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분쟁의 해결, 영적인 면으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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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3-12-18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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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뉴욕서노회 노회장의 독단적인 운영에 반대하는 노회원들이 12월 16일 모임을 가지고 노회장을 해임했습니다. 분쟁의 현장에서 백만기 목사는 고린도전서 1:10-17을 본문으로 "교회의 분쟁"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교회의 분쟁이 노회의 분쟁으로 확대되고 설교자도 쉽지 않은 설교였을 것입니다.
백만기 목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분열을 강하게 탓하는 본문으로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며 사랑의 결핍과 이기심, 그리고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 교회분열의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또 교회는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와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가 있는데, 교회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영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든든한교회 문제는 벌써 수년째 지속되어온 문제였지만 이외에도 올해 여러 교회에서 교회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분쟁이 있었고, 교회역사적으로 계속 분쟁이 있어 왔는데 요즘 교회분쟁이 있는 것이 무슨 큰문제이냐고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교회의 분쟁을 보면 거대한 시대적인 흐름같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때는 험악합니다. 뉴욕의 몇교회에서는 교회분쟁이 세상의 법정까지 나갔습니다. 또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과 지지하는 교인들간의 교회내 육체적인 접촉으로 법정으로 가게된 경우도 최근 3건이나 있습니다.
개신교의 이미지를 많이 실추시키는 교회분쟁을 막거나 최소화 시키기 위해 먼저 교계적인 노력을 많이 해야 할것입니다. 뉴욕교협과 목사회, 그리고 교단의 총회나 노회에서도 교회분쟁을 막기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입니다.
당연히 목회자와 평신도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의롭고 상대는 문제라는 분쟁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강팍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백만기 목사가 고린도전서 1:10-17을 본문으로 한 "교회의 분쟁"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소개합니다.
역사적인 교회의 분쟁
본문에서 보면 사도 바울때에도 교회의 분열은 끝없이 이어지는 문제였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은 문제와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잘못된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무엇인가. 간단하다. 분열이다. 나누어지는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면서 십자가만 바라보고 가도 어려운 인생길에서 서로 나누어져서 다투고 싸우는 것이다.
이럴 때 바울 사도는 아주 준엄하게 말한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일을 다 했느냐. 나는 단지 종으로서 일했을 분인데 너희들은 인간적인 왜 이렇게 나누어졌는가"라고 책망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분리되는 것, 나누어지는 것에 대해 바울은 많이 이야기 한다.
사랑의 결핍이 교회 분열을 가져와
특히 고린도 전서 12장 14-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원색적으로 지적한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우리에게 형제 자매들이 있는데, 자기 기분에 따라서 너희는 내 형제 자매가 아니라고 공동운명체속에서 배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도들간의 관계가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사랑이 결핍되어진 상황에 살게 되었다.
개인과 교회의 이기심
왜 교회가 나누어지고 파벌이 생기게 될까? 그것은 이기심때문에 그렇다. 개인적인 이기심, 가족 이기주의, 교회 이기주의도 있다. 교회 이기주의는 내 교회만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교회는 넘어지는 것은 상관없고 내 교회만 생각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내 교회 목사가 아니면 도움을 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러나 하나님 일을 함께 하는 동역자이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이웃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시켜야 한다.
이웃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거나 혹은 좋은 강사를 초청하여 모임이 있다해도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교회가 아니라 다른 교회이니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개교회 이기주의때문에 이웃교회와 함께 한다는 그런 것이 약해진다. 교회를 함께 세워가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동역자라는 생각이 없어진다.
