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수 목사 ② “세상의 빛” 교회공동체전도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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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4-07-01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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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교회공동체 전도의 상황적 토대와 신실한 전도실천으로서의 제안 (1/2)
민경수 목사 (뉴저지 체리힐 한소망교회, 해외한인장로회 KPCA)
돈 에버츠와 덕 샤우프는 우울한 서구 기독교 세계의 현주소를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한 때 하나님과 기독교, 교회는 일반적으로 문화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니다. 기독교는 의심스럽고, 교회는 기괴하고, 기독교인들은 위선자들이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용되는 “판매 책략”에 식상해 있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우리가 쓰는 미끼상술에 화가 나있다. 과거에 전도자의 직업은 세속적인 사회에서조차 존경받는 전문직으로 보였다. 오늘날 전도자는 신뢰받지 못하는 직업들 중에서 맨 밑바닥으로 추락해 가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후기 기독교사회에서, 지난 수십년간 교회들을 위해 공헌했던 많은 전도전략들과 방법들이 오늘날의 문화상황에 민감치 못하고 나아가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 글의 첫 부분은 “세상의 빛” 교회공동체전도 (세빛교회전도)의 현 서구세계 문화에서의 상황적 토대를 제공한다. 두 번째 부분은 현 시대에서의 신실한 전도 실천으로서 세빛교회전도를 제안한다.
세빛교회전도의 현 서구문화 안에서의 상황적 토대
비록 어떤 전도전략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토대를 가졌다 해도, 현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신앙인들은 부적합한 전도방법이라고 볼 것이다. 여기서는 아래 다섯가지 영역을 고려하여 세빛교회전도의 상황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1. 수혜자—진실한 공동체를 깊이 갈구하는 사람들
2. 복음의 내용—삼위일체 하나님과 종말론적 공동체적 신앙
3. 주체—교회공동체
4. 전달전략들—친교로 인한 연결, 모든 은사의 활용, 교회공동체를 통한 말하고 듣기, 보여주기, 나누기, 그리고 복음 만지기
5. 목적—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공동체적이고 종말론적인 삶을 구현하며 살도록 사람들을 인도하기
이 영역들은 세빛교회전도의 특성을 밝혀주며, 어떻게 “공동체” 모티브가 세빛교회전도를 통합하는지 그 비밀을 드러낼 것이다.
1. 수혜자: 진실한 공동체를 갈구하는 사람들
세빛교회전도는 현 시대에서 진실한 공동체를 깊이 갈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에겐 패라독스적인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공동체에 소속하기를 갈망한다. 커피샵 체인인 스타벅스의 성공은 제 3의 공간을 제공하는 데 있다. 또한 선택 공동체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레너드 스윗은 관계에 대한 이슈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에 위치하여, 사람들은 과거에 살았던 개인적 생활 대신 개인적-공동체적 삶을 살기를 깊이 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 복음의 내용: 삼위일체 하나님과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
세빛교회전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을 구현한다. 이를 위해, 세빛교회전도는 “공동체” 모티브를 가진 조직신학에 관한 13가지 강의를 기본적으로 제공한다.
사회적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일반적으로 복음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업적을 다룬다. 물론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흘리신 보혈의 공로,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신앙은 확고하게 삼위일체 신앙이다. 하나님은 모든 활동에 있어 세 위격들이 함께 일하며 통일성을 보이신다. 가령 창조에 있어 성부는 세상을 창조하시되 성자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창조하신다. 세 분은 인류의 구속, 중생, 기도, 예배 및 모든 신앙활동에 있어 함께 일하신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 성부는 행하시되, 성자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다.” 결국 하나님은 “공동체” 이시다.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모던 시대는 일반적으로 객관적 진리를 수용하고,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고, 또 지성에 중심을 두었다. 이 모던 시대 동안, 많은 전도자들은 복음을 사영리나 다리예화, 전도폭발 등으로 간략히 제시해 왔다. 이 방법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손쉽게 소개하기 위해, 축약된 형태의 복음을 전하는 뛰어난 것들이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현 서구 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짧은 복음제시 방법들은 더 이상 충분히 복음을 나눠 갖지 못하며, 때로는 전도자들에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달라스 윌라드는 모던시대의 교회가, 수퍼마켓의 상품처럼 사람들에게 미래의 구원을 확증해주기 위해 바코드를 받게끔 잘못 가르쳐 왔다고 지적한다. 바코드가 붙어 있는 한, 사람들은 일상적 삶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의 절대적 연관성을 잘 인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진정한 복음은 예비그리스도인들 (pre-Christians) 로 하여금 다르게 반응하며 다른 길로 나아갈 것을 요청한다. 데이비드 플랫은 복음이 예비그리스도인들에게 죄에서 돌아설 것과 그들의 십자가를 질 것과 자신들에 대해 죽을 것과 예수님을 따를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렌츠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해(A Primer on Postmodernism) 란 책에서 각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개인적 구원이란 성경적 주제를 놓쳐선 아니되지만, 아울러 공동체안의 개인 (the individual-in-community) 이란 개념 또한 놓쳐선 아니된다고 한다. 복음은 적어도 공동체와 구체적 체험, 인간 존재의 총체적 구원, 헌신의 삶을 내포해야 할 것이다.
