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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원로와 후임목사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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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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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jpg장달윤 목사(71)는 서울 장안동에 있는 무궁교회 원로목사이다. 장신대를 졸업한 장 목사는 1977년 부임하여 2007년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저서로 <성공적 목회를 위한 목사 처신법>, <초임 목사와 부목사의 성공 비법>.<부목사 처신법과 목회 상식>, <목사부인 처신법>,<성공적 목회를 위한 사모학>등이 있다.

장달윤 목사가 아멘넷 자유게시판에 9회에 걸쳐 연재한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지침서>를 정리했다. 일부중복되는 내용은 편집됐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한국교회도 역사가 길어지면서 원로목사가 있는 교회가 점점 많아지는데, 그것에 대한 신학교 교육이나 책이 없기 때문에 지식부족에서 오는 많은 시행착오의 문제가 파생되는 것 같아 <원로목사와 후임 지침서>를 연재한다.

원로목사와 후임과의 갈등과 평화

원로목사와 후임과 갈등, 또는 전쟁과 평화란 글을 쓰려고 한다. 그 동기는 원로목사와 후임과의 관계가 교회갈등으로 비춰지는 교회가 많기 때문에 문제의 요인을 생각하여 보고 각자 참고하여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필자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정상적인 당회가 구성되어 있고 역사가 있는 교회에서 10년 이상 순탄하게 목회 하였으면 그 목사는 목회에 관한 한 "도사"가 된 분이라고 정의한다. 한국교회 목사들의 수는 수만명인데(통합측 교회만 하더라도 목사가 1만6천명이 넘고 원로목사는 61명, 2010년도) 한 교회에서 10년이상 장기목회 한분은 통계가 나오지 않아 정확히 모르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그 수는 그리 많지않다고 추측된다.

인생이 전쟁이라면 목회도 전쟁이다. 칼빈은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고 했다. 원로목사란 한 교회에 부임하여 20년이상 시무하고 교회의 동의를 얻어 추대받은 백전노장의 장군이다. 원로목사가 장기 목회를 하고 물러간 그 자리를 무난히 메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20년 이상 목회한 원로목사의 자리를 메우려면 예의와 지혜와 목회능력과 처신의 인간관계가 탁월하여야 한다.

어떤 목사라도 그 자리를 이어 받았다면 눈물과 피와 땀으로 절타 탁마의 인고의 세월을 경험한 자이거나 견디어 낼수 있는 자여야 전임목회를 연속할 수 있다. 명장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당회가 구성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했다면 그는 명장이다. 그런고로 많은 시간과 난관을 거쳐 많은 수련을 쌓아야 원로의 자리를 무난히 메워 갈 수 있다. 하지만 수련을 쌓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달란트와 인격과 그릇이 커야 한다.

우둔한 단기목회의 종지기 그릇의 소양을 가진 목회자는 어떤 지혜를 공급 받아도 감당치 못하고 중도 패전하여 탈락할 것이다. 전쟁은 적을 알고 전술이 뛰어난 자가 승리한다. 상대를 먼저 알고 전쟁을 치르는 자가 승리하는데 종지기 그릇의 소양을 가진 목회자는 멀리 넓게 깊게 높게 볼 관찰력이 없고, 전략의 능력과 시력도 없고, 좁은 소견에 인내력도 포용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탱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러므로 확실한 승리의 전술과 지식을 갖지 않은 자는 노하우를 배워서 가던지 아니면 그 자리에 아예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자가 들어 앉으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나고 교회는 시련을 겪는다. 앞으로 원로목사와 장기 목회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기에 최소한 전쟁을 막아야 한다.

비범한 인성과 목회철학과 능력을 가진 자만이 원로목사 감당

1) “도사 기질”을 가진 자만이 원로 자리 무난히 연속 할 수 있다

목회 초보자라도 원로의 자리를 무사히 이어가는 목회자는 “도사”가 될 수 있는 소양을 가진 자이다. 그는 비범한 천부적 목회 달란트와 탁월한 적응력의 지혜와 그릇을 가진 자이다. 그렇지 않고 평범한 달란트를 가진 좁은 소양의 목회자가 설교 한번 잘하고 인물 좋고 학벌 하나로 부임이 되었다 하더라도 자리를 지탱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비범한 도사 기질과 뛰어난 적응력의 지혜와 그릇이 큰 자는 그 도사의 자리를 무난이 이어 갈 수 있다.

2) '원로목사 때문' 이란 말을 입에 담지 말라.

근간에 후임들이 원로목사 간섭과 시집살이 때문에 목회가 힘들고 어렵다고 당사자들의 입이나 교회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원로목사 제도 반대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반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원로목사는 장기간 그 교회를 사랑하고 키웠다. 그는 후임목사가 목회를 잘하도록 도와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그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거나, 마땅히 갈 교회가 없기 때문에 그 교회에 출석하기도 한다.

그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멀리서 교회를 살피고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며, 어려움이 있으면 돕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섬기던 교회에 해를 가하겠다는 목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배은망덕한 버릇없는 후임들이 원로목사를 귀찮게 여기는데 문제가 있다.

