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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목사 "하나님의 3가지 인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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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3-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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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초대교회(김승희 목사)는 지난해에 이어 최동호 목사(성신장로교회)를 초청하여 신년부흥성회를 1월 11일(금)부터 3일간 열었다. 최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한영신학대학교 이사로 있으며 '주닮기 프로젝트', '흩어지는 교회세우기', '제자훈련'등 저서를 냈다.

신년 부흥성회는 아무래도 성도들의 새해 신앙생활을 가이드하는 제직수련회의 성격을 가진다. 첫날 최 목사는 출애굽기 13장 17-20절을 본문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광야같은 새해의 성도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설교했다. 하나님의 3가지 인도하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지의 세계인 2013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가까운 길보다는 바른 길로 인도하면서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신다. 둘째, 광야길을 돌리신 것은 우리를 훈련하고 다듬기 위함이다. 훈련하고 다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굽을 지우는 것이다. 그 방법은 희생의 제사외에는 없다. 새해에는 예배만큼만은 승리하고 예배 성공자들이 되어 우리의 가슴속애서 애굽이 지워야 한다.

셋째, 하나님은 앞서가면서 구름과 불기등으로 우리들을 감싸면서 한가지 소망하시는 것은 우리가 좀 더 성숙하기를 원하신다. '언제까지 그럴래'라고 애타게 바라보시는 주님의 가슴을 여러분들의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정말 새해에는 주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성숙되고 복된 한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3장 17-20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최고 행복한 순간은 첫사랑이라고 답했다. 첫사랑은 보고 또 보고싶은 것이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상대의 단점까지도 이뻐 보이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슨말을 해도 무조건 동의가 되는 것이 첫사랑이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영원한것이 아니라 얼마 못가서 다 변한다. 신앙생활의 최고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첫사랑을 느낄때이다. 주님과 첫사랑을 느꼈을때 여러분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말씀이 꿀맛같았다. 그런데 어느순간 졸음이 쏫아지고 다른 생각이 들어오고 가슴이 메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낀다.

여러분들은 그런 삶의 모습이 아닌가. 첫사랑을 가지고 있을때는 기도하면 척척 응답받는데, 첫사랑이 식어지니 이제는 불러도 대답없는 현장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 뿐인가. 예배에 참석하면 감격과 뜨거움이 있고 '주님'이라는 두글자만 불러도 가슴에 뜨거운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뜨거움이 매말라 버린것이 우리의 현주소는 아닌가. 힘들고 어려운 지난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했는데 이 미지의 세계가 대로처럼 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새해 기분이 가장 상실된 해가 올해 연초라고 말한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선포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자며 셀레는 마음으로 10가지 재앙의 현장을 통과하고 출발을 한다. 가나안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가나안을 향하여 첫발을 딛는 내용이 본문이다. 그런데 상상을 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걸음을 내딘 장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장소가 아니라 광야라고 말하고 있다. 이민을 올때 한결같이 한국에서 보다 더 좋은 내일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비전을 안고 왔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토록 기대했던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했던 곳이 힘들고 벅찬 광야의 여정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라.

물론 사람따라 경우에 따라 환경따라 다를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것은 내 기대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은 다 공감할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첫 인도하신 곳은 광야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쉽게 실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불과 2백마일 정도의 거리였다. 여러날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몇일이면 갈 광야의 여정이 무려 40년이 걸렸다. 왜 하나님은 몇일만에 갈 수 있는 길을 40년동안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을가.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7절)

블레셋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그 길로 인도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들의 마음속의 소망이 있다면 모든 고생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최대한 지름길로 갔으면 좋겠고, 기왕가는 길이라면 남들보다 앞서가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 잘아신다. 블레셋 길은 지름길이고 빠른길이고 쉬운길이고 남들보다 앞서갈수 있는 길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가까운 길보다는 바른 길을, 빠른길보다는 바른길을, 지름길보다는 바른길을 인도하는 하나님이시다. 이것만 믿으면 새해에는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다.

