 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 때 만들었던 모든 기독교 국가들 이 대부분 모슬렘 국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저 아시아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그리고 최근에 태국까지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모슬렘은 계속해서 30년을 내다보고 일하고 나면 30년 후에는 열매 맺고 승리하는 것이다.

카톨릭은 50년을 내다본다. 최근 멕시코를 다녀온 선교 팀의 보고를 받고 큰 도전을 받았다. 그분들이 가지고 온 자료들을 보니 한국의 부산에서 수녀 4명이 멕시코를 가게 되었다. 이 분들은 카톨릭 수녀님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100에이커의 넓은 땅을 샀다. 그래서 거기에 울타리를 쌓고 미국의 대학에 방불하는 좋은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는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가난한 아이들을 뽑는다. 왜 그런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가난한 집안에 아이들이 많다. 한 가정에 5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아이들을 1명 고른다. 그것도 여자만 뽑아왔다. 아마 아이가 5-6, 7-8명 되는 집에 아이 하나만 잘 가르쳐 성공시키면 그 집안이 살아나니까 하나를 뽑았나 보고, 또 남자보다 여자가 똑똑해야 잘 산다고 생각해서인지 여자학생들을 뽑아 왔는데 4,000명을 뽑아 왔다. 그래서 5년 동안 교복부터 운동화까지 학교에서 공부 하는 것, 먹는 것과 자는 것 일체를 다 무료 로 제공한다고 한다.

돈이 도대체 얼마나 드느냐고 하니까 1년에 2백만불, 3백만불이 든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카톨릭 신자들이 헌금을 해 주고 아이들 교육이 그만큼 필요하니 너도나도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어 한국에서 오신 4명의 수녀님을 도와서 벌써 여러 해 동안 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50년을 내다보고 선교하고 있는 카톨릭은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과테말라에서도, 한국에서 오신 수녀님들이 똑같은 일을 시작하고 이런 일들을 남미 처처에서 하는데 보니 이 사람들의 비전은 적어도 30년, 50년을 내다보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모슬렘과 그리고 카톨릭은 적어도 30년, 50년, 100년을 내다보는데 오늘 기독교에는 건물이 중요하고, 교세가 중요하고, 교회 성장이 중요하고, 외형적인 어른들이 중요하여,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고 어른들 중심의 목회와 교회성장 중심의 목회가 결국 한국의 어려움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대단히 열심히 교육에 힘썼다. 머리 좋은 것 시합을 했다고 한다. 지능검사를 했는데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이 제일 똑똑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마 전 세계에서 도시락을 3개씩 싸서 학교 가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학교에 가서 그 도시락을 아침, 점심, 저녁까지 먹고 하루 종일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 누가 당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과외공부 등등으로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서 지능적으로는 올라갔지만, 영성이 없어지고, 도덕성이 상실되고, 인간성이 회복이 안 되는 것이 지금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신앙교육과 세상 지식교육은 같이 가야 참으로 인간다운 똑똑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식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사람이 지식이 있다고 해도 지혜가 없으면 망하는 것이다. 지혜는 하나님 말씀으로 비롯되며 바른 신앙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1885년에 한국에 왔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120년이 되었다. 그때 교회의 선교사님들이 어른들은 잘 바뀌지 않으니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해서 학교를 세웠다. 그 당시 학교를 세운 것이 2,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기독교 교육하는 학교가 몇 개가 되느냐고 알아보니 250개가 되지 않았다. 교회는 성장했다. 그러나 한 세대 지나고 나면 다음세대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 우리가 다시한번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국 교회가 깨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씨를 뿌릴 수 있어야 될 줄 믿는다. 성경에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했다.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고 했는데 뿌리지 않고 거두기만 하고 어른들만 붙잡고 늘어지는 교회의 장래가 있겠는가? 씨를 뿌려야 한다.