후임에게는 원로만큼 부담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로의 비중이 크고 시어머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후임은 원로의 비중을 인정하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은데 원로의 비중을 인정하지 않으려는데 문제가 있다. 후임은 그 원로목사가 없어도 다른 대상(장로)이 그 후임에게 똑같은 비중의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큰 말 행세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반드시 말의 무리 가운데는 지배하는 큰 말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비 정상으로 볼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 공동체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후임이 원로가 되어도 마찬가지이고 원로장로가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담임목사는 큰 말을 탈수 있는 능력있는 자라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큰 말도 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바로 그분은 그 교회에 큰 공로자 이기에 큰 말이 되어 큰 말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말을 탈수 없는 자는 자기가 큰 말을 탈 능력이 부족한 자로 알고 원로목사 또는 장로 때문이란 말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3) 원로는 하나밖에 없는 은인 중 은인이다.

원로는 세상 말로 하면 기업을 만들어 물려준 은인이다. 교회가 아니라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아닌가. 그런 원로목사의 뜻을 모두 수용한들 어떠하랴. 그런 분을 평생 상전으로 모신들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내가 담임목사로 서도록 직간접으로 협조하신 분인데 얼마나 고마운가. 그분이 후임결정에 권리가 없었다 하여도 뒤에서 반대했다면 과연 그 자리에 올수 있었겠는가. 그분이 후임 부임에 전혀 무관하다 하였을 지라도 그분이 이룩한 교회의 후임이다. 약간의 부담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분을 원망 불평하면 어떤 이유로던지 그는 배은망덕 자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 목사들중에 속된말로 평생토록 원로목사 종노릇하여도 후임되겠다는 목사가 99.999999%가 될것이다. 그도 그런 마음으로 그 교회에 부임하였을 것이다. 원로에 배은망덕 자는 하나님의 은혜도 인간의 은혜도 모르는 저질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목회자로서의 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종의 자격이 없는 자이며,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인의 차원을 넘지 못한 지극히 세상적인 사고를 가진 자라고 생각한다.

부임 전에는 원로목사나 장로에게 사정하며 내가 부임하면 잘 섬기고 잘 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부임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않고 부임한 목사가 과연 있는가. 그러나 부임 한 후에는 딴 짓거리를 하는 괘씸한 후임이 많다. 일부 중직자들에게 원로목사에 대한 장기간 쌓여진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정상이다. 앞으로 후임에게는 그런 불만자가 없겠는가.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목사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불만그룹들과 연대하여 원로에게 도전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있을 수 없는 배은망덕 행위이다. 배은망덕의 행위를 하였을 때에 교회는 혼란해 지고, 목회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며 교인들을 골탕 먹이게 된다. 후임목사들은 자기에게는 반대그룹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말라.

원로는 후임에게 한 분 밖에 없는 은인이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선배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는 것이 목회의 기본 도리이며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교인들에게도 인정받는 축복받을 일이며, 원로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사랑받을 조건이다. 원로의 장기목회에 실증자와 불만자가 많아도 50%이상이 그의 팬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원로목사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말라.

4) '원로목사 때문'이란 불평하는 자는 그 교회를 담을 그릇이 못되는 자

원로목사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는 목회자는 원로목사 없는 교회에 부임 하였다면 모두 장기목회를 무사히 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 증거로 원로목사가 없는 교회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어찌하여 순탄한 목회를 하지 못하고, 분란을 일으키고 불편한 교회를 만들고 단명하는가?

예를 들어보자. 전남 이리의 S교회 A목사님은 30여 년의 장기목회로 교회를 성장시켜 놓고 갑자기 소천하자 후임이 부임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서 갈등을 빚고 교회를 떠나고, 그 다음 후임도 자주 갈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물러나는 후임은 자기가 부족한 것은 모르고 장로가 나빠서 나는 당하고 떠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로목사가 없는데 어찌하여 배척을 받았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목사의 자질과 목회그릇의 문제이다. 목사는 자기 그릇 이상의 양을 담을 수가 없다. 목회학에서 교회는 목사만큼 자란다고 한다. 그래도 통계적으로 원로목사가 있는 교회의 후임 재직기간이 일반교회보다는 길다. 원로목사가 잘 닦아 놓은 터 덕분에 바람막이가 되어주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하는 것이다.

원로목사 후광을 업고 장기목회 잘하는 목사들

후임목사가 원로목사를 존경하며 원로목사에게 칭찬을 들으며 교회를 부흥시키며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목회를 잘하는 분들이 있는데 안동교회, 수산교회, 광주 서림교회 후임들은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1) 안동교회 김광현 원로목사/후임 김기수 목사

안동교회 후임 김기수 목사는 25년이 넘도록 원로와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 아무런 불평없이 교계와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교회를 3배나 성장 시키는 목회를 했다. 원로는 후임의 후광이 되어 주고, 후임은 원로가 35년 동안 큰 기업을 만들어 물려준 은인으로 생각하고 존경할 뿐만 아니라 아버님 처럼 모시고 자신을 후임으로 삼아 주신데 대하여 늘 고맙게 생각함으로 전국 교회에 선배와 어른 존경의 효시가 되었다.

