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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산목사 "구원은 은혜라는 트랙에 서서 믿음으로 움직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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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1-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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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jpg갈리디어서 본문(갈 2:15-21)에는 한번도 안나온 단어가 소개된다. 이 단어는 갈라디어서의 핵심이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이 단어를 이해안하고 기독교를 이해할수 없다. 동사와 명사로 나오는데 한국어로 '의롭게 함을 얻은 것'으로 표현한다. 본문에서 여러번 반복되는데 교회를 어느정도 다니면 알겠지만 짧은 말에 여러번 반복되면 중요한 말이다. 본문을 통해 사도바울은 개신교에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을 가르친다.

칭의와 성화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다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말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것을 영어로는 'Justification' 이다.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면을 떠나 한국말로 쉽게 말하면 정당화됐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당하게 보신다는 말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진리의 삶이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간단하게 두가지만 생각해 보자.

신학자는 첫번째 '칭의'라고 말한다, 두번째는 은혜로 신앙생활하며 성장하는 것을 은혜의 '성화'라고 말한다. '칭의'나 '성화'라는 단어는 굉장히 어려운 말들이다. 교회에서 특별히 사용하는 말이다. 이를 다시 정의내리고 이해를 해야 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의를 추구하며 산다. 누구나 죄인이라고 하면 기분좋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교회에서 자꾸 죄인이라고 한다. 누구든지 죄인이라고 불리기는 싫다. 저도 그렇다.

마틴 루터는 인간의 의(義)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하는데, 나라의 공법을 지키는 것으로 시민의 의라고 했다. 가정과 사회간에는 문화적인 의가 있다. 우리문화에서 올바른 것이 다른 문화에서 올바르지 않을수 있다. 음식먹고 트림하는 것도 문화마다 다르다. 미국에서 손짓을 하는 것도 의미가 다르다.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고, 문화마다 의가 있고, 문화마다 올바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윤리적인 의가 있다. 십계명이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으로 오는 의는 수동적인 의이다. 사도바울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개념을 신학자는 '칭의'라고 한다.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당신은 의로운 사람, 온전한 사람, 올바른 사람, 정당화되었다고 칭했다는 뜻이다.

칭의와 정죄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다 똑 같은 의인


'칭의'는 법정에서 온 단어이다. 칭의와 반대되는 말은 '정죄'함이다. 정죄함은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칭하는 것이다. 칭의는 죄있는 사람을 무죄로, 더나아가 의로운 사람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은혜라고 말한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용서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시고 의인으로 취급해 주셨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은,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았다고 끝나면 반의 복음이다. 완전한 복음을 말할때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셨다고 해야 한다.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인으로 받아주시고,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칭의는 단 한번 일어나는 사건으로, 진행되는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도 저사람보다 더 의롭다고 말할수 없다. 의로운 것은 단 한번 칭해지는 것이고 순간의 사건이므로, 내가 저사람보다 더 의롭다고 말을 할수 없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자유함을 느낄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칭의' 즉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조건은 예수님을 믿어야 하며, 예수님의 공로에 의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동적인 의인이 되어 내밀것이 없기에, 누구보다 내가 더 의롭다는 개념이 없다.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다 똑 같은 의인이다.

'칭의'는 말그대로 선언이다. 비를 맞을때 땅이 하는 일이 없다. 땅은 그냥 있다. 그러면 비가 와서 땅을 적셔준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땅이 비를 잘맞는다고 한다. 그것처럼 우리는 위에서 내려오는 은혜를 누워서 받는 것이다. 그렇게 '칭의'라는 내려오는 선언을 받는 것이다.

'믿음 구원'인가 아니면
'성화 구원'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분의 모든 의가 우리를 덮어주심이 칭의의 개념이다. 신학적으로 잘아는 말이고, 장로교회를 다녔다면 너무나 많이 들은 이야기일것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면, 이러한 복음이 방탕한 생활을 조성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을수도 있다.

미국 어느 도시에서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설교를 했는데, 그설교때문에 화제가 됐다. 우리의 공로는 없으며, 하나님이 우리때문에 십자가에서 예수를 못박으시고,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고 설교를 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믿음 구원'이 아니라, 오직 '성화 구원'을 외치는 분이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노진산은 반쪽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비난했다. 믿음이 모든것이 해결한다고 가르침으로, 거룩하고 정결하고 성결한 삶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은 마음대로 살고 법을 어기면 방탕한 생활을 할까 우려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갈리디어 토론의 내용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그냥 선포하면 착하게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착한 행실이 구원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사도바울에 항의했다.

