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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은혜가 안되는 설교때문에 교회를 떠나려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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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07-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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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에게 있어 설교는 목회의 전부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메세지를 잘 전달해야 할 노력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목회자의 몫을 떠나 설교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모와 성도가 가져야 할 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남편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은혜를 받기 보다는 시험에 듭니다. 남편의 설교에 대해 조언을 했는데 잘 고쳐지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목사를 가장 가까운데서 보는 사모의 고민이다. 이희녕 사모는 저서 <사모님, 축복합니다>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고 있다.

"설교를 잘한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그 잣대는 객관적인 진리가 아닌 사람들의 인기의 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편을 귀히 여기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약해도 우리가 잡고 있는 말씀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설교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하나님의 몫까지 당당하려는 사모들이 범하기 쉬운 죄입니다. 하나님 자리에서 내려와 오늘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기대해 주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겸손한 주님의 양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아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옮길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고민하는 한 평신도의 인터넷 상담요청에 부산 북교회 조서구 목사가 대답한 내용이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가 모인 가정에서도 이런 다툼과 아픔은 있는 법이거늘 교회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더 성숙되어져 가고, 믿음이 성장하게 되며,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때때로 넘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의 아픔을 겪기도 하다가… 이런 일이 훈련이 되어 다시 회복되고, 성장하고,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예배를 통해서인데… 그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보고 묵상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치유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만나실 때 예배를 통해 만나기를 원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 ‘말씀’(설교)에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섬기는 교회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를 통해 책망을 받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고, 치유와 회복과 더 큰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가운데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섬기는 교회에서 말씀에 은혜 받는 일입니다.

성도님께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이 부분을 속히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에 은혜 받고 싶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말 말씀에 은혜를 받고 싶고, 송이 꿀보다 더 단 말씀을 사모하기에 성도님께서도 고민 끝에 이런 글을 올리셨고 말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한번쯤 우리가 솔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책임은 메신저에게 있겠지요. 영성 있는 설교, 감동력 있는 내용, 탁월한 표현력, 그리고 꿈과 소망과 축복이 넘치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메신저에게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목회를 하시는 목사라면 이런 설교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목사가 없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그렇지 못함 때문에 눈물로 기도하며, 노력하며… 때로는 좌절하고 낙심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간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받는 자에게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는 것은 전하는 자의 말 잘함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철학자들이 대답을 못할 만큼 탁월한 화술로 그들을 사로잡았지만… 그들이 은혜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거나 영적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행17:18) 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 후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로 했다”라고 했던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고로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은 메신저도 중요하지만, 메시지를 받는 사람의 상태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다.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을 통해서 1년 6개월이 넘도록 설교에 은혜 받은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정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들이 다 그랬느냐는 점입니다. 새로 오신 목사님께 은혜 받았다고 하시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었고, 지금 신나게 은혜 받고 신앙생활 하시는 분이 교회 안에 없느냐 하는 점을 묻고 싶군요.

만일 그런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은혜를 받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거예요. 그러면 그들의 신앙 수준이 낮거나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요? 대부분 이렇게 되면… 목사님이 유머를 말씀하셨을 때 성도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파안대소할 때, 자기는 하나도 우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웃는 자들이 밉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말씀 들을 때 부정적인 쪽으로 적용을 하게 되고… 그것이 더 발전하면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성도님과 섬기시는 교회의 사정과 상황을 잘 몰라서 무어라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될 수 있는 점을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성도님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로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가 안 된다고 하셨고 말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가 안 되는 이유는 - 목사님이 설교를 너무 못하시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못한다’는 것도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했느냐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의 수준이 너무 높거나 아니면 오히려 듣는 사람의 수준이 전하는 사람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는 누구나 들어서 쉽고 잘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듣는 사람에 따라서 취향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예컨대 설교의 대가라고 하는 그 유명한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의 취향에 맞는 사람이 있고, 세계적인 대 부흥사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취향에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설교자를 향하여 서로 “뭐 설교가 저래?” – “나는 저런 설교 싫어!” 하는 말을 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저건 잘 못된 설교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내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지금 성도님께서 새로 오신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목사님의 영성이나 메시지의 수준이 아니라 성도님의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일 수가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분들 외에는 대부분 이런 차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그런데 성도님의 경우 그동안 전혀 익숙해지지 않으셨다는 점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혹시 성도님께서 새로 오신 목사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닫아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마음 문을 걸어 잠그고 “내게 설교로 은혜를 줘 보십시오!” 라는 태도는 아니었느냐는 말입니다. 이런 태도는 대부분 교회를 떠나신 전임 목사님을 너무 사랑했던 분의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후임 목사님을 청빙할 때 자신이 반대했던 분이 오시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성도들과 갈등이 있었을 때, 거기다가 전임 목사님과의 목회 방법, 방향, 스타일이 다를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교회에 부임한지 5년이 지날 때까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성도를 보았으니까요. 물론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며 마음을 활짝 열고 말씀을 오해 없이 감사함으로 받을 때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 그 성도님 못지 않게 목사는 더 괴롭고 답답하고 인내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하지요. 아무튼 이런 때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인격적인 관계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새로 오신 목사님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싫어지게 되고, 새로 오신 목사님에 의해서 은혜 받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그 후에 새로 생긴 새 가족들까지 미워지게 되는 심각한 상태까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혹 성도님의 경우에 새로 오신 관리집사님, 그리고 교회의 행정, 관리 등에서도 마땅치 못한 생각이 드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실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매일 매 주일을 이런 마음의 고통을 안고 신앙생활을 하시고, 또 교회에서 봉사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말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교회를 옮기셔야 하겠죠. 내 영혼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옮기시기 전에 정말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님이나 교회에 문제가 있기보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옮기신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우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다’고 옮겨가는 그 교회에도 바울 같은 목사, 천사 같은 교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평생에 뒤가 돌아다 보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이제 옮기신다면 정말 평생 두 번 다시 교회를 옮기는 일은 없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어디로 가든지 ‘문제 있는 교인’(?)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도님께 권면의 말씀을 드린다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고 최선을 다하여 시도해 보실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진지한 노력과 투자(?)를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들면 시간을 들여서, 물질이 들면 물질을 투자해서라도 시도해 보실 것을 권면 드립니다. – 그것은 ‘목사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일’을 위한 투자입니다. 방법은 성도님이 선택하셔야 하고, 그 열정은 성도님의 몫입니다.

제가 성도님께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제가 다른 교회의 목사님의 임직식 때 ‘교인 권면’을 할 때마다 모든 성도들에게 드리는 말씀의 내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복은 목사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목사는 한 시대에 마음을 합해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마음과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멋진 동역자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복일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님과의 관계입니다. 목사님을 잘 섬기라는 뜻이 아니라, 목사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분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은혜 받는 일입니다. 싫든 좋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메신저는 교회의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이 교회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통해 말씀을 받을 때마다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를 인격적으로 존경하지 못하면, 그 입에서 천사의 말이 나와도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으로 말씀에 은혜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목사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하셔야 합니다. 목사님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투자를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때문이 아니라 그 분의 입으로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존경하시되, 말씀에 은혜를 받을 만큼 존경하십시오. 이 일을 위해 목사님께 너무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너무 가까이 가서 그 분의 단점과 부족한 점을 알게 되면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에 손해를 볼까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사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십시오. 너무 멀어지면 관심과 사랑과 존경심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으로 존경심이 떨어지면 내가 손햅니다. 말씀을 받는데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은혜를 받기 위해서, 목사님을 존경할 수 있을 만큼 거리를 두고 생활하십시오. 이것이 성도의 지혜입니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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