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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앞장서는 김동석 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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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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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미국시간) 미국 하원 외교위를 통과한 종군위안부결의안은 결의안 못지않게 만행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전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세계언론은 결의안에 반발하는 일본의 후안무치에 경악하면서, 일본의 가공스런 저지 로비를 뚫고 '민간의 힘'으로 결의안을 관철시킨 김동석 미국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및 한인교포들에 대해 놀라움과 경탄을 표시하고 있다.

김 소장은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경과와 관련, “미국의 유권자인 미주한인들의 인권과 시민의식으로, 이 일로 감옥을 가도 영광된 일이라는 인식을 갖고 결의안 통과에 나섰다”며 그동안 아베 총리까지 전면에 나선 일본과 벌인 1년간의 전쟁을 상세히 밝혔다.

그는 한인교포들이 워싱턴 정가에 '121 스트리트 로비스트'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길거리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미 의원들을 상대로 맹렬한 로비를 벌었던 감동적 상황과, 미하원 청문회를 위해 종군위안부할머니들을 초청하려 할 때 돈이 없어 쩔쩔맬 때 조용히 돈을 기부했던 독지가가 있었음을 밝히는 등 한인교포들이 지난 1년간 얼마나 '조국의 한'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했는가를 증언해 주고 있다.

김 소장은 향후 전망과 관련해선, “외교위원회 통과후 30분만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특별 환영성명을 발표한 것에서 보듯 의회가 호의적 관심을 갖고 있어 본회의 통과는 낙관적”이라며 “7월 첫주가 독립기념일 휴회기간이고 그 휴회 직후에 곧바로 전체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한다. 늦어도 7월16일이나 17일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종군위안부결의안 미 하원 통과를 통해 한국인의 가슴에 묻힌 한과 아픔을 풀고, 할머니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큰 일을 하셨다.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작년 4월부터 유권자센터가 관여를 했습니다. 작년 9월12일 국제관계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 되었지만 그냥 그대로 폐기되고 말았지요. 지난해 50여명의 의원들로부터 지지서명을 받으면서 하원결의안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11월 중간선거가 상원은 몰라도 하원은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지요. 민주당 주도의 하원에서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군위안부결의안’에 강한 신념을 갖고 추진해 온 일리노이의 레인 에반스 의원이 은퇴를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에서 유사한 결의안을 만들어 낸 마이크 혼다씨가 4선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이크 혼다’라면 일본계 의원이기 때문에 더욱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란 판단도 있었습니다.

11월 중간선거 직후 당선의원들 모두에게 유권자센터 이름으로 축하 카드를 보냈습니다. 특히 결의안에 지지서명을 해준 의원들에겐 각별한 감사편지도 보냈습니다. 마이크 혼다의원이 110회기에서 결의안을 낼 의사가 있음을 전해 듣고서 1월4일 개원식에 참석해서 혼다의원 보좌관을 만나서 우리가 적극 나설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올초 넬슨리포트에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작년 상임위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만 일본로비에 막혀서 폐기되고 말았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이 기사에 주목한 팔레오바망가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이 외교위원장 내정자인 탐랜토스에게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청문회 개최 의사를 전하고 내락을 받았습니다. 이를 알고 마이크 혼다 의원이 자신을 포함한 7명의 의원, 민주당 5명 공화당 2명의 이름으로 1월31일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상정시켰습니다. 2월1일 오전 9시40분에 연방하원사무국으로부터 결의안 번호 121번을 배정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종군위안부결의안은 [ H.Res 121 ]로 불리게 됐습니다.

아시아폴리시포인트(Asia Policy Point)란 일본전문 시민단체와 함께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2월7일 마이크 혼다의원이 “2월15일 외교위원회 회의실에서 위안부피해자를 초청하여 증언을 듣는 청문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유권자센터는 청문회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려고 서명운동에 박차를 가해서 일주일 만에 뉴욕과 뉴저지 일원에서 8천여 명의 청원서명을 받았습니다. 2월15일 청문회가 미국시민사회를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유권자센타는 8천여명분의 서명지를 혼다 의원과 팔레오바망가 아태소위원장에게 전달했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 ,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를 통해서 생생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유권자센타는 미국의 주류미디어가 위안부피해자들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언급을 하기 시작한 여세를 몰아서 일본 극우파 미디어와 극우정치인들 반응을 크게 알렸고 <뉴욕타임스> 국제데스크에 자료를 쏟아 부었습니다. 드디어 3월5일자 <뉴욕타임스> 사설란에 ‘ 위안부의 진실’이란 사설이 났고 이어서 에 사설이 났습니다.