문제는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있는 것이다. 나를 낳아주신 은혜로 부모님을 모시기도 힘이 드는데 어찌 힘드는 일이 없다고 하겠는가. 인간이 은혜를 모른다면 하등 동물보다도 못한 자가 아닐까.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라야 큰 일을 할 수 있으며 그 “큰 은혜의 보좌”를 감당할 수 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무슨 뜻인가? 그 반대는 악자유적(惡者有敵)이 아닌가!

필자가 후임 김기수 목사가 소천하기전 대화를 한적이 있다. 김기수 목사는 원로와 관계에서 한 번도 마음이 상하여 본 적이 없다고 했다. 25년 동안 매주 예배 축도는 원로목사가 하도록 배려했다. 장로들이 담임목사가 다 하라고 건의했으나 "축도는 원로목사님이 하시는 것이 더 축복되고 교인들도 더 은혜롭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선배 어른을 존경하는 예의이며 또한 어른을 모시는 일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요 풍속인데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대답했다.

반면 원로 김광현 목사는 은퇴후 처음에는 예배후 예배당앞에서 인사를 했으나 교인들이 담임목사에게 집중되는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 하지않고 후임목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것은 일체 중지하고 모든 것에 침묵했다. 당회 참석이나 결혼 주례 등도 일체 사양했고 원로목사 사무실도 주었으나, 후임에게 해가 되는 것 같아 사양했다. 김 목사는 후임목사가 어디 갈 때나 갔다와서는 아버님께 하듯 인사하고 보고하며, 변함없이 새해 첫날은 반드시 부부가 세배하러 온다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안동교회 원로와 후임목사 간의 인격과 덕성, 예의와 범절, 장유유서의 위계질서가 온 교인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존경을 받고 안동교회를 작은 천국을 만들고 부흥과 발전을 거듭하고 전국 교회에 모범을 보이며 2대 생존 원로목사를 배출한 유일한 교회로 기네스북에 올릴만 하다.

모든 문제는 내게 있다. 후임 김기수 목사는 훌륭한 인격과 예의를 갖춘 장유유서의 인격을 가진 목사였다. 상대는 내 모습의 반사경이다. 원로 후임자라면 상대를 원망하지 말고 내 모습을 교정하고 아량을 넓히고 신앙에 덕성을 쌓아 모든 성도들이 존경할만한 후임목사가 되어야 한다.

안동교회 원로와 후임이 25년이 넘도록 한 울타리 안 사택에 살면서 이런 관계를 갖고 지낸 것은 성직자다운 구별된 모습이며 세계 기독교사에 빛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성직자라면 일반인들과는 다른 면이 있어야 되지 않은가.

2) 서울 수산교회 백용종 원로목사/후임 하용삼 목사

백용종 목사의 후임으로 부임한 하용삼 목사는 원로 목사의 도움으로 목회를 평안히 했다. 원로목사가 소천하자 원로목사님이 있을 때 훨씬 좋았다고 했다. 원로목사를 어렵게 생각말고 존경하면 어느 원로목사라도 다 그렇게 도와 줄 것이다. 후임 하 목사는 원로목사님이 소천하자 홍역을 겪기도 했으나 평탄한 목회후 곧 원로가 된다. 장기목회를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그릇과 인격, 그의 덕목과 목회 능력에 정비례한다.

3) 광주 서림교회 장동진 원로 목사/후임 송재식 목사

서림교회 장동진 목사가 27여 년의 목회와 총회장을 역임하고 존경받는 목사인데 후임은 송재욱 목사이다. 송 목사는 목회경험이 전혀 없고 공부만 하여 교수였던 젊은 40대 목사인데 교회에 부임하여 교회를 3배나 부흥시키고 원로목사님을 존경하고 원로의 자녀인 장로와 권사들과도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원로목사가 있는 것이 목회에 많은 도움을 입는다고 했다.

어쩌다가 원로목사님이 출타하여 교회출석을 못하였을 경우 빈자리에 허전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원로목사와 같이 자리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요즈음 후임들은 원로목사와 한자리에 앉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다고들 한다. 왜 무엇때문에 그런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자신의 오만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후임의 성품과 예의와 인격과 그릇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후임이 전임 목사보다 그릇이 크면 전임의 목회를 담고 남음이 있을 것이고, 그릇이 작으면 전임의 목회를 담을 수 없어 넘어지고 자빠지고 쏟아지고 부서지는 것이다. 후임 송 목사는 그릇이 크기에 교회와 전임을 담고도 교회가 3배나 더 성장했다.

후임 송 목사는 원로목사 퇴임시 10년 사례를 일시불로 드렸는데 10년이 넘도록 생존하시니 당회에서 의논하여 다시 생활비를 책정하여 드려야 되겠다고 말했는데 그 생각도 송 목사의 덕목과 그릇의 크기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서림교회 장동진 목사님은 퇴임 후 그날부터 설교. 결혼주례. 길흉사. 교회 앞에서 인사, 축도를 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부탁과 요청이 있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 그 이유는 물러났으면 후임에게 힘을 실어주어 모든 것이 집중되게 해야지 교인들의 마음이 갈라져 후임이 일하는데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후임목사가 전적으로 일을 소신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야지 원로목사가 이것 저것 간섭하고 참견하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바람직한 처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나 존경스러운 처신이며 얼마나 존경받을 아름다운 분이신가. 원로 장 목사와 후임 송 목사는 정말 인격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분들이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한번 생각하여 볼 분들이다.

