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모 교수 "WCC는 종교다원주의 그 자체"
페이지 정보
신학ㆍ2010-02-18 00:00관련링크
본문
미주한인예수교 장로회(KAPC) 동부지역 목사/장로 기도회가 2월 15일(월)부터 3일간 뉴욕주 Suffern에 있는 홀리데이 인에서 열렸다.
16일 오후 조진모 목사(합동신학대학원 교수)는 "이시대를 위한 개혁주의 목회"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한편 장영춘 목사는 세미나후 질문을 통해 WCC 문제에 대해 물었다. 조 목사는 "WCC는 종교다원주의 그 자체"라고 대답했다. 다음은 답변 내용이다.
"주장은 서로 다르지만 1959년 합동과 통합은 WCC 문제 때문에 분열했다. 처음 WCC가 출발할때는 지금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지금의 WCC 모습을 보면 합동측으로는 선견지명을 가진 것이다. WCC는 종교다원주의 그 자체이다. 너무나 달라졌다. WCC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곳에 가본 다음에 말해야 한다. WCC는 다원주의 요소가 넘친다. 그런데 없다고 이야기 한다면 문제이다."
"WCC 총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종교행사로 조용히 모이는 것에 대해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광고를 하면서 "세계기독교올림픽"이라고 것을 왜곡하면서 과대하는 현상이 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다. 최근 WCC 문제로 목사들에게 신학적인 경각심을 일으켰으며, 덮여져 있는 교단 분리문제를 역사적으로 재점검하고, 유사한 사레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다음은 조진모 목사의 강의 내용이다.
합동신학대학원에서 5년째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목회를 하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한 신학을 몰랐으며 목회자로 준비가 잘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성장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시대를 위한 개혁주의 목회, 이시대에도 개혁주의 목회가 가능한가에 대해 말하겠다.
계몽주의 → 자유주의 → 종교다원주의
먼저 우리는 미주한인예수교 장로회(KAPC)를 섬기며 개혁주의적인 목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KAPC 웹사이트에 보니 보수적인 개혁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시대를 살펴보고 개혁주의 목회가 무엇인가를 살펴 보겠다.
이시대 21세기를 지칭할때 전과는 다르다고 말할것이다. 주님오신후 전통적으로 큰변화가 있었다. 계몽주의가 들어온 것이다. 계몽주의는 하루아침이 아니라 현대사조부터 시작했다. 계몽주의는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둘로 볼수 있다. 계몽주의전에는 하나님은 절대적인 진리를 주시는 분이다. 진리는 하나이다. 하나님은 인간위에 놓여져서 세상을 관리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종교의 큰 형태이다.
계몽주의가 시작하면서 합리적이며 이성적이어야 한다며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이시대는 내 생각과 내 느낌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의 진리를 공유하지 않았다. 성서비평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성주의가 나왔다. 또 자유주의가 나왔다. 낭만주의와 계몽주의의 아들이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말씀이 인간의 판단 기준이 되고 과학역사가 기본이 되어 진리를 판단한다. 판단의 구심점이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옮겨갔다. 자유주의가 강조한 것은 종교는 느낌의 종교라는 것이다. 진리는 내속에 느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내 느낌이 자유주의의 중심이다. 20세기 초 까지 자유주의가 이어졌다.
이시대의 사상을 이어가는 것은 계몽주의 → 자유주의 → 종교다원주의이다. 종교다원주의는 현대적 자유주의이다. 한국은 WCC 문제이후로 어려워지고 있다. 종교다원주의에서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 기독교의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 절대성을 무시하고 내려놓고, 다른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종교다원주의가 내세우는 사랑-포용-연합을 수용하지 않으면 배타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사회가 교회에 배타적이라고 질책하는 것이다. 사회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관심이 덜 했지만 이제는 보수교회도 사회문제를 많이 수용한다. 진리를 주장하면 배타적인 사람이 되는 현실이다. 오직 한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지금 교회근처에 와 있다.
경건주의, 복음주의
종교개혁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자. 루터와 칼빈주의를 거쳐 시간이 지나면서 정통주의가 들어왔다. 루터는 1세대 종교개혁자로 로마카톨릭과 다른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2세대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정체성을 많이 다루었다. 그래서 무엇을 믿느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니 신학의 발전이 생겨 났다.
정통주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상당히 세분화 정리되었다. 그런데 빠진것이 영성이다. 그러다 보니 합리주의, 낭만주의, 계몽주의가 생기고 다음에 경건주의가 생겨났다. 경건주의는 전통에 대한 반동이다. 경건주의는 종교개혁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전통주의에서 채우지 못한것을 경건주의를 통해 채우게 된것이다.
