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택 목사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짜 정직한 중보기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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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7-02-22 22:4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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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많은 집회에 참여하여 취재를 했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몇 개를 꼽으라면 12월 16일(금) 뉴욕어린양교회(박윤선 목사)에서 열렸던 장종택 목사 찬양집회도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장종택 목사는 ‘은혜로다’, ‘다윗처럼’, ‘생명과 바꾼’, ‘내 선한 목자 되신 주’, ‘내 삶 속에 주님 없었다면’ 등 찬양을 만든 찬양 사역자이다.
하지만 이날 집회는 찬양집회가 아니라 간증집회였다. 2005년 1월 ‘항NMDA수용성뇌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딸 온유가 입원하고 일어났던 고난과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는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리고 말씀집회였다. 믿는다고 하지만 삶속에서는 전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 삶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 세대를 질타했다. 집회는 거의 자정까지 길게 이어졌다.
첫 번째 기사 보기 - 장종택 목사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은 관련 두 번째 기사이다. 중보기도에 대한 내용이다. 장종택 목사는 지나가며 툭~ 치면 늘 했던 말 “기도해 줄게” “기도를 부탁해”라는 했던 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교회에 불기 시작한 “진짜 진실한 중보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하도 신앙에 가짜가 많으니 “진짜”를 붙여 강조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세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장종택 목사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온유의 이야기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찬양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대전 예수전도단 간사님이 찾아 왔는데 모르는 분이었다. 그 분은 단 2분을 저와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그리고 온유를 위해 기도했는데 아무래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 같아서 드리러 왔다고 했다.
누가복음 4:38-39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았는데 당시에는 죽음에 가까운 병이다. 그런데 그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구했더니 예수님이 움직이시고 열병을 꾸짖어 물러나게 하셨다. 그 말씀을 읽으며 온유가 병이 낫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하셔야 하며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필요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온유의 참혹한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사랑하는 딸의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딸의 사진을 올리고 단지 중보기도를 부탁하지 않고 “진짜 정직한” 중보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오늘 아침에도 친한 탤런트 김원희씨와 통화했는데 “내가 중보기도를 안한다는 말인가? 나를 못 믿는 것이 아닌가?”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6천여 명이 출석하는 한국 중대형교회에서 3년간 풀타임 사역을 했다. 당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여 집사가 절박한 상황속에 찾아와 기도를 부탁했다. 저는 그 기도제목을 중보기도 노트에 적어 놓고 일주일을 진짜 열심히 기도했다. 진짜 기도를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기대감이 생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다음 주일에 여집사를 찾아가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어떤 단계의 기도를 해야 하는가 물었더니, 그 여집사는 그런 저를 보고 놀라워했다. 말을 해놓고 자기는 아무런 기대도 안하고 잊고 있었으며, 자기도 기도를 안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 중보기도의 현주소이다. 그 다음부터 기도 부탁을 안했다. 지나가며 툭~ 치면 늘 했던 말 “기도해 줄게” “기도를 부탁해” 그리고 둘 다 하지 않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온유는 진짜 기도를 해야 낫는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직한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진짜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중보기도의 신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온유와 비슷한 나이 때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온유의 비참한 사진을 보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작년 호주에 코스타 강사로 갔는데 한인 카페에서도 “온유 아빠 아니냐”라고 나를 알아볼 정도였다. 전세계에서 온유를 위해 기도를 했다. 막 기도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기도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보기도가 시작되면서 전세계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에서 수백 통의 카톡 문자를 받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어느 여집사가 문자를 보냈다. 자신은 예수 믿고 난후에 한 번도 새벽기도를 간 적이 없었는데 페이스북에서 온유라는 아이를 알게 되고 사진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사진을 놓고 기도했으며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나가 기도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은 하루에 몇 시간씩 드라마를 보지만 기도한 적은 없었으며 다음 주 드라마를 기다렸지만 제대로 성경을 읽거나 예수님을 기다려 본적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온유를 위해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다 아실텐데 걱정이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 크리스찬 사업가는 온유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사업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탈법으로 사업에서 이익을 취하려고 했던 것, 방탕한 삶을 산 것이 떠올랐다며 내가 기도하면 혹시 나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실까 두렵다는 내용을 보내왔다.
