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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훈 목사 "크리스찬들이 바보로 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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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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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한인교회는 3월 13일(금)부터 3일간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로 삽니다"라는 주제로 춘계 부흥성회를 열었다. 강사는 열린문장로교회 김용훈 목사. 김 목사는 마지막 날 오후 집회에서 다니엘 3:8-18을 본문으로 "은혜받은 자는 바보같이 삽니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성회의 마지막 설교로 어쩌면 성회의 결론 같은 내용이었다.

김용훈 목사는 설교를 시작하며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을 받는 성경의 인물들을 소개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당대의 사람들에 눈에 바보같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조금만 세상과 타협하여 살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렇게 바보스럽게 살 수 있을까 질문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으신다고 강조하며, 대형교회 청빙을 거절하는 등 바보처럼 살았던 자신의 삶을 간증한다.

이어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처럼 사는 방법을 전하는데 신앙인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원칙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교회에 실용주의가 들어오고, 신앙생활에 실용주의가 들어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은 함께 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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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는 강사 김용훈 목사.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갈망이 있는데 그것은 인정받기 원한다. 인정받고 싶은 대상가운데 특별히 인간의 육신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주변을 보면 많은 재능을 가지고 세상에서 성공했음에도 자기에게 너무 소중한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일중독과 성공중독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육신의 삶에 일어나는 현상이 영적인 삶에 동일한 원리로 적용된다.

누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

사람에게 육신의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께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려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삶이 항상 무엇인가 빠지는 듯한 인생이 되는 이유가 그 것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굉장히 세상에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목마름의 문제, 영혼의 갈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떤 분이 인간이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말하려면 3가지의 조각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사랑받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받는 것이 필요하다. 김천수의 "꽃"이라는 시가 그래서 유명해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랑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둘째가 올해 결혼하는데 예수님을 만난 것 보다 더 행복하게 보인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면 도와주려고 한다. 도움이 안되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에 그렇다. 위의 두 가지 조각은 하나님이 빠져도 가능하다. 하나님이 빠져도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사랑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를 이루지만 영혼의 목마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세 번째 조각 때문이다. 하나님이 빠지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 조각은 "부름" 또는 "소명"이라는 것이다. 릭워렌 목사가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냈는데 크리스찬만이 아니라 비 크리스찬들에게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제목이다. 모든 사람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우리들은 그렇게 창조된 존재이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전에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이 되지 않고서는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헤밍웨이도 자기의 삶을 그렇게 평가했다. 다시 회생시킬 수 있는 소망이 없는 필라멘트가 끓어진 전구와 같다고 했다. 자기의 삶을 마지막에 스스로 끓기 전에 했던 말이다. 헤밍웨이는 뿌리 깊은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가 디엘 무디와 절친한 동역자였다. 헤밍웨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다. 세상 가운데에서 헤밍웨이는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세상 사람들에게 탁월한 문학가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은 맞추어 질 수 없는 그림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빠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 마지막 부름과 소명과 목적이라는 퍼즐이 빠졌기 때문이다.

성경의 바보같은 사람들

어떻게 살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첫 날 집회에서 그런 말을 했다. 정말 모든 것을 걸고 놓치지 말아야 할 축복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드리면서 시편 1편을 들면서 답을 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삶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빼앗기지 말아야 하는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가장 소중한 축복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성경을 보니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의 삶의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 공통점은 당대의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바보와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를 떠나기 전에 꽤나 장래가 밝은 비즈니스맨이었다. 어느 날 다 정리하고 떠나는데 동네 사람이 왜 가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내가 하나님을 만났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간다고 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어디로 가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나도 모른다.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시는 데로 간다"라고 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 대답을 듣고 장래가 촉망되는 그런 똑똑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바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모세를 생각해보라. 모세가 바로의 궁중에서 자랐다. 역사가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계속 바로의 궁중에 있었다면 바로가 아들이 없었기에 모세가 이집트의 정권을 붙잡을 수도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세상의 부귀와 영화가 있었다. 그런데 모세가 그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을 더 기뻐하며 그 길을 선택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을까. "모세는 바보 아냐"라고 말했을 것이다.