복음은 또한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의 영원한 공동체를 홍보한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교회공동체들은 종말론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과 이미 다 이루신 예수님의 업적으로 인해 미래가 확실하고 견고해졌기에, 기독교인 공동체는 “뿌리를 미래에, 가지들은 현재에 둔다.” 그렌츠는 종말론적 공동체에 관해,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현 상황에서 미래의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하는 무리들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성령이 신앙 공동체를 불러 존재케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종말론적 무리,’ 즉 미래의 백성들인 것” 이라고 단언한다.
3. 주체: 교회 공동체
교회 공동체들이야말로 세빛교회전도의 진정한 주체들이다. 성경에서 제자 요한은 그와 그의 신앙공동체가, 이웃들에게 그의 공동체 안에서 교제를 제공함으로 전도하는 장면을 웅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요 1서 1:2-3). 어떠한 신앙 공동체든 전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에서, 레슬리 뉴비긴은 지역교회 회중들을 “복음의 해석학,” 즉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라벨을 붙인다. 팀 체스터와 스티브 티미스가 공개하듯이, 복음의 증거는 교회 공동체들 안에서 일어난다. 나아가 전도는 또한 공동체를 통해 행해진다. 데이비드 피치는 “교회는 진리에 이르는 포스트모던 관문이 된다. 그것은 전도를 위한 기지가 된다” 고 주장한다. 에디 깁스는 교회공동체들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확신한다. 피에르 바빈 또한 전도의 최대 목적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그 자체일지라도, 전도의 매체 또한 역동적 신앙과 생활양식을 갖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임을 지적한다.
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공동체를 진리에 이르는 관문으로 보는가? 그들은 모던 크리스천들이 발전시켜 왔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성적 변증의 증명이, 예비신자들이 복음이 진리임을 부정하려 할 때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함을 발견한다. 그들은 예비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이유가 지성적 문제가 아닌 마음의 관계적 문제에서 말미암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것은 관계적 변증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탐구하고자 진실로 마음을 열기 전에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앎이 좋음을 볼 때 마음을 연다. 그리고 그들은 크리스천 공동체의 사랑을 볼 때, 하나님을 앎이 좋음을 본다.
공동체들을 통해 사람들은 삶과 시간과 공간에 질적인 의미를 수여받는다. 조나단 캠벨은 “오늘날 우리의 문화 위기 안에서, 복음의 실재의 가장 강력한 실증은, 예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구현하는 공동체” 라고 지적한다. 피스 또한 아래와 같이 추천한다.
가능하면 여러분의 친구들을 기독교 공동체로 이끌어라. 증거는 결코 외로운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요즈음에는 점점 더 회심이 공동체 맥락 안에서 일어난다. 많은 남녀들이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자신들의 활동과 대화, 교제, 예배를 나누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이 공동체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는 복음을 이해하게 되고 수용하며 체험하게 된다.
4. 전달 전략들
세빛교회전도는 현 문화의 특성들에 적합한 전달 전략들을 사용한다. 스윗이 간단히 말하듯이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맛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맡고, 볼 수 있기를 필요로 한다.” 세빛교회전도는 사람의 모든 감각들을 총망라한 여섯가지 전달전략들을 교회공동체를 통해 사용한다.
① 교회공동체를 통한 교제로 연결하기=세빛교회전도는 예비크리스천들을 세빛교회전도 공동체들 안의 교회적 교제권으로 초대한다. 소속이 먼저요 믿음은 이차적이다. 예비크리스천들을 교회공동체들과 연결하기가 최우선이다. 댄 킴벌의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 The Emerging Church 에서 대럴 그루더는 “전도는 교회 바깥에서 새로운 구성원을 충원시키거나 선임하는 행동에서 동료애로의 초대로 옮겨간다. 교회는 초대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거나 동반 순례자들로서 그들과 함께 여행한다. 여기에 교회의 심장과 전도의 갱신을 위한 통로가 놓여 있다.” 고 전망한다. 마이클 그린은 “전도는 따뜻하고, 수용적이고, 정죄치 않고 지원하는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거나, 공동체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전도가 이성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터치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세빛교회전도 코스 동안 세빛교회전도 공동체는 학습자들에게 매주 식사를 제공한다. 세빛교회전도에서 식사는 교제에 의해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많은 경우 교제는 “동료” 란 단어가 라틴어 쿰 (함께) 와 파니스 (빵) 에서 연유되었듯이, 식사를 함께 하는데서 비롯된다. 팀 체스터는 사역에 있어 식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 식사는 사회적 행사이다. 식사는 우정과 공동체와 환영을 대변한다.
전도는 교회내의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 삶의 맥락 안에서의 복음의 공동체적 구현이다. 조지 헌터 3세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서 시작하여 신앙공동체의 교제권에 사람들을 인도하여, 예비그리스도인들을 전도하는 켈트식 모델을 소개한다.