이상 후임 세분들은 자기위에 어른이 한분 계시는 것을 당연시하고 인정하는 반면, 불평하는 후임들은 자기위에 어른이 한분 계시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이 교회에서 최고라는 인식에서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후임목사들은 이상 논한 세분 후임들의 인격과 아량과 덕목과 예의를 배워야 할 줄 안다. 후임들은 아무 수고없이 다 차려놓은 밥상을 받는 격인데 그 은혜를 잊고 어떤 이유로든 배은망덕한 자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부임할때 초심은 어떠 하였는가?

교회를 위한다고 원로목사 될 분을 물리친 교회

장기목회후 원로목사가 될 분을 교회가 부담스럽고 후임에게도 부담을 준다며 은퇴시키고 원로목사가 없는 교회로 만든 다음 공부를 많이 하고 설교를 뛰어나게 잘하고 큰 교회의 부목사 경험을 쌓은 젊은 목사를 청빙했다. 얼마후 교회는 분열되고 반 수준으로 교세는 약해졌다.

원로목사가 없는데 왜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그것은 후임의 설교나 학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목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식한 아마추어 목사의 그릇의 문제이다. 또한 장로들이 20여년 가까이 교회를 성장시키며 무난히 목회해온 전임의 능력과 장점을 보지못하고 단점만 보고 처리한데 문제의 원인이 있다.

필자의 추리로는 그 교회는 전임 장기목회자를 조기은퇴시키지 말고 원로로 모셨다면 그와 같은 거듭된 분열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안정된 교회로 유지 발전하며 최소한 현상유지는 했으리라고 본다. 원로목사가 있는 것이 결코 교회에 불편한 것이 많은 것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그래도 원로목사가 있는 교회가 무탈한 교회가 더 많음을 볼 수 있다.

영락교회 후임과 한경직 원로목사 사후 후임을 생각해 보자.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에 존경받고 덕망이 있고 학위와 지명도가 높고 목회능력이 있는 분명 비범하고 훌륭한 분들이 후임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현상유지도 못하고 교회를 평안히 장기적으로 이끌지 못하며 중도하차 하였는가?

그분들은 일반적 목회자 기준에서 볼 때 전부가 특급이다. 그러나 분명히 아실 것은 초특급은 아니다. 그것은 영락교회와 한경직 이란 초특급 초대형 교회의 양(量)과 설교와 정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못 되기 때문이다. 초특급 카리스마 그릇은 목회에 관한 한 “칼빈”보다 더 큰 그릇이다.

프린스턴 신학교에 가면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를 만든 공로로 한경직 목사님 한 분의 영정만이 걸려 있다. 그런고로 그 후임들이 영락교회를 평탄하게 이끌지 못하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인데 문제는 그 정상을 비정상으로 보고 대하는 그 교회가 문제이다. 그런 초특급은 장로교 역사 이래 그분밖에 없었고 지금도 없음을 영락교회는 교회의 앞날을 위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원로목사와 갈등 이유는 후임의 인간됨과 목회역량

자신의 역량과 덕목이 모자라는 목사는 원로와 갈등을 빚는다. 내 위에 한 어른으로 모시면 되는 것이다. 어른으로 모시기로 하고 그 교회에 부임한것 아닌가. 생각하여 보라. 원로목사를 어른으로 모신다고 손해 볼 일이 있는가. 또한 그렇게 모신다고 윤리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는가. 원로를 존경하고 아니하는 것은 후임의 인격의 문제이다.

교회마다 그 교회의 생리가 있다. 그것을 가장 잘 아는 분이 원로이다. 그 원로를 내 위에 어른으로 모시고 자문을 받으며 나아가면 후임목사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된다. 건방진 후임은 원로의 자문을 원치 않고 새물맛을 본 성도들의 즐거운 감정에 취하여 우쭐대다가 뜨거운 감자를 먹은다음 원로에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후임 자신의 인간됨과 역량과 덕목과 목회능력의 그릇이다. 원로목사 있는 곳에서 목회를 잘할 수 있는 목사는 일반교회에 가도 잘할수 있고 일반교회에서 잘 할 수 있는 분은 원로목사 계신 곳에 가서도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목회자이다. 목회의 모든 문제 발생원인 90%는 자신의 역량과 덕목이 부족한데서 오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원로와 후임의 갈등은 초심을 버리는데 문제가 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회사를 만들어 아무런 대가없이 물려주는 것이다. 인간됨이 바로 되었다면 초심으로 돌아가 원로의 지도를 받으면 될것인데 무슨 불평과 원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원로의 지도간섭이 교회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을 수용함이 훨씬 빨리가고 자신의 목회에 더 도움이 된다.

원로/후임목사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1. 후임이 부임후 하지 말아야 할 것.

1) 3년 동안은 원로 목사가 해놓은 주보형식, 행정조직, 교회시설 구조변경. 리모델링 같은 것 일체 하지 말 것 2) 3년 동안은 설교와 심방 또는 당회가 원하거나 부임할 때 합의한 사항 이외에 것은 함부로 하지 말 것 3) 원로목사와 장기간 미운정 고운정이든 성도들을 시샘하여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으려 하지 말 것 4) 예배 분위기를 원로목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당장 바꾸어 새로운 것을 보여 과시하겠다는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 말 것 5) 교회를 자기에게 적응시키려 말고 자기가 교회에 적응 할 것 6) 매사에 신중하고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말을 가려하며 신중 할 것.