뉴욕 맨하탄에 건물 하나 난다고 해서 알아보았다. 근사한 교회 건물이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디스코텍, 술집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하고 물었더니 한때 크게 부흥했던 교회였다고 했다. 교회를 석조 건물로 잘 짓고 잘 꾸며놓았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나고 나니 다음 대를 이을 젊은이들이 없어서 교회가 비게 되었고 돈을 못 내서 팔았는데 누가 샀느냐 하면 술집에서 사서 좋은 음향시설과 조명으로 꾸며서 디스코텍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 흥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십자가를 걸었던 곳에서 술을 마시니 취하겠어요. 흥이 나겠어요. 그래서 망했다고 한다. 다시 그 건물을 교회에 판다고 하여 들어가보니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한 세대만을 보고 짧은 미래를 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Q.한국 교회를 두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교회성장과 성인중심의 목회를 해왔다. 어른 중심의 목회로 어린이 교육에 힘쓰지 않은 결과가 오늘에 이르렀다. 원래 한국교회는 어린이들 교육에서부터 한국교회가 탄생했다. 1885년 선교사들이 한반도 땅에 와서 그때부터 1910년 까지 2~3,000개의 학교를 세우고, 거기서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나와서 그 아이들이 기독교인으로 성장하여 대를 이어 온 것이 우리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고, 성장했다면 한국 기독교는 아이들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공자님의 가르침이 너무 강해서 장유유서(長幼有序)라 하여 어른이 중하다며 아이들 교육이 등한시하고, 어른 중심의 목회, 어른들 중심으로 교회 부흥에 힘쓰다 보니 아이들 교육이 안된 것이다. 기독교 학교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의 기독교 학교는 세속화 되고 말았다.

그 중에 하나가 어른 중심의 목회를 힘쓰면서 아이들의 국가관 교육, 기독교 교육을 소홀히 한 중대한 실수를 돌이켜 본다. 한국 교회의 산실이 아동 교육이고, 한국 교인의 모태가 기독교 교육이었음에도 교회 성장, 장년 교회를 만들면서 기독교 학교 교육, 어린이 교육을 등한히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열심히 교육했고, 부지런히 가르치고, 세계에 없는 열성으로 아이들을 교육시켰지만, 아이들을 신앙적 교육, 기독교 학교 교육, 철저한 교회 학교 교육을 통하지 않은 세상 교육이 결국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장래, 민족의 앞날을 어둡게 했다는 것이다. 세 살 때부터 아이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배운다든지, 박 세리 선수가 우승하고 난 뒤로 골프장에 아이들을 보내고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을 보면, 교육은 있는데 참 교육이 없고, 과외는 있는데, 진정한 신앙 교육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어려운 문제의 분석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분이 조사를 해 보니 기독교 학교의 학생들은 일년에 52시간의 종교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결석이나, 지각 등으로 제대로 참가 하지 않아 평균 17시간의 종교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천주교의 아이는 200시간, 유대교 아이들은 325시간, 사회주의, 이슬람, 공산주의는 3,650시간을 아이들 교육을 한다. 중국에는 주일학교가 없다. 왜냐하면 18세가 될 때까지 학교나 교회, 가정에서 공산주의 이외의 사상을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수천 시간을 공산주의 이론 학습에 사용하는 것이다.

17시간 밖에 안되는 시간으로 3,650시간 교육하는 것을 어떻게 당해내는가? 이것은 이미 게임이 안되는 것이다. 교육열이 없는 것이 아니다. 2~3세부터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는데, 기독교 교육을 잊어 버리고 세속적 교육만 열심히 한 결과가 오늘 이렇게 되었다면 중대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한국 교회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조국의 앞 날은 어둡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교회가 깨어서 철저하게 주일학교 교육, 그리고 교회 마다 학교를 세워서 세속적 교육, 사회주의적 교육, 이념교육이 아닌 복음주의적 신앙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다음 세대를 키워 낼 수 있는 이 아이들 신앙 교육에 전념을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전혀 없어 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임금님이 도시에 가서 이 도시를 지키는 사람을 불러 오라고 했다. 경찰을 불러 오니 아니라고 했다. 다음에 재판장을 불러 왔는데 아니라고 했다. 다음에 허름하게 옷을 입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데려 왔다. 임금님이 그 사람이 손을 잡으며 그대가 이 도시를 지키는 사람이네, 잘 가르쳐서 아이들을 잘 교육 시키면 이 도시는 살 것이고, 아이들을 잘못 교육시키면 이 도시는 소망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다음 세대가 없으면 결국 내일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첫째 어른을 중심으로 목회한 이것이, 어린이 교육에 힘쓰지 않은 결과가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된다.

Q.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교(政敎)분리 윈칙에 입각하여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정치에 등한히 했다. 누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또 우리가 깊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내일을 생각해야 할 의미 있는 내용이다. 한국 교회의 심각한 오류는 정치 외면이다. 정치와 교회는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교인은 민주주의의 주권인 정치에 반드시 참여하여야 올바른 시민이 되는 것이다. 정치는 모리배들이 하는 것이고, 교회는 기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다.