교제를 쌓아감에 있어 또 다른 혁신적인 방법이 있다. 예비신자들을 돌보며 지도자들은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사역자들이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상호돌봄은 상호신뢰를 쌓아가며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더욱 개방적이 되게 한다. 리차드슨은 상호돌봄의 전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상호돌봄의 전도란 “관계와 신뢰쌓기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주는 것과 받는 것 둘 다를 추구하는 것이다.”
② 교회공동체를 통한 모든 은사의 활용=세빛교회전도 공동체 전체는 하나님의 은사들을 통해 복음을 증거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회심후 한가지 이상의 영적은사가 주어지며 (롬 12:3-8; 고전 12장; 엡4:1-16), 사역할 수 있게 된다 (엡4:11-12). 하나님이 은사들을 주신 이유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여 (벧전 4:10),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전 12:7).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여러 다양한 악기들이 서로 화음을 이루어 아름다운 연주를 하듯, 함께 합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간다. 따라서, 하나로 통합된 교회공동체가 복음을 전함은, 다양함의 조화로 인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는 최상의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다. 가령, 리차드슨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통해 교회공동체 전체가 전도함은 하나님의 전도전략이라고 지적하며, 실례로 7가지 핵심적인 은사의 영역을 통합한 전도를 제시한다: (1) 기획력과 지도력, (2) 전도와 구비, (3) 환대와 격려, (4) 목회적 돌봄과 가르침, (5) 기도, 말씀과 성령의 능력, (6) 봉사와 긍휼, (7) 베품.
③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말하기와 듣기=세빛교회전도 방법은 신자들에게 예비크리스천들이 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말할 것을 격려한다. 복음을 들음은 믿음에 있어 필수적이다 (롬 10:17).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복음 메시지를 말로 전함은 전도에 있어 기본적이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이지만 교회가 만약 이 내용들을 이야기 형태로 제시한다면, 예비신자들의 흥미를 끌어 심령에 훨씬 잘 와닿게 할 수 있다.
또한, 신자들은 복음이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것으로만 그침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발견한다. 기독교인들이 예비신자들의 귀에 복음이 들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은 소그룹 형식을 통해 복음에 대해 예비신자들과 대화를 갖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복음을 일방적으로 듣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자신들의 세세한 삶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게다가 현 시대는 TV, 영화, 인터넷, 스마트폰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청각은 물론, 시각적으로 학습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이다. 어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이제는 멀티미디어이고 영어는 제 이 외국어일뿐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때문에, 전도자들은 말의 대용수단이 아닌, 말의 보조수단으로서 시각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삼차원적인 복음전달을 해야 한다. 가령, 성경구절과 함께 사진, 미술 작품, 그래픽을 스크린에 비추고, 음악을 이용한 음향효과를 내는 시도이다. 스윗도 포스트모던 영성이 언어가 아닌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④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보이기=세빛교회전도는 기독교신앙을 복음을 구현하는 삶을 통해 예비신자들에게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한다. 세빛교회전도 방법은 예배, 찬양, 말씀읽기, 기도, 전도, 치유 등 모든 신앙활동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교회 바깥에서 음식을 제공하거나 어린이들을 돌봐주고, 의료치료를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공동체를 섬김을 통해 사회봉사의 수행을 장려한다.
깁스와 볼저는 “포스트모던 전도는 자신이 맺은 관계들을 통해 포스트모던 문화 안에서 실제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에 대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피스는 “확신을 주는 복음증거는 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의 영적 체험이 넘치는 삶이다. 실연이 설명보다 앞서야 한다.” 고 주장한다. 전도는 사람들이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활동들을 통해 그들이 복음을 듣고, 보고, 느낄 때 효과적이다. 웨버가 지적하듯이, 포스트모던 전도는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전시” 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신앙을 보이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그들을 통해 (고후 3:2-3) 하나님의 형상 (골 1:15) 인 예수님을 묘사하는 것이다.
⑤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나누기=세빛교회전도는 예비신자들에게 신앙활동에 동참할 기회들을 제공함으로 복음을 공유한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참여의 시대이다. 예를 들어, 점점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사는데 이베이 웹사이트를 사용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매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심지어 상품의 판매가격까지도 정한다. 마찬가지로 세빛교회전도는 예비그리스도인들에게 동참을 통해 신앙인공동체에 더욱 소속할 수 있도록 한다. 스윗은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의 정신에 따라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들은 관찰자는 물론 참여자로서 세상을 지각하며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고 지적한다. 참여적 문화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이해와 선호에 따라 어떤 활동들에 참여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세빛교회전도는 예비신자들에게 예배, 찬양, 말씀읽기, 기도, 전도, 치유 등 모든 종류의 신앙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한 세빛교회전도는 그들에게 교회공동체 안에서 사회봉사 현장에 참여하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에버츠와 샤우프는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긍휼과 정의를 진작시키는 하나님나라 활동들에 참여함을 보고 있다고 관련지어 말한다.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는 친구들을 봉사프로젝트에 참여토록 초대함이 그들을 전도하는데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쓴다. 오늘날의 예비기독교인들은 가만히 앉아 신앙을 받아 먹기만 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상호의존적인 존재들로서, 신앙인들과 상호 작용하며 신앙을 키워가는 영적 존재들이다.