광야라는 것이 몸서리 치게 힘들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고, 남들보다 앞서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적인 희망이며 소망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그 길이 지름길인줄 아시면서도 인도할수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그들에게 가까운 길로 인도를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길을 제시하셨을까. 아무도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마음의 생각도 알고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내 생각을 꽤뚫어 보고 계시분이 내가 탈선할까봐, 망가질까봐, 버려질까봐 그 길로는 못데려 가시겠다는 것이다.

지름길로 못데리고 가는 이유는 나에게 플러스가 안되고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지름길로 가서 행복하지 못하고 역효과가 난다면 왜 그 길을 가야 하는가.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들의 요구를 어떤때는 들어주지만 어떤때는 냉혹하게 거절한다. 그 이유는 내자식이 잘되기를 원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나를 잘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그 말씀의 적용을 우리에게 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길은 가까운 길보다는 바르게 되는 길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생각으로 새해를 살아가라.

하나님은 불레셋의 길이 가까운데 바로 갈수 있는데 가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 길로가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한번도 한적이 없어 전쟁이 일어나면 다시 애굽으로 가버리는 것을 막기위해 광야길로 인도하셨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아말렉과 전쟁이 있다. 돌려서 준비가 된 그때에 아말렉과 전쟁이 일어난다. 모세의 두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긴다. 그것을 보다 못한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을 잡고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라는 승리의 깃발을 꽃는다.

전쟁은 칼과 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일깨워 주신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이긴것 처럼 준비가 되었다면 블레셋과도 전쟁을 허락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애굽에 나오자 마자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조차도 감당하지 못할것이다. 기도할 힘도 잃어버리고 기도해야 할 생각도 안든다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사람이다. 그래도 깨닫고 가까운 길보다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 그들에게는 기도만이 살길이라고 아말렉과 전쟁의 승리의 주인공이 되게하신다. 기도를 잃어버리고 절망하고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삶이 되어지면 기도만이 살길임을 알게된다. 삶의 현장마다 여호와 닛시가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을 역사하심을 기도로만 이룰수 있다.

그런데 내 가슴에 삶의 현장에 그것이 와닿지 않는다. 깨닫는 사람에게만 와 닿는다. 우리가 한가지 기억할것은 사람이 아무리 많이 준비한다고 해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계획은 가까운 길이지만, 가까운 길은 절대 완전하지 않다. 바른 길만이 완전히 선다. 기억할것은 하나님은 내모든것을 너무 잘알기에 그때그때 수준에 맞는 일들을 벌여가신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감당할만하니 주신것이다. 감당을 못한다면 허락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만약 감당할수 없다면 피할길을 주신다. 그런데 무엇을 걱정하는가. 바른길을 가는데는 걸림돌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해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가지 가슴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빠른길 말고 바른길, 쉬운길이 아니라 바른길을 가자는 것이다. 지름길을 찾는자가 아니라 바른길을 찾는 성도가 되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18절)

홍해의 광야 길로 돌리시는 하나님이다. 왜 돌리셨는가. 몇일이면 갈수 있는데 40년간 돌리셨다. 우리의 삶의 원리도 같다. 몇일이면 갈수있는데 미련하게 연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돌리는 이유는 훈련을 시키시기 위해서이다. 나를 다듬으시기 위함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겠는가. 광야의 길로 돌리신 목적을 본문에 보면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그랬다고 나온다.

애굽에서 고생하고 그 고생을 끝내고 싶어 가나안을 선택했지만, 그들의 온 가슴속에는 애굽밖에는 없다. 애굽을 완전히 지우는데 40년이 걸렸다. 이것이 하나님이 돌리시는 이유이다. 우리속에 있는 애굽을 얼마나 빨리 지우느냐에 따라 광야의 삶의 길이가 달라진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간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한결같이 일만 생기면 애굽을 생각했다. 애굽에서 노예로 지냈고 우상을 섬기는등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을 가슴에서 담고도 지우지 않는다. 그것을 지우는데 40년이 걸린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가슴속에서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다. 우리의 가슴에는 두가지가 싸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늘 반대를 요구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삶에서 일이 터지면 우리는 계속 육신으로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기에 애굽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을 완전히 지우기위해 하나님은 광야의 길로 돌리셨다. 희망찬 새해의 계획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앞에서 자꾸 마음과 생각이 변한다. 작심삼일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돌릴수 밖에 없다. 자꾸 생각을 애굽으로 돌이킨다. 그 뿌리를 캐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40년을 고생했다.

