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정석 교수가 말하는 한국교회와 W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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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2-04-19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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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작년에 소천하신 故 이정석 교수님(1950~2011,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의 WCC에 관한 글입니다. 반론차원에서 관계자의 허락을 받아 이 글을 전재합니다. 이 글은 아멘넷의 편집 방향과는 무관하며 고인의 글임으로 댓글 토론이 없음을 이해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주
1950-60년대에 한국교회를 강타했던 WCC문제가 잠잠해지는듯 하였으나 2013년 WCC 부산총회 유치를 기화로 다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한국교회 일부는 과거와 동일한 입장에서 부정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포스트모던적인 21세기의 상황은 상당히 달라서 오히려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교회연합운동에 대해서 반성하고 성찰하며 참여하려는 긍정적 여론도 적지 않다. 본 논문은 한국교회가 교회연합명령에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살펴보고, WCC라는 최대의 연합운동이 한국교회의 연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과연 WCC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를 재평가하고자 한다. 특히, WCC의 주된 비판논리인 종교간의 대화와 종교다원주의의 수용여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 교회연합 명령
교회연합은 교회의 머리와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드린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이렇게 자기 교회를 향한 소원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드렸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0-23)
예수님이 원하신 연합은 일부의 연합이 아니라 전체의 연합( ἵνα πάντες ἐν ὦσιν)이었으며, 연합의 모델은 성부와 성자의 완전한 연합이었고, 연합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임과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이 믿도록 (ἵνα ὁ κόσμος πιστεύῃ ὅτι σύ με ἀπέστειλας; ἵνα γινώσκῃ ὁ κόσμος ὅτι σύ με ἀπέστειλας καὶ ἠγάπησας αὐτοὺς καθὼς ἐμὲ ἠγάπησας.) 하는데 있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한 가르침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σπουδάζοντες τηρεῖν τὴν ἑνότητα τοῦ πνεύματος)"(엡 4:3)고 명령하였는데, 연합의 근거로 7가지 하나됨(몸, 성령, 소망, 주, 믿음, 세례, 하나님)을 제시하였다.
■ 연합명령에 순종하는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연합명령에 순종하여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기회는 두 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20세기초였다. 1905년 6월 25일 남장로교 레이놀즈(W. D. Reynolds) 선교사가 "이제 때가 성숙하였으니 하나의 한국 민주교회를 창설하여 이름을 '한국기독교회'로 하자"는 동의를 하자 선교사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1> 언더우드 선교사도 장로교가 감리교와 같은 교파의 타파를 염원하였다.<2>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교회에 서구교회들이 자기들의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교파를 이식하지 말고 순수하게 초대교회를 이어받는 교파없는 단일교회를 세워주고자하는 선교사들의 숭고하고 거룩한 뜻이었다. 이러한 단일교회론이 대부흥운동으로 하나된 분위기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3>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교회가 하나로 시작할 수 있는 꿈은 조정과정의 실패로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4>
두번째는 일제말과 해방초였다. 1941년 일본교회가 일본기독교단이라는 단일교회로 통합되자, 효과적인 종교통제를 위해 한국교회를 위해 한국교회를 합병할 목적으로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과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을 조직하였고, 해방되기 한 달전인 1945년 7월에는 모든 한국의 개신교회가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합되었다. 해방이 되자 이를 조선기독교단이라고 개명하고 단일조직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교파환원운동으로 무산되었다.<5> 비록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형성된 교회연합이었으나, 이를 창조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고 다시 교파로 돌아가 분열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연합명령에 불순종하는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연합명령에 불순종하여 교회를 분열시킨 과정은 4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선교사들의 분파교회 이식이다. 선교사들이 부흥운동을 주도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의 한국교회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결국 교파주의에 희생되어 본국의 교파교회를 한국에 이식하게 된 것이 한국교회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물론 본국에서 서로 싸우며 분열된 미국 남장로교회와 북장로교회가 각기 자기의 교단교회를 설립하지 않고 한국에서 모든 장로교 선교부가 하나가 되어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운 것은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새롭게 탄생한 한국교회가 전혀 개입하거나 책임도 없는 서구의 교파 분열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리전을 하게 만든 것은 중대한 잘못이요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민족으로서, 그리고 같은 형제자매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나누어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로 외국인에 의해 타의로 서로 분열되어야 하는 불행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당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일제하에서 시작된 분열의 불씨들이다. 박형룡과 김재준의 신학적 갈등, 평양신학교의 폐교와 조선신학교의 개교, 신사참배에 대한 대처방법의 불일치 등은 해방후 장로교회의 최초 분열을 야기하였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교만해져서 독선적이고 정죄적인 태도를 취한 고신파와 진보적인 신학자 김재준의 추종자들이 기장파로 장로교회에서 축출되어 장로교회는 3분되었다.
