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준 목사 "구별되어야 하는 목사의 위치와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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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3-10-03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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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목양장로 사역 컨퍼런스가 10월 1일부터 2일간 뉴저지 한소망교회에서 열렸습니다. 목양장로란 무엇입니까? "목사와 장로의 행복한 동행"이라는 모토에서 보듯이 권위적인 장로의 형태가 아니라 장로가 목회자와 같이 목양사역을 나누어 하는 것입니다.
▲목양장로 전도자 최홍준 목사
컨퍼런스의 마지막 강의는 목양장로를 전파하고 있는 최홍준 목사가 했는데 그 강의제목이 "구별되어야 하는 목사의 위치와 권위"이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양장로의 특성상 마지막에 그 강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컨퍼런스를 마치며 소감을 밝힌 한 장로의 발언에서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그 장로는 강의를 들으며 장로가 목양사역을 하니 장로와 목사가 같은 계급이구나 하고 상당히 고무가 되었는데, 마지막 강의에서 목사와 장로의 틀린 점에 대한 내용을 들으니 혼돈이 된다는 발언이었습니다. 물론 농담도 포함된 발언이었지만, 목양장로란 장로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지 결코 또 다른 계급은 아닙니다.
강의는 흥미로웠습니다. 강의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분쟁의 이유중 특히 목사에게 분쟁의 책임이 클때 어떻게 장로와 평신도들이 성경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강의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오늘날 교회분쟁의 90%는 목사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교회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두 말씀은 상반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수없이 일어나는 교회분쟁속에서도 어떻게하든지 바른 방향으로 성경적으로 교회를 끌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목사가 잘못해서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홍준 목사는 멘토인 고 옥한흠 목사가 평신도에 대한 책을 인용하여 "교역자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평신도가 교역자의 이런 행동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그것이 교직제도로 걸고 하는 것까지 발전한다면 그들의 행동 역시 교권주의와 다를바 없고 최고의 법전인 성경앞에서 절대로 성숙할수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또 목사직은 엄연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허락하신 직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행동을 함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사람'이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 초기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한국교회의 투명성과 정직의 상징같은 옥한흠 목사와의 일화를 전했습니다.
옥한흠 목사 같은 분도 부부싸움을 하여 갑자기 수요예배에 오지 않아 최홍준 목사가 대신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최 목사는 옥한흠 목사는 참 훌륭한 분이었지만 예수님만이 온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잘못을 한 목사는 누가 책벌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그것은 장로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구분하여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교회들의 분쟁은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인듯이 인위적인 행동을 하는 목사, 그리고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목사의 잘못을 확대 생산하는 장로들을 일컫는 말일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실적으로 물론 목사의 잘못을 있어도 그와 같은 문제는 노회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에 대해 당신의 자녀에게 조언한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불의한 것을 본다면 권위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있어 은혜가 안되어서 견딜수 없다면 조용히 교회를 옮길지라도 다투고 싸우지말라고 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강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목사가 청소년 때 부흥회에 참석하면 부흥사는 바뀌지만 공통점은 주님의 종을 섬기면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어서 늘상 담임목사님과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 목사는 내가 주님을 만나고 난후 성경을 보면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았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시니컬한 평신도는 최홍준 목사도 다른 목사들과 같이 짜고 고스톱을 친다고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이 강의에서는 그렇게 접근할수 밖에 없었다고 믿습니다. 만약 목사를 대상으로 하는 목회자 세미나였다면 주님처럼 후배 목회자들을 강하게 탓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운 점이 있어서인지 최홍준 목사는 강의를 시작하며 이 강의는 조심스럽게 하는 강의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목사의 독특한 위치에 대한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한 강의요약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정립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피값으로 산 교회가 영적질서가 흩어지면 사탄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다.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 이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자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
성경은 교직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직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칼빈은 "성직의 중요성은 교인들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중요한 열쇠로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로 주님 자신이 현림하시는 제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체를 반대하는 행위는 용납할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교역자에게 평신도와 다른 귄위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루터는 "목사와 다른 신자사이에 어떤 차이 특히 신분상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으로 목사의 직분은 다른 것과 확실히 구별된 직분이다"고 말했다, 칼빈도 "목사는 단순히 교회에 고용된 직원처럼 취급을 당해서는 안될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변덕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지 않는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을 받아야 할것이다"라며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이 세운 종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로마서 13:1-2)"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반응을 벌임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현재를 중요시 하신다. 바로 알고 바로 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세운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이런 안목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함으로 하나님이 분노하심을 많이 볼 수 있다.
