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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김명용 총장 ② 요한계시록 14만4천은 희망의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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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ㆍ201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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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교협(회장 김종훈 목사)은 한국 장신대 총장 김명용 교수를 초청하여 요한계시록 세미나를 5월 20일(월) 오전 금강산 연회장에서 열었다. 세미나는 사회 현영갑 목사(총무), 기도 최창섭 목사(이단대책위원장), 강사 소개 김종훈 목사(회장)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2번째 강의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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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신대 총장 김명용 교수

3년반과 7년 대환란

요한계시록에는 등장하고 있는 역사와 신학적인 것을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기 위해서 '3년반'이라는 숫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3년반이라는 숫자를 잘못 이해하여 7년 대환란 이론을 만든 사람이 있다. 역사의 마지막에 7년간은 대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요한계시록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1:2(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에 나오는 마흔두 달이 3년반이다.

요한계시록 12:13-14(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을 보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내용이 나온다. 때가 1년이다. 그러면 '1년과 2년과 반년'이므로 3년반이 된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3년반과 12장에 나오는 3년반을 함께 엮어서 두개를 합해 7년이라고 해서 '7년 대환란' 이론을 만든 분들이 있다. 역사의 마지막에 가면 7년간 대환란이 일어날 것이기에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고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과 그 그룹,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이 많이 이야기를 했다.

'7년 대환란'에서 앞의 3년반은 전 환란시대이고 뒤의 3년반은 후 환란시대라고 해서, 앞은 복음이 전파되는 시기이고 뒤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시기이라고 주장을 했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이장림 목사가 나중에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하다보니 휴거가 일어난다는 날의 뒤에 사용할 예금통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검찰에서 완전히 사기꾼이라고 발표해서 신문에도 대문짝하게 났다. 본인이 이날 휴거가 일어난다고 했으면 그 다음에 쓸 예금통장이 있으면 안된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장림이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안했다. 세대주의자들의 전/후 환란시대 이론을 생각하면 그렇다. 세대주의 이론에 의하면 휴거가 일어나고 7년간 대환란중 전 환란시대에는 복음이 전파된다. 만약에 후 환란시대에 사용할수 있는 예금통장이 있었다면 이장림 목사는 100% 사기꾼이다. 그런데 전 환란시대에 쓸 수 있도록 통장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완벽하게 세대주의의 잘못된 사고에 빠진 이장림 목사가 전 환란시대에는 복음이 전파된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그때에 휴거를 못했다면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죽을 것이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검찰에서 저에게 조언을 해 달라고 했다면 이장림 목사가 사기꾼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물론 엉터리 이단은 틀림없지만 이장림 목사는 신학적인 이단이다.

7년 대환란 이론의 문제점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7년 대환란 이론은 세계신학계에서 보면 참 우스운 이론이다. 그런데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대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7년 대환란 이론을 믿었을때 일어나는 큰 문제는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가 생겨난다. 그 이유는 역사가 자꾸 나빠져서 마귀가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년간의 대환란이 일어나 세계가 전부 마귀가 지배하는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7년 대환란 이론을 가지게 되면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를 가졌을때 일어나는 교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의 사회적 역사적인 책임이다. 바로 거기에서 부터 흔들려 버린다. 역사를 개혁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거기에서 수포가 돌아간다. 왜냐하면 역사는 마귀의 세상이 되도록 운명되어져 있기에 역사를 개혁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려고 하는, 교회에 아주 중요한 하나님 나라 신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 정신이 7년 대환란 이론 때문에 완전히 파괴된다.

7년 대환란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잘못된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에 7년동안 이런것이 있을 것이라는 말세론 사고가 영향을 미치면서 잘못된 이론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교회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에 결정적인 암적 요소로 등장되었다. 지금도 이 이론을 믿고 있는 사람은 사회적 역사적인 책임에 속을수 밖에 없다.