⑥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 만지기=세빛교회전도는 또한 예비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임재를 통해 복음을 체험하도록 기회를 준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칠 때, 상처입거나 아픈 사람들을 종종 만졌다. 사도 바울도 손수건을 아픈 곳에 얹어 병을 낫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행 19:12).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혈루의 근원이 마른 것을 체험했다 (마 9:21). 손을 잡는 것처럼 확실한 촉감을 통해 예수님을 경험하도록 인도함이 기독교신앙의 특성이다. 레너드 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접촉의 교회이다. 기독교는 접촉의 문화이며 촉감의 종교다. 성경적인 영성은 접촉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포스트모던 문화는 모든 분야에서 경험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현 경제는 경험을 제공해 주는 상품과 서비스를 동시에 파는 경험경제라고 말하며, 관광과 같은 경험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과거의 최고 가치였던 노동윤리마저 버리고, 경험을 쌓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경험윤리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제 교회는 총체적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쉐키나 (Shekhinah)의 경험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청각이나 시각, 촉각, 미각과 후각 등 모든 감각들을 총동원하여 예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해야 한다.
5. 결과/목적: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공동체적이고 종말론적인 삶으로 인도하기
세빛교회전도는 예비기독교인들이 종말론적 공동체 생활을 하도록 인도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셨고,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하며 그 기원과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시 8:4-6, 엡 2:10).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창 1:27).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 존재란 의미로, 결국 하나님처럼 사랑의 본성을 갖고 사회적 관계성을 갖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긴밀히 갖는 공동체안에서 공동체적 관계를 경험하며 함께 조화롭게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삼위일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들이 개별적이고 독특한 존재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함 속에서 통일성을, 즉 조화를 추구하게끔 방향을 잡아주며 안내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공동체를 갈망하는 다면적인 포스트모던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또한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실현해 가는 삶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준다. 사회적 삼위일체는 인간 각 개인들의 독특성을 선포하며, 또한 그들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적 자유를 허용해 준다. 사회적 삼위일체 안에서, 사람들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수평적인 동등한 관계안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 삼위일체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만족시키며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무한한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기본적 틀을 제공한다. 교회공동체들 안에서 기독교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홀로 서는 개인들이 아니라, “공동체 사람들 (persons-in-community)” 로서 살아갈 수 있다.
아울러, 크리스천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다가오는 통치를 현재 속에서 인정하는 종말론적 공동체로 세상 속에 살게 된다 (벧전 2:9). 그리하여, 이 모든 개별적 공동체들은 종내는 새로운 인류, 즉 새 땅과 새 하늘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존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자녀들의 영광스런 공동체로 바뀔 것이다. 가령 진정한 공동체를 갈망하는 예비신자는 교회공동체를 통해 전도를 받고 변화되어, 공동체 안에 살고 공동체로 사역하며 전도하는 삶을 살다, 영원한 하늘 공동체인 새예루살렘에 소속하게 된다 (계 21:1-22:5).
결론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크리스천들의 임무는 복음, 즉 구원의 복된 소식을 예비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현하고 설명하여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사도 바울이 일찍이 이 원리를 잘 깨달았던 것으로 기록한다. 그는 고린도전서 9:19-23 에서, 그린이 “사도적 기회주의 (apostolic opportunism)” 라고 부르는 특정한 전도태도를 기술했다. 바울은 상대방에 따라 그들의 필요에 맞춰 복음을 달리 증거했다. 그는 유대인을 얻기 위해 유대인이 되기도,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위해 율법 아래 있기도, 율법없는 자를 위해 율법없는 자가 되기도, 약한 자를 위해 약한 자들이 되기도 했다. 바울처럼 오늘날 신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각각 다른 문화에 맞는 각각 다른 포장 안에 적합한 복음내용을 넣어 적절하게 전달함이 바람직하다.