셋째는 WCC로 인한 분열이다. 교회연합을 위해 창설된 WCC가 한국교회를 분열시켰다는 것은 모순이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이다. WCC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누어져 장로교회는 통합측과 합동측으로, 성결교회는 기성측과 예성측으로 분리되었다. 기성측은 다시 WCC에서 탈퇴하고 예성측과의 재합동을 모색하였고 통합측도 일시적을 탈퇴하고 합동측과의 재합동을 노력하였으나 오늘날까지 반세기동안이나 분리가 게속되는 것을 보면 당시 반대파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WCC문제로 인한 분열은 한국교회 분열 가운데 가장 크고 심각한 분열이어서 한국교회를 WCC파와 반 WCC파로 양분하여 양극화(Polarization)를 결과하였다.
이 양극화는 한국교회를 철저히 둘로 나누어 상호 불신 대립하게 만들었으며, 반세기 이상 양극화가 계속되면서 한국교회의 연합을 비관하도록 만들었다. 한국교회는 NCC와 한기총으로 분열되었고, 심지어 신학자들의 학회도 양분되었다. 양극화는 중도를 회색으로 배제하고 양극단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가 활개치는 극단적인 교회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연합운동은 불가능하다. NCC는 자신들이 연합주의자라고 자처하지만,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분파운동에 불과하다. 오로지 통합측만이 NCC의 극단화를 견제하면서 NCC와 한기총에 둘 다 가입하여 외로운 연합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부 장신 신학자들만이 양쪽 신학회에 참석하면서 연합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WCC가 아직까지도 한국교회에는 연합운동이 아니라 분리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하루속히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도파가 주도하는 연합운동 구도를 확보하여야 하며, 한기총과 NCC가 하나로 통합되고 신학회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합동측 비주류를 비롯한 소규모 분열운동이다. 1979년 합동측에서 시작된 비주류 분열은 수십개로 핵분열되었으며 끝없는 이합집산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아무런 신학적 명분 없이 각 파벌의 정치적 보스를 중심으로 한 헤게모니 쟁탈전의 소산이었다. 김영재의 말대로,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분열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고" "교회의 분리나 분립을 예사롭게 보는 교회관"이 형성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6>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인식하지 못한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나누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분열 불감증에 걸린 병자의 모습이 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전체적으로 교회연합명령을 불순종하기로 작심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분리주의(separatism)에 오염되어 모든 교회의 분열을 당연시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며 재연합을 전혀 노력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연합명령에 철저히 불순종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 WCC의 본질
WCC는 어떤 단체인가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두 가지의 의견 불일치가 있다. 첫째는 WCC가 세계교회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박윤선은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어디로 가나?"(1950) 제하의 글에서 WCC의 음모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그들은 급속히 처음부터 각 교하의 교리를 그들의 주장대로 통일하려는 행동은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적으로 먼저 실권 (교회 정치력, 다대한 인수 내지 국가의 권력) 잡기를 노력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들은 이런 실권을 잡은 후에 그것으로 세계교회를 장악하려 합니다. 사태가 결국 그렇게 되는 때에는 세계교회의 각 교파는 성경과 교리에 의거하여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그런 세계교회운동의 실권에게 포로되어 버리고 말것입니다.』<7>
박형룡도 1958년 신학지남에 발표한 글에서 WCC의 음모를 지적하면서,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날에는 반드시 탈퇴할 것을 언명하고 있다.
