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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목사 ①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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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2-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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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b.jpg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NCKPC. 총회장 임형태 목사)는 "성령과 목회"라는 주제로 5차 전국 목회자 컨퍼런스를 10월 8일부터 4일간 뉴저지 찬양교회(허봉기 목사)에서 열었다.

주강사 박영돈 목사는 현재 고신대 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로 있으면서 성령론에 대한 많은 저서를 냈다. 박영돈 목사는 4번의 주제강의를 했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강의는 두번째 주제강의인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이다. 이 강의는 박영돈 목사의 저서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을 요약한것으로 한국교회의 잘못된 성령운동을 지적하며 성경적으로 성령의 특성을 해석한 내용으로 이를 2번에 걸쳐 소개한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과 영적인 분별력

최근 한국교회에 성령에 대한 혼란이 아주 심한편이다. 수십년전에 한국교계를 휩쓸고 지나간 방언의 열풍이 다시 오는 것 같고 치유집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예언과 환상과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온갖 은사집회에 그리고 성령집회에서 나타나는 기이하고 무질서한 현상으로 인해 성령에 대한 오해와 혼란이 증폭되어 가고 있다. 어디까지가 성령의 역사이고 어디서부터 미혹의 영의 장난인지 분별하기가 어렵다.

소위 성령집회라는 곳에서 성령의 얼굴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왜곡된 가르침과 사역으로 인해 성령의 형상이 일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광명의 천사라고 자기를 위장하는데 명수인 마귀는 성령의 얼굴도 모방한다. 성령집회에서 성령의 얼굴과 미혹의 마귀의 얼굴이 혼재해서 나타나며, 성령의 사역자라는 이들에게서 두얼굴이 교차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어느때보다 더 예리한 영적인 분별력이 절실한때이다.

어떤 영적인 현상이 성령의 역사인지 미혹의 영의 장난인지를 분별하는 척도는 성경이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하면 안된다는 논리로 냉철한 성경적인 검증과 분별을 거부할때 교회안에 온갖종류의 사이비 가르침과 미혹의 영이 들어오게 된다. 성경으로 입증될수 없는 영적인 현상과 체험을 비판이라도 하면 성령의 역사를 훼방한다고 겁박하는 것이 사이비 성령운동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러나 진리의 잣대를 가지고 영적인 건강을 진단하는 것은 중대한 과제이고 임무이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할까 두려워 성경적인 검증을 회피하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며 성령의 뜻을 거스리고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성령의 근본적인 사역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성령은 말씀의 영이다. 자유하지만 말씀을 통해 역사한다. 말씀의 테두리안에서 역사하신다. 말씀의 굴레를 벗어난 성령운동은 이단들이 가장 많이 득실거리는 미혹의 온상이다. 성경의 기본진리만 알아도 쉽게 파악할수 미혹의 영의 장난을 분별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은 그만큼 교인들이 성경진리에 대해 무지하다는 증거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이나 다 믿는 것이라 할수 있다. 한국교회 문제는 아무것이나 너무 잘믿는데 있다. 비성경적인 것까지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한다. 교인들이 아멘을 너무 잘하는 것이 문제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멘을 한다. 생각하면서 아멘을 하게 해야한다.

요즘 한국교회에 자칭 예언자라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예언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그곳에서 선무당처럼 어설픈 예언자들이 무더기로 배출된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직통계시라도 받은 것 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했다" 또는 "성령님이 말씀했다"라는 말을 거침없이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기 생각에서 나온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되고 마귀적인 음성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장되기 일수이다. 그래서 온갖 허튼소리까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명분으로 범람하여 한국교회를 혼란하게 한다. 순진한 교인들은 그들이 직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것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오히려 그들의 말에 귀를 솔깃한다.

성령은 성경말씀을 계시하셨고 그리고 계시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는 표현과 말은 성경의 계시가 주어진 통로로 사용되었던 선지자들과 사도들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사용할수 있었다. 우리는 그 계시가 기록된 성경말씀을 전할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분명히 말할수 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고있는 사업이 번창할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미혹의 영의 장난이라 말할수 있다.

어느 목사가 큰기업을 하는 장로를 찾아가서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찾아가면 개척교회를 하는 자금을 후원해줄것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 장로가 자금을 후원할 사람은 나인데 그런 계시가 당신에게 주어졌다면 나에게도 주어져야 할텐데 나에게는 그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고 지혜롭게 목사를 돌려 보냈다고 한다. 어떤 청년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가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당신이 나의 배우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고 겁박하는 수단으로 예언을 사용하기도 한다.