이후 전국의 한인동포사회를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과 뉴욕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에 범동포적인 추진연대를 조직했고, 중국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안커뮤니티를 동원했습니다. 3월11일 막강한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 연례컨퍼런스에 참가해서 AIPAC 로비팀으로부터 자문을 받았으며 그곳서 처음으로 탐 랜토스 외교위원장을 만나서 결의안을 설명했고 엘리옷 엥겔 외교의원에게 그 의원의 지역구인 뉴욕 브롱스지역에서 받은 서명부를 전달했습니다. 3월12일 의원실을 방문해서 7명의 지지서명을 받아냈습니다. 이것이 한인추진연대의 첫 번째의 로비활동입니다.

3월21일 54명으로 늘었습니다. 3월28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사설이 났습니다. 주류미디어에 위안부관련 기사가 날 때마다 아베총리가 직접 부인과 회피의 발언으로 좌충우돌했고 일본의 <요미우리> <산케이> 등 극우파 신문들이 미국언론의 기사에 관해서 맹비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에 탄력이 붙었고 미국의 정치인들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지지서명 의원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인추진연대는 서명운동, 모금운동, 의원, 위원장, 의장에게 편지보내기, 팩스보내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전국의 19개 지역에 결의안 추진연대를 조직했습니다. 4월25일 아베총리의 워싱턴방문을 기념해서 백악관앞 시위를 , 그리고 5만여 달러를 모금하여 워싱턴포스트지에 전면광고를 냈고 동시에 의원실을 방문해서 드디어 ‘마의 1백명’의 의원을 확보했습니다. 제4차 로비활동이었습니다.

5월10일 대대적인 로비를 펼쳤습니다. 뉴욕에서 대형버스를 대절해서 로비를 펼친 결과로 혼다의원이 요청한 1백20명을 확보했습니다. 이날부터 처음으로 길거리 로비를 감행했습니다. 의사당 근처에서 의원배지를 보고 직접 길거리에서 의원을 만나는 로비방식입니다. 22명를 확보햇는데 그날부터 우리에 관해서 “ 121 스트리트 로비” 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날 외교위 보좌관으로부터 5월23일 의결가능성을 언급 받았습니다. 동시에 그날 이러한 5월23일이 미디어에 공개되면서 그만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의회전문지인 <더힐(The Hill)>과 <롤콜(Roll Call)>에 2회씩 총 5만여달러를 모금해서 전면광고를 냈습니다. 5월23일 로비데이가 무산되면서 추진운동에 좀 소강상황이 벌어졌고 부정적인 분위기에 접어들기도 햇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지지서명 의원 목표를 정원의 절반인 220명을 목표로 하여 6월7일을 대대적인 제7차 로비데이로 정하고 143명의 의원을 확보했습니다. 당일 혼다의원을 만났고 직접 6월 외교위원회 처리에 관한 거의 확실한 답을 들었습니다. 6월26일 확실한 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16일 랜토스 위원장을 LA한인동포사회로 초청을 했고 그것을 성사시켰습니다. 6월16일 LA에서 한인추진연대가 랜토스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랜토스 위원장은 한인들에게서 ‘이러한 평화만들기와 인권지키기의 결의안을 내준 것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었고, 이에 대해 위원장 본인이 책임지고 6월26일 처리하고 본회의 통과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6월25일 수정안에 관해서 논의를 하고 드디어 26일 하원외교위원회에서 장장 2시간동안의 찬반 격론 끝에 39 찬성 반대2로 결의안이 외교위원회를 통과 했습니다.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는 주로 미주 한인들의 정치력을 신장시키고 인권 등을 신장시키는 일에 주력해왔습니다. 위안부결의안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대해 처음 나서게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작년초에 유권자센터는 한국과 미국간 비자면제프로그램을 맡아서 의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결국엔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워싱턴 의회를 대상으로 한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하원에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상정되어 있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추진세력이 조직화되지 않았고 워싱턴에서만 활동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뉴욕과 뉴저지 일대의 의원들을 상대로 지지서명을 받게 된 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원결의안으로 통과시키는 목표를 갖게 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정가에는 세계 각국의 로비가 치열하고 각 로비단체들의 필사적인 로비가 벌어지기로 유명합니다. 조직과 자금도 일천한 유권자센터가 이같은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상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나요.