『이것은 운동의 현 단계에 있어서 세계 교회의 친선 교류와 사업협동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 지도자들의 언론과 행동은 이것의 구경목적이 세계교회의 조직적 통일에 있음을 표시하지 않는가... 우리 교회는 세계적 교회 친선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이 운동에 참여하나 교리상 경계와 비타협의 태도를 취할 것이며, 장차 어떤 날 교파 합동의 계획이 구체화될 때는 이 운동으로부터 단연 탈퇴할 것이다.』<8>
과연 WCC가 모든 교회와 교파를 통합하여 하나의 초대형교회를 만들고 그리하여 세계교회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가진 단체인가? WCC가 창립된지 60여년이 흐르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가입한 모든 교단들이 통합되지도 장악되지도 않고 각기 제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이로써 그러한 음모설이 그릇된 기우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사실 WCC는 헌장을 통하여 그 본질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교제로서, 다 함께 한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런 음소설에 반대하여, "세계교회협의회는 초대형교회가 아니며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not and must never become s superchurch)"고 명시하였다.<9>
둘째는 WCC가 자유주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박형룡과 박윤선을 비롯하여 많은 보수교회 지도자들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형기는 "많은 사람들은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과격한 사회참여를 실천한다고 비판한다. ... 그러나 ...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와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항변한다.<10> 그러면 어떤 것이 사실인가? 적은 교단에도 의견 차이들이 존재하는데, 5억 6천만의 성도를 포함하는 다양한 교단과 교파가 모여 자유롭게 토의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WCC에 다양한 신학적 스펙트럼이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WCC 문서들을 읽어보면 보수적인 주장도 있고 자유주의적인 주장도 있다. 그러므로 WCC에 자유주의 신학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사실일 수 없다. 단지 여기서 우리는 WCC의 의사결정구조와 신학적 제한장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WCC는 회원교회들을 대신하여 결정이나 입법을 할 수 없으며, "각 회원교회는 협의회의 발언이나 행위를 인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가진다(Each church retains the constitutional right to ratify or to reject utterances or actions of the Council)."<11>
이는 WCC에 가입되어 있는 한국의 교회들, 즉 감리교회나 통합측이나 기장측이 반세기가 넘는 동안에도 WCC의 신학적 논의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인 특색과 신학적 노선을 각기 견지하는데서 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WCC는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세계교회 연합신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 다양성을 한없이 수용할 수 없고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신학적 전통들과 다양한 문화적, 민족적 또는 역사적 접촉점에 근거하고 있는 다양성이 교제의 본질에 필연적이지만, 그러나 다양성에는 한계가 있다(yet there are limits to diversity). 예를 들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함께 고백하고, 성경이 선포하고 사도들의 공동체가 증언한 구원과 인류의 종말에 대해 함께 고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런 다양성은 잘못된 것이다."<12> 그래서 WCC에서 자유주의적인 발표가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복음적인 회원들의 비판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정현경이 1991년 캔베라 총회에서 성령을 부른다고 하면서 이상한 영들을 부르자 많은 비판들이 쇄도하였다. 그리스 정교회는 모든 회원들에게 경각심을 환기시키면서 "다양성의 한계"를 인식하지 않고 분별력 없이 아무런 발표나 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신앙은 결코 변경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우리는 성령을 사적인 영이나 세상의 영이나 다른 영들로 대체하려는 경향에 반대하고 이를 사수해야 한다"고 항의하면서 성령은 기독론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복음적인 참석자들도 신학적 다양성의 한계를 지적하며 성령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 모든 대화에서 고도의 기독론(high Christology)이 견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3> 따라서 WCC 모임에 일부 자유주의적인 발표들이나 주장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자유주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 WCC와 종교다원주의
또 하나의 WCC 비판은 종교간의 대화를 추구하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수용하여 타종교에서의 구원을 인정하고 타종교인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중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관련하여 기독교의 사활이 달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말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실상은 어떠한가? WCC에는 일부 인도원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있고 나이로비 대회에 타종교 대표들을 초청하였으며 태국 챙마이모임에서 타종교의 경전을 사용한 것이 사실이지만<14>, 우리는 보다 공식문서를 중심으로 WCC의 입장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1979년에 발표된 "타종교와의 대화 지침(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 and Ideologies)"에서 "우리는 대화와 증거가 서로 모순관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실로, 그리스도인이 대화에 들어갈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가지고 나아가기 때문에, 대화의 시간과 관계는 진정한 증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선언하면서, 모든 종류의 혼합주의를 배격하였다. 기독교와 타종교를 혼합아여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부정적 혼합주의뿐 아니라, 복음을 "번역(translation)"하는 긍정적 측면에 있어서도 "너무 멀리 나가서 기독교 신앙과 삶의 진정성을 타협해서도 안 되며" 타종교의 신앙을 그 종교의 자체적 용어가 아니라 다른 종교의 용어로 해석해서도 안된다고 규정하였다.<15> 즉, 타종교와의 대화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전도나 선교를 거슬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런 원칙은 전도와 선교에 대한 문서에도 잘 나와있다. "모든 사람은 복음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천명하고 선교와 전도를 통하여 모든 인류의 개인적인 개종을 촉구하고 있다.<16> 타종교와의 대화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사렛 예수 안에서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 그의 놀라운 사랑의 사역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모든 종교와 비종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결정적 임재를 증거하도록 설득한다. 우리의 구원은 그분안에 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구원이 다양한 종교인들에게 베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증거해야 한다는데는 모두가 동의한다.』<17>
가장 진보적인 주장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타종교에서 역사한다는 거이다.<18> 그러나 그것은 일반은총적 차원이며, 이는 개혁신학에서도 상당해 인정되는 것이다.