경건주의의 아들이 복음주의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주의가 지탱하여 왔다. 복음주의는 또 나누어 졌다. 자유주의로 기울여져 복음주의라고 하면 불편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겼다. 복음주의는 개혁주의와 나누어 지기도 했다. 복음주의에는 자유/개혁/중간이 다 있다. 그래서 복음주의는 한가지 색이라 말할수 없는 무지개 신학이다.
KAPC는 1978년 세워졌다. 그러면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복음주의인가, 개혁주의인가 아니면 그 중간 정도인가?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한국은 서양의 4개 장로교가 들어와 단일 장로교단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1952년 고신, 53년 한신, 59년 통합이 나누어 졌다. 80년에는 총신이 갈라져 나갔다. 이제 한국의 장로교단은 100개 이상으로 나누어졌다. 전통적으로 볼때 장로교단이 아무리 갈라져도 동질성을 가지는 이유는 개혁주의이다.
KAPC 특징은 성경의 무오성과 웨스터민스터를 고백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를 말해준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장로교 안에서 계몽주의가 자유주의와 현대주의로 가는 과정속에서 많이 받은 공격은 성경관이다.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과학적으로 질문했다. 그래서 성경관이 중요한 파와 그렇지 않은 파로 나누어 졌다. 우리선배들은 성경관이 중요한 파를 선택했다. 성경관과 웨스터민스터는 포기할수 없는 싸움이다.
칼빈의 개혁주의
우리는 개혁주의 뿌리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개혁주의라 하면 스위스에서 칼빈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는 거의 같이 사용한다. 개혁주의 뿌리는 칼빈이다. 칼빈주의는 당시부터 혼란한 오늘날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너무 고리타분하여 새로운 것이 필요한것이 아니냐고 해서 복음주의가 20세기 나왔다.
칼빈은 개혁자이자 목회자였다. 칼빈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개혁을 해 나갔다. 칼빈은 한 교회만 목회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 자선사업등 많은 일을 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 목회를 성공적으로 했다. 큰 성과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목회를 했다. 칼빈은 성공한 목회자이다.
오늘날 까지 칼빈주의가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 사조등이 있었지만 모든 시대를 통해 계속적으로 칼빈주의가 전달된 것은 진짜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도전과 핍박가운데 이기고 지탱했다. 개혁주의에 알아야 할 단어 두개는 성경과 하나님의 섭리이다. 공통분모는 성경의 귄위이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다. 둘은 모두 하나님으로 종결하여 결국 하나님에 대한 교리이다.
결론적으로 이시대에도 개혁주의가 가능하느냐고 물으면 가능하다고 대답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목회한다는 자세로 하나님의 성경과 섭리하심을 철저하게 믿을때 이시대에도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가지고 목회가 가능하다.
1. 개혁주의 목회 - 누구를 섬기느냐.
주의 백성들을 섬기는 것이다. 칼빈의 머리속에는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물 인간이 구분되었으나 상관관계에 고민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하나님이다. 창조물이라면 하나님에 의존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속에 있었다. 칼빈은 배교하고 불신하는 사람들을 모아놓는 것이 목회라고 보았다.
2. 개혁주의 목회 - 무엇을 가르치냐
캐톨릭은 전통을 가르친다. 설교대신 예식을 통해 은혜를 받는다. 칼빈은 루터와 같은 맥락속에서 성경을 성도들에게 주자고 생각했다. 성경관의 핵심은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보이는 것으로 말씀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이다.
칼빈은 하루에 3번 예배를 드렸다. 매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했다. 지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뜻을 전달하는데 노력했다. 보이는 성경에 바로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
시편속에는 인생의 어려움 갈등이 있다. 칼빈은 시편을 오랫동안 설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칼빈에게 배울것은 무엇인가? 칼빈은 성도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키우려고 했다.
3. 개혁주의 목회 - 왜 하느냐?
목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경건이다. 경건이라는 단어 자체가 함축된 의미가 있어 나름대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칼빈이 말하는 경건은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만드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앞에서 목회를 하느냐 안하느냐이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여러갈래 신앙의 갈래가 있다. 이시대는 매우 혼란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사역을 해 나가야 한다. KAPC가 칼빈주의적이고 장로교 갈등가운데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지킨 것은 보수적인 개혁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이다. 칼빈의 고민에 동참해야 한다.
