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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목사 "바벨탑과 떠돌이"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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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12-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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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문동환 목사(91세)의 저서 <바벨탑과 떠돌이> 출판기념회가 9월 10일(월) 오후 7시 플러싱 금강산에서 열렸다. 출판기념회는 문동환 목사가 관련된 6·15 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 새누리선교회, 생명문화연구소, 목요기도회, 한신뉴욕동문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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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목사 가족(문혜림 사모와 아들)과 함성국 목사

출판기념회는 행사를 주관한 생명문화연구소 소장 방홍석 목사가 인도했다. 축사 함성국 목사(생명문화연구소 고문)와 김명숙 대표(6.15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 축가 조동호 교수(퀸즈칼리지), 서평 조원태 목사(뉴욕우리교회), 저자와의 대화(사회 황남덕 목사)의 순서로 진행됐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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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명문화연구소 소장 방홍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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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함성국 목사(생명문화연구소 고문)

이 책은 간단명료하여 한숨에 다 읽을수 있는 책이다. 책을 쓰는 것은 자기의 전체를 바쳐서 씨름하고 발표하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마치도 배우나 가수가 무대에서 자기 전체를 바쳐서 공연을 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전체를 사용하여 이 책을 썼다.

그동안 교포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정치가 교수 목사 운동권 사람들 여러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이민사회에 예언자적인 입장에서 그들이 누구이며 해야 할것인 무엇인가를 지적한것이 이 책이다. 바라기는 이 책이 교포사회에 많이 소개되었으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토픽도 아닌것을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문동환 목사는 떠돌이 같이 인생을 살아왔다. 감옥도 가고 민주운동하고 인권운동하면서 70-80년대의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일반 노동자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동환 목사는 떠돌이 문제로 일생을 바친분이기에 자격이 있는 분이다. "바벨탑과 떠돌이"는 보통 논문이 아니라 문 목사의 삶속에서 비전속에서 나온 글이다.

나는 성서를 해 온 사람으로 문 목사가 성서를 새롭게 보는 것을 보고 감탄을 많이 했다. 문 목사는 기독교 교육을 하신분이 성서를 어덯게 꽤 뚷어서 메세지를 보여주는지 감사히 생각한다. 이스라엘 시대의 예언자들이 자기 목숨을 내놓고 뛰어다녔는데 그들이 바벨왕국의 바벨탑 철학의 하수인이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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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김명숙 대표(6.15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

문동환 목사님이 평생을 연구와 가르침에 뭍혀 살아왔음에도 이제는 연세가 90세가 넘은 지금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고 탐구하는 열정과 기상은 청년에 못지 않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 문 박사님이 은퇴한 1991년 한국을 떠나서 평생의 반려자인 문혜림 사모의 고향 미국으로 터전을 옮기고 뿌리를 내리면서 집필을 시작하여 1997년 민중신학에 입장에 쓰신 "생명공동체와 귀화교육"을 펴냈다. 2009년에는 "떠돌이 목자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자서전을 출간했다. 세번째로 오랫동안 떠돌이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고 연구하며 결집된 책 "바벨탑과 터돌이"를 펴낸것을 보고 경탄을 금할수 없다.

문 목사님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참사, 생태계의 파괴를 보고 느끼면서 신자유주의로 인한 자본주의의 횡포로 인해 빈부격차와 극도의 양극화 치닫는 오늘의 상황에서 전세계가 경제위기에 흔들리는 상황을 보고 각국에서 흩어져 방황하는 떠돌이들의 비참한 삶의 현실과 아픔과 절규를 몸소 느끼면서 함께 아파하던 노신학자는 그 해답을 고민하고 찾던중에 성서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긴 여행을 떠난지 몇년이다.

