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희 목사 "기복주의와 사회주의적 설교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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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3-04-08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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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목사회(회장 최예식 목사)는 곽선희 목사 초청 목회자 세미나를 4월 8일(월) 오전 10시 퀸즈중앙장로교회(안창의 목사)에서 열었다. 곽 목사는 "설교와 현대 목회"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참가한 목회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다음은 네번째 마지막 세미나 내용이다.
곽선희 목사는 현대설교의 문제점으로 기복주의와 사회주의적 설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복주의적인 설교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잘알수 있다. 하지만 곽 목사가 말하는 사회주의적 설교란 무엇인가. 곽 목사는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설교이다.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지지한다. 그러나 그런 교회에는 복음이 없다"고 주장했다.
▲세미나를 인도하는 곽선희 목사
현대설교 문제점 3. 기복주의적인 설교
다음에 가장 중요한것은 기복주의이다. 누구나 잘안다. 복받는다고 자꾸 말하는데 복받는다고 해도 복받지 않고 부도난지 오래이다. 그러니 기복주의 설교는 왠만하면 그만하자. 어떤 목사는 설교하다 말고 3번을 축복한다. 물어보니 권사님이 설교할때 3번 축복을 하라고 해서 한다고 한다. 무슨 목사가 이렇게 되었는가. 이제 기복주의 설교는 그만하자. 식사기도하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말고 축복하고 감사한다고 한다. 축복이 입에 달려 있다. 그러지 말자. 복받는다는 말을 그만했으면 좋을것 같다. 왜 그런가. 우리는 이미 복을 받았다.
한번은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히브리 사람들 회당에 방문했는데 우리로 말하면 장로인 랍비가 나와서 기도하는데 기도내용때문에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이다. 마지막에는 이런 기도가 나온다. "이 사건은 이성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성의 비판을 누르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완전히 졌다. 당신들이 한수위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오로지 감사이다.
기도의 수준이 어디에 있는가. 감사이다. 예배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니 감사가 앞서는 것이다. 불만하다가 감사하고, 간절한 소원에 매였다가 이제는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고, 슬픔과 탄식으로 나가다가 행복과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이 바로 예배가 아닌가. 그러니 기복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잘안되는 것 같다.
인천에서 목회할때 비가 오면 큰 걱정을 했다. 비가 많이 오면 교인들이 반밖에 못나온다. 그래서 주일 아침에 비가 오면 비가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목회할때는 반대이다. 주일 아침에 비가오면 "오 주여 감사합니다. 막 퍼부으세요"라고 기도한다. 비가 오면 교인들이 골프치러 못간다. 그래서 주일에 비만 오면 교회가 터진다.
세상에는 고난과 환란이 있다. 그것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장로님 기도할때 보면 정치안정 이나 경제부흥을 위해 기도하면 나는 절대로 아멘을 안한다. 정치안정과 경제부흥되면 사람들이 교회에 안나온다. 다 안나올 사람들이다. 나는 강남에서 목회를 했다. 강남 스타일에 나오는 장소이다. 학자들이 강남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중요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들이 100억 로토에 당첨되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적어 내라고 했다.
설문의 통계가 놀랍다. 로토에 당첨되면 60%가 이혼하겠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엎드리고 사는 것이다. 잘사면 저 남자하고 저 여자하고 살지 않는다. 그런가운데 잘살게 해달라고 하면 되겠는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다. 그냥 놔 두라. 그런것은 기도제목이 아니다. 기복사상이 메세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옛날에는 기복적인 메세지가 가능했다. 부동산을 사면 땅값이 올라가서 감사하다고 십일조를 냈다. 하지만 지금은 땅값이 내려간다. 지금은 철야기도해도 안된다. 하도 답답해서 부동산에 대한 책을 사보았다. 결론은 앞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왠만하면 부동산은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도 목사가 해야할 일중 하나이다. 교인들이 원지 모르고 부동산에 따라가기 때문이다.