오늘 본분에도 보니 그런 세 사람(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이 등장한다. 요즘 콘텍스트로 말하면 세 사람은 이민자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원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바벨론에 끌려와서 성공한 젊은이들이었다. 오늘 갑자기 자기들을 성공하게 했던 요즘말로 하면 자기가 일하는 직장의 사장이 금신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절을 하라는 것이다. 상상력을 둥원해 보라. 수많은 사람들이 큰 금신상 앞에 절하면서 지나갔다. 무리가운데 지나가면서 동전하나 떨어뜨리고 줍는 시늉만 했어도 위기를 모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머리를 들고 지나갔다.

모르긴 해도 같이 유다지방에서 포로로 끌려왔던 친구들은 "지만 잘났어. 저 불티가 우리한테 튈지도 모르는데 꼭 저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해" 하는 말을 했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올라간 자리인데 머리를 한 번 꾸벅하고 지나면 되는데 그것을 못하고 그 자리를 포기하는 바보라고 했을지 모른다. 한번 타협하면 잘살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룬 것을 다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그것을 타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아브라함과 모세 등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모든 사람들을 보면 당대의 사람들에 눈에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꼭 이렇게 바보스럽게 살 필요가 있을까?

여러분들에게 그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꼭 이렇게 바보스럽게 살 필요가 있을까. 조금 타협하면 쉬운 길이 보이는데 이렇게 고지식하게 바보스럽게 살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런 바보들을 찾아서 그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펼쳐 가시기 때문이다. 본문 다니엘서 3장 29절을 보면 그 바보들 때문에,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게 보이는 믿음의 바보들 때문에 이방 왕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조서도 발표한다.

잊지말라. 우리가 세상의 눈에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가 되는 상태가 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래서 바보같이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을 만나고 제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니 저는 그렇게 크게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인물이 못된다. 그래도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던 순간순간을 보니 바보같이 살기로 결정했던 순간이었다.

김용훈 목사의 간증

저희 교회에 많은 청년들과 불신자들이 찾아온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오래 전에 두 번씩이나 자기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짓을 했기 때문이다. 이민교회와 한국교회의 대형교회에서 청빙 받고 가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 그들로 하여금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일까 신기해서 교회를 오게 한다. 또 저희 교회가 동네에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예배를 드리는 공항근처에 있는 교회로 옮겨갈 때 장로들과 기도하면서 당회가 바보스러운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먼저 교회를 확장하고 이전하면서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약속은 아무리 눈에 보기 좋은 그런 땅과 건물이 나와도 만일 다른 교회가 들어와 가격경쟁이 벌어진다면 양보하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조건을 세우고 교회이전을 결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우리가 있던 교회보다 규모가 2-3배되는 교회가 하나 나왔는데 너무 적합했다. 그런데 다른 한인교회도 그 교회를 사기 원했다.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니 포기하고 나왔다. 열심히 기도하는데 이번에는 4배 정도 되는 사이즈 교회가 나왔는데 역시 다른 한인교회가 사기를 원해 포기했다. 세 번째 교회가 바로 저희가 있던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미국교회였다. 현재 있는 교회건물보다 사이즈가 7배 정도 되는 건물이었다.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더 많은 돈을 준다는 카톨릭 사립학교에 빼앗겼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성경을 읽어보니 다윗이 성전을 짓고 싶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니 안되었는데, 우리 교회가 성전이 필요한데 성전을 다시 한 번 짓는 일이 저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면 사임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이런 응답을 주셨다. 신명기 6:10-1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으로 응답하셨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응답은 "그것은 내가 할거야. 네가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면 내가 했을때 네가 잘나서 된 것 처럼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는 것이 주신 답이었다.

그 응답을 받고 6개월이 지나 공항에서 5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건물을 샀다. 교회를 지을 수 있는 허가가 난 땅이다. 공동의회에서 거짓말과 같이 한 표의 부표 없이 통과되었다. 그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우리가 믿음이 좋아졌든지 간이 켜졌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 2배 되는 것, 4배 되는 것, 7배되는 것 다 지나가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직접 보게 하셨다. 건물은 샀는데 가구를 살 돈이 없었는데 건물을 판 미국회사가 트레일러 14대 분의 가구를 운송비까지 거의 전부를 지불하고 우리교회에 기부했다. 뉴욕에 있는 기업은 컴퓨터 100대 이상을 기증했다.

