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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이승만 목사의 화해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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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5-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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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jpg1992년 LA폭동은 한인들에게 충격만큼이나 그 교훈이 컸다. 흑인과 남미계가 유독 한인사회를 공격한 그 원인의 뿌리를 알아내는 일이 정말로 중요했다. 폭동의 원인에 관해서 필자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분은 다름 아닌 목사님이었다. 당시 미국 개신교의 가장 중심축인 미국교회협의회를 이끌고 있던 이승만 목사님이다. 이승만 목사님은 그 후 미국장로교 총회장을 역임하셨다(2000년). 이승만 목사님은 당시 필자에게 "한인은 마이너리티다. 우리가 결코 백인이 될 수 없다. 백인사회로 진입하라는 것은 백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마이러니티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백인사회를 이끌고 나가라는 것이 주류(백인)사회로 진입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여타의 소수계들과 서로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다" 라고 LA 폭동의 (원인)결론을 내렸다.

‘유권자센타’를 설립하게 된 그 아이디어가 여기서 부터다. 한인사회의 참정권운동은 마틴 루터 킹 목사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고 이승만 목사가 시작이었다. 이승만 목사를 알면서 흑인교회가 이끌었던 1950년, 60년대의 민권운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승만 목사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흑인 민권운동의 핵심으로 활동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킹 목사의 그룹에 아시안으로는 이승만 목사님이 유일했다. LA폭동부터 지금까지 필자는 한인들의 투표권리 운동을 해 오면서 이민소수계의 이만한 정치적인 자유에 관해서는 흑인들의 민권투쟁 덕분임을 노래처럼 부르고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끈 흑인 민권운동은 그래서 미국의 현대사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그래서 ‘마틴 루터 킹 목사’ 이전에 필자에겐 항시 ‘이승만 목사’다. 이승만 목사에겐 킹 목사의 영감과 실천이 보였다.

1, 2년에 겨우 한번이나 만날 수 있었던 이승만 목사님에게는 꼭 두 가지의 메세지 “화해”와 “용서”가 있다. 아주 간결하고 명료하다. 한인목사가 미국 개신교단의 연합체인 교회협의회(NCC) 회장이, 그리고 개신교의 중심 중에 중심인 미국장로교단의 총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와 같은 영적인 리더쉽이 객관적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이승만 목사와의 친분은 하늘의 축복이라고 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승만 목사는 1931년에 평양에서 태어났다. 공산치하에서 기독교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려다가 순교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울부짖어야만 했다. 이승만 목사는 부친의 순교 장면을 기억하면서 “왜,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야하며 수난당하고 순교해야 하는지”를 설교했다. 이승만 목사는 1950년 전쟁 통에 남으로 피난했다. 두 아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어머님의 간절한 요청으로 두 살 아래인 동생의 손을 잡고 어머님과 헤어졌다. 평양에서 교회를 지키는 어머님과 기도하는 중에 늘 만나기로 한 약속은 그후 60년 이상 지금까지 진행이다.

19살의 나이로 해병대 6기로 입대했다. 영어시험에 합격해서 1953년 워싱턴에 있는 미 해병학교에 8개월 동안 선발교육을 받게 된다. 이승만 목사는 바로 이 기회를 완벽한 하나님의 이끄심이라고 확신한다. 군에서 제대하고 1956년 캔터키의 루이빌신학교로 유학하여 1960년에 미국 장로교의 목사가 된다.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루이빌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다.

이승만 목사는 바로 이 루이빌에서 “화해와 용서”의 화신인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게 된다. 이승만 목사는 인종차별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악임을 확신하고 흑인학생들과 백인교수들, 그리고 종교 인사들을 조직해서 킹 목사가 이끄는 민권운동에 조직적으로 가담한다. 이승만 목사는 차별을 철폐하는 흑인 민권운동은 흑인을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탄압자인 백인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임을 설명한다. 2007년 미연방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에 이승만 목사는 결의안은 오히려 일본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는 내용의 편지를 외교위원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승만 목사는 순교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있었던 기억으로 20대까지는 북한정권에 대한 울분과 적대감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킹 목사를 만나면서 복수하고자 했던 결심이 용서와 화해로 변하게 되었다. 이 목사는 "킹 목사는 나에게 민족화해운동을 시작하도록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승만 목사의 설교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메세지는 "인간의 고통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은 분명히 그 분으로부터의 귀한 선물이다"다.

이승만 목사는 미국장로교내 선교부를 오랫동안 담당했다. 1970년대 거의 10여 년 동안 중동지역의 선교책임자로 일했다. 당시 UN보다 앞에서 통로를 만들고 다녔다. 그래서 아랍권과 이스라엘권에서는 절반씩의 지지와 배척을 받기도 했다. 이어서 이승만 목사는 북한선교에 집중한다. 1978년부터 미국 교회를 대표하여 수차례 평양을 방문하면서 남북화해운동을 일으켰다. 평양에 봉수교회 설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98년 총회에서 은퇴하고 리치몬드 신학교에서 그리고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쳤다.

이승만 목사는 클린턴 대통령 때에 백악관 종교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미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그의 노력은 치열했다. 이승만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사안은 절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간 일촉즉발 전쟁위기에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로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으로 보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월 14일 이승만 목사님께서 아틀란타에서 돌아가셨다. 분단국가 출신의 멍에를 힘겹게 짊어졌던 80여년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임종을 지킨 분으로부터 “감사해”라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승만 목사님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 서운하고 허전하지만 목사님이 후대들에게 남긴 “용서와 화해”의 정신(신앙)은 활발하게 살아 움직일 것이리라...

김동석 /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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