노회와 총회도 만찬가지이다. 저는 노회나 총회가 경찰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치안을 유지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사람들은 경찰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저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우리가 원하는대로 가지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그 조직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때문에 그런것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일은 내가 할거니, 네 일이나 잘해라. 네 일도 잘못하면서 남의 일에 끼어드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이웃과의 관계, 이웃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내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내가 처음부터 시작했으니까 이 교회는 내 교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긴 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든것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청지기의 임무를 다하고 때가 되면 놓아두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다. 인생이 나그네 길 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상황에서는 실천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문제에 대한 영적인 접근 필요
교회의 분열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교회는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와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를 떠올린다. 보이는 교회는 많은 지상의 지역교회를 말한다.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고 결점투성이며, 병원같이 환자들로 꽉 차있는 교회가 보이는 교회이다.
여기에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되면 교회문제는 광장히 커진다. 교회도 노회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는 보이는 교회만을 바라보는데, 교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교회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보이는 교회만 바라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그것에만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면 교회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지켜야 하고 적용해야 할 룰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가만히 보면 보이는 교회가 속해있는 사회를 보면 나름대로 조직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컨트롤 매커니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학교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점수를 가지고 학생을 콘트롤할수 있으며, 회사는 봉급을 주고 보너스를 주고 승진을 통해 사람을 콘트롤 해 나간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한다. 교회가 이러한 보이는 교회로서만 역할을 하면서 일반 사회에서의 룰을 그대로 따라 간다면 교회가 아니라 일반 사회나 마찬가지이다. 교회를 이끄는 룰은 일반 사회와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가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니 해결이 어렵게 된다. 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계속해서 세상의 것으로 해결하려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교회로만 해결하려면 안된다. 보이는 교회는 교회헌법을 이야기하다 안되면 일반법정에 가서 사회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고 안되면 그러면서 자구를 따지고 하니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 좀 더 우리는 영적으로 접근하면서 모든것을 다 내려놓고 기도하면서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랑이 식어가니 그것에 반비례해서 이기주의가 커진다. 사랑은 계속 없어진다.
교회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영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지금 당장은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보이고 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해결하시도록 모든 자리를 내어드릴 때 우리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기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은 무한정 사랑하라 하셨다. 희생하면서 손해보면서 살라고 하셨다. 든든한 교회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시간이 많이 지나 어떻게 어디서 부터 손을 써야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다시한번 고개숙여 주님께 이 문제를 내놓고 구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든든한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임을 알고 하나님 방식대로 기도하면서 남을 이해하면서 사랑하면서 이 문제를 끌고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백만기 목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분열을 강하게 탓하는 본문으로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며 사랑의 결핍과 이기심, 그리고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 교회분열의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또 교회는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와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가 있는데, 교회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영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든든한교회 문제는 벌써 수년째 지속되어온 문제였지만 이외에도 올해 여러 교회에서 교회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분쟁이 있었고, 교회역사적으로 계속 분쟁이 있어 왔는데 요즘 교회분쟁이 있는 것이 무슨 큰문제이냐고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교회의 분쟁을 보면 거대한 시대적인 흐름같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때는 험악합니다. 뉴욕의 몇교회에서는 교회분쟁이 세상의 법정까지 나갔습니다. 또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과 지지하는 교인들간의 교회내 육체적인 접촉으로 법정으로 가게된 경우도 최근 3건이나 있습니다.
개신교의 이미지를 많이 실추시키는 교회분쟁을 막거나 최소화 시키기 위해 먼저 교계적인 노력을 많이 해야 할것입니다. 뉴욕교협과 목사회, 그리고 교단의 총회나 노회에서도 교회분쟁을 막기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입니다.
당연히 목회자와 평신도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의롭고 상대는 문제라는 분쟁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강팍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백만기 목사가 고린도전서 1:10-17을 본문으로 한 "교회의 분쟁"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소개합니다.
역사적인 교회의 분쟁
본문에서 보면 사도 바울때에도 교회의 분열은 끝없이 이어지는 문제였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은 문제와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잘못된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무엇인가. 간단하다. 분열이다. 나누어지는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면서 십자가만 바라보고 가도 어려운 인생길에서 서로 나누어져서 다투고 싸우는 것이다.