간증을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시작할 때는 손해 같지만 하나님이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면 어떻게 하시는지를 모든 교인들이 보았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 교인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깨 닫았다. 우리가 세상의 눈에 바보와 같이 비칠 때 그 선택을 우리가 할 때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래서 옥스포드의 철학자 오스틴은 만일 예수님을 기꺼이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삶에 보여주시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가 되고 우리가 담당해야 할 역할로 인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지극히 작은 일이다고 했다. 자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로 살 준비가 되었는가.

바보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은 시간동안 그러면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도록 하겠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로 살아가려면 원칙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왕이 그들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 지금이라도 절을 한다면 예전에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더 이상 왈가불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원칙이 세워져 있었다. 원칙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원칙주의자에 대해 사람이 꽉 막히고 융통성이 없고 사회에서 적응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3명의 청년들은 그런 사람이 없었다. 성공적인 이민자였다. 바벨론에서 살기위해 이름을 개명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에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 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는 것에는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것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미 어떤 값을 지불하더라도 타협할 수 없는 그 원칙이 그들의 삶에 세워져 있다고 답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신앙이 되려면, 세상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꾸려면 크리스찬들이 원칙주의자들이 되어야 한다.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타협할 수 없는 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서 살 수 있을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이 된다.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남들이 와서 간증할 때 큰 경험했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런 경험이 없을까 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러분의 삶을 잘돌아보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심을 경험할 수 있는 시점에서 어쩌면 우리가 타협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세워진 원칙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사람은 기준이 달라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준이 달라야 한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하라는 말씀은 다른 단어로 쉽게 해석하면 다르게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면 좋겠다. 요즘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자녀에게 그렇게 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대답한다. 물론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아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하신다.

예수믿는 직장인은 달라야 한다. 예수믿는 사업가는 달라야 한다. 다르면 은혜로서 사는 것이다. 인생을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내 실력으로 사는 법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쉽지 않게 보이지만 훨씬 지고 가는 짐이 가볍다. 내 실력으로 사는 삶은 어렵다. 저는 예수님 만나기 전에 내 실력으로 살기위해 발버둥 치며 살았다. 하지만 예수님 만나고 나서 인생은 꼭 실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플러스 알파가 되어주시면 은혜로 살면 인생이 다르다. 은혜로 살려면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서 다르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너무나 실용주의에 빠져있다. 그래서 신앙은 신앙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이라는 태도로 산다. 결과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디모데후서 2:5에는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한다. 교회에 실용주의가 들어오면, 신앙인으로 살다가 실용주의가 들어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은 함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한 학자가 정수를 찌르는 지적을 했다. 거듭나지 못한 세상에게 있어서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도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로 비칠 것이다.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세상은 우리를 환영할 것이다. 그런 경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세상 사람과 아무런 차이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영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거의 미친 상태의 멍청이로 여길 것이다. 잊지 말라. 세상의 눈에 바보와 같이 보일 수 있을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래서 원칙주의자로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바보로 살아도 걱정이 없는 이유

한 가지 질문이 따라온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계산이 상당히 빠르다. 그런데 이론은 참 좋은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바보가 되어 살 수 있을까. 그 방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다. 가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찾아오면 "감당할 수 없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주세요" 라고 불평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에,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키시고 그 일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3명은 너무나 멋있다. 왕의 앞에서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인데 하나님이 왕보다 더 크시고, 우리를 풀무불 가운데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것이 아니라 하실지라도 왕의 신을 섬기지 않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멋있는 신앙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실 때 이미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그들에게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다니엘서 2장을 보면 왕의 꿈을 해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이 꿈의 내용도 이야기를 안해주고 무엇인지 알아내고 해몽하라고 명령한다. 아니면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을 다 죽이겠다고 했다. 다니엘도 술사 중의 한사람이다. 2:17-18을 보면 다니엘이 돌아가서 기도할 때 친구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한다. 그때 나오는 친구 3명의 이름은 본문에 나오는 3명의 사람들의 원래 유대이름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를 왕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임을 그들로 하여금 확신하게 하신다. 그 일이 있고나서 금신상에게 절하라고 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다. 다 준비시켜 놓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결단하게 하신 것이다.

신앙생활이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어느 아이가 물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수영을 배우러 갔는데 코치가 수영을 해서 살아나라고 그냥 물에 던졌기에 다음부터는 물이 무서워서 수영장에 안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무지막지한 코치가 아니시다. 우리를 잘 아신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잘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준비시키신다.