전태일로 인해 태어난 한국의 민중신학, 줄곧 문 목사님의 화두가 되어왔던 한국의 민중신학의 시선이 단지 한국국민들에게만 머물러서는 국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 책에는 한국의 민중신학을 지평을 확대하여 전세계 떠도는 민중들을 대상으로 민중신학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놀랍게도 문 박사님은 신구약 성서의 귄위와 그동안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믿었던 성서해석에 도전장을 냈다. 히브리서 다윗과 신학성서 바울에 대해 그들의 삶이야 말로 바벨탑의 삶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의 외침도 전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메시야 왕국의 대망 다윗왕국의 회복이라는 것이 그 기조에 짖게 깔려있고 다시말하면 힘의 철학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이 문 박사님에게 있어 대전제이다. 떠돌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소위 기득권자들, 지금 바벨탑을 쌓는 자들을 성공의 표적으로 삼는 민중들이라면 그들에게서 내일을 기대할것이 없다고 문박사님은 지적한다. 내일을 창출해 낼 떠돌이들이 정말 새역사의 주인공이 되려면 지금가지 걸어왔던 자기들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걸어오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서서 과연 우리의 삶이 옳았고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 정당한 것인가를 보고 대오각성하고 반성하고 길을 돌이켜서 새길을 찾으려고 모색하는 것이 참 떠돌이들의 내일의 삶의 모습이라고 보았다.

문박사남은 단지 서재에 들어앉아 연구와 집필에만 몰두하는 이론가만은 아니다. 잘알겠지만 그의 생각은 삶에 이어지고 행동으로 표현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그의 삶을 알고 있고 미국에서 옮겨온후 6·15 공동선언실천 해외위원회 대표위원장을 맡으시고 미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과 중국을 그 경계선을 넘나들며 몸으로 많은 공헌을 해주신 분이다. 목요기도회, 새누리선교회, 한신동문회등 오늘 주최하는 모든 그룹들에 목사님이 직접연대하여 활동하고 가르쳐 주시고 있다. 지난 몇년간 목사님이 가장 심려를 기울여서 한 것은 생명문화연구소와 젊은 목사들과 함께하는 성서연구모임이다. 그들에게 올바른 성서해석이 무엇이며 어떤 메세지를 가지고 목회현장에 임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으면서 그분들에게서 내일을 창출할 떠돌이들의 미래를 보는듯하다.

뉴욕의 떠돌이들은 늦게마나 목사를 가깝게 모셔서 행복하고 외롭지 않다. 목사님의 가르침에 눈뜨고 목사님이 가시는 길에 감히 길벗이 되어줄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수고 많이하셨다. 그리고 다음 책의 출판기념회를 열때까지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다음 책이 탈고상태에 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음단계를 구상하고 있으시다. 욕심이 참 많으신 어른이다. 이자리에서 무엇보다 고맙고 감사한것은 문 박사의 노년을 우리와 함께 지낼수있도록 동기부여한 문혜림 선생께 감사드린다. 목사님과 사모님 건강해야 우리도 살맛이 나고 힘을 솟는다. 우리의 삶에 길잡이 지침서 "바벨탑과 떠돌이"의 뜻을 따라 우리도 열심히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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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 조동호 교수(퀸즈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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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을 부르는 문동환 목사 부부. 부부는 61년에 결혼하여 2남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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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원태 목사(뉴욕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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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민중'과 '떠돌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질문]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

민중신학을 가지고 교육학을 이룩해보려고 했는데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이 주체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추구하는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민중과 떠돌이의 차이는 한마디로 억눌린 사람가운데 제도안에서 도저히 소망을 가질수 없는 사람이 떠돌이이다. 밀려난 사람이다. 소망이 없는 사람가운데에서도 아직도 한자리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민중이라는 사람들의 새로운 내일을 이야기하면서도 제도안에서 밀려났는데 그래도 그 제도안에서 한자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새세상을 만들수 없다.