증권도 마찬가지로 끝났다. 증권박사 한 사람이 있는데 부도가 났다. 증권도 끝났다. 간단하다. "하나님 잘하고 계십니다" 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말고 "하나님 잘하고 계십니다" 라고 해야 한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목사가 알고 느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설교이다.
현대설교 문제점 4. 사회주의적인 설교
공산주의는 망했다.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중국 베이징에 인민대회장이 있다. 3만명이 들어가는 강당인데 공산당 전당대회하는 곳이다. 그곳에 외국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강사로 섰다. 특히 목사가 선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인데 강의를 했다. 중요한 강의를 했다. 중국은 새마을 운동을 하고 싶어 강사를 알아보다가 내가 지목이 되어 강의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각 성을 다니면서 강의를 했다. 중국의 성 하나에 5천만명이 산다.
강의할때 너무 복잡하게 말하면 안되고 간단하고 요령껏 말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나쁘다고 말을 안했지만, 이런 사회는 망한다고 강의를 했다. 첫째 거짓말 하면 망한다, 둘째 무책임하면 망한다, 게으르면 망한다. 뒤집어 보면 새마을 운동의 정신은 정직하자, 하는 일에 책임을 지자, 부지런 하자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2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굉장한 사건이다.
사회주의의 특징은 거짓말이다.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한다. 사회주의에서는 거짓말이 죄가 아니다. 거짓말은 좀 더 좋은 혁명을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는 거짓말을 하고도 가책이 없다. 제일 큰 문제이다. 또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그런데 중국에 공산주의가 물러갔지만 사회주의적인 철학이 남아있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나라에도 정치가 심지어 목사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죄인줄 모르는 형편이 됐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교회가 사회주의에 자기도 모르게 감염이 되었다. 그래서 사회주의적인 메세지를 좋아한다. 그래서 문제이다. 사회주의적인 메세지에 물들어 가난한 사람을 돌보자, 불쌍한 사람들을 책임지자고 한다. 아니다.
1963년 뉴욕에서 공부할때 미국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했다. 설교를 하면 사례금으로 40불을 주었다. 어느날 설교를 하러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왠 점잖은 사람이 배가 고프니 도와달라고 했다. 주일에 설교하러 가는 사람이 거절하면 안될것 같아 돈을 주려고 했는데 마침 1불짜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절하면 설교가 안될 것 같아서 아까운 5불을 주었다. 그 사람은 돈을 받고 고맙다고 하고 갔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왠 신사가 나에게 오더니 돈을 주었다고 불평을 했다. 신사는 목사인 나에게 설교를 한다. 평생 잊지 못한다. 신사는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라고 하셨다. 당신이 돈을 주었다고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줄 아는가. 그 사람은 마약하는 사람이다. 당신과 같은 낭만주의에 빠진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마약을 하는 것이 아닌가. 돈을 주면 안된다"라며 한참 설교를 들었다. 평생 잊지 못한다.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적인 설교이다. 공산주의 설교이다. 제발 그러지 말라. 그것은 안된다.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지지한다. 저 교회는 좋은 교회이다, 저 교회는 점심을 주는 교회라고 하는데 복음이 없다. 그런 교회에는 복음이 없다.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어쩌자고 우리 교회가 사회주의 경향에 빠져 들어가는가.
일본에 가서 놀랐다. 일본 목사들이 모여서 왜 일본교회는 2백년이나 되었는데 부흥이 안되고 소망교회같은 큰 교회가 없는가를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일본은 처음부터 교회가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일본의 교회들은 처음부터 구제기관으로 시작했다. 전부 빈민구제기관으로 시작했기에 영혼구원은 없었다. 그래서 일본교회는 오늘날 교인이 평균 30명이다. 일본가서 보면 정말 속상하다. 뿌리에서 부터 잘못됐다.