갈 2장 17-21절이 사도바울의 대답이다. 사도바울도 그 걱정을 인정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을수 있고 짓고 산다. 저도 마음속의 죄로 인해 갈등과 고뇌의 회개의 마음이 매일마다 있다. 여러분들도 그럴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원인은 은혜의 복음이기 때문이 아니므로, 그 책임을 예수께 돌릴수 없다고 사도바울이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짓고 실수하며 쓰러진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때문에 혹은 은혜의 복음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한다. 은혜나 복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죄를 진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하나님은 다 의롭게 하셨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죄를 짓게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죄를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의 댓가를 받아야 한다. 은혜와 예수의 십자가가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은혜의 복음을 핑계로 불건전한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칭의'를 잘못 이해를 하는 것이며, 은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은혜가 우리 마음 속에 있고, 은혜로 인해 하나님앞에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진정한 변화가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항상 죄로 인해 갈등속에 있으며, 쓰러지고 또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이 된다.

구원은 은혜로 순종이라는 트랙에 서서
믿음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종하라고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기찻길의 트랙이라고 가정해 보라. 율법은 나쁜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지나치게 살면서 율법이 끝나고 우리는 은혜로 산다고 하면 안된다. 율법은 좋은 것이며 지켜야 한다.

율법이 나쁜것이 아니라 나쁘게 남용하는 우리의 잘못이다. 율법이나 은혜에 책임을 전가하면 안된다. 우리가 나빠 법을 남용한다. 우리가 기차라면 엔진은 하나님의 은혜, 성령님의 능력이다. 우리인 기차는 혼자는 못간다. 하나님의 은혜의 엔진이 있어야 한다.

기차를 탔는데 기름이 없고 엔진이 없다면 안움직인다. 우리인 기차를 움직이는 엔진이 은혜이다. 성령님의 역사이고 능력이다. 기차칸들을 연결하는 고리를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에 구원은 은혜로 순종이라는 트랙에 서서 믿음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순종이라는 트랙, 율법이라는 트랙에 서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기에 순종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은 은혜이다.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에께 의로움을 받는다. 하나님은 율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고 쓰러지고 멸망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을 지키는 자를 보내주셨다.

완전히 율법을 지키고, 완전히 율법안에 있고, 율법을 지킬뿐만 아니라 완성하실 분이 우리에게 왔다. 그 분과 연합됨으로 그 분의 율법을 지킴과 완성이 우리의 완성함이 되는것이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라 이야기를 한다.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가장 험악한 죽음을 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없음을 잘말해준다. 얼마나 우리가 처절하기에 인류를 만드신 하나님의 아드님이, 가장 아름다운 그분이, 험이 없으신 그 분이, 죄없으신 그분이 인류의 가장 처참하고 험악하고 더러운 십자가에 사람들앞에서 벌거벗고 십자가를 지셨겠는가.

얼마나 우리가 형편이 없었으면, 봐줄수 없을 지경이었나. 얼마나 우리가 소망이 없는 상태였으면, 순결하시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 그것은 우리의 상테를 말해준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의 지옥같은 본질을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위하여 진정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때 나의 공로와 자랑이 꿈틀거리는 자아가 십자가에 같이 못박혔다. 십자가 밑에서는 자신을 믿고 자랑하고 드러내려는 모습이 있을수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못박혔을때 우리도 죽는 것이다. 나의 자아와 나의 공로도 같이 죽었다.

그렇게 처참한 죽음을 통해 우리의 소망없는 상태를 말하는데도 우리는 십자가에서 자꾸 내려오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내 경험을, 내가 읽은 책의 지식을 자꾸 내놓으려고 한다.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십자가 밑에서는 아무것도 내놓을것이 없다. 십자가 밑에서는 다 죄인이고 의인이다. 마틴 루터는 동시에 죄인이고 동시에 의인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분을 믿는다면 십자가 밑에서 같이 죽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내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이다. 사도바울은 담대하게 선포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두종류의 자아가 있다. 내 자신을 위해 사는 나와 주님을 위해 사는 나의 모습의 갈등을 평생가지고 있을 것이다. 철이 들면 그렇지 않을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그렇다. 하나님의 칭의를 받은 사람은 칭함받은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중요하고, 순종이 중요하다. 그러기에 경건함과 거룩함이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수 있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칭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칭의를 받았기에 의로움을 받았기에 이제는 내안에 그리스도 있기에 그리스도의 힘으로 우리는 살수 있다.

노진산 목사/ 믿음으로사는교회
www.lfcckp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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