이 제도안에서 도저히 소망이 없다는 사람은 새것을 찾을수 밖에 없다. 그래서 떠돌이라고 하면 제도안에서 소망이 없는 사람이 떠돌이이다. 떠돌이라서 새내일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려면 각으로 몸으로 느끼고 "그것은 아냐. 이것이 문제"이라고 각한 사람, "이것때문에 소망이 없다"고 각한 사람들이 정말 떠돌이이다. 떠돌이는 제도안에서는 악을 보고 소망할수 없으니 새것을 찾자하면 그 악이 없는 세계만 새것이다. 악과 단을 하고 새것을 찾는다. 그것이 노예들이 아우성 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민중이라는 사람이 보면 악을 명확히 보고 악을 향하여 단을 하지 못하고 그들속에 아직도 한자리 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을 보았다. 그것이 문제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하고 찾기 시작한 것이 내 신학의 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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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덕 목사의 인도로 저자와의 대화

[질문] 책을 보면 탈출공동체라는 말이 나온다. 모세가 이집트 바로왕 밑에서 혁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갈릴리 민중운동을 하시면서 혁명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탈출하려고 했다는데 그러면 오늘 우리시대에 탈출공동체가 무엇인가? 악에서 나오자는 것인데 탈출해서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어디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까지는 과정이 있다. 중요한것은 모두 아우성을 친다. 비참하다. 그 가운데 깊이 찾고 문을 두둘길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선택받은 사람이 있다. 밑바닥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 철저히 생각하지 못한다. 축복받은 사람은 이 문제를 보고 떠돌이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보고 악을 보면서 그러면 무엇인가 하며 찾는 부름을 받은 선각자가 있다. 그 선각자가 없이는 안된다. 그 선각자가 바로 모세와 예수님이다.

모세는 생각을 할수 있는 여유있는 입지였다. 그래서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찾는다. 그리고 악을 보고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새로운 내일을 굼꾸는지는 모르지만 항거해서 투쟁을 했다. 애굽의 병졸을 죽인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나혼자 깨닫아서는 쓸데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탈출을 하려면 혼자서는 안된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을 지나는 동안 떠돌이들이 고생하면서 마침내 모두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로 갈 줄 모른다. 누가 깨닫는가. 선각자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고생하며 야훼와 만난다. 그것이 소중하다. 그것에서 사태를 명확히 본다. 이제는 애굽에서 나가야 겠구나 애굽에서는 소망이 없구나. 야훼가 모세에게 떠돌이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말한다. 야훼를 만난 모세가 사태를 명확히 보고 야훼의 약속을 얻고 탈출해야겠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모세가 애굽에 들어갔더니 전에는 모세의 말을 반박하던 갈바를 모르던 떠돌이들이 애굽을 탈출하며 가나안 복지로 가자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는다.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에 가서 우리의 공동체를 만들자.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들이 집단적으로 각을 하고 그들에게 새꿈이 주어진다. 즉 복음이 주어진다. 야훼가 새로운 곳에 가서 떠돌이가 안심하고 살수있는 새공동체를 만들어준다는 약속을 가지고 모세가 이야기를 하니 아우성을 치던 떠돌이들에게 집단적인 복음이 들어가 방향을 제시해주니 집단적으로 단을 해준다. 제국에서 탈출해서 땅을 갈아먹는 가나안 복지로 갔다. 그곳은 왕이 없다. 왕을 가지지 말라고 했다. 나누어서 일하면서 평등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이다. 탈출공동체의 방향이 그것이다.