기도했으면 행동해야 산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도 우리의 주권을 대신하지 못한다.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이다. 원래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 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조국이 있고, 국가가 있기 때문에 신앙이 존재하고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에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완전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계속 테러와 핵폭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국 안에 있는 모든 교회는 무너지고, 교인들은 순교하거나 배교할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나라를 다스리고 우리를 주장할 책임자들을 바로 뽑는 것이 정치 이전에 우리의 책임과 의무인 것이다. 천 삼백만 명이 올바로 다스릴 자를 뽑고,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한다면 나라는 바로 될 것이다.

과테말라는 1/3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교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 정도 되니까 나라가 더 신앙적으로 발전하고, 교회를 잘 키워서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 이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의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 정치에도 참여하고, 우리는 주권을 행사해서 반드시 우리가 투표에도 참여해야 한다. 반 기독교적인, 반도덕적인, 반사회적인, 반국가적인, 반민족적인 비 신앙적인 지도자를 우리는 지도자로 선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그리고 자기가 확신하는 자기의 사상과 주장을 밝힌다. 동성연애자, 마약, 총기에 대해서, 그리고 이민 정책 등 여러가지 자기 의사를 솔직하고 정직하게 제시한다. 그것을 보고 신앙적, 인격적인 사람을 결정해서 투표하는 것은 곧 나라의 일이고, 자신의 일이고, 우리들의 일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 보다 앞서서 그 사람이 지연, 학연이 앞서는 것이 문제다.

미국에서는 정부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은 정치에 반드시 정치에 참여하고, 모든 국가의 결정에 책임 있게 응해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결정에 따라서 정치도 바뀌고, 국가도 바뀌고, 정책도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땠는가? 바쁜데 다른 사람이 투표하면 되지, 이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1,300만 명이 투표를 했다면, 올바로 투표를 한다면 앞으로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학연, 지연에 따라 투표를 했다. 반 기독교적인, 반민족적인, 반인륜적인, 반도덕적인 사상과 양심과 도덕성과 애국심과 성실성을 검증하고, 똑바로 투표하고 모두 참여하면 나라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계속 혼란 속으로 들어 갈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심각한 대결로 마침내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정권에 대한 불신은 높아가고 점점 사상과 색깔로 깊어진 골을 메우지 못할 지도 모른다. 반미와 반공이 충돌하는 무서운 현실이 도래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정치에 대한 바른 판단과 책임 있는 참여를 하지 않을 때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종교 기관으로서 교회는 정부의 일에 간섭하거나 정부로부터 간섭 받아서는 안되는 이것이 `정교(政敎)분리', 즉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말하는 것인데,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관심 갖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등한히 했던 것은 아닐까? 국가나 권력을 가진 자가 힘을 사용해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를 반대하는 의미로서의 것이 정교분리원칙이라 할 때 국가와 교회는 상호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부상조 보완관계를 해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Q. 교회와 국가의 밀접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인가?

교회의 애국심 교육 경시가 문제이다. 한국교회가 애국심을 교육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교회를 통한 애국심 교육이 결국 교회의 책임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성조기 없는 미국 교회는 없는데, 태극기 있는 한국 교회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태극기를 지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으며, 태극기를 보존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 는가?  우리의 선조들이, 신앙의 선진들이 피를 흘리며 지켜온 조국이고, 태극기가 아닌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그렇게도 감격해 하던 태극기를 오늘 우리 는 쉽게 교회에서 잊어 버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도 눈물과 감격 속에 그리워하던 태극기를 소홀히 한 책임이 우리 교회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테말라에서 오신 현지인 목사님께서 과테말라에도 태극기를 게양하겠다고 하는 데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국 교회와 과테말라 교회가 같이 하니 두 나라 국기가 게양되어도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감사하고 다음 과테말라 방문 시에는 교회 안에 태극기를 높이 게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조국, 우리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는가?