이 일에 나선 사람들에게 ‘전략’을 이해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서 일본을 비난하고 일본에 대항해서 싸우는 그런 내용으로 가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이 거의 본능적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에서 갑자기 일본을 징치하는 일본비난 성명이 나오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 지역의 한인들이 나름대로 연방정치인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서로 경쟁적으로 전략 없이 결의안에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나서면 충분히 동의해 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설명이 부족해서 그것을 얻어내질 못했습니다. ‘인권문제’로 설명하여 요구하질 않고 지금의 일본을 비난하는 형태로 의원들을 만났기 때문에 거부를 당했습니다. 20여명 이상은 놓쳤지요.

결의안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긴 했지만 우리가 고민하여 만들어 낸 이 전략을 중요하게 주목해 주질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꼭 동의를 받았어야 할 의원들로부터 거부당하기 일쑤였지요. 그래서 60명이 넘으면서 부터는 유권자센터가 의원 만나는 일을 독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 거부한 사안에 대해선 의원에게 다시 동의를 요청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의원 한사람,한사람이 이렇게 중요한데,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에 생각건대 어떻게 1백50명의 의원들을 우리가 설득해서 이끌어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벌인 저돌적인 로비가 화제가 됐는데요. 사실 의원 한 사람 면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1백명이 넘는 의원들을 끌어들이면서 국제정치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결의안은 의원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 대답을 받을 수가 없는 사안입니다. 거의 모든 의원사무실에선 의원에게 보고도 않고 보좌관이 처리를 하고 맙니다. 일본 로비스트들이 늘 드나드는데 왜 이것을 하겠는가라는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처음엔 일반 로비스트들과 같은 방법으로 의원 사무실에 일정 담당자에게 직접 만나기를 요청하고 그것을 기다리는 그런 형식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의원과 만나는 일정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원을 직접 만날 궁리를 했습니다. 4백35명의 의원들의 사진과 신상이 자세하게 소개된 ‘의회 옐로우북’을 구입해서 유권자센터 직원들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얼굴을 익히고 어느 주, 어느 지역구의 의원인지를 알도록 그렇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리고서는 의원사무실과 의회주변에서 의원 배지를 단 사람은 그냥 막무가내로 달라붙었습니다. 3월말부터 날씨가 풀리니까 의원들이 의사당과 의원회관을 지하전철을 이용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 걸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찰들에게 수차례 경고를 받으면서도 우린 길거리에서 의원배지를 보고서 달라붙었습니다. 의원들이 외면하자, 지역의 한인미디어(카메라)를 꼭 동원했습니다. 정치인들이 한국이나 미국이나 미디어엔 민감하고 긴장합니다. 더구나 요즘엔 ‘유튜브’가 성행하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의원을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됐고, 그런 전략이 성공을 했습니다. 우리의 이런 방식은 충분히 정당했다고 봅니다. 마이크 혼다 의원도 우리의 이런 노력을 보고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린 “ 아직도 근근히 아주 어렵게 생존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해서라도 이것을 해내야 한다 ”고 그런 절박성을 의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국제분쟁(한일간 분쟁이 아닙니다)의 문제가 아니고 ‘인권문제’임을 확실히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돌적으로 로비를 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정당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 정부나 어느 이익단체에 고용된 로비스트가 아닙니다. 같은 로비를 하지만 우린 납세자이면서 유권자입장입니다. 로비스트의 입장과 비교해선 우리가 얼마나 명분 있는 입장인가를 생각하면서, 이 일로 감옥을 가도 영광인 일이라는 그런 인식을 이 일에 나선 사람들에게
시켰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막무가내 로비가 의회안에 소문이 났습니다. 덕분에 저는 “ 121 스트리트 로비스트 ”란 별명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막강한 재력과 외교력을 가진 일본정부에 맞서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만일에 한국에서 한국 국민과 다른 나라의 외교관이나 다른 나라 에이전트와 이익관계로 싸움이 났다면...그것은 자신있는 일이 아니겠는지요..? 우리가 미국시민임을 확고히 하면서 외교문제가 아니고 인권.여성.평화의 문제로만 제기하는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막강한 일본의 외교력과 로비력이 당황했습니다. 일본이 110회기 들어서면서 민주당이 다수당인 환경에서 민주당 출신 거물인 ‘토마스 폴리’를 거액을 주고서 로비스트로 고용을 했습니다. 지난해엔 공화당 출신의 ‘밥 마이클’이란 로비스트가 벽이었는데요. 토마스 폴리는 클린턴 초기 하원의장을 지냈던 인물이고 로비스트 중에 의원관리를 가장 잘 하는 사람으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1백명을 확보할 때 까지 숨어서(아주 조용하게) 그야말로 ‘야금야금 접근전략’을 유지했습니다.