칼빈은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종교의 씨앗 semen religionis"과 "신성의 감지력 sensus divinitatis"을 심어 놓았으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하였다.<19> 그 결과, 참되고 완전한 종교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다양한 종교적 형태를 통하여 종교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종교도 이방인들에게도 주시는 햇빛이나 우로와 같은 일반은총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헤르만 바빙크는 타종교에서도 성령의 역사와 일반은총이 관찰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타종교의 창시자들은 기만자나 사탄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들의 시대와 민족을 위해서 소명을 성취하고 백성들의 생활에 좋은 영향을 행사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하였다.<20>
비록 많은 오류와 혼합되었을지라도 상당한 종교적 요구들을 만족시키고 생의 아픔에 위로를 제공하였으며, 비록 부패하였지만 종교에 근본적인 신개념, 죄의식, 구원에 대한 약속, 희생, 제사, 성전, 의식, 기도 등이 이방종교 안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영역을 분명히 구별하여야 한다. 타종교들에서도 일반은총의 결과이기 때문에,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WCC의 어떤 문서에도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WCC에 가입된 감리교회에서는 종교다원주의를 따르던 변선환, 홍정수 교수를 해임조치하였다.
■ WCC와 WEA
WCC는 현대와 같은 다종교사회에서 종교간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작하였다. 기독교가 다수인 사회도 있지만 기독교가 소수인 사회도 있어서 종교간의 협조와 관용이 없이는 선교와 전도가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 타종교를 존중하면서 한편으로 선교와 전도를 하는 평화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WCC는 이를 위해 "개종 지침(Christian Code of Conduct on Religious Converstion)"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2010년에 마칠 예정이다. 이 작업에 2007년 WEA(World Evangelical Alliance)가 동참하였다.
WEA는 복음적인 세계교회연합단체로서 WCC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의 한기총도 가입되어 있는 단체이다. 또한 금년 3월 3일에도 WCC와 WEA 대표가 만나 광범위한 협조관계를 체결하였다. 이와 같은 두 단체의 협조관계는 한국교회의 NCC와 한기총에게와 거기 속한 모든 교단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단체이고 입장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서로 협조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대립과 반목의 과거를 청산하고 대화와 협조의 미래를 추구하며 주님의 교회연합명령에 순종하는 길일 것이다.
<1>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5), 249.
<2> Ibid., 250.
<3> 박명수, "1970년 대부흥과 초교파 연합운동", 기독교사상 2007년 7월호, 200, 206-7.
<4>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269ff. 민경배는 실패의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하였다: 선교사들의 모교회들의 모호한 태도, 교회일치에 대한 시대적 무관심, 그리고 선교사들의 미끈한 구실.
<5> 이덕주,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역사적 맥락", 기독교사상 1996년 4월호, 15-17.
<6> 김영재, 한국교회사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248.
<7> Ibid., 257-8에서 재인용.
<8> Ibid., 260에서 재인용.
<9> WCC Central Committee, 'The Church, the Churches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1950 Toronto),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64.
<10> 이형기,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 목회와 신학, 2009년 10월호
<11> WCC Central Committee, "The Church, the Churches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1950 Toronto),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64.
<12> Seventh Assembly of the WCC, "The Unity of the Church and Koinonia: Gift and Calling"(1991 Canberra),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125.
<13> Ibid., 237-8.
<14> Klass Runia,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nd Inter-Religious Dialogue", Calvin Theological Journal 15.1(April 1980): 31, 35.
<15> WCC Sub-unit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1979),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08-9
<16> WCC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Mission and Evangelism - an Ecumenical Affirmation",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372
<17> Ibid., 382.
<18> WCC Sub-unit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Consultation, "Religious Plurality: Theological Perspectives and Affirmations"(1990 Baar),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17-420.
<19>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iii. 1-3.
<20> Herman Bavink, 개혁주의 교의학, 김영규 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 I: 406-7.
