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목사 "신비체험을 원하는 교인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페이지 정보
정보ㆍ2012-10-14 00:00관련링크
본문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NCKPC. 총회장 임형태 목사)는 "성령과 목회"라는 주제로 5차 전국 목회자 컨퍼런스를 10월 8일부터 4일간 뉴저지 찬양교회(허봉기 목사)에서 열었다.
주강사는 박영돈 목사. 박 목사는 현재 고신대 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로 있으면서 성령론에 대한 많은 저서를 냈다. 박영돈 목사는 4번의 주제강의를 했는데 그 제목은 '성직자의 육신의 소욕',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성령으로 충만한 목회', '성령과 기도'등이다.
다음은 주제강의후 질답을 통한 박영돈 목사의 대답이다. 교회밖 신비체험을 하기 원하며 무분별한 성령운동속으로 들어가려는 교인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손기철 장로 집회같은 쓰러뜨리기 집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혹시 그러한 집회들의 유익은 없는가. 그 답이 여기에 있다.
[질문] 목사는 목회현장에서 교인들이 경험하는 일들을 바르게 가이드할 필요가 있는데 배우기는 했어도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현상에 대하여 대답하기 여려운 경우가 많다. 교인들이 아이합등 교회외 집회에서 일반 장로교회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넘어지는 현상등 영적인 액스타시 같은 것을 경험한다. 더우기 갔다와서 하는 말이 집회에 참석하면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말썽을 피우면 이야기가 하기가 쉬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무분별한 성령운동속으로 교인들이 들어가는 문제를 어떻게 가이드하면 좋겠는가?
우리들의 신학과 논리세계는 한계가 있기에 영적체험의 다양성을 모두 설명할수 없고 그런 체계안에서 우리들의 영적인 현상을 다 제한하고 가두어 놓을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잡다한 영적인 현상과 체험을 성경의 척도에 의해 검증해야 한다. 교인들이 너무 실용주의적인 가치관에 젖어있다. 먼저 성경적인가 진리인가 바른것인가를 판단하기 보다는 나에게 실제적인 유익이나 효과가 무엇인가를 먼저 고려한다. 이런것으로 진리를 진단할수 없다. 그것은 자유주의적인 접근이다. 경험적인 차원을 완전히 무시할수는 없지만 신앙체험을 항상 성경적으로 완벽하게 검증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제시를 해 주어야 한다.
쓰러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이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쓰러지는 능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기도원을 방문했다. 바닥에 사람들이 앉아 1시간동안 예배를 드리고 다 일어나라고 하더니 사열을 하듯이 목사가 지나가면서 손가락을 대도 사람이 넘어지고 어떤 경우는 그냥 지나가도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차례에 그 목사는 저를 보고 심상치 않게 생각하고 손가락이 아니라 손바닥을 가슴에 댔는데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 스러졌는데 혼자만 그냥 서있기 멋적어서 그냥 나왔다.
쓰러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손기철 장로 집회등 다른 집회에서도 물어 보았다. 그런데 쓰러진 사람중에 영적인 유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쓰러져서 평안함과 안식을 경험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런 유익이 있는 반면에 그것을 하나의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맨날 나가 쓰러지려고 한다. 그래야 안식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부흥집회등 집회에서 말씀이 전파될때 성령이 강력히 역사해서 사람들이 각성하여 울고 쓰러지는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사람을 쓰러뜨리려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을 쓰러뜨리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사람을 쓰러뜨리려는 현상을 창출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미혹의 영이 그 가운데 역사할수 있다. 사역자들의 그런 능력과시를 통해 온전한 성령의 역사가 주관하는 집회가 될수 없게 된다.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수 있다. 손가락만 대도 사람들을 넘어지는 것을 보고 목사를 이상적으로 추종하는 일도 일어난다. 성령의 역사로 그런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면 모르는데 일부러 사람을 불러내서 사람들앞에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 처럼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현상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어떤 유익이 아주 없을수는 없다. 유익이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더 혼란과 무질서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보다 항상 나가 그런것을 체험해야 은혜를 유지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문제이다. 가끔가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간혹있는 일이고 그것이 하나의 모멘트가 되면 좋은데 그런것을 통해서만 신비한 현상을 체험하고 그래서 짜릿함을 느끼고 그래야만 신앙을 유지하는 그러한 것이 문제가 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주강사는 박영돈 목사. 박 목사는 현재 고신대 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로 있으면서 성령론에 대한 많은 저서를 냈다. 박영돈 목사는 4번의 주제강의를 했는데 그 제목은 '성직자의 육신의 소욕',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성령으로 충만한 목회', '성령과 기도'등이다.