민수기 12장에는 모세가 이방 여자인 구스 여인을 취하자 이를 비방하는 미리암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 세우시고 권위가 모세에 있다고 확실히 말씀하시고 진노하셨다. 왜 이런 사건이 기록되어서 오늘날 읽혀지는가.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해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도전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용납하지 않으신다.
사무엘상 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대해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해 경멸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서 13: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운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가. 그러니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유익이 없다는 것은 손해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대상, 그래서 영적인 질서를 잡기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자를 귀히 여겨라
목회자를 귀히 여기라고 하면 베드로전서 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을 들어 반박할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때 지성소에 휘장이 찢기면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특권을 가짐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런데 여기에 무슨 차별이 있는가 반문한다. 할아버지가 예수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손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다면 이들은 다 같은가. 가정에는 질서가 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 영적질서가 교회에 섰을때 그 교회에 어둠의 세력이 침범할수 없다.
나이가 어린 담임목사가 부임하는 경우도 있다. 40대 초반 부임했던 교회에서 13-15살 나이가 많은 장로님이 "목사님은 제 동생과 나이가 같습니다"라고 기를 죽였다. 그런데 그 연소함을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그 교회 질서를 바로 세운다. 영적질서가 잡혀있지 못한 교회는 메말라간다. 성경에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가 많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처참하게 가난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 과부는 마지막 남은 음식을 엘리아에게 먼저 줌으로서 기적을 보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순종이다. 왜 이런 만화같은 기사가 성경에 적혀있는가. 만약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가 기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한다면 비성경적이다.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분'은 없다.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다.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다윗과 사울의 관계이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사울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다윗이 귀를 기울인 것은 주위의 여론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에 말씀이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우심을 받는 자'라는게 이유였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오직 칭함을 하셨다.
하나님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이 다르다. 하나님의 영역은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의 영역은 사랑하고 기도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럴때 하나님이 대신해 주신다. 이와같은 영역을 잘지킨 사람이 요셉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도 형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형들은 요셉이 복수할까 두려워 요셉을 찾아가 엎드렸을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했다.
요셉은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다.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나의 아버지요, 내 인생을 주관하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축복을 하신다고 믿는다면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는데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교회안에 영적 질서를 세우는데 장로와 목사가 중심을 잡고 교회를 건강하게 영적질서를 잡아갈때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목양장로 전도자 최홍준 목사
컨퍼런스의 마지막 강의는 목양장로를 전파하고 있는 최홍준 목사가 했는데 그 강의제목이 "구별되어야 하는 목사의 위치와 권위"이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양장로의 특성상 마지막에 그 강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컨퍼런스를 마치며 소감을 밝힌 한 장로의 발언에서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그 장로는 강의를 들으며 장로가 목양사역을 하니 장로와 목사가 같은 계급이구나 하고 상당히 고무가 되었는데, 마지막 강의에서 목사와 장로의 틀린 점에 대한 내용을 들으니 혼돈이 된다는 발언이었습니다. 물론 농담도 포함된 발언이었지만, 목양장로란 장로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지 결코 또 다른 계급은 아닙니다.
강의는 흥미로웠습니다. 강의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분쟁의 이유중 특히 목사에게 분쟁의 책임이 클때 어떻게 장로와 평신도들이 성경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강의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오늘날 교회분쟁의 90%는 목사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교회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두 말씀은 상반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수없이 일어나는 교회분쟁속에서도 어떻게하든지 바른 방향으로 성경적으로 교회를 끌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목사가 잘못해서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홍준 목사는 멘토인 고 옥한흠 목사가 평신도에 대한 책을 인용하여 "교역자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평신도가 교역자의 이런 행동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그것이 교직제도로 걸고 하는 것까지 발전한다면 그들의 행동 역시 교권주의와 다를바 없고 최고의 법전인 성경앞에서 절대로 성숙할수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또 목사직은 엄연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허락하신 직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행동을 함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사람'이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 초기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한국교회의 투명성과 정직의 상징같은 옥한흠 목사와의 일화를 전했습니다.