세빛교회전도는 공동체에 소속하길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동시에 세빛교회전도는 사회적 삼위일체의 형태로 존재하는 하나님과 현 문화맥락에서의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을 구현한다. 나아가 현 문화 특성들에 적합한 전략들의 효과적인 전달과 함께, 관계적 변증인 교회공동체를 전도주체로서 활용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바람직한 종말론적 공동체 생활을 공동체 사람들에게 결과/목적으로 제공한다. 간단히 말해, 세빛교회전도는 공동체란 절대 필수적인 공통인자를 갖고, 다섯 가지 전도실천의 영역들인 수혜자, 내용, 주체, 전달전략, 결과/목적들을 통합한, 통일된 전도의 실체이다. 이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공동체를 갈구하는 예비그리스도인들을, 사도적 기회주의의 태도로 개인 단위가 아닌, 공동체 단위로서 함께 섬길 수 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민경수 목사 (뉴저지 체리힐 한소망교회, 해외한인장로회 KPCA)
돈 에버츠와 덕 샤우프는 우울한 서구 기독교 세계의 현주소를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한 때 하나님과 기독교, 교회는 일반적으로 문화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니다. 기독교는 의심스럽고, 교회는 기괴하고, 기독교인들은 위선자들이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용되는 “판매 책략”에 식상해 있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우리가 쓰는 미끼상술에 화가 나있다. 과거에 전도자의 직업은 세속적인 사회에서조차 존경받는 전문직으로 보였다. 오늘날 전도자는 신뢰받지 못하는 직업들 중에서 맨 밑바닥으로 추락해 가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후기 기독교사회에서, 지난 수십년간 교회들을 위해 공헌했던 많은 전도전략들과 방법들이 오늘날의 문화상황에 민감치 못하고 나아가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 글의 첫 부분은 “세상의 빛” 교회공동체전도 (세빛교회전도)의 현 서구세계 문화에서의 상황적 토대를 제공한다. 두 번째 부분은 현 시대에서의 신실한 전도 실천으로서 세빛교회전도를 제안한다.
세빛교회전도의 현 서구문화 안에서의 상황적 토대
비록 어떤 전도전략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토대를 가졌다 해도, 현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신앙인들은 부적합한 전도방법이라고 볼 것이다. 여기서는 아래 다섯가지 영역을 고려하여 세빛교회전도의 상황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1. 수혜자—진실한 공동체를 깊이 갈구하는 사람들
2. 복음의 내용—삼위일체 하나님과 종말론적 공동체적 신앙
3. 주체—교회공동체
4. 전달전략들—친교로 인한 연결, 모든 은사의 활용, 교회공동체를 통한 말하고 듣기, 보여주기, 나누기, 그리고 복음 만지기
5. 목적—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공동체적이고 종말론적인 삶을 구현하며 살도록 사람들을 인도하기
이 영역들은 세빛교회전도의 특성을 밝혀주며, 어떻게 “공동체” 모티브가 세빛교회전도를 통합하는지 그 비밀을 드러낼 것이다.
1. 수혜자: 진실한 공동체를 갈구하는 사람들
세빛교회전도는 현 시대에서 진실한 공동체를 깊이 갈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에겐 패라독스적인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공동체에 소속하기를 갈망한다. 커피샵 체인인 스타벅스의 성공은 제 3의 공간을 제공하는 데 있다. 또한 선택 공동체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레너드 스윗은 관계에 대한 이슈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에 위치하여, 사람들은 과거에 살았던 개인적 생활 대신 개인적-공동체적 삶을 살기를 깊이 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 복음의 내용: 삼위일체 하나님과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
세빛교회전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을 구현한다. 이를 위해, 세빛교회전도는 “공동체” 모티브를 가진 조직신학에 관한 13가지 강의를 기본적으로 제공한다.
사회적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일반적으로 복음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업적을 다룬다. 물론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흘리신 보혈의 공로,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신앙은 확고하게 삼위일체 신앙이다. 하나님은 모든 활동에 있어 세 위격들이 함께 일하며 통일성을 보이신다. 가령 창조에 있어 성부는 세상을 창조하시되 성자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창조하신다. 세 분은 인류의 구속, 중생, 기도, 예배 및 모든 신앙활동에 있어 함께 일하신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 성부는 행하시되, 성자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다.” 결국 하나님은 “공동체” 이시다.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모던 시대는 일반적으로 객관적 진리를 수용하고,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고, 또 지성에 중심을 두었다. 이 모던 시대 동안, 많은 전도자들은 복음을 사영리나 다리예화, 전도폭발 등으로 간략히 제시해 왔다. 이 방법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손쉽게 소개하기 위해, 축약된 형태의 복음을 전하는 뛰어난 것들이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현 서구 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짧은 복음제시 방법들은 더 이상 충분히 복음을 나눠 갖지 못하며, 때로는 전도자들에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달라스 윌라드는 모던시대의 교회가, 수퍼마켓의 상품처럼 사람들에게 미래의 구원을 확증해주기 위해 바코드를 받게끔 잘못 가르쳐 왔다고 지적한다. 바코드가 붙어 있는 한, 사람들은 일상적 삶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의 절대적 연관성을 잘 인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진정한 복음은 예비그리스도인들 (pre-Christians) 로 하여금 다르게 반응하며 다른 길로 나아갈 것을 요청한다. 데이비드 플랫은 복음이 예비그리스도인들에게 죄에서 돌아설 것과 그들의 십자가를 질 것과 자신들에 대해 죽을 것과 예수님을 따를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렌츠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해(A Primer on Postmodernism) 란 책에서 각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개인적 구원이란 성경적 주제를 놓쳐선 아니되지만, 아울러 공동체안의 개인 (the individual-in-community) 이란 개념 또한 놓쳐선 아니된다고 한다. 복음은 적어도 공동체와 구체적 체험, 인간 존재의 총체적 구원, 헌신의 삶을 내포해야 할 것이다.