일본은 워싱턴에서 이를 저지하고 있었지만, 우린 뉴욕에 태스크포스(지휘본부)를 두었습니다. 4월26일 아베총리가 워싱턴 DC를 방문하기 전까지 그들은 한인동포 풀뿌리 운동이란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한인들이 들고 나온다 해도 워싱턴서 의원들을 움직이는 일을 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그런 방심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1백명을 채웠습니다. 1백명은 “마의 100”이라고도 합니다. 1백명이 넘으면 로비스트는 서서히 포기하게 된다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아베총리가 워싱턴에 도착하자 아베와 각별한 사이인 미국 의회안의 최고참인 거물 ‘이노우에’ 상원의원이 결의안을 없애려고 의회 지도자들을 모아놓고서 아베총리를 의회 안으로 초청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때 가장 두려웠고 긴장했었습니다. 지난해부터 나에겐 바로 이 “이노우에”가 스트레스였고 벽이었습니다. 드디어 그것이 우리를 막아섰지요. 아베가 랜토스 위원장과 펠로시 하원의장을 잘 몰랐습니다. 위원장과 의장 앞에서 그가 충분한 대화를 피했습니다. 랜토스 위원장은 이것을 나중에 “ 어떠한 사안도 인권문제를 우선할 수는 없다 ”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워싱턴에서의 ‘일본의 돈’ 이 가장 중요하고, 아시아지역에선 일본이 미국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이노우에’가 가장 두려웠습니다. 이 결의안이 내가 생각하기엔 이노우에가 살아있는 한 상원결의안으론 가능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벌써 상원결의안 운운 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러나 더많은 준비와 분석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성급하고 경솔하면 목소리만 내다가 말게 됩니다. 만일에 철저한 준비 없이 상원에 상정을 시켰다가 그것이 부결되면 하원결의안의 효력이 크게 희석되고 맙니다. 이 일에 관해선 워싱턴의 작동방식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워싱턴의 정치 작동방식을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고
추진했기 때문에 지난 10여년 동안 이 결의안이 공전되기만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레인 에반스’란 한 의원이 그렇게 의지를 갖고 나왔었음에도, 풀뿌리정치력을 동원할 그런 궁리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우리가 2006년 이 일을 시작할 때에 몇 가지의 하원결의안 케이스를 공부 했었는데요 우선 초당적 현안으로 만들면(민주.공화당 내 의원들을 균형있게 확보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워싱턴의 중앙정가와 미국정부의 움직임을 잘 모르는 민간단체 등이 나서는 바람에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2월15일 청문회가 개최되고 비교적 초창기(3월초부터)에 이 결의안이 미국 주류미디어에 언급이 되면서 탄력을 받았습니다. 의원들의 시야에 이것이 관심거리가 되었지요. 그때부터 한국정부와 정치인들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누구든지 워싱턴만 오면 마이크 혼다 의원과 랜토스 위원장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일본의 전략(결의안을 갖고서 DC에서 한국과 일본이 싸우게 되면 의원들은 외면하고 말기 때문에...)에 말려들고 맙니다.

우선 한인동포들의 풀뿌리 운동과 일본정부 일본 로비스트의 싸움을 부각시키는 그런 것으로 가야 하는데요. 한국서는 하원결의안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낸다고 하는 것을, 그것을 자제해 달라고 국회 지도부에 요청을 했습니다. 여성부의 지원 대응도 눈에 보이고 드러나는 관심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납득 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시민단체들의 원정시위, 단체방문 등도 도리어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미국정치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미국 내 하원결의안에 왜 참견을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민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지난 26일 외교위원회 의결과정에서 일리노이 출신 공화당 ‘만줄로’ 의원의 발언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미국 하원이 왜 일본과 한국간의 분쟁에 나서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넷 온라인으로 전국조직을 했습니다. 아시안계 모든 활동가들이 들어 왔습니다. 극좌적인 과격파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흐름을 주도하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난징학살에 관련하여 반일운동을 하는 과격단체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단체는 한국내 시민단체와도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진정한 친구관계를 위해서...” 그리고 “ 일본을 위하는 결의안이다...” 라는 슬로건으로 의원들을 설득하는 방식인데 이들은 미국에서 아시안들이 반일의 기치를 들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오랫동안 정신대관련 한인단체와 일을 같이 해 온 단체이기도 했습니다. 이 단체가 5월28일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냈습니다.