옥한흠 목사 같은 분도 부부싸움을 하여 갑자기 수요예배에 오지 않아 최홍준 목사가 대신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최 목사는 옥한흠 목사는 참 훌륭한 분이었지만 예수님만이 온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잘못을 한 목사는 누가 책벌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그것은 장로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구분하여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교회들의 분쟁은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인듯이 인위적인 행동을 하는 목사, 그리고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목사의 잘못을 확대 생산하는 장로들을 일컫는 말일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실적으로 물론 목사의 잘못을 있어도 그와 같은 문제는 노회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에 대해 당신의 자녀에게 조언한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불의한 것을 본다면 권위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있어 은혜가 안되어서 견딜수 없다면 조용히 교회를 옮길지라도 다투고 싸우지말라고 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강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목사가 청소년 때 부흥회에 참석하면 부흥사는 바뀌지만 공통점은 주님의 종을 섬기면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어서 늘상 담임목사님과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 목사는 내가 주님을 만나고 난후 성경을 보면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았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시니컬한 평신도는 최홍준 목사도 다른 목사들과 같이 짜고 고스톱을 친다고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이 강의에서는 그렇게 접근할수 밖에 없었다고 믿습니다. 만약 목사를 대상으로 하는 목회자 세미나였다면 주님처럼 후배 목회자들을 강하게 탓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운 점이 있어서인지 최홍준 목사는 강의를 시작하며 이 강의는 조심스럽게 하는 강의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목사의 독특한 위치에 대한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한 강의요약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정립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피값으로 산 교회가 영적질서가 흩어지면 사탄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다.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 이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자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
성경은 교직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직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칼빈은 "성직의 중요성은 교인들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중요한 열쇠로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로 주님 자신이 현림하시는 제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체를 반대하는 행위는 용납할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교역자에게 평신도와 다른 귄위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루터는 "목사와 다른 신자사이에 어떤 차이 특히 신분상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으로 목사의 직분은 다른 것과 확실히 구별된 직분이다"고 말했다, 칼빈도 "목사는 단순히 교회에 고용된 직원처럼 취급을 당해서는 안될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변덕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지 않는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을 받아야 할것이다"라며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이 세운 종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로마서 13:1-2)"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반응을 벌임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현재를 중요시 하신다. 바로 알고 바로 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세운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이런 안목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함으로 하나님이 분노하심을 많이 볼 수 있다.
민수기 12장에는 모세가 이방 여자인 구스 여인을 취하자 이를 비방하는 미리암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 세우시고 권위가 모세에 있다고 확실히 말씀하시고 진노하셨다. 왜 이런 사건이 기록되어서 오늘날 읽혀지는가.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해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도전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용납하지 않으신다.
사무엘상 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대해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해 경멸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서 13: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운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가. 그러니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유익이 없다는 것은 손해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대상, 그래서 영적인 질서를 잡기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자를 귀히 여겨라
목회자를 귀히 여기라고 하면 베드로전서 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을 들어 반박할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때 지성소에 휘장이 찢기면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특권을 가짐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런데 여기에 무슨 차별이 있는가 반문한다. 할아버지가 예수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손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다면 이들은 다 같은가. 가정에는 질서가 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 영적질서가 교회에 섰을때 그 교회에 어둠의 세력이 침범할수 없다.
나이가 어린 담임목사가 부임하는 경우도 있다. 40대 초반 부임했던 교회에서 13-15살 나이가 많은 장로님이 "목사님은 제 동생과 나이가 같습니다"라고 기를 죽였다. 그런데 그 연소함을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그 교회 질서를 바로 세운다. 영적질서가 잡혀있지 못한 교회는 메말라간다. 성경에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가 많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처참하게 가난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 과부는 마지막 남은 음식을 엘리아에게 먼저 줌으로서 기적을 보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순종이다. 왜 이런 만화같은 기사가 성경에 적혀있는가. 만약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가 기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한다면 비성경적이다.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분'은 없다.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다.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다윗과 사울의 관계이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사울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다윗이 귀를 기울인 것은 주위의 여론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에 말씀이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우심을 받는 자'라는게 이유였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오직 칭함을 하셨다.
하나님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이 다르다. 하나님의 영역은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의 영역은 사랑하고 기도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럴때 하나님이 대신해 주신다. 이와같은 영역을 잘지킨 사람이 요셉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도 형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형들은 요셉이 복수할까 두려워 요셉을 찾아가 엎드렸을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했다.
요셉은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다.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나의 아버지요, 내 인생을 주관하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축복을 하신다고 믿는다면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는데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교회안에 영적 질서를 세우는데 장로와 목사가 중심을 잡고 교회를 건강하게 영적질서를 잡아갈때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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