2. 후임이 해야 할 예의범절

1) 원로목사를 친 아버지보다 더 정성을 갖고 공경하라 2) 부모님께 보다 더 매사에 예의범절을 갖추어라 3) 가능한 한 사양하지 않으면 한 달에 한번 식사 시간을 가지며 대화하며 목회정보를 얻으라 4) 무엇이든지 먼저 상의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원로가 무엇을 말하시던지 예로서만 대답하고 수용하라 5) 만날 때 마다 지혜롭게 원로목사 은덕임을 감사하고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라 6) 장로들이 원로목사에 대한 원망이 많아 싫어하고 만나지 말라 하여도 후배로서 예의는 지혜롭게 갖추어라. 그 말 안 들었다고 배척 당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한다.

3. 원로목사 후임이 지켜야 할 일.

1) 주보에 원로목사 이름을 담임목사 위에 배치 할 것 2) 모든 교회 의논을 먼저 예의로 상의 할 것 3) 한 달에 한번 설교시간을 드릴 것 4) 중요한 행사에는 먼저 같이 가자고 말하고 모시고 갈 것 5) 가능하면 의도적으로 시간을 마련하여 대화의 시간을 만들 것 6) 처음은 결혼주례나 행사의 집전을 예의로 권하여 드릴 것 7) 항상 교회 잘되는 일은 먼저 하님께 영광, 다음은 원로목사께 돌릴 것 8) 일반 길흉사 행사 때 축도는 반드시 원로목사께 부탁 할 것 9) 장기목회자이기에 반대자도 있지만 깊이 정든 50% 팬들의 눈에 섭섭하게 하는 모습 보이지 말 것 10) 원로목사가 목회한 문화가 교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젖어 있는데 그것을 단숨에 바꾸려 말고 자신이 적응하고 답습하며 보이지 않게 자기 목회를 접목시켜 나가도록 할 것.

4. 원로 목사에게 잘 못하는 후임 목사.

1) 원로의 이름을 주보에 당장 지우고 자기 옆으로 또는 주보 뒷면으로 옮기는 것 2) 원로목사가 부담스럽다고 교인들에 말하는 것. 3) 원로목사의 목회나 거취에 대하여 폄하 하거나 비평 하는 것 4) 원로목사가 교회와도 친절히 대하지 않고 경원시 하는 것 5) 원로목사를 자기를 돕는 우군으로 생각하지 않고 훼방꾼으로 생각하는 것 6) 원로목사 충고를 잘못된 시어미로 불평하며 거부하는 것 7) 원로목사를 교인들에게 존경도 못 받는 주제에 귀찮스럽게 군다고 생각하는 것 8) 원로목사 앞에서 담임이라고 건방지게 구는 태도를 취하는 것 9) 당회를 동원하여 원로목사 교회 출입금지 시키는 것 10) 원로목사는 어른으로서 그 교회는 더 잘 알기에 자기 경험과 표준에서 충고할 때 자기보다 못한 시대에 뒤 떨어진 것을 가지고 지적하고, 교정을 요구한다고 안색이 변하거나 굳어지거나 말 대꾸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수용할 것.

5. 원로 목사에게 잘하고 못하는 것

1) 동신교회 김세진 목사 후임 H 목사는 원로목사 이름을 주보 뒷면에 조그만 하게 실었다. 원로 김세진 목사는 그 교회를 개척하여 큰 교회를 만들었고 그 교회에 자녀들이 다니고 사위가 장로였다. 후임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식이라고 그렇게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른을 존경하는 한국교회 문화에는 무례한 행위였다. H 목사님은 심히 어려운 목회를 하다 중병으로 소천했다. 사위 장로가 당회에서 후임목사에게 협조했겠는가.

2) C 교회 후임은 자신의 위임목사 투표를 하는데 원로에게 설교는 안 시키고 공동의회 사회만 시키는 목사였다. 원로를 청하였다면 반드시 설교를 시키고 회의의 사회를 부탁하는 것이 예의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잘못된 목사이며 예절 교육이 전연 안 된 목사이다.

3) 서울에 S와C 교회 후임도 원로목사 아름을 주보 뒤편에 조그마하게 실었다. 원로목사 이름을 뒷면에 조그만 하게 넣는 것이 한국 예의에 맞는가? 원로목사들을 그렇게 서원하게 하면 권위가 한 차원 높아지고 목회가 더 잘 되는가? 선임의 마음도 즐겁게 못하는 주제에 교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는가?

4) L교회는 역사는 있고 교인은 많지만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무리한 부담을 시키며 교회를 번듯하게 신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후임이 부임하여 설교시간에 수십년 된 교회가 건물이 이게 무엇이냐고 비판 설교를 하였다. 원로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원로목사 사모가 구역장 하던 것을 짤라 버렸다. 원로에게 인사하러 오거나 상의하러 오는 일은 물론 없었다. 괘씸한 마음의 원로는 수십년 정든 팬들의 불평을 그대로 방치하자 후임은 얼마 있지 못하고 쫓겨났다.