ⓒ 아멘넷 뉴스(USAamen.net)
1950-60년대에 한국교회를 강타했던 WCC문제가 잠잠해지는듯 하였으나 2013년 WCC 부산총회 유치를 기화로 다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한국교회 일부는 과거와 동일한 입장에서 부정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포스트모던적인 21세기의 상황은 상당히 달라서 오히려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교회연합운동에 대해서 반성하고 성찰하며 참여하려는 긍정적 여론도 적지 않다. 본 논문은 한국교회가 교회연합명령에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살펴보고, WCC라는 최대의 연합운동이 한국교회의 연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과연 WCC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를 재평가하고자 한다. 특히, WCC의 주된 비판논리인 종교간의 대화와 종교다원주의의 수용여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 교회연합 명령
교회연합은 교회의 머리와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드린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이렇게 자기 교회를 향한 소원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드렸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0-23)
예수님이 원하신 연합은 일부의 연합이 아니라 전체의 연합( ἵνα πάντες ἐν ὦσιν)이었으며, 연합의 모델은 성부와 성자의 완전한 연합이었고, 연합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임과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이 믿도록 (ἵνα ὁ κόσμος πιστεύῃ ὅτι σύ με ἀπέστειλας; ἵνα γινώσκῃ ὁ κόσμος ὅτι σύ με ἀπέστειλας καὶ ἠγάπησας αὐτοὺς καθὼς ἐμὲ ἠγάπησας.) 하는데 있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한 가르침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σπουδάζοντες τηρεῖν τὴν ἑνότητα τοῦ πνεύματος)"(엡 4:3)고 명령하였는데, 연합의 근거로 7가지 하나됨(몸, 성령, 소망, 주, 믿음, 세례, 하나님)을 제시하였다.
■ 연합명령에 순종하는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연합명령에 순종하여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기회는 두 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20세기초였다. 1905년 6월 25일 남장로교 레이놀즈(W. D. Reynolds) 선교사가 "이제 때가 성숙하였으니 하나의 한국 민주교회를 창설하여 이름을 '한국기독교회'로 하자"는 동의를 하자 선교사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1> 언더우드 선교사도 장로교가 감리교와 같은 교파의 타파를 염원하였다.<2>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교회에 서구교회들이 자기들의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교파를 이식하지 말고 순수하게 초대교회를 이어받는 교파없는 단일교회를 세워주고자하는 선교사들의 숭고하고 거룩한 뜻이었다. 이러한 단일교회론이 대부흥운동으로 하나된 분위기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3>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교회가 하나로 시작할 수 있는 꿈은 조정과정의 실패로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4>
두번째는 일제말과 해방초였다. 1941년 일본교회가 일본기독교단이라는 단일교회로 통합되자, 효과적인 종교통제를 위해 한국교회를 위해 한국교회를 합병할 목적으로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과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을 조직하였고, 해방되기 한 달전인 1945년 7월에는 모든 한국의 개신교회가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합되었다. 해방이 되자 이를 조선기독교단이라고 개명하고 단일조직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교파환원운동으로 무산되었다.<5> 비록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형성된 교회연합이었으나, 이를 창조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고 다시 교파로 돌아가 분열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연합명령에 불순종하는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연합명령에 불순종하여 교회를 분열시킨 과정은 4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선교사들의 분파교회 이식이다. 선교사들이 부흥운동을 주도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의 한국교회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결국 교파주의에 희생되어 본국의 교파교회를 한국에 이식하게 된 것이 한국교회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물론 본국에서 서로 싸우며 분열된 미국 남장로교회와 북장로교회가 각기 자기의 교단교회를 설립하지 않고 한국에서 모든 장로교 선교부가 하나가 되어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운 것은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새롭게 탄생한 한국교회가 전혀 개입하거나 책임도 없는 서구의 교파 분열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리전을 하게 만든 것은 중대한 잘못이요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민족으로서, 그리고 같은 형제자매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나누어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로 외국인에 의해 타의로 서로 분열되어야 하는 불행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당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일제하에서 시작된 분열의 불씨들이다. 박형룡과 김재준의 신학적 갈등, 평양신학교의 폐교와 조선신학교의 개교, 신사참배에 대한 대처방법의 불일치 등은 해방후 장로교회의 최초 분열을 야기하였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교만해져서 독선적이고 정죄적인 태도를 취한 고신파와 진보적인 신학자 김재준의 추종자들이 기장파로 장로교회에서 축출되어 장로교회는 3분되었다.
