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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장로교회, 김한요 목사 초청 부흥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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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2-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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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장로교회는 4월 13일(금)부터 3일간 김한요 목사(세리토스장로교회)를 초청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주제로 춘기부흥성회를 열었다. 첫날 집회는 임시당회장 김영인 목사의 인도로 진행됐으며, 김한요 목사는 히브리서 11장 8-12절을 본문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할 때"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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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김한요 목사. 김한요 목사는 현재 안식년 중이다. 불같은 설교가 아니라 조용한 스타일의 설교가. 조목조목 설득력있는 예화를 들어 말씀을 전개해 나가는데 어느듯 결론에 도달하고 마음을 움직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동안 종교생활 했던 것 다 내려놓고 히브리서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신앙을 바로 세우는 기회를 가지라는 설교의 시작이 인상적.

이번에는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 말씀을 통해 믿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믿음을 리마인딩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테니 웃어달라. 정신병동에 어느 환자가 모든것이 정상인데 맥주병만 보면 '여보'라고 해서 퇴원을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 '여보'가 아니라 '맥주병'이라고 해 퇴원수속을 밟고 있는데 휴지통 옆에 소주병을 보고 '처제가 여기 웬일이냐'라고 하여 다시 입원을 했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속에서 배운다. 이것은 맥주병이고 이것은 소주병이라고 배우는데 여전히 잘 모른다. 그러다가 드디어 깨달음을 주셔서 이름을 바르게 부르게 된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의 재미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망각으로 신앙의 기초를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갑자기 우리도 모르게 종교생활을 할 때가 있다. 바리새인은 스스로 종교적이라고 믿었지만 예수님에게 가장 야단과 비판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바리새인이 된다. 목사도 직분자들도 버릇처럼 신앙생활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종교인화 되어 믿음의 기초를 망각하고 소주병을 보고 처제라고 하는 그러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면 다시 입원해야 한다.

믿음을 망각하고 기본적인것을 망각한다.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하나님이 상기시켜 주시는 믿음을 다시 꺼집어 내자. 믿음이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는데 세상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남보다 앞설까 하면서 노하우를 가지고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이 자꾸 교회안에 들어와 소주병을 보고 처제라고 부르는 잘못되고 왜곡된 시대에, 우리의 믿음을 히브리서 11장으로 두들겨 보는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믿음을 안다는 선입관을 내려놓고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자. 오직 그리스도이며 오직 믿음이다. 그것외에는 다른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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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1.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간 믿음이다. 이 말부터가 우리에게 안맞는 이야기이다. 현대인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바람부는대로 가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바쁜데 일초일분을 다투며 산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한 첫번째 믿음의 성격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믿음은 말이 안되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저는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고 상식적인 것을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신앙인이라면 믿음의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합리적 이성적 상식적인 선에서 하겠다면 믿음의 영역은 아예 들어갈 생각도 못한다. 믿음이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30년전 미국에 이민왔는데 그때만 해도 김포공항에는 환송예배를 드린 기억이 난다. 이별의 아픔은 있었지만 왜 미국을 갈까 말까 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은 좋은 나라이고 기회의 나라이고 앞날에 자녀들에 대한 기대가 있는 새로운 터전에 대한 기대와 꿈이 있었다. 더 좋은 나라에 간다는 기대가 있었기에 내가 왜 무슨 잘못이 있기에 미국가느냐고 온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는 다르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떠나라고 했다. 갈대아 우르는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이다. 4대 문명권중 하나였다. 가장 화려한 세계중심이었으며 지금의 뉴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서 떠나면 다 고생이다. 지금있는 곳과 비해 형편이 나쁜데에 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처참한 일이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갈 바를 모르고 가는 발걸음은 더 나은것으로 갈수 있다는 우리와 같은 기대는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문명권의 중심인 갈대아 우르 지역에서 떠나는 자체가 어렵고 힘든 발걸음이었다. 자기의 기반을 두고 떠나는 고향을 떠나는 자체가 고생이다. 당시에는 어떤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길을 가다가 도둑맞고 강도를 당할수도 있었다. 참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것은 4천년전 이야기이다. 갈대아 우르 지역에 발견한 것을 보니 벌써 많은 교육시설들이 있었고, 수학적 계산아래 지어진 정교한 건물이 발견ㄴ됐다. 왕성한 비지니스 활동과 많은 종교활동의 흔적을 발견한다. 발전한 모습속에서 아주 미신이 판을 친다. 그러한 도시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꺼집어 내신것이다. 가라고 하시니 가는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같은 이민자였다.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나가는 자였다. 우리도 이민자이다, 우리 마음을 가장 잘아는 자가 아브라함일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민을 믿음으로 갔다면 우리도 이땅에 이민자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이 관건이다. 믿음이 아니면 아니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이민자가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고복수의 타향살이이다. 고향을 떠난다는 자체가 힘든일이다. 필라로 이민을 갔는데 한국에서 아버지는 음악선생이고 어머니는 피아노 레슨을 했다. 이민와서 봉제공장에 나가 일했다. 2년만에 흑인가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까지 의욕적으로 일했지만 겨울에 장사를 시작하여 하루매상이 20불을 못넘었기에 전기세도 안나왔다. 새해첫날에도 예배드리고 문을 열었는데 우유와 빵을 팔아 매상이 100불이 넘자 기념 가정예배를 드렸다. 이런 것이 이민자의 아픔이다.