일본에서 빈민구제를 하는 교회를 가 보았다. 큰 공원옆에 있는 교회인데 정오까지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다가 종을 치니 2백명이 들어와 교회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점심 먹고 가버린다. 일본 목사에게 물으니 10년동안 했는데 빈민구제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1층이 식당이고 2층이 교회인데 단 한사람도 식사를 하고 2층에 올라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할것인가를 물어보았다. 일본 목사는 고민이 있다고 했다.
노동자를 도와주고, 불쌍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이것은 교회의 목적이 아니다.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인 천당이다. 그것밖에 없다. 초대교회가 무엇인가. 카타쿰이다.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굴속에 들어가 살면서 기도하다가 주님앞으로 갔다. 이것이 교회이다. 다음이 수도원 교회 그 다음이 우리 신교 교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교회들은 참 조심해야 한다. 사회주의화하면 안된다. 물질화해도 안된다. 오늘의 세속적인 세상의 어떤 것이 교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하늘나라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다. 복음주의 교회들은 구제를 많이하고 선한 사업도 많이 한다. 사회주의적인 교회는 말만하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잊어서는 안된다. 어쨌던 목사의 메세지가 세상으로 가면 안된다. 세속적인 것에 타협하고 그 쪽으로 내려가면 어느 사이에 사회주의적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만다. 큰 문제이다.
교회의 비지니스화와 목사의 영웅주의
경영학적인 문제, 비지니스이다. 교회가 너무 사업에 치중해서 예배당도 짓고, 교육관도 짓고, 무엇하고 하는데 내가 다 해보니 별것 아니다. 문제는 지나쳐서 한국교회는 큰일났다. 사방에 교회당을 짓다가 돈을 못내서 목사가 도망가고 난리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다는 성경말씀이 생각난다. 넉넉한데 왜 자꾸 예배당을 늘리다가 저렇게 힘들게 되나. 교인이 많아서 예배당을 지어야지 예배당을 지어놓고 채우려면 안된다.
유명한 갈보리 교회 척 스미스 목사가 한국에 와서 설교할때 내가 통역을 했다. 그 양반 설교하는데 깜짝 놀라서 통역하기가 좀 거북한 적이 있다. 척 스미스 목사는 "목사가 예배당을 지어놓고 설교하면서 내집을 채워라 하고 하면 그 다음부터 망한다. 내 집이 차서 집을 지어야지 지어놓고 채우라고 한다. 그것도 교인보고 채우라고 한다. 그러니 교인들은 '목사가 설교를 잘해야 차지'라고 생각한다. 또 예배당을 채우는 것은 목사가 할일이지 왜 우리보고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라고 설교하니 통역하기가 거북했다.
부탁이다. 교회가 비지니스화 하는 것, 경영화하는 것이 참 문제이다. 너무 마음 아픈일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교회중에 부목사가 100명이 넘는 어느 교회가 있다. 부목사들이 많으니 사택이나 자동차를 못준다. 그러나 부목사를 부린다. 교인들을 동원하는 일에 부목사를 부려 먹는다. 그 교회 담임목사가 나에게 교역자 회의에 간다고 하면서 "부목사 그놈들을 조져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의식이 이래서 되겠는가. 교회를 기업으로 생각해서 자꾸 늘이고 늘여서 큰기업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목회자의 마음은 아니다.
교회가 커야 목사가 커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교인이 많아야 목사가 큰 목사라고 생각한다. 목사의 영웅주의이다. 아 이것은 참 끝에 왔다. 요새 볼때 심판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목사의 영웅주의는 아니올시다. 목사는 정말 겸손하게 하나님앞에서 일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목회자 분들에게 책들을 소개한다. 첫째 "바벨탑에 갇힌 복음"이다. 젊은 목회자에게 3번이상 읽으라고 한다. 정말 해답이 여기에 있다. 둘째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이고, 가장 추천하는 책은 "감동을 주는 교리 설교"이다. 피츠버그 신학교 교장이 쓴 책으로 아주 좋은 책이다. 잘읽어보라. 오히려 윤리적인 설교, 사회주의적인 설교 때문에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교리설교로 다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시면서 귀한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곽선희 목사는 현대설교의 문제점으로 기복주의와 사회주의적 설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복주의적인 설교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잘알수 있다. 하지만 곽 목사가 말하는 사회주의적 설교란 무엇인가. 곽 목사는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설교이다.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지지한다. 그러나 그런 교회에는 복음이 없다"고 주장했다.