또 공부 많이 한 학자가 후임으로 왔다. 원로에게 인사도 오지 않았다. 또 괘씸죄에 걸려 쫓겨났다. 그 다음 후임이 또 왔다. 이 후임 목사는 자주 교체되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하였는데 원로 목사님을 아버님처럼 존경하고 상의를 드리고 예의를 갖추었다. 원로 목사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으며 안정된 목회를 잘하고 온 교회에 환영을 받고 있다. 원로목사가 후임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원로에게 그 예의도 안 갖추는 자존심 어디에다 쓰려는가?

L교회 원로목사는 은퇴후 그 교회 출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괘씸죄에 걸리면 덕 될 것이 없는 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원로목사가 후임에 결함을 덮어주려 하지 않고 방치하고 못 본척 한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 교회 출석을 하던 떠나 있던 원로목사의 비중을 50%만 두고 목회하면 50% 원로목사 팬들은 후임목사 품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원로 목사를 경원시하고 못 마땅하게 생각하면 50% 원로목사 팬들은 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5) B 교회 목사는 17년 동안 그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건축하고 은퇴하였다. 장로들이 후임을 목사에게 부탁하기에 시골에 있는 한 목사를 좋게 보고 후임으로 청빙했다. 그런데 하루는 장로들이 목사 집에 오더니 후임목사가 목사님이 우리 교회 오니까 너무 부담스럽다고 다른 교회로 가시도록 하여 달라고 부탁하기에 왔다고 했다. 시골 무명목사를 자기가 세운 도시 중형교회에 인도했는데 그렇게 박대하는 것이다. 목사이기 이전에 그런 배은망덕한 것이다.

6) X.교회 후임목사는 원로가 추천하여 부임한 담임이 되자마자 자기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원로목사 이름부터 끌어 내리기 시작 하였고 자기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당회에서 원로에 대한 불평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기가 높아지는 것인 줄 착각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라” 하셨는데 자기를 후임으로 세운 은인이요 선배인 원로목사를 끌어 내리고 원성과 성토부터 하는 목사가 과연 목사의 자질이 있는가?

이상과 같은 5가지 조문을 참고하고 선배요, 은인인, 원로목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성의를 다 하였을 때에 어느 원로가 후임 목회자를 돕지 않겠는가. 은혜를 아는 후임을 왜 싫어하겠는가. 원로목사는 후임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고맙게 여기는 그 자세와 심성을 보기 원한다. 그렇게 하면 원로 눈치 보지도 말게 하고 자신의 목회철학을 소신것 펼치도록 뒤에서 도와 줄 것이며, 전적으로 돕게 되어있는 것이 선임의 심리요, 선임의 공통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섭섭하게 하면 원로도 사람인지라 해꼬지 하고 헐뜯고 배척운동을 할 수 있는 동물적 사람이란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은 분이 있다면 그분은 성자(聖者)로 모셔야 할 것이다. 원로가 바라던 안 바라던 상관말고 후임은 이상과 같은 예의를 갖추면 아름답고 교회와 자기에게 유익하다.

원로목사의 5가지 유형과 원로목사의 처신

1. 원로는 어디에서 살던지 후임이 목회를 잘하도록

원로는 교회가 잘 되도록 원근에서 후원만 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 생각한다. 원로가 후임과 갈등을 빚어 구설수에 오른다면 어떤 이유로도 덕이 될 수 없으며 현명한 처신을 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후임이 목회를 잘하면 다행이려니와 그렇지 않고 원로가 아무리 도와주려 하여도 후임이 목회를 잘못하여 장로들과 교인들과 갈등을 빚고 많은 실수를 자아내어 목회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면 원로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후임이 사임을 하고 떠나더라도 원로목사 앞에 와서 그렇게 도와주시려고 노력해주셨음에도 제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여 더 이상 할 수가 없어 물러갑니다. 목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하여 주십십시오 사과하고 떠난다면 훌륭한 원로의 인격과 성직의 품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말대로 용이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에 후임이 떠나도 원로다운 원로가 될 것이고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교회에 유익을 주게 되는 원로가 될 것이며 교회는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다.

2.원로 목사의 처신의 5가지 유형

A형 원로목사 처신 형.
1) 외국 또는 멀리 이사를 가서 살며 교회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2) 직계가족까지도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가서 섬기게 하고 그곳에서 목사 자녀답게 교회를 섬기며 살도록 한다 3) 예우는 교회가 처리하여 주는 대로 감사하게 수용하고 불만스러워도 내색하지 않는다 4) 멀리서도 후임에 대하여 원성이 들리면 전화로라도 당회에 관용하고 협조토록 권유한다 5) 후임목사의 약점이 거론되면 이해하고 잘 도와 훌륭한 목사로 키울 것을 권유한다.

B형 원로목사 처신 형.
1) 한 달에 한번 예배에 참석한다. 이유는 원로한분의 참여가 후임설교에 50% 이상의 중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2) 당회 출석은 하지 않고 유고가 있어 협조를 요청 할 때에만 참여한다 3) 교회와 후임에 관하여는 유구무언 한다 4) 길흉사간에 당회의 손이 모자라거나 후임이 출타하였을 경우 지원 협조를 요청하였을 때에 협조하고 그 외에는 일체 사절한다 5) 목회에 관하여는 후임목사가 원로의 협조를 요청하였을 때에만 원로는 최선을 다하여 배후에서 암중 협조한다.