성경에 기록된 미래에 대한 예언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속사와 직접 관련없는 개인의 사적인 일을 점치듯이 예언하는 일을 성경에서는 찾아볼수 없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간혹 성경의 감동과 메세지를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확신과 감동이 틀릴수도 있음을 알기에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증적으로 단정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 마음에는 성령님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욕망과 마귀적인 세력이 존재하여 복잡한 메세지가 우리안에서 교차되고 있기에 어떤 것만이 성령의 음성이라고 확증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안에 어떤 분명한 확신이 있는 경우에 성령님이 나에게 이런 감동을 이런 메세지를 주시는 것 같다 정도로는 말할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진리의 말씀은 잘 안믿고 점쟁이같은 예언자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표적에 끌려가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한국교회에 초자연적인 표적 현상으로 인해서 광적인 열심을 내는 이들은 많지만 복음의 진리에 사로잡혀 불꽃처럼 타오르는 건강한 신앙의 열심을 가진 사람은 희소하다. 말씀앞에 엎드리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지만 기적과 표적앞에 무분별하게 굴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령과 거룩한 수줍음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진리로 우리를 자유케해서 그리스도 형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성령은 아름다운 분이다. 그래서 우리를 아름답게 변화시키신다. 지금 한국교회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은사가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없어서 복음의 빛이 가려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는 것이 문제이다.

성령은 얼굴이 없는 인격이라는 말이 있다. 성령은 자신을 감추시는 신비로운 인격이다. 그렇기에 성령의 임재와 사역을 분별하기가 어려울때가 많다. 성령의 얼굴에 드러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신학자들은 거룩한 수줍음이라고 표현했다. 이 수줍음은 인간에게 볼수있는 병든 자의식의 산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너무 자신을 의식하고 그리고 자신감이 없어서 수줍어 한다.

그러나 이 거룩한 수줍음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상대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사랑의 속성이다.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통해 예수님만을 드러내는 거룩한 수줍음을 가졌다. 자신의 영광을 베일로 가리고 자신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만을 드러낸다. 거룩한 수줍음은 예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추구했다.

성부 하나님마저도 수줍어 한다는 말이 있다. 성부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영광을 받으시지만 그러나 성부 하나님 또한 성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또한 주님안에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시는 겸손하신 분이다. 자신만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마귀의 속성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때 우리들이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거룩한 수줍음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자기를 드러내기를 심히 부끄러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온통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이다. 요즘 성령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거룩한 수줍음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능력과 은사를 과시함으로 자신의 영광과 명성을 추구하려는 욕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그들에게서 나타날때가 많다.

성령의 얼굴이 나타나는 집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가 바르게 전파되고 옛사람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받는 은혜가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다. 아무리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외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바르게 전파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이 돌아가지 아니하고, 십자가에서 처리되지 아니한 옛사람이 주관하며, 그런 옛사람이 자신의 은사와 능력을 과시하는 곳에는 성령이 현저히 부재할수 박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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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 5차 전국 목회자 컨퍼런스

성령운동이 아니라 주술운동

성령운동이라는 말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편의상 사용하지만 성령운동이라는 말은 아주 잘못된 말이다.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고 선전하는 운동을 하는 분이 아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드러내고 에수님의 사역과 이름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신다. 그래서 성령운동이라는 말은 성령의 특성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잘못된 표현이다.

우리가 굳이 운동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면 성령은 성령운동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운동을 하는 분이라고 말을 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운동을 하는 성령사역을 강조했다. 그러나 작금에는 성령의 이름으로 인간을 높이는 성령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다.

또한 성령운동이라는 말은 마치 우리마음대로 성령을 운행하고 조정할수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전달하기에 부적합한 용어이다. 우리가 마음대로 성령을 조정하고 움직일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자유롭게 편하게 사용하셔야 한다. 성령은 우리가 마음대로 끌어당겨 사용할수 있는 에너지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사모하고 순종해야 할 인격적인 대상이다.

한국교회에 성령운동과 집회가 많이 열리기에 그만큼 성령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지만 어찌보면 오히려 성령님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성령님을 참으로 사랑해서 매일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고 성령님과 함께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성령운동과 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정작 그런 운동에서 나타나야 할 열매,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작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는 없이 광신적인 운동으로 성령운동이 전락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신앙이고, 신앙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주술이다. 성령운동이 자칫 잘못하면 주술운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성령을 인간의 도구로

최근 성령운동에서 임파테이션이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한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다른사람에게 전수해 준다는 말이다. 은사집회를 인도하는 목사가 안수를 통해 방언과 예언과 병고치는 은사를 전수해 주고 성령의 기름을 그에게 흘러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무시하고 성령을 하나의 인간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반면에 인간을 신격화하는 말이 될수가 있다. 자신이 마치 성령님을 유출시킬수 있는 성령의 원천처로 생각하는 위험에 빠질수 있다.