그 아픔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좋은 나라에 왔는데도 쉽지 않다. 장사하면서 수차례 강도를 당하면서도 이민자의 삶을 살았다. 그때는 한번도 가정예배를 빼먹은 적이 없다. 새벽 6시에 나가 밤 10시에 들어오면 저녁을 먹고 가정예배를 밤 11시가 넘어 드렸다. 이유는 하나님외에는 기댈곳이 없다. 한국에도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어도 미국오면 안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엎드리는 삶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다.

그런데 배부르고 등따뜻하니 가정예배도 안드리고 하나님앞에 엎드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변해간다. 그 믿음이 우리를 살려내고 여기가지 인도했는데 믿음을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여기가지 성공하게 된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앞에 겸손했던 믿음을 망가뜨린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가며 하나님을 붙잡던 믿음에 대한 감격과 간절함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민의 삶은 바로 고난과 하나님을 붙드는 삶속에서 여기가지 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밀알을 만든 이재서 박사는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으로 보인다>라는 책을 냈다. 그분은 뉴저지 럿거스 대학에서 공부할때 고생을 많이 했다. 나중에 그 책에 명언이 나오는데 "고난은 언제나 설명서 없이 찾아온다. 설명서는 나중에 온다. 고난은 이메일로 오지만 설명서는 배를 타고 온다"라는 것이다. 고난을 당하는데 왜 당하는지 모른다. 가기는 하는데 도착점을 모른다. 이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어느쪽으로 가는지 알면 평온이 오는데 알지 못한다는 것은 힘든것이다.

그런데 이민자 아브라함의 믿음은 지금 내가 이유를 몰라도 간다는 것이다. 어디로 도착할지 몰라도 하나님을 붙잡고 간다는 것이다. 이메일같이 지금 당장 힘들수도 있지만 분명한것은 설명서는 배타고 온다. 설명서가 도착하는 날 '그랬구나' 이해하는 날을 믿고 지금은 이해가 안되고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붙들고 가라는것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나는 갈 바를 알아야 간다. 교회행정도 그렇게 한다. 방향을 알고 결정하고 추진한다. 이것이 우리의 습관이고 당연하다. 믿음의 본질을 말할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는 것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모하게 맨당에 헤딩하라고 하는 것인지 무엇이 가르쳐 줄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하며 메세지를 들어라.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2. 장막에 거한 믿음

또 하나 여기서 가르쳐 주는 믿음은 아브라함이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본문을 보니 장막에 거했다고 한다. 지난 5주간 이스라엘에 있었다. 그래서 다니다 보니 지금도 유목민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다. 지금도 장막을 쳐놓았다. 장막은 등산용 멋진 텐트가 아니다. 그런곳에 아브라함이 살았다. 우리는 이민와서 제일먼저 하는 일은 집부터 사려고 애를 쓴다. 집을 사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이 안정이다. 그래서 내 집을 사면 이민자들의 등이 따듯해진다. 이상하게 아브라함은 본능적으로 돌집을 짓고 자기의 근사한 집에서 안주하고 싶은을텐데, 아브라함은 장막에 살았다. 그것이 또 다른 믿음이다.

장막에 거하는 믿음이 무엇일까.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지으실 성을 바라보았다. 그 성은 영원한 자기의 거주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지금 나는 지금 장막에 산다는 것이다. 정말 멋있는 믿음이다. 천국이 영원한 거주지, 영원한 도성이다.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 즉 맨션택을 예비하고 다시와서 데리고 가신다고 했다. 그 영원히 거할 맨션인 대저택을 바라다 보고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체면이 깍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장막에 일부러 의도적으로 자손들과 더불어 살았다.

커네티컷에서도 목회를 할때 살전 집의 큰 뒷마당이 있었다. 여름이 되어 뒷마당에 텐트를 치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래도 자기방에 좋은 침대가 있지만 텐트에서 잔다. 텐트에서 자는 애들을 보고 궁상맞다고 하는가. 아니다. 자기집이 있고 방이 있는 사람은 텐트에 사는것도 낭만이다. 궁상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그 생각으로 장막에서 거했다. 그런 마음으로 장막의 불편함을 뛰어 넘었다. 그것이 믿음이다. 저사람은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는데 나는 아직도 이런다며 신세타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자기집을 확신하니 오늘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는 것이다. 영원한 집이 있다. 저 성을 바라 보았다는 것이 오늘 장막에 사는 힘이다. 바로 믿음의 힘이다.

