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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 목사 "교회분쟁 원인과 피해최소화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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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9-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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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국회의원들이 법 대신  망치와 다른 공구들을 들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억! 하는 감정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분노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한꺼번에 밀려왔었습니다. 

그 일도 모자라서 국민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는 커녕 저마다 자기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책임은 상대방 정당에 떠넘기는 파렴치한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법을 만드는 곳에서 법이 실종되고 법을 지켜야 하는 곳에서 법이 무시되는 사건을 바라본 국민의 입에서 국회를 없애는 것이 국회를 개혁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왠지 이 사건이 제게 왠지 낮설지 않음은 참으로 묘한 일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니 아하! 하는 것이 떠 올랐습니다. 그 것은 저의 20년을 넘기는 이민 생활 중에 교회 분쟁을 많이 경험했고, 또 목사가 된 후에는 저의 직책상 교회 분쟁에 개입해야 하는 기회가 더욱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교회의 분쟁들 중에는 이번 국회 추태와 닮은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초기 이민 때에는 민족적 창피함을 넘어서교회에 대한 무기력감과 신앙에 대한 회의감을 갖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되고 나서 교회 분쟁들을 중재자적인 입장에서 접하게 되면서 부터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교회 분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상으로는 아시안 교회들이 분쟁에 휩싸이는 경우에는  해결의 실마리가  안보이는 경우들이 비 아시안 교회들에 비해서 많았습니다. 아시안 교회들의 경우에는 매우 쉽게 이성을 잃고 흥분하며 감정적으로 접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회분쟁이 감정적으로 진행되는 세가지 이유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크게 세가지로 봅니다. 단  신학적 접근은 피한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첫째는 서구 문화는 죄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반면 아시안 문화는 수치심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세계의 모든 문화의 그림자에는 인간의  죄의식과 수치심이 함께 존재하고, 개인에 따라서도 수치심과 죄의식의 비중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죄의식의 한 가지 특징은 정당한 벌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죄로부터의 해방감으로 느낄 수 있다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수치심의 경우에는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자존감에 상처로 남기게 됩니다. 특회 목회자나 다른 평신도와의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이러한 상처가 건강한 방법으로 통해서 상대방에게 표출되고, 해결되지 못하면 결국 분노와 함께 교회 분쟁이라는 큰 문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두번째는 아시안 문화는 체면 문화로써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합니다. 체면도 사실 수치심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쉽습니다. 커뮤니티안에서 자신의 얼굴을 살리는 것을  중요시 하는 아시안의 경우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살리고는 일에는 많은  관심을 표시 합니다. 그러나 체면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당사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것으로 간주하고 좌절하고 분해하기 쉽습니다.

이럴 경우 곧 바로 “너죽고 나죽자”라는 싸움으로 발전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 증상들 가운데 한가지로  상대방에 대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과 행동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성적 사고나 대화의 가능성은 몹시 적으며, 법보다 주먹과 힘으로 해결하려는 성향 또한 강합니다. 법 적용 또한 문제의 당사자들이 법을 자기 편리위주로 해석하는 경우도 흔하게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로는 아시안 문화는 매우 권위적인 반면, 서구 문화는 평등적인 사회를 지향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시안 문화의 경우 소수의 인원이 대부분의 힘과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보아 온 경우만으로 제한해서 말하자면 아시안  목회자들의 경우 자신이 목사인 것에 대한 권위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교인들의 경우 교회의 직분을 승진과 더많은 권력으로의 접근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와 장로중 누가 더 높으냐는 우스개스러운 질문이 공공연히 나도는 배경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교회의 구성원간에 존재하는 힘과 권위에 대한 상호 견제 능력이 서구 문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입니다. 

제도적 장치가 약하고, 법과 제도를 공정하게 집행할 의지가 약하면,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의 견제가 약하면 더 많은 힘을 가지려 하는 인간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쉽게 타락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상호 신뢰가 깨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불신과 분쟁으로 급속회 발전되게 됩니다.

분쟁피해를 최소화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막무가내식 분쟁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지혜롭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어려운 질문이니 쉬운 대답도 없습니다. 하지만 마법적인 해결 방법은 없는 현실가운데 몇 가지 지혜를 동원할 길은 있을것 같습니다.

아시안 교회들이 분쟁을 경험하게되는 경우 분쟁 해결을 위해서 노회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교회안의 교인간의 분쟁은 목회자의 몫으로 남지만 목회자와 교인들간의 갈등의 경우 노회나 상급 기관의 역활이 중요합니다.