사실 초대 한국 교회는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가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로서 역할을 감당해 왔다. 선교사님들이 맨 먼저 관심을 가진 것도 교육분야였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중, 고, 대학을 세우고 의료 교육기관을 세우고 신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한글을 가르치고 각종 문화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요람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이처럼 한국 교회가 이 사회의 변화의 주체로서 역할을 해 냈을 때 교회는 사회의 주목을 받고 부흥을 거듭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의 변화의 리더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 봉사는 국가의 사회사업에 내어주고, 교육은 학교와 학원에 내어 주어 청년들은 교회를 외면하고, 주일학교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에 미국인들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국경일에 만 태극기를 게양하는데, 미국인들은 아무 때나 성조기를 게양한다. 교회에 가도 성조기와 십자가기가 함께 게양되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통적으로, 법적으로 공적인 예배에는 반드시 성조기와 십자가기를 달고 예배를 드려야 된다. 길 거리에서 설교를 할 때에도 공식적인 예배일 때는 조그만 성조기라도 놓고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 없이 자라는 아이들과 교회에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족과 조국과 나라와 이 찾은 자유와 국가관을 심어 주는 일을 교회가 했다는 것이다.

전에 서울에 가서 보니 어떤 교회도 태극기를 게양한 교회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태극기를 게양하는 운동을 벌여야겠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거기 하나님을 위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민족의 사상과 애국심을 교회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현실이 다가 온 것이다.

Q. 교회는 구제사역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사실 한국 교회가 가난한 사람의 아픔을 품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초창기 한국 교회가 부흥될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교회는 끊임없이 일했다. 훌륭한 권사님은 쌀을 가져다 주는 권사님이었다. 쌀이 넉넉하면 쌀을 퍼서 가난한 사람들이 끼니가 없는 곳, 어린 아이 들이 배고파 굶주려 있는 곳에 쌀을 가져다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권사였다. 가정에서도 식사를 할 때 감사하여서 쌀에서 십일조를 내서 성미를 교회에다 모아 전도사님들이 심방을 다닐 때 가난한 집에 나누어 주었다. 어느 때부터 교회가 배고픔을 잊어버리고, 호화스럽고 귀족화 되니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교회 부흥에만 힘을 쓰고, 모든 예산이 교회 성장, 교회 부흥, 교회 자랑에만 치우쳤다.

가난한 사람을 품지 않고 부유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요한 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 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신 것처럼 (계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많은 돈을 들여 교회를 호화스럽게 한다.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하고, 예배를 잘 드리고, 찬양을 잘 드리고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고난당하는 자들을 돕는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 일은 병든 것이라 고 보아야 한다.

Q.교회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 교회는 본질을 상실했다. 한국 교회를 축복하신 목적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군사적 사명의 본질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곧, 교회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차원에서는 참 많이 알게 되었다. 성가대도 잘 개발되고, 교회 분위기도 잘 맞추고, 동아리를 잘 만들어서 동아리들끼리 교제도 하여 교회가 든든하게 서가는 훌륭한 교제와 목회를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영적 전쟁을 위한 전투를 앞서고,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 전투해야 될, 날마다 생활 속에 죄와 악과 싸우며 세속과 악마들의 속임수와 싸워야 되는 영적 전쟁에 대해서 교회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않았다.

세계 선교의 현장에서 역사적인 전투를 계속할 영적 전쟁을 위해서는 결코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문제점인 것이다. 하나님의 군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이 불신앙의 세계, 믿지 않는 세계, 죽어 가는 세계를 가서 영적으로 싸워 이기고 사람들을 건져 낼 영적인 군대라는 생각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분쟁도 생기고 교회끼리 싸움도 생겼다. 적이 누군지, 아군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50년 동안을 지내게 되었다. 수없이 갈라지고 싸웠다.