3년반이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서 3년반이라는 숫자가 나오면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3년반은 마귀가 통치하는 통치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666을 잘못 이해하는 분들은 6이 마귀의 수라고 하는데 전혀 그것과 관계가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마귀와 연결되는 숫자는 3년반이라는 숫자이다. 요한계시록 11장과 12장에 3년반이 나오는데 이 두개를 합치면 안된다. 세대주의자들이 요한계시록 11장 3년반과 12장의 3년반을 합해서 만든 7년 대환란이라는 이론은 세대주의자들 자기들 머리속에서 만든 이론이 불과하다. 요한 계시록을 쓴 요한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이론이 아니다.

그러면 3년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유대 묵시문학의 가장 맏형격인 다니엘서로 올라가 보아야 한다. 묵시문학의 전통속에 3년반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구약의 다니엘서 7:25-26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 다니엘서 7:25-26

구약에서도 나오는 3년반

구약의 다니엘서에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나온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표현이 이미 구약의 다니엘서에서 정확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박해기의 책인 묵시문학에서 다니엘서가 제일 먼저 등장하는 맏형격인 책이다.

구약의 다니엘서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의 박해와 관련되어 있다. 유대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분노하고 그냥 산채로 맷돌에 갈아서 뼈를 마셔도 분이 안풀리는 존재가 둘이 있다. 하나는 유대인 6백만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이고 다른 한 사람이 안티오코스 4세이다. 다니엘서의 배경이 되는 통치자이다.

안티오코스 4세는 유대종교를 뿌리뽑아야 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율법을 읽는 것을 금지시켰다. 율법을 읽다가 발각이 되면 죽였다. 또 할례를 금지시켰다. 유대인 남자아이가 출생하면 8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데 할례를 받기만 하면 죽였다. 할례를 집전한 제사장도 죽였다. 할례를 받은 아이의 아버지도 죽였으며, 어머니는 죽은 아이의 시체를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유대인들이 가장 거룩하게 생각하는 곳이 성전이고, 가장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돼지이다. 안티오코스 4세는 유대종교를 철저하게 짓밟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돼지 떼로 몰고 성전에 들어가게 했다.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제단앞에서 돼지를 죽여서 피를 제단에 부렸다.

유대역사에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이 모욕을 당한적이 없다. 이 시대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한다. 믿음을 고백하다가 처형을 당하고, 믿음을 고백하면 그 자리에서 혀를 뽑았다. 산채로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었다. 믿음을 지키는 7형제가 있다면 형제를 차례차례 죽였다.

이 어마어마한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가 약 3년반 지속되다가 마카베오 형제의 영웅적인 저항으로 마침내 끝이 난다. 유대인에게 하누카 절기라는 것이 있는데 마카베오 형제들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다. 안티오코스 박해의 종식을 기념하는 절기가 하누카 절기이다. 그런데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가 3년반 지속이 됐다. 3년반이라는 숫자가 여기에서 부터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박해기 문학인 묵시문학에서 3년반은 마귀가 통치하는 기간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안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3년반을 7년으로 만들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희망의 역사관

3년반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3년반은 마귀가 통치하는 기간인데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긴 기간도 아니다. 3년반은 뒤에 나오는 천년왕국과 대립되는 숫자이다. 마귀는 3년반동안 통치하는데 그리스도의 통치는 천년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판단을 하려면 제대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3년반이라는 것은 도미시안 황제의 폭정, 마귀가 도미시안 황제의 권력을 사용해서 통치하고 있는 처참한 그 기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머지 않는 장래에 주님께서 오시고 주의 나라는 천년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3년반은 잠시라는 개념과 서로 연결이 된다. 그 잠시라는 말은 영원과 대립되는 말이다. 마귀는 잠시 3년반동안 통치하지만 주의 나라는 천년이 지속되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이런 너무나도 중요한 역사관이 상징적인 표현이 되어서 대립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3년반과 천년왕국, 잠시와 영원사이의 대립속에 요한계시록 안에는 아주 중요한 역사관이 들어있다. 요한계시록 역사관의 핵은 희망의 역사관이다.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세대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을 비관주의적 역사관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을 굉장히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희망의 역사관의 증거이다.