▲세미나를 인도하는 곽선희 목사
현대설교 문제점 3. 기복주의적인 설교
다음에 가장 중요한것은 기복주의이다. 누구나 잘안다. 복받는다고 자꾸 말하는데 복받는다고 해도 복받지 않고 부도난지 오래이다. 그러니 기복주의 설교는 왠만하면 그만하자. 어떤 목사는 설교하다 말고 3번을 축복한다. 물어보니 권사님이 설교할때 3번 축복을 하라고 해서 한다고 한다. 무슨 목사가 이렇게 되었는가. 이제 기복주의 설교는 그만하자. 식사기도하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말고 축복하고 감사한다고 한다. 축복이 입에 달려 있다. 그러지 말자. 복받는다는 말을 그만했으면 좋을것 같다. 왜 그런가. 우리는 이미 복을 받았다.
한번은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히브리 사람들 회당에 방문했는데 우리로 말하면 장로인 랍비가 나와서 기도하는데 기도내용때문에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이다. 마지막에는 이런 기도가 나온다. "이 사건은 이성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성의 비판을 누르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완전히 졌다. 당신들이 한수위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오로지 감사이다.
기도의 수준이 어디에 있는가. 감사이다. 예배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니 감사가 앞서는 것이다. 불만하다가 감사하고, 간절한 소원에 매였다가 이제는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고, 슬픔과 탄식으로 나가다가 행복과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이 바로 예배가 아닌가. 그러니 기복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잘안되는 것 같다.
인천에서 목회할때 비가 오면 큰 걱정을 했다. 비가 많이 오면 교인들이 반밖에 못나온다. 그래서 주일 아침에 비가 오면 비가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목회할때는 반대이다. 주일 아침에 비가오면 "오 주여 감사합니다. 막 퍼부으세요"라고 기도한다. 비가 오면 교인들이 골프치러 못간다. 그래서 주일에 비만 오면 교회가 터진다.
세상에는 고난과 환란이 있다. 그것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장로님 기도할때 보면 정치안정 이나 경제부흥을 위해 기도하면 나는 절대로 아멘을 안한다. 정치안정과 경제부흥되면 사람들이 교회에 안나온다. 다 안나올 사람들이다. 나는 강남에서 목회를 했다. 강남 스타일에 나오는 장소이다. 학자들이 강남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중요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들이 100억 로토에 당첨되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적어 내라고 했다.
설문의 통계가 놀랍다. 로토에 당첨되면 60%가 이혼하겠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엎드리고 사는 것이다. 잘사면 저 남자하고 저 여자하고 살지 않는다. 그런가운데 잘살게 해달라고 하면 되겠는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이다. 그냥 놔 두라. 그런것은 기도제목이 아니다. 기복사상이 메세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옛날에는 기복적인 메세지가 가능했다. 부동산을 사면 땅값이 올라가서 감사하다고 십일조를 냈다. 하지만 지금은 땅값이 내려간다. 지금은 철야기도해도 안된다. 하도 답답해서 부동산에 대한 책을 사보았다. 결론은 앞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왠만하면 부동산은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도 목사가 해야할 일중 하나이다. 교인들이 원지 모르고 부동산에 따라가기 때문이다.
증권도 마찬가지로 끝났다. 증권박사 한 사람이 있는데 부도가 났다. 증권도 끝났다. 간단하다. "하나님 잘하고 계십니다" 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말고 "하나님 잘하고 계십니다" 라고 해야 한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목사가 알고 느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설교이다.