다만 아시안 교회들의 분쟁 경우들을 보면 장로교든 감리교든 어느 교단이냐에 상관없이 대화를 거부한 채 막무가내로 목회자의 이직만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다가도 노회나 상급 기관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단 탈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노회나 상급 기관의 현명한 역활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 어떤 경우에도 분쟁 중재및 해결을 위해서는  이성적 사고에 의한 문제 접근(reasoning)과 투명한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절차(procedure)는 필수입니다. 특히 감성적인 면이 강한 아시안 교회들의 경우에는 교회 분쟁의 시작부터 극한 상황까지의  발전이 매우 감정적으로 빠르게 진행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reasoning과 procedure가 무시되기 일쑤 입니다. 아시안 교회들의 중재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 바로 이 두가지입니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성적 접근과 해결 절차등이 준수되고,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하고, 안전한 장치가  더욱 필요합니다. 그리고 준비된 절차가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노회나 상급 기관이 문제를 접근할 때 노련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분쟁들의 경우일지라도 법만 갖고는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상한 감정을 치유하면서 법을 적용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사법을 위반한 경우가 아닌 교회 분쟁의 경우에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호 인간 관계가 무너져서 분쟁이 발생된 경우들이 많습니다. 

사실 분쟁 당사자들  모두가  과실의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뿌리를 보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전체적인 문제가 표출된 것이지 어떤 특정 사건 자체가 문제의 원인인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분쟁들의 경우 올바른 원인을 찾는 것과 함께 초기대응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시안 교회들의 경우 냉철한 이성과 함께 법의 적용도 중요하지만 감정적 접근도 중요합니다. 분쟁을 중재할 때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감정적인 면을 살피면서 상호 관계의 회복에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교단 헌법만 들이대면서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결정하려는  재판관적 접근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또한  불리한 쪽으로 부터 반발만 더사게 됩니다.

이 때 초기 중재자의 선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재자는 감정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분으로써 협상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중재자 선정은 분쟁 조정의 첫단계이지만 그 결과를 어느 정도 가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중재자를 파송할 때 법대로 하면 해결된다는 자세를 가진 분, 혹은 고집 센 분, 혹은 목회 경험이 약한 분, 어느 한쪽을 사실유무를 떠나서 일방적으로  편들 수 있는 분, 중재자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사건을 해결할 잠재적 여건이 있는 분등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중재자로 보내는 것은 불난데 휘발유를 붓는 격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일부라도 알고 있는 사람도 중재자로서는 부적격입니다. 편협한 정보로 인해서 편협한 생각을 갖고 일방적인 판단을 할 위험이 있기때문입니다.

교회 분쟁에 심판의 칼을 들이대는 대신 치유의 칼을

분쟁이 발생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상한 감정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옮음만을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옳고 틀린지를 가리기 위해서 청문회 성격의 모임을 소집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실을 수집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재자가 초기 역할을 잘못하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상한 감정의 표출을 위한 전혀 다른 성격의 모임이 중재 과정에서 같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상한 자존심과 체면을 되찾을 수 있는 치유의 기회가 분쟁 중재 과정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때와 장소에서 혹은 상대방을 각각 따로 만나는 모임을 통해서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분쟁 상대방에 대해서 “너 때문이야”라면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육 시켜야 합니다. 그 대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아픈 느낌이 있다”라고 사실 밝히는 것을 통해서 자기의 내재된 상처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발표자들의 상한 감성도 지적해 주는 것이 필요 합니다. 아무리 법 질서가 무너지고,  감정이 상하고,  교회가 분쟁가운데에서 아플찌라도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욕성은 삼가하는 것이 자신의 인격과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는 매우 상담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접근은 교회 분쟁이라는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심판의 칼을 들이대는 대신 치유의 칼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 길은 너죽고 나죽자라는 공멸( lose-lose)의 자세에서 벗어나서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비록 헤어진다고 해도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는 공생(win-win)의 길로 함께 나갈 수 있는 초석을 만들수 있습니다.

사건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

교회의 분쟁은 원인이나 유형도 다양해서 그 가운데는 해결이 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상당수가 사건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인 해결 할 수 있는 것만 해결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놔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라도 해결되어진 부분으로 말미암아 미처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다른 방법으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사람이 노력해도 하나님의 뜻이 흩으러 놓고자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

교회 분쟁을 이야기 할때 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거룩한 주님의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면  당사자들보다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실까요? 그리고  과연 우리가운데 그 누가 주님께 저놈이 나쁜 놈이에요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로운 자가 있을일까요 ?

모두가 주님의 축복받는 자녀들이요, 주님의 몸된 귀한 교회들입니다. 분쟁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에 처한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교단의 교회들뿐만이 아니라 특히 한인 동포들의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분쟁 당사자 모두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생각과 가르침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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