복음은 또한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의 영원한 공동체를 홍보한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교회공동체들은 종말론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과 이미 다 이루신 예수님의 업적으로 인해 미래가 확실하고 견고해졌기에, 기독교인 공동체는 “뿌리를 미래에, 가지들은 현재에 둔다.” 그렌츠는 종말론적 공동체에 관해,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현 상황에서 미래의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하는 무리들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성령이 신앙 공동체를 불러 존재케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종말론적 무리,’ 즉 미래의 백성들인 것” 이라고 단언한다.
3. 주체: 교회 공동체
교회 공동체들이야말로 세빛교회전도의 진정한 주체들이다. 성경에서 제자 요한은 그와 그의 신앙공동체가, 이웃들에게 그의 공동체 안에서 교제를 제공함으로 전도하는 장면을 웅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요 1서 1:2-3). 어떠한 신앙 공동체든 전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에서, 레슬리 뉴비긴은 지역교회 회중들을 “복음의 해석학,” 즉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라벨을 붙인다. 팀 체스터와 스티브 티미스가 공개하듯이, 복음의 증거는 교회 공동체들 안에서 일어난다. 나아가 전도는 또한 공동체를 통해 행해진다. 데이비드 피치는 “교회는 진리에 이르는 포스트모던 관문이 된다. 그것은 전도를 위한 기지가 된다” 고 주장한다. 에디 깁스는 교회공동체들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확신한다. 피에르 바빈 또한 전도의 최대 목적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그 자체일지라도, 전도의 매체 또한 역동적 신앙과 생활양식을 갖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임을 지적한다.
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공동체를 진리에 이르는 관문으로 보는가? 그들은 모던 크리스천들이 발전시켜 왔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성적 변증의 증명이, 예비신자들이 복음이 진리임을 부정하려 할 때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함을 발견한다. 그들은 예비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이유가 지성적 문제가 아닌 마음의 관계적 문제에서 말미암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그것은 관계적 변증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탐구하고자 진실로 마음을 열기 전에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앎이 좋음을 볼 때 마음을 연다. 그리고 그들은 크리스천 공동체의 사랑을 볼 때, 하나님을 앎이 좋음을 본다.
공동체들을 통해 사람들은 삶과 시간과 공간에 질적인 의미를 수여받는다. 조나단 캠벨은 “오늘날 우리의 문화 위기 안에서, 복음의 실재의 가장 강력한 실증은, 예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구현하는 공동체” 라고 지적한다. 피스 또한 아래와 같이 추천한다.
가능하면 여러분의 친구들을 기독교 공동체로 이끌어라. 증거는 결코 외로운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요즈음에는 점점 더 회심이 공동체 맥락 안에서 일어난다. 많은 남녀들이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자신들의 활동과 대화, 교제, 예배를 나누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이 공동체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는 복음을 이해하게 되고 수용하며 체험하게 된다.
4. 전달 전략들
세빛교회전도는 현 문화의 특성들에 적합한 전달 전략들을 사용한다. 스윗이 간단히 말하듯이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맛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맡고, 볼 수 있기를 필요로 한다.” 세빛교회전도는 사람의 모든 감각들을 총망라한 여섯가지 전달전략들을 교회공동체를 통해 사용한다.
① 교회공동체를 통한 교제로 연결하기=세빛교회전도는 예비크리스천들을 세빛교회전도 공동체들 안의 교회적 교제권으로 초대한다. 소속이 먼저요 믿음은 이차적이다. 예비크리스천들을 교회공동체들과 연결하기가 최우선이다. 댄 킴벌의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 The Emerging Church 에서 대럴 그루더는 “전도는 교회 바깥에서 새로운 구성원을 충원시키거나 선임하는 행동에서 동료애로의 초대로 옮겨간다. 교회는 초대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거나 동반 순례자들로서 그들과 함께 여행한다. 여기에 교회의 심장과 전도의 갱신을 위한 통로가 놓여 있다.” 고 전망한다. 마이클 그린은 “전도는 따뜻하고, 수용적이고, 정죄치 않고 지원하는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거나, 공동체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전도가 이성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터치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세빛교회전도 코스 동안 세빛교회전도 공동체는 학습자들에게 매주 식사를 제공한다. 세빛교회전도에서 식사는 교제에 의해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많은 경우 교제는 “동료” 란 단어가 라틴어 쿰 (함께) 와 파니스 (빵) 에서 연유되었듯이, 식사를 함께 하는데서 비롯된다. 팀 체스터는 사역에 있어 식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 식사는 사회적 행사이다. 식사는 우정과 공동체와 환영을 대변한다.
전도는 교회내의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 삶의 맥락 안에서의 복음의 공동체적 구현이다. 조지 헌터 3세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서 시작하여 신앙공동체의 교제권에 사람들을 인도하여, 예비그리스도인들을 전도하는 켈트식 모델을 소개한다.