현대설교 문제점 4. 사회주의적인 설교
공산주의는 망했다.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중국 베이징에 인민대회장이 있다. 3만명이 들어가는 강당인데 공산당 전당대회하는 곳이다. 그곳에 외국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강사로 섰다. 특히 목사가 선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인데 강의를 했다. 중요한 강의를 했다. 중국은 새마을 운동을 하고 싶어 강사를 알아보다가 내가 지목이 되어 강의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각 성을 다니면서 강의를 했다. 중국의 성 하나에 5천만명이 산다.
강의할때 너무 복잡하게 말하면 안되고 간단하고 요령껏 말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나쁘다고 말을 안했지만, 이런 사회는 망한다고 강의를 했다. 첫째 거짓말 하면 망한다, 둘째 무책임하면 망한다, 게으르면 망한다. 뒤집어 보면 새마을 운동의 정신은 정직하자, 하는 일에 책임을 지자, 부지런 하자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2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굉장한 사건이다.
사회주의의 특징은 거짓말이다.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한다. 사회주의에서는 거짓말이 죄가 아니다. 거짓말은 좀 더 좋은 혁명을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는 거짓말을 하고도 가책이 없다. 제일 큰 문제이다. 또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그런데 중국에 공산주의가 물러갔지만 사회주의적인 철학이 남아있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나라에도 정치가 심지어 목사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죄인줄 모르는 형편이 됐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교회가 사회주의에 자기도 모르게 감염이 되었다. 그래서 사회주의적인 메세지를 좋아한다. 그래서 문제이다. 사회주의적인 메세지에 물들어 가난한 사람을 돌보자, 불쌍한 사람들을 책임지자고 한다. 아니다.
1963년 뉴욕에서 공부할때 미국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했다. 설교를 하면 사례금으로 40불을 주었다. 어느날 설교를 하러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왠 점잖은 사람이 배가 고프니 도와달라고 했다. 주일에 설교하러 가는 사람이 거절하면 안될것 같아 돈을 주려고 했는데 마침 1불짜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절하면 설교가 안될 것 같아서 아까운 5불을 주었다. 그 사람은 돈을 받고 고맙다고 하고 갔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던 왠 신사가 나에게 오더니 돈을 주었다고 불평을 했다. 신사는 목사인 나에게 설교를 한다. 평생 잊지 못한다. 신사는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라고 하셨다. 당신이 돈을 주었다고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줄 아는가. 그 사람은 마약하는 사람이다. 당신과 같은 낭만주의에 빠진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마약을 하는 것이 아닌가. 돈을 주면 안된다"라며 한참 설교를 들었다. 평생 잊지 못한다.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적인 설교이다. 공산주의 설교이다. 제발 그러지 말라. 그것은 안된다.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지지한다. 저 교회는 좋은 교회이다, 저 교회는 점심을 주는 교회라고 하는데 복음이 없다. 그런 교회에는 복음이 없다.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어쩌자고 우리 교회가 사회주의 경향에 빠져 들어가는가.
일본에 가서 놀랐다. 일본 목사들이 모여서 왜 일본교회는 2백년이나 되었는데 부흥이 안되고 소망교회같은 큰 교회가 없는가를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일본은 처음부터 교회가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일본의 교회들은 처음부터 구제기관으로 시작했다. 전부 빈민구제기관으로 시작했기에 영혼구원은 없었다. 그래서 일본교회는 오늘날 교인이 평균 30명이다. 일본가서 보면 정말 속상하다. 뿌리에서 부터 잘못됐다.
일본에서 빈민구제를 하는 교회를 가 보았다. 큰 공원옆에 있는 교회인데 정오까지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다가 종을 치니 2백명이 들어와 교회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점심 먹고 가버린다. 일본 목사에게 물으니 10년동안 했는데 빈민구제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1층이 식당이고 2층이 교회인데 단 한사람도 식사를 하고 2층에 올라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할것인가를 물어보았다. 일본 목사는 고민이 있다고 했다.