3가지 고민을 할때마다 하나님이 크게 보여진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사용하신다. 감사하면서 감격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
ⓒ 2010 아멘넷 뉴스(USAamen.net)
16일 오후 조진모 목사(합동신학대학원 교수)는 "이시대를 위한 개혁주의 목회"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한편 장영춘 목사는 세미나후 질문을 통해 WCC 문제에 대해 물었다. 조 목사는 "WCC는 종교다원주의 그 자체"라고 대답했다. 다음은 답변 내용이다.
"주장은 서로 다르지만 1959년 합동과 통합은 WCC 문제 때문에 분열했다. 처음 WCC가 출발할때는 지금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지금의 WCC 모습을 보면 합동측으로는 선견지명을 가진 것이다. WCC는 종교다원주의 그 자체이다. 너무나 달라졌다. WCC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곳에 가본 다음에 말해야 한다. WCC는 다원주의 요소가 넘친다. 그런데 없다고 이야기 한다면 문제이다."
"WCC 총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종교행사로 조용히 모이는 것에 대해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광고를 하면서 "세계기독교올림픽"이라고 것을 왜곡하면서 과대하는 현상이 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다. 최근 WCC 문제로 목사들에게 신학적인 경각심을 일으켰으며, 덮여져 있는 교단 분리문제를 역사적으로 재점검하고, 유사한 사레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다음은 조진모 목사의 강의 내용이다.
합동신학대학원에서 5년째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목회를 하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한 신학을 몰랐으며 목회자로 준비가 잘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성장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시대를 위한 개혁주의 목회, 이시대에도 개혁주의 목회가 가능한가에 대해 말하겠다.
계몽주의 → 자유주의 → 종교다원주의
먼저 우리는 미주한인예수교 장로회(KAPC)를 섬기며 개혁주의적인 목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KAPC 웹사이트에 보니 보수적인 개혁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시대를 살펴보고 개혁주의 목회가 무엇인가를 살펴 보겠다.
이시대 21세기를 지칭할때 전과는 다르다고 말할것이다. 주님오신후 전통적으로 큰변화가 있었다. 계몽주의가 들어온 것이다. 계몽주의는 하루아침이 아니라 현대사조부터 시작했다. 계몽주의는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둘로 볼수 있다. 계몽주의전에는 하나님은 절대적인 진리를 주시는 분이다. 진리는 하나이다. 하나님은 인간위에 놓여져서 세상을 관리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종교의 큰 형태이다.
계몽주의가 시작하면서 합리적이며 이성적이어야 한다며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이시대는 내 생각과 내 느낌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의 진리를 공유하지 않았다. 성서비평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성주의가 나왔다. 또 자유주의가 나왔다. 낭만주의와 계몽주의의 아들이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말씀이 인간의 판단 기준이 되고 과학역사가 기본이 되어 진리를 판단한다. 판단의 구심점이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옮겨갔다. 자유주의가 강조한 것은 종교는 느낌의 종교라는 것이다. 진리는 내속에 느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내 느낌이 자유주의의 중심이다. 20세기 초 까지 자유주의가 이어졌다.
이시대의 사상을 이어가는 것은 계몽주의 → 자유주의 → 종교다원주의이다. 종교다원주의는 현대적 자유주의이다. 한국은 WCC 문제이후로 어려워지고 있다. 종교다원주의에서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 기독교의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 절대성을 무시하고 내려놓고, 다른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종교다원주의가 내세우는 사랑-포용-연합을 수용하지 않으면 배타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사회가 교회에 배타적이라고 질책하는 것이다. 사회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관심이 덜 했지만 이제는 보수교회도 사회문제를 많이 수용한다. 진리를 주장하면 배타적인 사람이 되는 현실이다. 오직 한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지금 교회근처에 와 있다.
경건주의, 복음주의
종교개혁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자. 루터와 칼빈주의를 거쳐 시간이 지나면서 정통주의가 들어왔다. 루터는 1세대 종교개혁자로 로마카톨릭과 다른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2세대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정체성을 많이 다루었다. 그래서 무엇을 믿느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니 신학의 발전이 생겨 났다.
정통주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상당히 세분화 정리되었다. 그런데 빠진것이 영성이다. 그러다 보니 합리주의, 낭만주의, 계몽주의가 생기고 다음에 경건주의가 생겨났다. 경건주의는 전통에 대한 반동이다. 경건주의는 종교개혁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전통주의에서 채우지 못한것을 경건주의를 통해 채우게 된것이다.