교제를 쌓아감에 있어 또 다른 혁신적인 방법이 있다. 예비신자들을 돌보며 지도자들은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사역자들이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상호돌봄은 상호신뢰를 쌓아가며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더욱 개방적이 되게 한다. 리차드슨은 상호돌봄의 전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상호돌봄의 전도란 “관계와 신뢰쌓기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주는 것과 받는 것 둘 다를 추구하는 것이다.”
② 교회공동체를 통한 모든 은사의 활용=세빛교회전도 공동체 전체는 하나님의 은사들을 통해 복음을 증거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회심후 한가지 이상의 영적은사가 주어지며 (롬 12:3-8; 고전 12장; 엡4:1-16), 사역할 수 있게 된다 (엡4:11-12). 하나님이 은사들을 주신 이유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여 (벧전 4:10),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전 12:7).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여러 다양한 악기들이 서로 화음을 이루어 아름다운 연주를 하듯, 함께 합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간다. 따라서, 하나로 통합된 교회공동체가 복음을 전함은, 다양함의 조화로 인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는 최상의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다. 가령, 리차드슨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통해 교회공동체 전체가 전도함은 하나님의 전도전략이라고 지적하며, 실례로 7가지 핵심적인 은사의 영역을 통합한 전도를 제시한다: (1) 기획력과 지도력, (2) 전도와 구비, (3) 환대와 격려, (4) 목회적 돌봄과 가르침, (5) 기도, 말씀과 성령의 능력, (6) 봉사와 긍휼, (7) 베품.
③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말하기와 듣기=세빛교회전도 방법은 신자들에게 예비크리스천들이 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말할 것을 격려한다. 복음을 들음은 믿음에 있어 필수적이다 (롬 10:17).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복음 메시지를 말로 전함은 전도에 있어 기본적이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이지만 교회가 만약 이 내용들을 이야기 형태로 제시한다면, 예비신자들의 흥미를 끌어 심령에 훨씬 잘 와닿게 할 수 있다.
또한, 신자들은 복음이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것으로만 그침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발견한다. 기독교인들이 예비신자들의 귀에 복음이 들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은 소그룹 형식을 통해 복음에 대해 예비신자들과 대화를 갖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복음을 일방적으로 듣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자신들의 세세한 삶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게다가 현 시대는 TV, 영화, 인터넷, 스마트폰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청각은 물론, 시각적으로 학습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이다. 어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이제는 멀티미디어이고 영어는 제 이 외국어일뿐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때문에, 전도자들은 말의 대용수단이 아닌, 말의 보조수단으로서 시각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삼차원적인 복음전달을 해야 한다. 가령, 성경구절과 함께 사진, 미술 작품, 그래픽을 스크린에 비추고, 음악을 이용한 음향효과를 내는 시도이다. 스윗도 포스트모던 영성이 언어가 아닌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④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보이기=세빛교회전도는 기독교신앙을 복음을 구현하는 삶을 통해 예비신자들에게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한다. 세빛교회전도 방법은 예배, 찬양, 말씀읽기, 기도, 전도, 치유 등 모든 신앙활동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교회 바깥에서 음식을 제공하거나 어린이들을 돌봐주고, 의료치료를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공동체를 섬김을 통해 사회봉사의 수행을 장려한다.
깁스와 볼저는 “포스트모던 전도는 자신이 맺은 관계들을 통해 포스트모던 문화 안에서 실제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에 대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피스는 “확신을 주는 복음증거는 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의 영적 체험이 넘치는 삶이다. 실연이 설명보다 앞서야 한다.” 고 주장한다. 전도는 사람들이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활동들을 통해 그들이 복음을 듣고, 보고, 느낄 때 효과적이다. 웨버가 지적하듯이, 포스트모던 전도는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전시” 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신앙을 보이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그들을 통해 (고후 3:2-3) 하나님의 형상 (골 1:15) 인 예수님을 묘사하는 것이다.
⑤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나누기=세빛교회전도는 예비신자들에게 신앙활동에 동참할 기회들을 제공함으로 복음을 공유한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참여의 시대이다. 예를 들어, 점점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사는데 이베이 웹사이트를 사용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매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심지어 상품의 판매가격까지도 정한다. 마찬가지로 세빛교회전도는 예비그리스도인들에게 동참을 통해 신앙인공동체에 더욱 소속할 수 있도록 한다. 스윗은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의 정신에 따라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들은 관찰자는 물론 참여자로서 세상을 지각하며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고 지적한다. 참여적 문화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이해와 선호에 따라 어떤 활동들에 참여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세빛교회전도는 예비신자들에게 예배, 찬양, 말씀읽기, 기도, 전도, 치유 등 모든 종류의 신앙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한 세빛교회전도는 그들에게 교회공동체 안에서 사회봉사 현장에 참여하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에버츠와 샤우프는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긍휼과 정의를 진작시키는 하나님나라 활동들에 참여함을 보고 있다고 관련지어 말한다.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는 친구들을 봉사프로젝트에 참여토록 초대함이 그들을 전도하는데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쓴다. 오늘날의 예비기독교인들은 가만히 앉아 신앙을 받아 먹기만 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상호의존적인 존재들로서, 신앙인들과 상호 작용하며 신앙을 키워가는 영적 존재들이다.