C형 원로목사 처신 형.
1) 후임과 교회가 요청하면 한 달에 한번정도 설교한다 2) 교회출석은 하되 가능한 한 모든 행사에 참여를 절제한다 3) 후임 목사에게 신경 쓰이게 하는 언행은 삼가고 가능한 한 동석은 피한다 4) 후임 목사가 상의나 보고하려 오면 독자적으로 하도록 권유하고 사양한다 5) 후임목사의 신상이나 목회에 관한한 어떤 교인들의 소리도 듣는 것으로 끝난다.

D형 원로목사 처신 형.
1) 그 교회에 원로이기 때문에 그 교회에 출석한다(마땅히 갈 교회도 없기 때문) 2) 그러나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3) 어떤 바램과 기대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 상태이다 4) 교회에서는 한 교인으로서만 처신한다 5) 그런 원로목사님이 동참하심으로 후임은 목회와 매사에 더 조심하는 유익이 있을 것이다.

E형 원로목사 처신 형.
1) 교회 원로목사 사무실을 마련하여 매일 출근한다 2) 교인들이 싫어하여도 상관하지 않고 매월 한번씩 설교를 자원하여 한다 3) 담임목사와 다를 바 없이 전부를 총괄하고 시시콜콜 간섭하고 후임을 부목 취급한다(대구 D교회) 4) 매일같이 후임이 보고를 하기를 원하며 하도록 지시한다 5) 매번 당회에 참석하며 참석 전에 사전보고를 받고 결정한 다음 당회는 요식절차만 밟게 한다 6) 길흉사간 모든 행사를 자기가 우선으로 하고 싶어 한다 7) 후임목사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결점을 헐뜯으며 불편하게 만든다. 8) 후임목사 배척운동에 배후 조종자가 된다 9) 후임이 사랑받고 환영받는 것은 시샘이나 못 보아준다 10) 질투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원로의 위상을 상실하고 교인들의 증오심을 쌓는다.

필자 본인의 원로 처신 법.
본인은 은퇴시에 교회 앞에서 마음을 비우고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1. 일체 설교하지 않는다 2. 일체 축도를 하지 않는다 3. 일체 결혼주례를 하지 않는다 4. 후임목사는 장로들과만 의논하고 본인과 의논이나 보고는 일체 금한다 5. 교인들도 오늘부터 나와는 관계를 끊고 후임목사와 당회원들과 의논하라. 은퇴 후 후임이 설교를 부탁하기도, 축도를 부탁하기도, 보고하기도, 설날에 세배 오기도 하였으나 일체 금지시켰다. 그것은 후임이 불편할 것이며 필자 또한 진심으로 그런 그 자체를 원치 않았고 지금도 원치 않는다.

원로후임 지침서 종합결론

원로목사들이 모두 잘 처신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개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처신을 한다고 소문이 파다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생을 교회를 위하여 헌신봉사 하였다면 은퇴후 선을 넘지 않고 헌신 봉사의 마음으로 직간접으로 그 교회를 돕는 일만 하고 인생 골인해야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이상의 원로 처신 형 중 어디에 속하는가. 어느 형이 진정 교회를 위하는 처신 형 인가. 어느 형이 후임과 교인들이 가장 원하는 형인가. 사실 어느 형이 가장 교회를 위하는 형이라고 성경에는 없고 헌법에도 없다. 그것은 각자 신앙양심에 따라 마음을 비우고 교회를 진정 위하는 편에 선다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후임이나 교회가 원로가 교회를 완전히 떠나기를 희망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무례한 행위이다. 어느 교회 시무장로는 원로장로가 당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법이 없는가 라고 물어오기도 하였다. 그것은 원로장로가 당회에 참석하여 시무장로 시절처럼 좌지우지하는 월권행위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로목사나 원로장로나 월권해서는 안된다.

잠시 세상에 살며 주님 맡겨주신 일을 하다가 잠시 후에 주님께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주님 앞에 가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목회자들의 처신이 되어야 될 것이다. 성직자란 무엇을 위하여 한 평생을 산 직업인 인가. 앞으로 얼마나 살겠는가. 필자는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얼마나 하나님의 과녁을 접근할지 의문이다. 원로목사는 마음을 비우고 교회에 일체 간섭 않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원로 목사님들은 마음을 비우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헌법에 원로목사 이름을 주보 어디에 두어야 한다는 조문은 없다. 원로목사를 존경하란 조문도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설교시키고 축도시키란 조문도 없다. 세배하라는 조문도 없다. 대접하고 찾아뵈라는 조문도 없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요 예절에 속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한국 문화와 예의범절을 반드시 지켜야한다. 목사는 사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필자는 연세 높으신 어른 성도들을 모시고 은퇴시까지 부목사들을 데리고 세배를 드렸다. 그것이 목사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 존경의 우리의 문화요 우리의 예절을 지키니까. 존경과 섬김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여야 한다.