장로교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기독교 장로교, 예수교 장로교로 나뉘었다. 감리교도 역시 기독교 감리교, 예수교 감리교로 나뉘어 분열되었다. 하나님의 성회도 분열되어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 예수교 하나님의 성회가 되어 싸웠다. 도대체 우리가 함께 군사되어 연합해서 영적 전쟁을 위해 싸울 그리스도의 군사인데 연합군끼리 서로 싸우고 총을 겨누니, 세계 선교를 잊어버리고, 우리 에게 주신 그 축복의 뜻을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이 있다. 우리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된다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전체가 군대들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은 군인이다. 군인이면 군인으로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싸움이 날마다 있다. 늘 신앙을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세력, 우리를 끊임없이 낙심시키려는 악마의 세력, 우리를 세속화 시키려는 끊임없는 유혹,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 떨어뜨리려는 악한 자의 도전을 매일 같이 받고 있는데, 그런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군인으로 무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때 그 집단이 모이면 그 군대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큰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Q.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먼저 아동교육에 힘써야 한다. 그 동안 우리의 목회는 어른 위주의 목회였다. 교세를 이야기 할 때도 장년 숫자를 주로 이야기했다. 어린이는 줄어도 헌금총액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린이나 학생의 급격한 감소에도 교회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한국교회의 쇠락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어린이를 귀하게 아는 목회로 속히 전환해야만 한다. 이 어린이 목회는 가장 경제적인 목회요, 장래 소망이 확실한 목회이다. 이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의 복음화도 어린이 선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들도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끔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는다. 어린이들은 교회 안에서 부속적인 위치에서 다루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른과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계 자료에서 어린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에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이 결정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이가 6살 전에 인격의 85%가 형성된다고 한다. 6년 안에 일생의 중대한 영향을 주는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한국 속담에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뇌의 발달도 처음 3년이 아이의 장래에 일생을 좌우한다고 한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4200명을 조사해 보니 주님을 영접한 나이가 5세부터 13세까지는 32%인데 14-18세까지는 4%밖에 되지 않았다. 19세부터 어른까지는 6%밖에 안되었다. 그러면 14세부터 노인까지 예수 믿는 비율은 4,200명중에 10%이다. 5세부터 13세까지는 32%가 되었다고 하면 어렸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을 위해서 한 시대에 귀하게 쓰인 많은 사람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경험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폴리 캅이라는 위대한 대표자는 9세 때 주님 을 영접했으며, 위대한 설교자요, 주석가인 매튜 헨리라는 사람은 11살에 주님을 영접했고, 한때 위대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던 요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은 7살 때에 주님을 영접했고, 아이섹 와트는 9살에, 위대한 감리교 선교사인 스태디 존스는 11살에 주님을 영접했다. 아이들의 소중함, 가정의 소중함, 우리가 아이들 에게 성실하게 대해야 되고 자녀들을 성실하게 돌보아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에 Christian School을 열고 또 우리 자식뿐 아니라 해외에 흩어져 있는 수천명의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사랑의 헌금을 보내고 고아원을 짓고 그들을 돌보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영혼의 소중함과 어린아이의 소중함과, 어린아이의 순수함,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자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어린 아이 때부터 신앙을 키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고, 그 아이들의 생애가 하나님 중심으로 되어서 죄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일이 세상의 성공보다 중요하고, 세상의 출세보다 중요하고, 세상의 외모보다 중요하고, 세상에서 어떤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셔서 주님께서 꾸짖으시고, 그래서 주님이 화를 내셨다면 그 이유를 우리가 항상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세계선교의 비전이 확실해야 될 것이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혼자서 3000명의 고아를 평생토록 돌보았다고 한다. 한국 교회의 산실이 아동 교육이고, 한국 교인의 모태가 기독교 교육이었음을 감안하여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네팔, 북한, 중국, 남미, 아프리카, 중동  각국의 불우 어린이 2, 100명을 각 가정에서 입양하여 18세까지 먹이고 입히며, 교육하는 후원사업과 혼두라스큰별초등학교의 500명, 아프리카 니무르초등학교의 400명, 볼리비아 상페드로 술라에 세워질 선교기지의 아이들 1,000명, 중국에 세워진 복지원, 그리고 제3세계에 세워져야 될 어린이를 위한 선교기지, 우리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의 특공대 역할을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런 일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해 주셨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특공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특공대로 준비하셔서 세계 만방, 이슬람 종교로 덮여진 아프리카, 중동과 공산 세계, 카톨릭이 자리 잡고 있는 남미에 가는 곳마다 특공대로 일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교회인데, 영적인 개인 무장과 교회의 연합적인 군인 의식이 우리에게 철저하게 되어 있으면 이 싸움에서 승리하게 될 줄 믿는다.