똑 같은 것이 예수님 때에도 이루어진다. 애굽에서 아우성을 치던 떠돌이들과 대치되는 것이 갈릴리에서 밀려난 떠돌이들이다. 그들은 제도안에 소망을 가질수 없었다. 로마하고 손잡고 율법으로 모두 죄인시하는 갈릴리땅에서 쫓겨난 떠돌이들이 무슨 소망을 찾을수 있겠는가. 완전히 소망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가셔서 새로운 복음을 주신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모세처럼 30년동안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들겼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구하라 찾으라 만날것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찾고 찾고 찾았더니 세례요한에게 세례받고 물에서 나오자 네가 내마음에 드는 사람이다고 했다. 야훼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악을 악으로 명확히 보고 거부하고 변화하고 여호와에게서 새것을 받고 그것을 가지고 떠돌이에게 나가는 일이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과의 마음에 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기화한것이다. 예수님은 10가지를 세가지로 나누었다. 10가지의 뿌리는 3가지이다. 탐욕, 권력욕 그리고 종교까지 이용하는 것이다. 모세가 열가지로 만든것을 예수님은 세가지로 집합했다. 당시에 악을 추궁해 보면 그 3가지이다. 이것이 문제임을 예수님이 보시고 악을 물리치셨다. 새꿈을 보았는데 이 3가지의 반대이다. 탐욕의 반대는 나누는 것이고, 권력욕의 반대는 내려가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종교를 악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 3가지 가는 길인데 그길을 가지말고 새길로 가라는 것이다. 새길은 나누고 섬기고 용서하는 길이다.

누가 그런 공동체를 만들수 있는가. 도시에 있는 사람은 안된다. 도시는 바벨탑의 집단소이다. 그래서 도시를 친다. 도시에서 나온 청년부자가 예수님에게 영생을 구하다가 도망을 간다. 예수님은 도시로 안간다. 그래서 탈출이라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예수님은 농촌을 가서 떠돌이를 붙잡는데 떠돌이를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 더 가깝다고 하신다. 떠돌이도 청산해야 할 것이 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것이 있고, 복수감도 있고, 죄인이라는 열등감도 있다. 인간으로서 파산된 무리들이다. 그래서 분노한다. 이것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러면서 새것을 찾는 밑에 하나님의 영이 아우성을 친다. 인간에게 악을 보는것도 하나님의 영이 있기때문이며 영을 찾아서 아우성을 친다. 한국에서는 한이라고 한다. 그러니 예수님은 한을 맺힌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깝다고 해서 농촌 갈릴리로 가신다.

그리고 한이 맺힌 사람에게 설교해서는 안들어간다. 속에 원한과 미움과 바램등이 많은데 복음이 귀에 들어안간다. 교육학적인 문제인데 먼저 예수님은 가서 그들을 사랑해주신다. 먹을 것을 나누어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참사랑을 보여주셨다. 너희들이 죄인이 아니라 너희들을 죄인이라는 저들이 죄인이다. 너희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다. 그들을 인간으로 다시 살려주신다. 그렇게 되었을때 비로서 이야기를 하신다. 무엇이 너희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권력욕과 탐욕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름을 오용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맞다. 그래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기에 나누고 용서하고 섬기는데 있다. 예수님과 같이 지내면서 그런 삶을 살아보았다. 그래서 예수님 주변에 새로운 공동체가 생겼다. 도시는 아니다. 도시는 안된다. 도시는 악마의 중심이라서 밤낮 그것이기에 농촌으로 가야한다.

[질문] 탈출공동체를 오늘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한다면 농촌으로 가야하는데 그런데 직장이나 목회를 그만두고 가기가 힘들다. 갑자기 농촌으로 탈출해서 가야한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것인가 아니면 도시에서 가능성이 있는 요소가 없는지 궁금하다. 오늘의 상황에서 탈출공동체란 무엇인가.

요즘 한국에 탈출공동체들이 많이 있다. 농촌에 가서 공동체를 이루는 원인이 무엇이냐면 도시의 악이다. 도시에는 소망이 없다. 아무리해도 도시에는 소망이 없다. 목회에 성공하려면 타협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소망이 없다. 그래서 우리끼리 다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보자고 해서 농촌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탈출공동체라고 하면 바벨탑에서 탈출하는 것이고 도시는 바벨탑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하느냐. 쉽지 않다. 탐구해야 한다. 도시에서 탈출해 가는 그룹이 있다. 그들에게 어떻냐고 물어보니 신나다는 것이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생활이 보장되니 일용할 양식에 걱정이 없고, 늘 새것을 만드는 것만 생각하고 그리고 기쁘니 좋다는 것이다.