우리의 의회 전략과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 우리의 입장에 동의하던가 아니면 121 연대에서 나가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단체 이름은 쓰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 광고에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협의’의 이름을 썼습니다. 이것을 일본측 로비스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21결의안 추진연대의 배후에 바로 이 같은 중국정부가 연계되어 있는 과격한 중국계단체가 있다고 이들은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사가 난 6월3일자 <산케이신문> 기사를 각 의원 사무실 등에 돌렸습니다. 한때 우리는 정말로 덜컹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몇몇 단체에선 왜 중국계와 같이 하지 않는가..? 한인만을 고집하다가 일을 그르친다느니... 우리가 민족주의에 집착하고 있다고...한국의 어느 단체에서 수차례 저에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런 문제로 전략을 주도하는 우리의 입지가 작아지는 듯도 했습니다. 정말로 워싱턴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린 무슨 반일운동을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단지 목표는 하원결의안으로 통과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것만을 위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고집했고 하원의원들만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서 조금도 비켜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가지 꼭 이야기 드리고 싶은 의견이 있습니다. 저는 미국생활이 23년째입니다. 비교적 정치적인 사안들, 그리고 한미관계나 미국의 동북아정책에 관한 것에 관심을 갖고 왔습니다. 이 결의안이 지금까지 우리의 전략대로 성공의 길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미한국대사관내 담당외교관의 애국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전략을 정말로 깊이 있게 이해했습니다. 이 결의안은 한인동포 풀뿌리 운동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고 한국정부나 정치인들이 여기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준 것입니다. 우리의 전략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애국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위 정치인들의 개입을 막아내는 일이 그분의 입장에선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앞서서
한인동포의 이러한 피어린 노력을 충분히 존중해 주었습니다.

중간에 정부의 동포정책이 과거와는 달리 현장에서 정치력신장과 결집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그것은 외교관이 응당 취해야 할 입장이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의 정부(외교)나 정치인이 우리 캠페인에 들어왔으면 이것은 일본 로비스트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담당외교관이 이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프로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일본외교관들에게 ‘미주 한인동포들이 풀뿌리 정치력을 자랑하고, 일본은 그것이 없기 때문에 로비스트가 어떻게 시민정치력을 이기겠는가’라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듣고서는 우린 정말로 ‘이번 일은 승리를 위해서 우리에겐 행운’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방문해 시위도 하고 자신들의 눈물 겨운 경험을 의회에서 증언하면서 국제사회의 반응도 뜨거웠는데요.

사실, 청문회가 없었다면 이렇게 이 일이 미국시민사회를 움직이질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청문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예산의 문제였습니다. ‘돈’이 없는 것입니다. 팔레오바망가 아태환경소위 위원장이 청문회를 허락했는데, 막상 이를 추진하려고 하니까 최소한의 예산이 문제였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모셔오는 그 경비가 문제였습니다. 우린 그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나는 무조건 빚을 지더라도 청문회 강행을 결정하고 백인할머니 피해자를 꼭 찾아야 한다는 것과 어떻게 해서든지 2명이상의 피해자 할머니가 증언대에 서야 미디어가 움직일 것이란 예상을 했습니다.

한국할머니들은 한국에서 스스로 자비로 참가를 하겠다는 답신이 왔습니다. 더구나 마침 할머니 한분이 캘리포니아를 방문 중에 있는 것을 알고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호주에서 오헤른 할머니를 모셔오는 두분의 왕복경비와 숙박비가 약 2만5천달러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유권자센터의 이러한 노력을 알고서 조용한 독지가가 나타났습니다. 한인 사업가 한분이 비용을 대겠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청문회가 성사되었고, 그 청문회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할머니들(이용수, 김군자, 오헤른)이 정말로 간절하고 진정으로 증언을 하셨습니다. 본인도 그 청문회를 통해서 이들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곳서의 증언을 듣고서 이것을 꼭 성사시켜야 할 책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번 결의안의 하원 외교위 통과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작으나마 위로의 그런 선물이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이번 결의안 통과에 나서준 혼다 의원 등 미국 의원들의 결의안 통과 후 반응은 어땠는지요.