셋째는 WCC로 인한 분열이다. 교회연합을 위해 창설된 WCC가 한국교회를 분열시켰다는 것은 모순이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이다. WCC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누어져 장로교회는 통합측과 합동측으로, 성결교회는 기성측과 예성측으로 분리되었다. 기성측은 다시 WCC에서 탈퇴하고 예성측과의 재합동을 모색하였고 통합측도 일시적을 탈퇴하고 합동측과의 재합동을 노력하였으나 오늘날까지 반세기동안이나 분리가 게속되는 것을 보면 당시 반대파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WCC문제로 인한 분열은 한국교회 분열 가운데 가장 크고 심각한 분열이어서 한국교회를 WCC파와 반 WCC파로 양분하여 양극화(Polarization)를 결과하였다.
이 양극화는 한국교회를 철저히 둘로 나누어 상호 불신 대립하게 만들었으며, 반세기 이상 양극화가 계속되면서 한국교회의 연합을 비관하도록 만들었다. 한국교회는 NCC와 한기총으로 분열되었고, 심지어 신학자들의 학회도 양분되었다. 양극화는 중도를 회색으로 배제하고 양극단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가 활개치는 극단적인 교회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연합운동은 불가능하다. NCC는 자신들이 연합주의자라고 자처하지만,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분파운동에 불과하다. 오로지 통합측만이 NCC의 극단화를 견제하면서 NCC와 한기총에 둘 다 가입하여 외로운 연합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부 장신 신학자들만이 양쪽 신학회에 참석하면서 연합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WCC가 아직까지도 한국교회에는 연합운동이 아니라 분리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하루속히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도파가 주도하는 연합운동 구도를 확보하여야 하며, 한기총과 NCC가 하나로 통합되고 신학회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합동측 비주류를 비롯한 소규모 분열운동이다. 1979년 합동측에서 시작된 비주류 분열은 수십개로 핵분열되었으며 끝없는 이합집산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아무런 신학적 명분 없이 각 파벌의 정치적 보스를 중심으로 한 헤게모니 쟁탈전의 소산이었다. 김영재의 말대로,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분열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고" "교회의 분리나 분립을 예사롭게 보는 교회관"이 형성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6>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인식하지 못한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나누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분열 불감증에 걸린 병자의 모습이 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전체적으로 교회연합명령을 불순종하기로 작심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분리주의(separatism)에 오염되어 모든 교회의 분열을 당연시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며 재연합을 전혀 노력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연합명령에 철저히 불순종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 WCC의 본질
WCC는 어떤 단체인가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두 가지의 의견 불일치가 있다. 첫째는 WCC가 세계교회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박윤선은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어디로 가나?"(1950) 제하의 글에서 WCC의 음모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그들은 급속히 처음부터 각 교하의 교리를 그들의 주장대로 통일하려는 행동은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적으로 먼저 실권 (교회 정치력, 다대한 인수 내지 국가의 권력) 잡기를 노력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들은 이런 실권을 잡은 후에 그것으로 세계교회를 장악하려 합니다. 사태가 결국 그렇게 되는 때에는 세계교회의 각 교파는 성경과 교리에 의거하여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그런 세계교회운동의 실권에게 포로되어 버리고 말것입니다.』<7>
박형룡도 1958년 신학지남에 발표한 글에서 WCC의 음모를 지적하면서,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날에는 반드시 탈퇴할 것을 언명하고 있다.