이럴 때 바울 사도는 아주 준엄하게 말한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일을 다 했느냐. 나는 단지 종으로서 일했을 분인데 너희들은 인간적인 왜 이렇게 나누어졌는가"라고 책망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분리되는 것, 나누어지는 것에 대해 바울은 많이 이야기 한다.
사랑의 결핍이 교회 분열을 가져와
특히 고린도 전서 12장 14-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원색적으로 지적한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우리에게 형제 자매들이 있는데, 자기 기분에 따라서 너희는 내 형제 자매가 아니라고 공동운명체속에서 배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도들간의 관계가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사랑이 결핍되어진 상황에 살게 되었다.
개인과 교회의 이기심
왜 교회가 나누어지고 파벌이 생기게 될까? 그것은 이기심때문에 그렇다. 개인적인 이기심, 가족 이기주의, 교회 이기주의도 있다. 교회 이기주의는 내 교회만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교회는 넘어지는 것은 상관없고 내 교회만 생각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내 교회 목사가 아니면 도움을 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러나 하나님 일을 함께 하는 동역자이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이웃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시켜야 한다.
이웃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거나 혹은 좋은 강사를 초청하여 모임이 있다해도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교회가 아니라 다른 교회이니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개교회 이기주의때문에 이웃교회와 함께 한다는 그런 것이 약해진다. 교회를 함께 세워가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동역자라는 생각이 없어진다.
노회와 총회도 만찬가지이다. 저는 노회나 총회가 경찰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치안을 유지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사람들은 경찰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저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우리가 원하는대로 가지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그 조직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때문에 그런것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일은 내가 할거니, 네 일이나 잘해라. 네 일도 잘못하면서 남의 일에 끼어드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이웃과의 관계, 이웃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내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내가 처음부터 시작했으니까 이 교회는 내 교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긴 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든것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청지기의 임무를 다하고 때가 되면 놓아두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다. 인생이 나그네 길 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상황에서는 실천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문제에 대한 영적인 접근 필요
교회의 분열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교회는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와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를 떠올린다. 보이는 교회는 많은 지상의 지역교회를 말한다.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고 결점투성이며, 병원같이 환자들로 꽉 차있는 교회가 보이는 교회이다.
여기에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되면 교회문제는 광장히 커진다. 교회도 노회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는 보이는 교회만을 바라보는데, 교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교회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보이는 교회만 바라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그것에만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면 교회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지켜야 하고 적용해야 할 룰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가만히 보면 보이는 교회가 속해있는 사회를 보면 나름대로 조직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컨트롤 매커니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학교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점수를 가지고 학생을 콘트롤할수 있으며, 회사는 봉급을 주고 보너스를 주고 승진을 통해 사람을 콘트롤 해 나간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한다. 교회가 이러한 보이는 교회로서만 역할을 하면서 일반 사회에서의 룰을 그대로 따라 간다면 교회가 아니라 일반 사회나 마찬가지이다. 교회를 이끄는 룰은 일반 사회와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가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니 해결이 어렵게 된다. 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계속해서 세상의 것으로 해결하려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교회로만 해결하려면 안된다. 보이는 교회는 교회헌법을 이야기하다 안되면 일반법정에 가서 사회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고 안되면 그러면서 자구를 따지고 하니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 좀 더 우리는 영적으로 접근하면서 모든것을 다 내려놓고 기도하면서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랑이 식어가니 그것에 반비례해서 이기주의가 커진다. 사랑은 계속 없어진다.
교회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영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지금 당장은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보이고 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해결하시도록 모든 자리를 내어드릴 때 우리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기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은 무한정 사랑하라 하셨다. 희생하면서 손해보면서 살라고 하셨다. 든든한 교회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시간이 많이 지나 어떻게 어디서 부터 손을 써야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다시한번 고개숙여 주님께 이 문제를 내놓고 구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든든한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임을 알고 하나님 방식대로 기도하면서 남을 이해하면서 사랑하면서 이 문제를 끌고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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