지금 현재가 비관적이다. 지금 현재 마귀가 지배하고 있다. 지금 현재를 보고 있으면 희망이 안보인다. 마귀가 황제의 권력을 사용해서 악을 행하는데 그곳에 무슨 희망이 보이겠는가. 그런데 희망이 하나도 없는 상황속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는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마귀가 황제의 권력을 사용해서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역사의 진짜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마귀도 우리 주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곧 역사가 바뀐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 역사가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서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나타낸다.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읽으면 어마어마한 희망의 책이다.

만델라의 예에서 보는 하나님의 역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보면 참 존경스러운 것이 있다. 그분이 인종차별에 저항해서 일을 시작할때 정말 나라의 전체를 마귀가 지배하고 있었다. 정말 어둠의 세상이었다. 불의한 지배세력의 힘이 국가권력까지 사용해서 엄청나게 컸다. 만델라가 어두운 역사속으로 들어갔다. 감옥에 들어가 27년반을 보냈다.

만델라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만난적이 있다. 그때 김영삼이 "나는 가택연금되어 있었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당신은 어떻게 27년반을 감옥에서 보낼수 있었는가"를 물었다. 만델라는 27년반동안 감옥에 있을수 있었던 비결은 맥주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감옥이 견디기 어려운 곳인데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맥주를 주었다. 만델라가 맥주를 기다기며 힘든 시간을 참고 이겼다는 것이다. 만델라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 분이 참 힘든 세월을 보냈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만델라가 정말 맥주만 기다렸겠는가. 기도를 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역사가 바뀌었다. 4년쯤 전에 영국에서 만델라 동상제막식이 있었다. 만델라가 참석한 가운데 영국의 당시 수상인 고든 브라운이 연설을 했다. 수상은 "만델라 당신이 감옥에 있을때 모든 영국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그 연설이 내 가슴을 쳤다. 감옥에 있는 만델라가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남아공 독재자들이 만델라를 죽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못죽였는가. 하나님이 모든 영국사람을 불러 일으키시고, 세계 사람들을 불러 일으키셔서 만델라를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렇게 세계가 외치니 남아공 독재자들이 만델라를 죽일수 없었다. 마침내 만델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흑백차별의 종지부를 찍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완성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남아공의 기나긴 인종차별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만델라가 감옥에 있었던 그 기간은 짫은 기간인지 모른다. 고난을 받았지만 마침내 역사가 바뀌어지고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만델라의 이름이 높아졌다. 이 땅에서만 만델라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만델라 이름은 영원토록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저는 교회가 희망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님이 진짜 역사의 주인이시지 악이 아무리 강하도 할지라도, 마귀가 국가권력을 가지고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이 진짜 역사의 주인이시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이 하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이 그것이다.

고난은 잠깐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

저 짐승 그 뒤에 붉은 용이 있고, 로마황제의 모든 권력과 조직뒤에 마귀가 있는데 잠깐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진짜 이 역사의 주인이시고, 너희가 진짜 이 역사속에서 왕이 될 것이며, 너희 이름이 찬란하게 빛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요한계시록 11:3-4

이것은 잘못 해석되는 아주 대표적인 본문이다. 여기에도 3년반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3년반은 마귀가 지배하는 통치기간이다. 두 감람나무가 신천지 선생님이나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바로 이런 역사적인 콘텍스트 속에서 그 당시 박해의 콘텍스트 속에서 이 본문을 읽어내야 한다.