초기에는 원로목사 이름은 주보 맨 위에 담임보다 더 큰 글자로 배치하고 그 다음 작은 글자로 담임 이름을 썼다. 그런데 점점 어디서 온 문화인지, 후임목사의 오만에서인지, 옆으로 오더니 이제는 주보 뒷면에 두는데 십계명에 인륜에 첫째 계명이 부모공경, 어른 공경하라는 것이고, 우리나라 문화는 어른을 존경하는 것이 예의이며 지당한 것인데, 요즘 이런 무례한 행태의 소수 목사들이 있는데 여러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실무는 떠났지만 원로목사 이름을 주보 뒷면에 배치하는 것은 교회 어른이요 선배요 은혜를 입혀준 분에 대한 존경심과 예의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예의와 존경심이 상식수준 이라면 그런 행동을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식 수준도 안되는 무례한이 그 교회에서 목회를 얼마 동안 할수있을까? 서양가면 서양식 세배하고 동양에서는 동양식 세배하는 것이 예의이다.

그것이 서양 문화이며 예절인가. 그렇다면 서양에 문화와 예절은 서양에 가서 지키고 동양에서는 동양문화와 예절을 지켜야 한다. 어찌하여 교인이나 당사자가 못 마땅히 생각하는 것을 은혜를 입은 후임이 그런 무례함을 행하여서 되겠는가? 은혜를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목사는 누구에게 던지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동신교회 장로님과 일반 교인들도 김세진 목사님 후임에게 상식에 벗어났다 생각하고 서운해 했는데 선임자의 후광을 입은 일반인도 아닌 후임목사로서 그렇게 몰 상식해서 되겠는가. 한 마디로 목사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국인, 한국 인간이 된 목사여야 한다.

영세교회 김충열 목사님은 주보에 자기 이름을 전도사 밑에 아니 사찰 밑에 두었다. 그렇다고 그 교회 교인들이 김 목사님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더 존경한다. 영세교회 목사님은 아버님 대를 이어 목회 하는데도 그렇게 겸손하시다. 그의 겸손이 그 덕목이고 그의 인격이다. 그런고로 존경을 받는다.

중국에 성왕으로 불이는 “요” 임금이 있었다. 그는 아들을 제쳐 두고 신하 “순”을 왕으로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어린아이 하나에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라,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내이름으로 대접하면 곧 내게하는 것이라고. 요즈음 목사들 중에는 목사는 목사인데 인간이 덜 된 목사가 더러 있는데 그의 인간됨이 그의 목회에 까지 그렇게 미치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석두 목사이다. 필자는 어느 교회 원로 후임의 오만한 행태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제삿날이 3년밖에 없구먼. 예측대로 3년만에 제사를 지내고 말았다.

필자의 이상 논한 논지는 교리가 아니다. 극히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원로 목사 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고 그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앞서 논한 후임목사 지침 5가지를 실천하여야 한다. 원로가 수용하던 아니하던 그것은 그분의 몫이다. 후임은 실천하는 것이 원로 목사에 대한 예우이며 예의의 기본 원칙이라 생각한다.

후임 목사들은 교회 평화와 발전을 위하여 덕이 된다면 광대 춤이라도 출수 있어야 한다. 임기응변 적으로 목사나 장로님들을 섬기는 자세로 처신 할줄 알아야한다. 어떤 후임은 왕이 된것처럼 오만하며 군림하려 하는데 오늘날 교회가 목사를 왕으로 모실 교회는 없다. 그런 태도는 아주 잘못된 자세이며 그렇게 처신하면 자기가 망하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서울에 D교회 후임은 선임이 원로도 아닌데 장기 목회한 선임을 원로처럼 예우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존경과 섬김의 영향법칙을 아는 명석한 목사이다.

원로목사도 사람인지라 섭섭하게 하면 좋아할 수 없고 감정이 있지 않겠는가? 천신만고의 풍랑을 해치며 평생 이룩한 교회에 부임하여 넘치는 복으로 살면서 고마워 할 줄도 모르는 배은망덕 자라면 자신은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끝으로 양편 모두가 다 잘하여야 한다. 한쪽만 잘해서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공동체는 관계성이 원만하여야 한다. 교회는 더더욱 그러하다. 원로는 후임을 배려하고 후임은 원로를 존경하는 마음자세를 가짐이 가장 아름답고 좋은 처신 법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처신하고 있다. 자랑이 아니라 필자와 같이 처신하기도 쉽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에도 후임이 원로에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이 없는바 아니다. 그 섭섭함을 교회에서 표현하였다면 후임의 목회운명을 달라졌을 것이다. 교회를 위하여 침묵하는 것이며 교회를 위화여 단념하는 것이며 교회를 위하여 마음을 더더욱 비우고 가는것 이다. 필자의 섭섭한 경험을 말한다면 3척 동자가 들어도 웃을 일이댜. 목사가 되기전에 인간부터 바로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신학교에 원로의 처신법도, 원로후임의 처신법도 교육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목회현장에서 문제에 부닥힌 당사자가 참고할만한 아무것도없고 맨토를 찾기도 쉽지않기 때문에 필자는 시리즈로 나름대로 참고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희망하며 이상을 논하였음을 이해하고 관용을 바랍니다. 원로목사나 후임의 처신에 절대진리는 없습니다. 하나의 참고서 입니다.

무궁교회 원로 장달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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