노동자를 도와주고, 불쌍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이것은 교회의 목적이 아니다.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인 천당이다. 그것밖에 없다. 초대교회가 무엇인가. 카타쿰이다.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굴속에 들어가 살면서 기도하다가 주님앞으로 갔다. 이것이 교회이다. 다음이 수도원 교회 그 다음이 우리 신교 교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교회들은 참 조심해야 한다. 사회주의화하면 안된다. 물질화해도 안된다. 오늘의 세속적인 세상의 어떤 것이 교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하늘나라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다. 복음주의 교회들은 구제를 많이하고 선한 사업도 많이 한다. 사회주의적인 교회는 말만하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잊어서는 안된다. 어쨌던 목사의 메세지가 세상으로 가면 안된다. 세속적인 것에 타협하고 그 쪽으로 내려가면 어느 사이에 사회주의적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만다. 큰 문제이다.
교회의 비지니스화와 목사의 영웅주의
경영학적인 문제, 비지니스이다. 교회가 너무 사업에 치중해서 예배당도 짓고, 교육관도 짓고, 무엇하고 하는데 내가 다 해보니 별것 아니다. 문제는 지나쳐서 한국교회는 큰일났다. 사방에 교회당을 짓다가 돈을 못내서 목사가 도망가고 난리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다는 성경말씀이 생각난다. 넉넉한데 왜 자꾸 예배당을 늘리다가 저렇게 힘들게 되나. 교인이 많아서 예배당을 지어야지 예배당을 지어놓고 채우려면 안된다.
유명한 갈보리 교회 척 스미스 목사가 한국에 와서 설교할때 내가 통역을 했다. 그 양반 설교하는데 깜짝 놀라서 통역하기가 좀 거북한 적이 있다. 척 스미스 목사는 "목사가 예배당을 지어놓고 설교하면서 내집을 채워라 하고 하면 그 다음부터 망한다. 내 집이 차서 집을 지어야지 지어놓고 채우라고 한다. 그것도 교인보고 채우라고 한다. 그러니 교인들은 '목사가 설교를 잘해야 차지'라고 생각한다. 또 예배당을 채우는 것은 목사가 할일이지 왜 우리보고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라고 설교하니 통역하기가 거북했다.
부탁이다. 교회가 비지니스화 하는 것, 경영화하는 것이 참 문제이다. 너무 마음 아픈일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교회중에 부목사가 100명이 넘는 어느 교회가 있다. 부목사들이 많으니 사택이나 자동차를 못준다. 그러나 부목사를 부린다. 교인들을 동원하는 일에 부목사를 부려 먹는다. 그 교회 담임목사가 나에게 교역자 회의에 간다고 하면서 "부목사 그놈들을 조져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의식이 이래서 되겠는가. 교회를 기업으로 생각해서 자꾸 늘이고 늘여서 큰기업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목회자의 마음은 아니다.
교회가 커야 목사가 커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교인이 많아야 목사가 큰 목사라고 생각한다. 목사의 영웅주의이다. 아 이것은 참 끝에 왔다. 요새 볼때 심판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목사의 영웅주의는 아니올시다. 목사는 정말 겸손하게 하나님앞에서 일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목회자 분들에게 책들을 소개한다. 첫째 "바벨탑에 갇힌 복음"이다. 젊은 목회자에게 3번이상 읽으라고 한다. 정말 해답이 여기에 있다. 둘째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이고, 가장 추천하는 책은 "감동을 주는 교리 설교"이다. 피츠버그 신학교 교장이 쓴 책으로 아주 좋은 책이다. 잘읽어보라. 오히려 윤리적인 설교, 사회주의적인 설교 때문에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교리설교로 다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시면서 귀한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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