우선, 지난 26일 외교위원회 의결과정의 회의 분위기를 전하고 싶은데요. 41명의 참가의원 중 2명이 반대를 했는데 의회 뉴스레터인 <넬슨리포트>에서는 반대한 2명의 의원들을 빗대어서 ‘ 미국의회에 이렇게 용감한 정치인이 있는줄은 물랐다...“ 란 기사를 썼습니다. 내용이 그렇고 회의 분위기가 그런데도, 반대를 표시한 것은 그것은 대단히 용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뉴욕의 ’게리 애커맨‘ 의원은 특별히 위원장에게 발언시간을 연장 요청하면서까지 나치에 의한 유태인들의 인권유린을 예로 들고 일본과 한국, 그리고 미국간 외교관계를 들먹이는 공화당의 반대의견 의원들을 겨냥해서 ” 친구가 친구의 딸을 강간했는데 그것을 그냥 덮어두고 어떻게 친구로 하겠는가...? “ 하면서 결의안 지지발언을 했습니다. 아이리쉬계인 뉴욕의 ’조크라울리‘ 의원은 영국이 아일랜드인들 1백만명 이상을 학살한 것, 그것을 토니 블레어가 진정으로 사과해서 얼마나 존경을 받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텍사스주의 흑인여성의의원인 ’잭슨‘은 여성과 어린이가 성폭행당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인생전체가 파괴되고 만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조지아주의 스캇이란 흑인의원은 미국의 노예제도에 관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을 들어 그러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그것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지지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랜토스 위원장은 표결방법을 방청객(미디어)도 있는 가운데에 의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직접 찬반을 묻고 대답을 듣는 방식의 ‘롤콜(Roll Call)’ 방식을 택했습니다. 반대의견을 냈던 캘리포니아의 ’로라바허‘도 일리오니의 ’만즐로‘ 의원도 “예(Yes)" 란 대답을 했습니다. 분위기는 이랬습니다. 혼다 의원은 이번 결의안 추진과정을 통해서 아시안계 이민자임이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이렇게 한인들 노력이 의지가 있고 집요한지를 잘 알게 되었다고 감격해 했습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 통과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인들의 노력 앞에 자신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향후 본회의 통과 등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일단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본회의 통과 전망은 어떤가요.

김동석 외교위원회 통과후 30분만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환영성명을 특별히 발표했습니다. 의장이 이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결의안입니다. 이것은 전체회의에서 곧 처리하겠다는 사인입니다. 그리고 의장이 알고 있고 기다린다는 표시입니다. 원내대표인 ‘스탠리 호이어’ 의원은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을 전체회의 어젠다로 채택하여 의장과 논의를 하는데 의장이 먼저 관심을 표했으니 일단은 낙관적입니다.

펠로시 의장은 서너차례 지지의사를 이미 문서로 표했습니다. 그리고 혼다 의원은 펠로시 의장의 각별한 정치적 동지관계입니다. 중동분쟁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일본의 역할 때문에 유태계인 랜토스 위원장에게 오히려 긴장했었습니다. 우린 전체회의는 무난할 것을 늘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로비스트들도 외교위원회를 철저하게 막아 나섰던 것입니다. 7월 첫주가 독립기념일 휴회기간이고 그 휴회 직후에 곧바로 전체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늦어도 7월16일이나 17일을 예상합니다.

큰 산을 하나 넘은 셈입니다. 앞으로 활동계획이 궁금합니다.