성령님은 신적인 인격이다. 이것이 성령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식이다. 성령님이 인격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신앙은 붕괴된다. 구원도 있을수 없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도 불가능하게 된다. 성령이 인격이 아니라 능력이나 영향력이라면 우리들에게 구원의 효력과 은혜를 전달하는 채널역할을 할수 있지만, 주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우리들에게 중재해주는 채널은 될수 없다. 신적인 인격을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임재가 불가능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구원의 경륜과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성령이 인격이 아니라면 삼위일체적인 신앙이 붕괴하게 된다. 성령을 통해 우리안에 삼위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적인 신앙이 붕되된다. 입으로는 삼위 하나님을 고백할지라도 성령을 자신이 마구 끌어당겨 사용할수 있는 능력으로 취급하는 일은 하는 사람은 이단자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인들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체함함으로 삼위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 그리고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체험하게 된다.

그것에서 부터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기도와 예배가 나오게 된것이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교리보다 체험이 앞선다는 말이 있다. 그들은 성령을 체험함으로 거룩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이 가장 자애롭고 친밀한 아빠로 체험하게 되었다. 아빠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가운데 부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그들의 존재속으로 밀려들어옴으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물러나고 부활의 능력과 생명력이 그들안에 밀려들어와서 그들을 주관하고 점령하는 것을 체험했다. 그래서 주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게 된것이다.

초대교인들은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잘 정리하고 발전된 삼위일체 교리는 없었지만 성령체험을 통해 그들의 삶속에 삼위 하나님의 부요한 임재와 축복을 만끽하는 삶을 산 것이다. 현대교회는 초대교회에 비해 아주 정교하게 발전된 삼위일체 교리는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삶속에 삼위 하나님의 부요한 임재와 그 분과의 깊은 교제의 체험은 많이 결여되어 있다. 교인들이 입으로는 삼위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그들의 삶속에서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순위이든지 상관이 없는 것 같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성령체험의 3박자

성령체험의 3박자는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빠로 체험하는 것이다. 아빠의 사랑이 우리안에 밀려들어옴을 체험하게 되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생명력이 우리를 사로잡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두번째 성령체험의 축은 성령을 체험하면 나를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평안해진다.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내가 평안해 진다. 짓눌렸던 내가 자유해진다. 겁먹었던 내가 관대해진다. 새로워진 나를 체험하게 된다. 주님을 사모하는 나, 주님을 닮아가는 나, 아름답게 변화되는 나를 체험하게 된다.

성령체험의 3번째 축은 너를 체험하게 된다. 우리가 이용할 대상으로 너는 있지만 사랑하고 교제하고 내가 섬겨야 할 대상으로서 너와 당신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성령을 체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너를 참으로 섬기고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령을 체험하게 되면 삼위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고, 나를 체험하게 되고, 그리고 너를 체험하게 되고 그래서 천국공동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체험의 3박자이다.

한국교회에 그렇게 많은 성령집회가 열리지만 진정한 성령체험은 희소하다. 대부분의 성령집회가 은사체험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온통 관심이 집중한채 성령체험의 심장과 영원이라고 할수있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빠져있다. 성령체험을 모든 다른 영의 체험과 구분하며 기독교 영성을 다른 모든 영성과 구별되게 하는 삼위일체적인 특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렇게 성령운동이 불건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본다. 신비적이고 열광적인 것에 끌리는 한국교인들의 종교적인 심성과 단숨에 획기적으로 변화되는 은혜를 갈구하는 영적인 요행심이 이런 성령운동과 잘 맞아 떨어졌다고 볼수있다. 끝없는 영적인 침체와 방황에서 헤어날수 있는 빠르고 쉬운 비결을 찾아서 방황하는 많은 교인들에게 그런 성령운동은 금방이라도 그들에게 놀라운 구원과 변화를 가져다 줄 것 같은 기대를 안겨주기도 한다.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쉽게 매료되고 종교적인 흥분을 체험하고 믿음의 가시적인 증거와 표적을 보아야 믿음이 지탱되고 믿음의 열심을 낼수있는 미성숙한 교인들을 끌기에는 성령운동보다 효과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이어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2부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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