마지막으로 빈민구제를 소흘히 해서는 안된다. 한국 교회,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 중동 교회, 다 기독교의 번성기가 있었다. 기독교 국가들이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도 기독교 국가였다. 아프리카 대륙도 기독교 국가였다. 그러나 영국이 몇백년 지배하면서 가난한 사람들 외면하고, 결국 이슬람들이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니 넘어가서 완전히 아프리카 대륙은 이슬람 국가들로 변했다. 중동은 물론 아시아까지 이슬람 국가들이 되어갔다. 가난한 자들을 외면한 것이 교회의 실패이고 비극인 것이다. 사실 토양적으로 볼 때 가난하면 이슬람이 들어 올 수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토양이 가난해져야 거기서 분노가 쌓이고, 자본주의, 지식층, 부르조아에게 분노가 일어날 때 공산주의가 토양이 되고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같이 붙잡고 울면서 함께 신앙적인 축복을 같이 나눌 때에는 외부 세력이 손 댈 수 없는 강한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를 아무리 크고 아름답게 짓더라도 그 속에 교회가 가진 생명을 잊어 버리면 그 건물은 교회건물다운 것이 아니다. 로마가 무너질 때 절대로 교회가 다른 힘이 없었다. 가난한 자들을 생명을 걸고 찾아가서 도와주고, 병든 자와 고난당하는 자들을 눈물로 돌본 기독교인들의 힘에 의해서 로마 제국이 무너졌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가난한 자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고통 받는 자를 품고 돌아 아야 할 교회가 언제부턴가 부유한 자들의 전시장이 되고 잘 사는 사람들의 뽐내는 자랑의 모습들을 볼 동안에 사회는 점점 가난에 찌들고, 원망과 한 맺힌 사람들, 한 맺힌 사람들이 온 땅에 퍼져 있을 때, 잘못된 종교나 사상이나 반감과 불을 토하는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될 것이다.

Q.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교회가 잠들고 있고, 교계가 잠자고 있고, 세계 교회들이 시급한 일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세상에 가난한 나라의 어린 아이들을 모슬렘권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어린이들의 사역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를, 이 백성을, 이 다음 세대를 다 빼앗기게 된다고 생각해서 교육을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학교를 세우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아직 선교가 되지 않은 지역은 공산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와 회교국가와 범신론적인 국가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누가 이 선교를 맡을 것인가? 미국교회 와 서구교회는 참 좋은 점이 많다. 재력도 있고 조직력도 있고 맵핑(Mapping)을 잘 하고 무브먼트(Movement)를 잘하고 전략적인 면에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조직적이고 과학적이다. 그러나 정작 선교 현장에 부딪쳐 보면 너무 많은 장애가 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피곤하고 지쳐서 선교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계속 듣는다. 일본이 할 것인가? 중국이 할 것인가? 우리 한국이 해야 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가 넘어서야 될 몇 가지 장벽이 있고 한국 선교가 세계 선교의 주역을 맡을 거대한 역사를 시작하려면 준비되어야 될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언어 문제이다. 그리고 두 번째 조직과 협력의 문제이다. 어느 지역에 가보아도 선교사님들이 싸우느라고 일을 잘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문제 우리는 해결해야 된다. 또 조직과 제도의 거대한 국제사회와 형제적 우애를 가진 세계 교회와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민교회와 우리가 해야 될 일들이 그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미국사회와 한국사회를 이어서 미국과 세계선교회를 이어갈 수 있는 한국교회의 교량역할을 우리 이민교회가 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아동교육과 세계선교, 그리고 빈민 구제를 제시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뿌리를 되찾아야 한다. 한국 교회의 뿌리는 구습에 젖은 전통을 뒤엎은 기독교 신앙 교육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사회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의 기독교 신앙교육을 통하여 가치관이 달라졌고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하루속히 세속화된 세계관을 바꿔야 하는 사명이 아직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50여년 전의 전쟁폐허 잿더미에서 일어난 민족의 저력 저변에는 하나님의 손길과 신앙의 힘이 작용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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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회 못지않게 미국 교포 교회 상황 또한 위기라고 진단하는 김남수 목사는  장년 중심의 목회 때문에 노인들만 남은 교회들이 많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 목사는 "1940년대 샌프란시스코에는 일본교회가 44개였으나, 지금은 4개만 남았다. 3개도 곧 문 닫을 상황"이라고 소개하고 "조국 교회와 교포 교회들이 미국과 영국 교회를 거울 삼아 지금이라도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복음교회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 간구의 기도 대신 하나님과의 교제하면서 응답을 받는 기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김 목사는 북한을 다섯 차례나 방문한 결과에 대해 언급하면서(민감한 사안이라서 '오프더 레코드' 하기로 함) 통일문제, 남북문제, 국제 관계 등에 크리스천들이 시대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영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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