다음은 주제강의후 질답을 통한 박영돈 목사의 대답이다. 교회밖 신비체험을 하기 원하며 무분별한 성령운동속으로 들어가려는 교인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손기철 장로 집회같은 쓰러뜨리기 집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혹시 그러한 집회들의 유익은 없는가. 그 답이 여기에 있다.
[질문] 목사는 목회현장에서 교인들이 경험하는 일들을 바르게 가이드할 필요가 있는데 배우기는 했어도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현상에 대하여 대답하기 여려운 경우가 많다. 교인들이 아이합등 교회외 집회에서 일반 장로교회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넘어지는 현상등 영적인 액스타시 같은 것을 경험한다. 더우기 갔다와서 하는 말이 집회에 참석하면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말썽을 피우면 이야기가 하기가 쉬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무분별한 성령운동속으로 교인들이 들어가는 문제를 어떻게 가이드하면 좋겠는가?
우리들의 신학과 논리세계는 한계가 있기에 영적체험의 다양성을 모두 설명할수 없고 그런 체계안에서 우리들의 영적인 현상을 다 제한하고 가두어 놓을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잡다한 영적인 현상과 체험을 성경의 척도에 의해 검증해야 한다. 교인들이 너무 실용주의적인 가치관에 젖어있다. 먼저 성경적인가 진리인가 바른것인가를 판단하기 보다는 나에게 실제적인 유익이나 효과가 무엇인가를 먼저 고려한다. 이런것으로 진리를 진단할수 없다. 그것은 자유주의적인 접근이다. 경험적인 차원을 완전히 무시할수는 없지만 신앙체험을 항상 성경적으로 완벽하게 검증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제시를 해 주어야 한다.
쓰러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이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쓰러지는 능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기도원을 방문했다. 바닥에 사람들이 앉아 1시간동안 예배를 드리고 다 일어나라고 하더니 사열을 하듯이 목사가 지나가면서 손가락을 대도 사람이 넘어지고 어떤 경우는 그냥 지나가도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차례에 그 목사는 저를 보고 심상치 않게 생각하고 손가락이 아니라 손바닥을 가슴에 댔는데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 스러졌는데 혼자만 그냥 서있기 멋적어서 그냥 나왔다.
쓰러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손기철 장로 집회등 다른 집회에서도 물어 보았다. 그런데 쓰러진 사람중에 영적인 유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쓰러져서 평안함과 안식을 경험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런 유익이 있는 반면에 그것을 하나의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맨날 나가 쓰러지려고 한다. 그래야 안식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부흥집회등 집회에서 말씀이 전파될때 성령이 강력히 역사해서 사람들이 각성하여 울고 쓰러지는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사람을 쓰러뜨리려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을 쓰러뜨리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사람을 쓰러뜨리려는 현상을 창출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미혹의 영이 그 가운데 역사할수 있다. 사역자들의 그런 능력과시를 통해 온전한 성령의 역사가 주관하는 집회가 될수 없게 된다.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수 있다. 손가락만 대도 사람들을 넘어지는 것을 보고 목사를 이상적으로 추종하는 일도 일어난다. 성령의 역사로 그런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면 모르는데 일부러 사람을 불러내서 사람들앞에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 처럼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현상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어떤 유익이 아주 없을수는 없다. 유익이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더 혼란과 무질서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존하는 것 보다 항상 나가 그런것을 체험해야 은혜를 유지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문제이다. 가끔가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간혹있는 일이고 그것이 하나의 모멘트가 되면 좋은데 그런것을 통해서만 신비한 현상을 체험하고 그래서 짜릿함을 느끼고 그래야만 신앙을 유지하는 그러한 것이 문제가 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