자네들만 좋겠다고 하면 되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재미있다. 월남이나 태국에서 산다는 것이다. 그곳은 우리보다 비참한 바벨탑이다. 그곳에서는 새것을 우리보다 더 기다린다. 사랑으로 껴안아 주면 호응이 좋다. 한국의 떠돌이는 어떻게 할것이냐고 물으니 어떤 공동체에서는 "그 사람들은 더 소망이 없어요. 게을러서 얻어먹고 앉아있으려 한다"고 말한다. 왜 게을러서 억어먹고 살게되었는가는 묻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말 얻어먹는 삶이 아니라 참 삶의 꿈을 보고 악을 보고 몸서림 치게 하느냐.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애굽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생활을 수백년하다가 나왔다. 고생할수록 떠돌이는 도시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적선해 주는 것을 얻어먹는 것은 지금도 한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참을수 없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모세나 예수님같은 존재가 생겨서 그들안에 들어가 그들을 깨우치고 살리고 새로운 꿈을 주어서 완전히 생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도시의 문화는 생명문화가 아니다. 어떻게 적응해 사느냐 하는 문제일뿐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포기할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온다. 예수님은 도시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새롭게 해석한다. 십자가는 이런것이다. 예수님의 선교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 하나님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깨닫고 돌아서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것은 깨닫고 돌아서게 하는 것이었다. 떠돌이들도 깨닫고 돌아서게 하기위해 먼저 사랑해주고 격려해주고 때가 이르면 깨우쳐 준다.

그런데 도시에 있는 사람가운데 부자청년같은 사람이 있다. 영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요한복음에는 니고데모 같은 사람이 있다. 진리를 찾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권면하는 사람이 있다. 권면하는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운데 깨닫지 못한 사람도 있다. 깨우쳐 주어야 한다. 떠돌이는 껴안고 하는 것은 되는데 중간층에 있는 사람은 깨닫지 못핫다. 아직도 세상에 매력이 있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악을 보고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로 결정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기로 결정하신 것은 갈릴리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하니 자기들이 감당할수 없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를 불러서 와보니 기적을 행하는것을 부정할수 없었다. 악령을 추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악령을 쫓으시는 것은 마귀의 두목의 힘을 얻어서 한다는 거짓 유언이버를 만들었다. 예루살렘에서 온 학자가 말하니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

예수님은 먼저 두목을 얽어매야겠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야 그뒤에 있는 것을 빼낼수 있다. 두목은 대사제이다. 대사제를 얽는다는 것은 가면뒤에 있는 추한것을 폭로시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이 다 가짜라는 사실을 본다면 깨닫을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채찍을 들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 상식적으로 채찍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혁명이 가능했겠는가. 아니면 대사제가 회개하겠는가. 상식적으로 맞지않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채찍으로 성전을 숙청했다. 그 결과를 대사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만들었다.

모두가 예수님을 보고 참 착한 선생이며 죄없는 분이라 존경하는데 대사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게 만들었다. 십자가는 로마에서 정치범이나 노예들만 처형하는 수단이다. 거룩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 그러자 대사제의 추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사흘후에 놀라운 경험을 하고 이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시간이다. 대사제는 무너졌고 거룩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들어간 것이 무엇인가 반문하는 시간이다. 모든것을 반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은 것은 예수님이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보게 하시려고 스스로 십자가에 돌아가셨구나. 사흘후에 3천명씩 회개했다. 도시에서도 깨닫게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농촌에 가서 새공동체를 만드는 것보다 도시에서 이것을 깨닫게 하는 운동이 사실 십자가를 지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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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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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목사의 91년간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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