한인들의 ‘풀뿌리 정치운동’이라고 하지만, 아직 많이 미약하고 사실상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이것을 이만큼이라도 해낸 것은 뉴욕의 한인밀집 지역에서 정치력을 결집한 것, 그것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뉴욕서는 한인들 표가 흘러다니는 것, 즉 ‘결집된 표’라는 것이 정치인들 눈에 보이도록 그렇게 모여진 부분이 있습니다. 뉴욕일원을 지역구로 있는 연방의원들은 거의 다 동의를 했습니다. 공화당의 크리스토퍼 스미스, 스칵 가렛, 그리고 뉴욕시의 게리 애커맨이나 조 크라울리 그레고리 믹스...그런 외교위 의원들이 뉴욕 한인밀집지역을 지역구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 일을 추진하면서 우리가 조금만 더 정치력을 갖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지역에서 한인들이 정치력신장 운동에 나서게 하도록 이 성과를 활용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지난 일년 이상 이 일을 추진하느라 정치력운동체의 핵심인 한인유권자센터의 역량이 정말 많이 소진되고 말았습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우리는 동포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래서 지역 현안을 갖고서 동포들과 함께 해야 살아남게 됩니다. LA, 시카고, 조지아 등등의 한인밀집지역의 정치력을 결집해 나가야 연방의회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비자면제, 그리고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이 두 가지를 그렇게 미주동포들의 정치력으로 해 냈습니다. 가능하면 미국과 한국의 이익을 일치하는 논리 개발을 해야하고 한국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미국에서도 모범시민으로 되는 것, 그런 일을 우선적으로 해낼 것입니다.

우리 한인 교포들의 역량과 정치력을 재점검하고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좋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유권자센터가 AIPAC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교포들의 정치력이 장기적으로 신장되려면 2세들의 아이덴티티 교육이 절대적입니다. 이번 결의안 추진과정에서 2세 전문인들을 끌어 들이려고 애를 썼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2세들이 눈에 보기엔 성공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인권과 평화, 여성 등 이런 문제에 둔감하다는 것을 알았고 더구나 왜 지나간 일을 갖고서 일본을 자극하려고 하는가라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그동안 한국정부에서 2세 전문단체라고 크게 관심을 갖고 정책적으로 지원해 온 단체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단체들이 북한인권법안이 현안이었을 때에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했었는데 말입니다. 한국계미국인 이란 것에 자신을 기초하지 않고 그냥 미국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큰 과제입니다. 미주동포 2세 교육 프로그램을 전반적으로 평가해 봐야 합니다. 사실은 처음 결의안을 시작할 때엔 지난 2004년 북한인권법안을 상정시키고 통과시킨 한인교회와 2세단체들에 대한 기대가 컸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소중한 인권과 역사문제에 대해 왜 전혀 움직이지
않고, 관심도 없었는지 이유를 분석중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야할 교훈이나 시사점은 무엇입니까. 또 미국사회에서 한국인들의 영향력을 높이고, 향후 한국인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 속에서 바람직한 활동을 하기 위해 어떤 일에 치중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한국정부는 한국내 정치적인 정략을 갖고서 미주동포를 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미주동포가 한국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은 좀 맞지가 않는 일입니다. 미주동포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한국정치권의 거물이 된 적이 많았습니다. 박지원, 김혁규, 유종근 등등 그런 사람들인데, 그들이 미국내 한인들의 모델이 돼서는 안됩니다.

유태인들처럼 미국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 그 롤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정치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주동포들에게 한국서 투표에 참가하라고 그런 활동을 합니다. 한국의 정치논리에 미주동포들을 그대로 대입시키는 것은 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인들이 미국에서 우선 모범시민이 되어야하고, 이곳에서의 권리를 철저하게 행사하고 그리고 우리가 모국의 정치참여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미주동포가 한국참정권에 관심이 집중되면 미국정치에로의 관심은 줄어 갑니다. 더구나 언어가 문제입니다. 사람은 현실이 기본입니다. 이곳에서 이곳 현실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헤쳐나가야 할텐데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자꾸만 한국정치인들이 미국에 와서 동포들에게 한국정치 참여를 촉구합니다. 이것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시민권취득 운동과 유권자등록, 투표참여 운동을 가속화 시켜야 하고 2세들에겐 소수인종이란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2세들 거의 다가 스스로가 백인 주류중의 한명인즐 압니다. 그래서는 결국엔 30대 중반부터는 미국사회에서의 인간으로서의 역할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됩니다. 한국계 미국시민임을 분명히 하는 교육이 시급합니다. 미국서 한국인의 이미지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커뮤니티 참여가 없고, 교회가 아니면 시회기여도가 아주 없는 인종이 한국인 이라는 그런 이미지를 벗어야 합니다. 성매매, 매춘 사건의 주역으로 되어 있는 그런 이미지도 하루 빨리 벗어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싶은 일을 들라고 하면 한국에서 미국을 오가는 미국이민을 원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프로그램’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모범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정치력입니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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