명품은 작퉁이 많다고 한다. 아는 교인이 큰 반지를 선물로 받아 끼고 다니다가 강도를 당해 빼앗겼다. 그 다음부터는 좋은 것은 안차고 집에 두고 다니고 가짜를 차고 다닌다. 희안하게도 진짜가 집에 있는 사람이 가짜를 사용할때 그냥 아무렇지도 않고 하고 다닌다. 그런데 진짜가 없어서 흉내내고 싶어서 작퉁을 산 사람은 무엇인가 불안에 떤다. 그런데 진짜가 집에 있으면 가짜를 하고 다녀도 당당하다. 진짜가 없고 흉내내고 싶어 작퉁 한 사람은 두려워 하고 열등감을 커버하려고 애를 쓰면서 사람이 아주 치졸하게 된다.

내가 영원히 거할 도성을 없으면 장막에 거하는 것이 열등감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 번듯한 집에서 살아야 사는 것 같다. 집을 사는것도 괜찮은데 정말로 믿음에 관건이 되는 이 일에 현세적인 것이 눈을 가린다. 그 집이 나의 정체이고 전부이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의 도성을 못보니 결국 믿음없는 자와 같다. 교회는 올지 몰라도 자랑하려고 오는지 모르겠다.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한다는 것은 여유이다. 하늘의 것을 가지고 있기에 땅의 것을 상대적으로 덜 가지고 있어도 그 것으로 자존심이 상하거나 비교하지 않는 믿음의 여유가 있다. 장막에 거하는 것이 우리가 소유해야 할 믿음이다. 이것만이 물질적으로 범람하고 가시적이고 반짝이는 것이 골드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마치 뜨거운 칼날에 버터를 바르듯이 믿음의 능력으로 이 현란한 세상을 가를 힘은 믿음밖에 없다. 믿음으로 더 반짝거리는 황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기복주의이다. 저사람은 하나님이 없어도 저 정도 벌었는데 나는 하나님이 있기에 더 벌어야겠다는 것이 기복주의이다.

이상하게 사람이 변해간다. 그런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이 믿음이라면 어떻게 바울의 순교를 이해하고 바울처럼 되겠다는 고백이 어떻게 되겠는가. 스데반의 순교를 정말로 믿음의 힘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스데반을 존경한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어떻게 손양원 목사와 주기철 목사를 신앙의 선배로 모시는 자부심을 가질수 있겠는가. 자꾸 이상한 마귀에 넘어간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했다. 하늘나라의 도성을 영원한 곳으로 보는 믿음의 시야로 장막에 거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을 가지고 세상사람들과 경쟁할 마음도 필요도 없었다.

애들이 4명이 있다. 큰 아이들이 자기것을 동생하고 나누지 않는다. 그러다 싸우는 것을 보고 속상하니 큰 놈을 따로 부른다. 그리고 아빠가 네가 원하는 것을 나중에 다 해줄테니 양보하라고 한다. 그러면 동생하고 노는 태도가 변한다. 그 이유는 뒤에 아버지가 있다. 말만 하면 다 사준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는다. 내 손에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뺏기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놓치않는데, 다 사준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자기 것을 풀기 시작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왜 탕자의 비유에서 왜 형이 더 못됐는가. 탕자가 더 나쁘게 보이는 것은 형은 아버지의 집을 안떠낫다. 그런데 아버지 마음에서 진짜 떠난 것은 형이다. 왜 자신에게는 염소한마리 안사다주고 돌아온 탕자 동생에게 살찐 송아지를 주는가를 아버지에게 항의했다. 아버지는 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예처럼 대했다고 항의했다. 아버지는 다 네것이라고 했지만 큰아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다 자신의 것인데 그 말을 못믿고 자기것을 챙기려고 정신없고 놓치려 않는다,

장막에 거하는 믿음의 비결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꾸 계산한다. 장막에 거하는 믿음을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계산하고 비교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내가 계획하고 내가 계획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도 상식 이성 논리적으로 일이 진행되어야 편하지만 그럼에도 믿음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그 말씀을 듣고 가야하는 영역이 반드시 있다. 그 부분만큼 계산하는 것을 내려놓고 가라는 것만을 의지해야 한다. 내생각과 내계산을 의지하지 않고 가라는 말씀만 의지하고 가는 그 부분에 대한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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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세리토스장로교회 홈페이지에 나오는 김한요 목사 소개.

김한요 목사는 구속사적인 설교에 남다른 열정이 있으며, 소그룹 사역으로 건강한 교회상을 이루는 비전을 가진 목회자이다. 가장존경하는 인물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를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밝히고 있는 그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약 15년간 목회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적 대 각성 운동 (The Great Awakening Movement)’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시대에 그 무엇보다 절실한 새로운 영적 각성을 위해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약력
Eastern University 철학과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hiladelphia) M.Div.
메사추세츠주 앰허스트 한인교회 담임 (1992-1995)
하트포드 제일장로교회 담임 (1995-2005)
세리토스 장로교회 담임 (2005-현재)

저서
하나님의 프러포즈(코나투스)
다윗을 보면 예수가 보인다 (아가페 출판사)
냅킨에 쓴 연애편지 (도서출판 진실한 사람들)
단순한 믿음 (코나투스)
강한교회 강한성도(열린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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