더 중요한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때 장정만 60만명이고 전체가 2백만이 된다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돌리시고 훈련시키시는데도 애굽을 지우지 못하고 애굽을 이야기하니 하나님이 데려가시기 시작하고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갔다. 하나님은 다듬으시고 애굽을 지우기 원하시는데 안지우고 자꾸 생각을 한다. 애굽을 지우지 못하니 그들의 입에서는 원망만 나온다(민수기 14-27). 일을 만났을때 하나님이 감당할만한 것을 주셨다고 믿으면 주의 전에 무릎을 꿇고 여호와 닛시의 응답을 받았을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원망이 나온다. 원망은 애굽을 못지운 단적인 증거이다.

애굽을 못지운 사람은 가나안에 못들어 간다. 새해에는 애굽에 대한 기억을 지울수 있기 바란다. 애굽을 기억할수록 내생활에 문제가 온다. 스스로 광야생활을 연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애굽을 잊지 못한다. 새해에는 원망하지 말라. 못되어도 내 탓이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중에 애굽을 지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예배당에서는 원망안하고 감사해도 집에 가면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광야의 연장이다. 새해에는 광야에 대한 연장전을 절대로 하지 말라. 살아가면서 삶의 힘든 역경은 있을수 있다. 그 역경의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내탓이라고 말하라. 그러지 못한 사람일수록 다른데서 이유를 찾는다. 요나는 폭풍우가 자기때문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살길이 열렸다. 나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사람에게는 희망찬 미래가 열려진다. 그런데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하면 광야는 다시 연장된다.

예측하기 어려운 2013년, 광야의 길을 빨리 청산하는 방법은 우리가 왜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돌리고 계시는가, 왜 40년동안이나 가게 하실까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다. 이유는 오직 한가지 애굽을 지우라고 하신다. 그 한가지 메세지앞에 애굽만 지운다면 우리는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간다. 그것은 너무나도 확실하고 명백한것이다.

그런데 애굽을 지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지우는데 이렇게 오래걸렸을까. 모세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바로에게 가서 내보내달라고 하면서 광야에서 희생의 제사를 드리려 한다고 했다. 애굽을 지우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희생의 제사을 제시하셨다. 즉 예배이다. 우리가 애굽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밖에 없다. 새해에는 예배에서 승리하라. 여러사정으로 예배에 빠지면 절대로 애굽은 안지워진다. 예배에서 하나님과 만나야 지워진다.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예배밖에 없다. 희생의 제사이다. 희생이 동반안되면 예배가 아니다. 시간과 예물의 희생도 맞다. 중요한것은 더 큰 희생을 요구하신다. 그것은 애굽을 지우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희생의 제사를 방법으로 채택하셨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과 만남이 많은 만큼 애굽은 지워진다.

하나님은 왜 희생의 제사를 요구하셨는가. 애굽을 지우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앞에 나와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고, 욕신의 정욕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애굽이 지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못된 존재인가. 애굽을 못지우고 틈이 나면 애굽의 방법이 나온다.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가. 왜 내가 나만 겪는 고난이라고 울고 힘들어 하지만, 내가 자초해서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듬자고 얼마나 많은것을 도모하시는가. 내안에 있는 애굽을 지우기위해 숱한것을 동원하여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계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한가지이다. 애굽만 지워라. 그래야 네가 가나안에 들어갈수 있다. 애굽을 빨리 지우는 것이 승리하고 성공하는 방법이다. 새해만큼은 예배에서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과의 나와의 갭을 허락하지 말고, 잃어버린 첫사랑을 돌이켜 회개하라. 우리들의 삶속에 하나님의 나를 향한 열정과 나 하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광야의 길들을 이끌어가고 계시는지를 깨닫아라. 광야는 하나님과 만남의 너무 좋은 장소이다. 예수믿는 자라고 하지만 돈많이 주면 무너지고, 시간이 넉넉하면 무너진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물질을 달라고 하고, 쉼을 원하는가. 한국교회에는 쉼과 안식이 있는 교회가 유행한다. 하지만 광야라는 곳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가장 귀한 행복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들의 인생속에서 정말 고통의 광야를 지나면서 저녁의 서늘한 바람속에서 땀을 씻겨주시는 치유를 맛보며 예배하는 우리, 지쳐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하나님께 집중하는 예배는 광야만 주는 은혜이다. 요나가 고기뱃속에 안들어갔다면 하나님께 어떻게 얼굴을 들었겠는가. 물고기 뱃속은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 그분을 만난다면 그 광야는 축복이다. 새해에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위기를 축복으로 바꿀수 있고 얼마든지 즐거움과 감사로 찬송할수 있다.