『이것은 운동의 현 단계에 있어서 세계 교회의 친선 교류와 사업협동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 지도자들의 언론과 행동은 이것의 구경목적이 세계교회의 조직적 통일에 있음을 표시하지 않는가... 우리 교회는 세계적 교회 친선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이 운동에 참여하나 교리상 경계와 비타협의 태도를 취할 것이며, 장차 어떤 날 교파 합동의 계획이 구체화될 때는 이 운동으로부터 단연 탈퇴할 것이다.』<8>
과연 WCC가 모든 교회와 교파를 통합하여 하나의 초대형교회를 만들고 그리하여 세계교회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가진 단체인가? WCC가 창립된지 60여년이 흐르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가입한 모든 교단들이 통합되지도 장악되지도 않고 각기 제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이로써 그러한 음모설이 그릇된 기우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사실 WCC는 헌장을 통하여 그 본질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교제로서, 다 함께 한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런 음소설에 반대하여, "세계교회협의회는 초대형교회가 아니며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is not and must never become s superchurch)"고 명시하였다.<9>
둘째는 WCC가 자유주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박형룡과 박윤선을 비롯하여 많은 보수교회 지도자들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형기는 "많은 사람들은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과격한 사회참여를 실천한다고 비판한다. ... 그러나 ...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와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항변한다.<10> 그러면 어떤 것이 사실인가? 적은 교단에도 의견 차이들이 존재하는데, 5억 6천만의 성도를 포함하는 다양한 교단과 교파가 모여 자유롭게 토의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WCC에 다양한 신학적 스펙트럼이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WCC 문서들을 읽어보면 보수적인 주장도 있고 자유주의적인 주장도 있다. 그러므로 WCC에 자유주의 신학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사실일 수 없다. 단지 여기서 우리는 WCC의 의사결정구조와 신학적 제한장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WCC는 회원교회들을 대신하여 결정이나 입법을 할 수 없으며, "각 회원교회는 협의회의 발언이나 행위를 인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가진다(Each church retains the constitutional right to ratify or to reject utterances or actions of the Council)."<11>
이는 WCC에 가입되어 있는 한국의 교회들, 즉 감리교회나 통합측이나 기장측이 반세기가 넘는 동안에도 WCC의 신학적 논의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인 특색과 신학적 노선을 각기 견지하는데서 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WCC는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세계교회 연합신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 다양성을 한없이 수용할 수 없고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신학적 전통들과 다양한 문화적, 민족적 또는 역사적 접촉점에 근거하고 있는 다양성이 교제의 본질에 필연적이지만, 그러나 다양성에는 한계가 있다(yet there are limits to diversity). 예를 들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함께 고백하고, 성경이 선포하고 사도들의 공동체가 증언한 구원과 인류의 종말에 대해 함께 고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런 다양성은 잘못된 것이다."<12> 그래서 WCC에서 자유주의적인 발표가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복음적인 회원들의 비판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정현경이 1991년 캔베라 총회에서 성령을 부른다고 하면서 이상한 영들을 부르자 많은 비판들이 쇄도하였다. 그리스 정교회는 모든 회원들에게 경각심을 환기시키면서 "다양성의 한계"를 인식하지 않고 분별력 없이 아무런 발표나 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신앙은 결코 변경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우리는 성령을 사적인 영이나 세상의 영이나 다른 영들로 대체하려는 경향에 반대하고 이를 사수해야 한다"고 항의하면서 성령은 기독론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복음적인 참석자들도 신학적 다양성의 한계를 지적하며 성령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 모든 대화에서 고도의 기독론(high Christology)이 견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3> 따라서 WCC 모임에 일부 자유주의적인 발표들이나 주장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자유주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 WCC와 종교다원주의
또 하나의 WCC 비판은 종교간의 대화를 추구하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수용하여 타종교에서의 구원을 인정하고 타종교인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중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관련하여 기독교의 사활이 달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말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실상은 어떠한가? WCC에는 일부 인도원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있고 나이로비 대회에 타종교 대표들을 초청하였으며 태국 챙마이모임에서 타종교의 경전을 사용한 것이 사실이지만<14>, 우리는 보다 공식문서를 중심으로 WCC의 입장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1979년에 발표된 "타종교와의 대화 지침(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 and Ideologies)"에서 "우리는 대화와 증거가 서로 모순관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실로, 그리스도인이 대화에 들어갈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가지고 나아가기 때문에, 대화의 시간과 관계는 진정한 증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선언하면서, 모든 종류의 혼합주의를 배격하였다. 기독교와 타종교를 혼합아여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부정적 혼합주의뿐 아니라, 복음을 "번역(translation)"하는 긍정적 측면에 있어서도 "너무 멀리 나가서 기독교 신앙과 삶의 진정성을 타협해서도 안 되며" 타종교의 신앙을 그 종교의 자체적 용어가 아니라 다른 종교의 용어로 해석해서도 안된다고 규정하였다.<15> 즉, 타종교와의 대화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전도나 선교를 거슬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런 원칙은 전도와 선교에 대한 문서에도 잘 나와있다. "모든 사람은 복음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천명하고 선교와 전도를 통하여 모든 인류의 개인적인 개종을 촉구하고 있다.<16> 타종교와의 대화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사렛 예수 안에서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 그의 놀라운 사랑의 사역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모든 종교와 비종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결정적 임재를 증거하도록 설득한다. 우리의 구원은 그분안에 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구원이 다양한 종교인들에게 베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증거해야 한다는데는 모두가 동의한다.』<17>
가장 진보적인 주장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타종교에서 역사한다는 거이다.<18> 그러나 그것은 일반은총적 차원이며, 이는 개혁신학에서도 상당해 인정되는 것이다.