어떤 30대 집사는 자신이 온유를 위해 기도하는데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부페에서 아이의 나이를 속인 것이 생각이 났다는 것. 죄의 삵은 사망이라 배웠는데 살기위해 죄를 짓는 자기 모습이 보여 가슴을 치면서 나 때문에 하나님이 기도응답을 안하시면 어떻게 하냐며 회개했다고 했다. 온유를 위해 기도했더니 온유가 먼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온유가 나를 살렸다고 감사해 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비밀이다. 남을 위해 시작한 기도가 사실은 자신을 먼저 살리는 기도였다. 이제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은 함부로 중보기도를 한다는 말을 안한다. 그리고 정직한 중보기도 운동이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 작년에 그런 운동이 일어날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있다. 여러분이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 안하시죠? 수많은 절실한 기도제목 때문에 기도한다. 그리고 새벽기도에 나와 기도한다. 그래도 안들어 주신다. 그래서 ‘기도는 그냥 하는 것이지’ 라며 기대감이 없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 주신 말씀은 시편 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이었다.
우리에게 뭔가 일이 터지면 안하던 기도를 시작하거나 아니면 기도의 분량을 늘인다. 그래서 안가던 새벽기도에도 참가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안 바뀌는 것이다. 여전히 죄를 짓고 세상 것을 더 사랑한다. 여러분들에게 불법 영화 다운로드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내가 필요한 것을 위해 거짓말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안 바뀐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을 못하시는 가장 큰 이유를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교회에 나와도 안 바뀐다. 집사 때나 장로 때나 안 바뀐다. 그리고 자조적으로 사람이 안 바뀐다고 말한다. 아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바뀌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가 안 바뀐다. 예배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바뀌어야 한다. 지난 주일에 나와 바뀌었는가. 지난해와 비교하여 나쁜 습관이 바뀐 것이 있는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 안 바뀐다. 물질의 욕심, 세상적인 욕망 안 바뀐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예배를 하는 것인가를 한번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2.
다른 하나의 중보기도의 비밀이 있다. 회개는 지갑에서 부터 시작된다. 이유는 여기가 내 절대 가치이다. 돈이 절대가치이다. 한국의 많은 1-2세들이 예수 믿는 이유는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니 믿었다. 그 복이 돈이었다. 그 복이 성공이었다.
사업하는 분들 집에 붙어있는 성경 구절중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이 많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다. 욥기 8:7에 나오는데 심지어 욥이 한 말도 아니다. 하나님께 엄청 꾸중을 들었던 욥의 친구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붙여놓는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성공과 돈이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돈이 더 중요하니 놓칠 수 없다. 그러니 돈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가치는 돈보다 덜하다.
온유가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병원에서 병원비 수천만 원을 중간 정산하라고 했다. 아니면 더 이상 온유를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돈이 없었다. 그런데 사역자 중에 은행구좌 번호를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방법이 없으니 은행에 갔다. 구좌번호를 몰라 아내에게 물어 통장을 새로 만드는데 통장을 기계에 넣으니 따다닥~ 하고 찍히기 시작한다. 그런데 끓임 없이 찍하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 넘고 한 권이 넘었다. 10권 통장에 찍히니 은행원도 놀라워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고 거의 다 “온유야 하나님이 일하셔. 5천원”, “온유야 파이팅. 3천원” 그런 것이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긍휼함은 돈이 많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긍휼을 맛본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기독교인 하나님의 긍휼을 못 받으니 나누기 싫은 것이다. 다 내가 우선이고 내 가족이 우선이다. 중보기도를 하니 절대가치가 바뀐 것이다. 돈이 제일 중요했는데 기도하다 보니 생명이 중요해 진 것이다.
진짜 기도하면 진짜 중보기도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겼던 계명이 이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이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실재이다. 같은 공동체에 있어도 누가 아파해도 내가 안 아프니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진짜 중보기도를 하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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