이 원리만 깨닫으면 새해의 우리의 삶은 바뀌고 환경도 달라질것이다. 우리들의 삶속에 한가지 꼭 기억하자. 하나님은 내가 다듬어 질때까지 광야의 길을 돌리신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와 관련있는 많은 사건들이 있다. 40이라는 숫자는 어떤 측면에서 훈련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40일을 40년으로 연장한 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내탓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앞에서 깨지고 부서지고 낮아져서 광야의 생활에 종지부 찍을수 있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한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20-22 절)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앞서가신다. 앞서 하나님이 내가 갈길을 닦고 계신다. 우리는 따라가면 된다.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은 힘들지만 하나님이 앞장서시면 우리는 따라만 가면 된다. 누가 힘들겠는가. 내가 그 길을 갈 바도 알지못하기에 하나님이 앞장 서 주신다.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앞서서 가시는 이유는 나를 향한 기대가 있어서 그렇다. 하나님이 앞서서 가지 않으시면 우리는 가지 못한다. 우리가 스스로 갈 수 있을때까지 앞장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성숙이다. 우리가 성숙해서 스스로 걷는 자가 되는 것이 가나안이다. 가나안에는 성숙한 사람만 들어갈수 있다.

우리가 미숙하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해질때까지 앞장서 가신다. 멋쟁이 하나님이시다. 왜 하나님은 앞장서 가시면서 사서 고생하실까. 우리가 "언제 고난이 끝나요, 어떻게 하면 끝나요, 어떻게 벗어날수 있어요" 물으면 하나님은 미소를 띄우시면서 "따라만 와, 알게되는 날이 있어"라고 하신다. 장성해서 어린아이를 벗어야 하는데 벗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 짓을 한다면 하나님이 앞서가실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것이 축복이고 안전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좀 잘해, 언제까지 그럴래" 라고 묻고 계신다.

하나님은 낮에는 일사병에 걸릴까봐 구름기둥을 준비하시고, 저녁에는 칼바람앞에서 병들지 말라고 불기둥을 준비하시고, 앞서가시니 얼마나 섬세하신 하나님이신가. 광야를 40년동안 걷는동안 신발이 헤어진 사람도, 옷이 헤어진 사람도, 굶어죽은 사람도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걸어가는 과정에서 발바닥이 불어터 걷지 못하고 주저않은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왜 능력울 주시고 그 많은 것을 공급하시는가. 단 한가지 성숙하라는 것이다. 지난해에 비해 영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가. 새해에는 성숙을 향하여 나갈수 있기를 바란다. 성숙은 주님이 나를 향한 유일한 비전이시다.

결론이다.

첫째, 미지의 세계인 2013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가까운 길보다는 바른 길로 인도하면서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신다. 둘째, 광야길을 돌리신 것은 우리를 훈련하고 다듬기 위함이다. 훈련하고 다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굽을 지우는 것이다. 그 방법은 희생의 제사외에는 없다. 새해에는 예배만큼만은 승리하고 예배 성공자들이 되어 우리의 가슴속애서 애굽이 지워지기를 축원한다.

셋째, 하나님은 앞서가면서 구름과 불기등으로 우리들을 감싸면서 한가지 소망하시는 것은 우리가 좀 더 성숙하기를 원하신다. '언제까지 그럴래'라고 애타게 바라보시는 주님의 가슴을 여러분들의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정말 새해에는 주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성숙되고 복된 한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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