칼빈은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종교의 씨앗 semen religionis"과 "신성의 감지력 sensus divinitatis"을 심어 놓았으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하였다.<19> 그 결과, 참되고 완전한 종교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다양한 종교적 형태를 통하여 종교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종교도 이방인들에게도 주시는 햇빛이나 우로와 같은 일반은총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헤르만 바빙크는 타종교에서도 성령의 역사와 일반은총이 관찰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타종교의 창시자들은 기만자나 사탄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들의 시대와 민족을 위해서 소명을 성취하고 백성들의 생활에 좋은 영향을 행사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하였다.<20>
비록 많은 오류와 혼합되었을지라도 상당한 종교적 요구들을 만족시키고 생의 아픔에 위로를 제공하였으며, 비록 부패하였지만 종교에 근본적인 신개념, 죄의식, 구원에 대한 약속, 희생, 제사, 성전, 의식, 기도 등이 이방종교 안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영역을 분명히 구별하여야 한다. 타종교들에서도 일반은총의 결과이기 때문에,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WCC의 어떤 문서에도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WCC에 가입된 감리교회에서는 종교다원주의를 따르던 변선환, 홍정수 교수를 해임조치하였다.
■ WCC와 WEA
WCC는 현대와 같은 다종교사회에서 종교간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작하였다. 기독교가 다수인 사회도 있지만 기독교가 소수인 사회도 있어서 종교간의 협조와 관용이 없이는 선교와 전도가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 타종교를 존중하면서 한편으로 선교와 전도를 하는 평화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WCC는 이를 위해 "개종 지침(Christian Code of Conduct on Religious Converstion)"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2010년에 마칠 예정이다. 이 작업에 2007년 WEA(World Evangelical Alliance)가 동참하였다.
WEA는 복음적인 세계교회연합단체로서 WCC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의 한기총도 가입되어 있는 단체이다. 또한 금년 3월 3일에도 WCC와 WEA 대표가 만나 광범위한 협조관계를 체결하였다. 이와 같은 두 단체의 협조관계는 한국교회의 NCC와 한기총에게와 거기 속한 모든 교단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단체이고 입장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서로 협조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대립과 반목의 과거를 청산하고 대화와 협조의 미래를 추구하며 주님의 교회연합명령에 순종하는 길일 것이다.
<1>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5), 249.
<2> Ibid., 250.
<3> 박명수, "1970년 대부흥과 초교파 연합운동", 기독교사상 2007년 7월호, 200, 206-7.
<4>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269ff. 민경배는 실패의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하였다: 선교사들의 모교회들의 모호한 태도, 교회일치에 대한 시대적 무관심, 그리고 선교사들의 미끈한 구실.
<5> 이덕주,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역사적 맥락", 기독교사상 1996년 4월호, 15-17.
<6> 김영재, 한국교회사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248.
<7> Ibid., 257-8에서 재인용.
<8> Ibid., 260에서 재인용.
<9> WCC Central Committee, 'The Church, the Churches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1950 Toronto),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64.
<10> 이형기,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 목회와 신학, 2009년 10월호
<11> WCC Central Committee, "The Church, the Churches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1950 Toronto),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64.
<12> Seventh Assembly of the WCC, "The Unity of the Church and Koinonia: Gift and Calling"(1991 Canberra),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125.
<13> Ibid., 237-8.
<14> Klass Runia,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nd Inter-Religious Dialogue", Calvin Theological Journal 15.1(April 1980): 31, 35.
<15> WCC Sub-unit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1979),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08-9
<16> WCC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Mission and Evangelism - an Ecumenical Affirmation",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372
<17> Ibid., 382.
<18> WCC Sub-unit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Consultation, "Religious Plurality: Theological Perspectives and Affirmations"(1990 Baar), In: The Ecumenical Movement: An Anthology of Key Texts and Voices, 417-420.
<19>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iii. 1-3.
<20> Herman Bavink, 개혁주의 교의학, 김영규 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 I: 4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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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님의 댓글
진실은 ()
WCC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적그리스도 조직입니다.
종교다원주의가 팽배했던 유럽의 미래는 이슬람 연방입니다.
제 블로그를 꼭 방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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