먼저 두 증인이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1:6의 내용을 보면 두증인이 엘리야와 모세이다,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는 틀림없이 엘리야이다.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는 모세이다. 두 증인이 엘리야와 모세인데 이 시대는 두 사람의 시대가 아니다. 바로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엘레야와 모세같은 하나님의 일꾼을 말하는 것이다. 박해상황 속에서 엘리야와 모세같은 하나님의 일꾼은 누구인가.

모세와 엘리야는 적들과 큰 싸움을 했다. 어떻게 보면 힘없는 인간이 국가권력과 싸웠던 대표적인 성경적인 인물이 모세와 엘리야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큰싸움을 했듯이 지금 종말론적인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 처럼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죽어가는 순교자들을 말한다. 이 박해속에서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다가 죽어가는 순교자들과 순교자들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 요한 계시록 11:7

로마제국의 권력이 그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 요한 계시록 11:11-12

그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종말론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데 로마제국의 국가권력에 의해 그들이 죽지만 그들이 살아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14만4천은 무엇인가?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 요한 계시록 7: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 요한 계시록 14:1

요한계시록 자체가 위장언어를 사용하고 상징과 암호를 사용하고 있는 책이기에 14만4천을 문자적인 14만4천으로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요한계시록 전체 흐름에서 잘 맞지가 않는다. 14만4천은 도대체 무엇인가. 14만4천이 유대인만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러면 14만4천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요한계시록 7:9

14만4천을 마지막으로 설명하는 용어인데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라고 나오는데 바로 전체이다. 전체에서 14만4천명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보통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도 마찬가지인데, 14만4천을 이야기할때 숫자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에 기독교인 숫자만 생각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14만4천명만 구원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님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사람들가운데 14만4천명만 구원받으면 큰일이다. 초대교회때 사도들은 그래도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14만4천이 지금 살아있는 사람만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14만4천명 가운데 과거에 믿음을 훌륭하게 지켰던 분들이 많을테니 그 숫자를 다 빼고 나면 지금은 많이 잡아야 5만명 밖에 안남을 것이다. 그 5만명을 세계각국으로 나누면 실제로 얼마나 남겠는가. 결국 소수만 해당된다.

여호와의 증인 왕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만 구원을 받으며, 자기들과 연결되는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는 그런 의미가 들어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도 구원을 못받는다. 대개 이단들의 특징은 구원의 에고이즘이다. 훌륭한 종교일수록 구원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사이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교파일수록 에고이즘이 있다. 우리만 그리고 소수만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14만4천에 대한 바른 이해

14만4천의 기본적인 정신은 무엇인가. 그 당시 콘텍스트 속에서 어쩌면 예수믿는 사람의 전체 숫자가 14만4천이 안되던 시절이라고 볼 수가 있다. 당시 워낙 박해가 심하기에 박해속에서 누가 과연 구원을 받을 것인가 하는 회의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요한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확실하게 다 보았다는 것이다. 무려 14만4천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서 어린양앞에 서서 찬양을 하더라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확실히 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치신 사람은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다 어린양 앞에 서서 찬양하는 그 영광의 비전을 확실하게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14만4천이라는 숫자는 엄청난 희망을 주려는 희망의 숫자이다. 우리 가운데 구원에 실패할 사람이 한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치신 백성을 틀림없이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 요한계시록 14:4

14만4천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이다.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큰 음녀 바벨론이 나온다. 그것은 로마제국이다. 로마를 직접적으로 표현할수 없기에 이미 사라져간 바벨론 왕국을 가지고 표현한 것이다. 음녀는 우상숭배하는 것이다. 주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따라야 하는데 우상을 섬기는 그리고 우상 섬기기를 강요하는 로마제국을 음녀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라는 의미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로마황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라가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 요한계시록 11:15

너희들은 하늘나라에서만 주님앞에서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제 멀지 않는 장래에 세상 나라도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어떤 책인지를 잘 이해하고 요한계시록에 있는 상징과 암호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잘 인식하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이단들의 말들이 너무나도 우습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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