⑥ 교회공동체를 통해 복음 만지기=세빛교회전도는 또한 예비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임재를 통해 복음을 체험하도록 기회를 준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칠 때, 상처입거나 아픈 사람들을 종종 만졌다. 사도 바울도 손수건을 아픈 곳에 얹어 병을 낫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행 19:12).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혈루의 근원이 마른 것을 체험했다 (마 9:21). 손을 잡는 것처럼 확실한 촉감을 통해 예수님을 경험하도록 인도함이 기독교신앙의 특성이다. 레너드 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접촉의 교회이다. 기독교는 접촉의 문화이며 촉감의 종교다. 성경적인 영성은 접촉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포스트모던 문화는 모든 분야에서 경험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현 경제는 경험을 제공해 주는 상품과 서비스를 동시에 파는 경험경제라고 말하며, 관광과 같은 경험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과거의 최고 가치였던 노동윤리마저 버리고, 경험을 쌓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경험윤리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제 교회는 총체적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쉐키나 (Shekhinah)의 경험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청각이나 시각, 촉각, 미각과 후각 등 모든 감각들을 총동원하여 예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해야 한다.
5. 결과/목적: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공동체적이고 종말론적인 삶으로 인도하기
세빛교회전도는 예비기독교인들이 종말론적 공동체 생활을 하도록 인도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셨고,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하며 그 기원과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시 8:4-6, 엡 2:10).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창 1:27).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 존재란 의미로, 결국 하나님처럼 사랑의 본성을 갖고 사회적 관계성을 갖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긴밀히 갖는 공동체안에서 공동체적 관계를 경험하며 함께 조화롭게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삼위일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들이 개별적이고 독특한 존재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함 속에서 통일성을, 즉 조화를 추구하게끔 방향을 잡아주며 안내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공동체를 갈망하는 다면적인 포스트모던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또한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실현해 가는 삶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준다. 사회적 삼위일체는 인간 각 개인들의 독특성을 선포하며, 또한 그들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적 자유를 허용해 준다. 사회적 삼위일체 안에서, 사람들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수평적인 동등한 관계안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 삼위일체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만족시키며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무한한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기본적 틀을 제공한다. 교회공동체들 안에서 기독교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홀로 서는 개인들이 아니라, “공동체 사람들 (persons-in-community)” 로서 살아갈 수 있다.
아울러, 크리스천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다가오는 통치를 현재 속에서 인정하는 종말론적 공동체로 세상 속에 살게 된다 (벧전 2:9). 그리하여, 이 모든 개별적 공동체들은 종내는 새로운 인류, 즉 새 땅과 새 하늘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존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자녀들의 영광스런 공동체로 바뀔 것이다. 가령 진정한 공동체를 갈망하는 예비신자는 교회공동체를 통해 전도를 받고 변화되어, 공동체 안에 살고 공동체로 사역하며 전도하는 삶을 살다, 영원한 하늘 공동체인 새예루살렘에 소속하게 된다 (계 21:1-22:5).
결론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크리스천들의 임무는 복음, 즉 구원의 복된 소식을 예비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현하고 설명하여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사도 바울이 일찍이 이 원리를 잘 깨달았던 것으로 기록한다. 그는 고린도전서 9:19-23 에서, 그린이 “사도적 기회주의 (apostolic opportunism)” 라고 부르는 특정한 전도태도를 기술했다. 바울은 상대방에 따라 그들의 필요에 맞춰 복음을 달리 증거했다. 그는 유대인을 얻기 위해 유대인이 되기도,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위해 율법 아래 있기도, 율법없는 자를 위해 율법없는 자가 되기도, 약한 자를 위해 약한 자들이 되기도 했다. 바울처럼 오늘날 신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각각 다른 문화에 맞는 각각 다른 포장 안에 적합한 복음내용을 넣어 적절하게 전달함이 바람직하다.
세빛교회전도는 공동체에 소속하길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동시에 세빛교회전도는 사회적 삼위일체의 형태로 존재하는 하나님과 현 문화맥락에서의 종말론적 공동체 신앙을 구현한다. 나아가 현 문화 특성들에 적합한 전략들의 효과적인 전달과 함께, 관계적 변증인 교회공동체를 전도주체로서 활용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바람직한 종말론적 공동체 생활을 공동체 사람들에게 결과/목적으로 제공한다. 간단히 말해, 세빛교회전도는 공동체란 절대 필수적인 공통인자를 갖고, 다섯 가지 전도실천의 영역들인 수혜자, 내용, 주체, 전달전략, 결과/목적들을 통합한, 통일된 전도의 실체이다. 이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공동체를 갈구하는 예비그리스도인들을, 사도적 기회주의의 태도로 개인 단위가 아닌, 공동체 단위로서 함께 섬길 수 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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