하나님이 다하셨는데 그러면 나의 결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결단은 마중물과 같은 것이다. 마른 펌프질을 하면 물이 안 나온다.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지하수가 쏟아진다. 우리의 결단은 마중물이다. 우리가 조금 부으면 나머지 물이 콸콸 쏟아지게 하는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 얼마나 정확하신지.

제가 한 교회를 오래 섬기면서 경험한 큰 축복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함한 것이다. 제가 만일 다른 교회에 청빙 받고 갔다면 남이 다 이루어 놓은 곳에 갔다면 이런 경험을 못했을 것이다. 순종하면 그냥 하루아침에 잘 풀리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원칙으로 순종하고 교회를 샀다. 하나님이 조금 교회를 축복하시기 시작하셔서 교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예배처가 필요해졌다. 창고를 개조하고 본당을 만들다가 문제가 생겨 소방서에서 3일안에 다 나가라고 했다. 당시 1,500명이 호텔에서 9개월간 주일예배를 드렸다. 기도처소가 없어 교회마당에 천막을 치고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는데 그 해 겨울은 왜 그렇게 눈이 많이 오고 추운지. 마침내 건물에 입주한 날 바람이 불어 천막이 무너졌다. 더 이상 그곳에서 예배하고 기도할 필요가 없을 때 천막을 하나님은 거두셨다. 하나님은 굉장히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준비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신다.

우리가 사랑하는 성경구절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을 보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그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합해서 선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빈민층에서 자라 억만장자가 된 미국에서 유명한 깁슨에게 기자가 성공비결을 물어보았다. 성공의 비결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고생을 겁내지 않고,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다 아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깁슨이 말하기를 다 알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대답했다. 신앙은 다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지적인 신앙인들이 많은지 모른다.

바보가 되기 위해 고난을 겁내지 말라

마무리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가 되기 위해 고난을 겁내지 말라.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독교에는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없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본문의 3명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났는가. 하나님이 풀무불 속에 들어가기 전에 불을 끄고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 풀무불 가운데에서 만났다. 그들이 풀무불 가운데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리고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그 풀무불 가운데에서 만나주셨다.

이 자리에도 인생의 풀무불 앞에 서 계신 분들 계실 줄 안다. 우리에게 항상 타협하고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한국에는 태산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피할 구멍은 다 있다. 중요한 것은 만일 그 고난이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지기 원하시는 십자가라면 내가 그것을 달게 질 것인가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질 때, 십자가를 기쁨으로 질 때 고난가운데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바보로 사는 것이 왜 지혜로운 결정인가?

마무리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로 사는 결정은 세상적인 눈에는 바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지혜로운 결정이다. 누구에게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가. 세상가운데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다. 저는 크리스찬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세상가운데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에 인정받는 것에 걸림돌이 된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금세 잊어버린다. 누가 지혜로운 것일까. 잊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는 그분에게 기억되는 인생이 지혜로울까 아니면 잠깐 기억하는 것 같아도 잊어버리는 대상을 위해 인생을 희생하는 것이 지혜로울까.

세상은 금세 잊어버린다. 중국에 갔을 때 명나라 3대 황제였던 만역제의 무덤에 갔을 때 그것을 느꼈다. 만역제가 좋은 왕은 아니었지만 47년간 다스린 명나라 3대 왕이다. 키의 몇 배나 되는 비석에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저는 세월이 많이 흘러 지워진 줄 알았다. 그런데 안내하는 분이 말하기를 만역제가 죽은 후 역사학자들이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쓸 것이 없어서 안 썼다는 것이다. 47년을 섬겼는데 한 자도 쓸 것이 없었을까. 그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세상은 금세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잊어버릴 그 세상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투자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전도서 1:11에는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라고 기록했다. 이전 세대가 그전 세대를 기억하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 오는 세대가 여러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히브리서 6:10에는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어디에다가 여러분의 인생을 투자하기 원하는가. 세상의 눈에는 바보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 기억되는 그런 삶을 살자.

이집트 10대 왕이 누구인지 아는 분이 있는가. 하지만 모세는 다 안다. 모세가 이집트 왕이 되었다면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기에 우리가 모세를 기억한다. 가장 좋은 것을 택할 수 있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 발자취 남기고 떠나지만 세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남겨진 발자취는 하나님이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은혜로 사는 그리스도의 바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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