경건주의의 아들이 복음주의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주의가 지탱하여 왔다. 복음주의는 또 나누어 졌다. 자유주의로 기울여져 복음주의라고 하면 불편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겼다. 복음주의는 개혁주의와 나누어 지기도 했다. 복음주의에는 자유/개혁/중간이 다 있다. 그래서 복음주의는 한가지 색이라 말할수 없는 무지개 신학이다.
KAPC는 1978년 세워졌다. 그러면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복음주의인가, 개혁주의인가 아니면 그 중간 정도인가?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한국은 서양의 4개 장로교가 들어와 단일 장로교단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1952년 고신, 53년 한신, 59년 통합이 나누어 졌다. 80년에는 총신이 갈라져 나갔다. 이제 한국의 장로교단은 100개 이상으로 나누어졌다. 전통적으로 볼때 장로교단이 아무리 갈라져도 동질성을 가지는 이유는 개혁주의이다.
KAPC 특징은 성경의 무오성과 웨스터민스터를 고백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를 말해준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장로교 안에서 계몽주의가 자유주의와 현대주의로 가는 과정속에서 많이 받은 공격은 성경관이다.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과학적으로 질문했다. 그래서 성경관이 중요한 파와 그렇지 않은 파로 나누어 졌다. 우리선배들은 성경관이 중요한 파를 선택했다. 성경관과 웨스터민스터는 포기할수 없는 싸움이다.
칼빈의 개혁주의
우리는 개혁주의 뿌리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개혁주의라 하면 스위스에서 칼빈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는 거의 같이 사용한다. 개혁주의 뿌리는 칼빈이다. 칼빈주의는 당시부터 혼란한 오늘날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너무 고리타분하여 새로운 것이 필요한것이 아니냐고 해서 복음주의가 20세기 나왔다.
칼빈은 개혁자이자 목회자였다. 칼빈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개혁을 해 나갔다. 칼빈은 한 교회만 목회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 자선사업등 많은 일을 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 목회를 성공적으로 했다. 큰 성과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목회를 했다. 칼빈은 성공한 목회자이다.
오늘날 까지 칼빈주의가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 사조등이 있었지만 모든 시대를 통해 계속적으로 칼빈주의가 전달된 것은 진짜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도전과 핍박가운데 이기고 지탱했다. 개혁주의에 알아야 할 단어 두개는 성경과 하나님의 섭리이다. 공통분모는 성경의 귄위이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다. 둘은 모두 하나님으로 종결하여 결국 하나님에 대한 교리이다.
결론적으로 이시대에도 개혁주의가 가능하느냐고 물으면 가능하다고 대답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목회한다는 자세로 하나님의 성경과 섭리하심을 철저하게 믿을때 이시대에도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가지고 목회가 가능하다.
1. 개혁주의 목회 - 누구를 섬기느냐.
주의 백성들을 섬기는 것이다. 칼빈의 머리속에는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물 인간이 구분되었으나 상관관계에 고민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하나님이다. 창조물이라면 하나님에 의존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속에 있었다. 칼빈은 배교하고 불신하는 사람들을 모아놓는 것이 목회라고 보았다.
2. 개혁주의 목회 - 무엇을 가르치냐
캐톨릭은 전통을 가르친다. 설교대신 예식을 통해 은혜를 받는다. 칼빈은 루터와 같은 맥락속에서 성경을 성도들에게 주자고 생각했다. 성경관의 핵심은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보이는 것으로 말씀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이다.
칼빈은 하루에 3번 예배를 드렸다. 매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했다. 지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뜻을 전달하는데 노력했다. 보이는 성경에 바로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
시편속에는 인생의 어려움 갈등이 있다. 칼빈은 시편을 오랫동안 설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칼빈에게 배울것은 무엇인가? 칼빈은 성도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키우려고 했다.
3. 개혁주의 목회 - 왜 하느냐?
목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경건이다. 경건이라는 단어 자체가 함축된 의미가 있어 나름대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칼빈이 말하는 경건은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만드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앞에서 목회를 하느냐 안하느냐이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여러갈래 신앙의 갈래가 있다. 이시대는 매우 혼란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사역을 해 나가야 한다. KAPC가 칼빈주의적이고 장로교 갈등가운데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지킨 것은 보수적인 개혁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이다. 칼빈의 고민에 동참해야 한다.
3가지 고민을 할때마다 하나님이 크게 보여진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사용하신다. 감사하면서 감격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
ⓒ 2010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