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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한미노회 20주년 "위기와 갈등을 지나 도전과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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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17-03-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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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로교 동부한미노회가 20주년을 맞아 3월 7일(화) 오후 6시 한소망교회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동영상으로 지난 20년간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지만, 순서지에 나온 지난 20여년의 발자취는 동부한미노회의 방향성을 보여주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부한미노회 20년의 발자취(1997-2017)”라는 제목의 글은 20주년 역사 기록팀이 작성한 문서로 문정선, 박상천, 손태환, 박순진 목사 등이 팀을 이루어 쓴 글이다. 이 글은 △준비와 태동 (1993-2000) △성장과 발전 (2001-2010) △위기와 갈등 (2011-2016) △도전과 희망 (2017 -  )이라는 4개의 부분으로 20주년을 나누고 있는데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라는 부제를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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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기념 단체사진
 

교단의 동성애 정책 때문에 혼란이 있었고 지금도 일부 교회와 문제가 있지만 동부한미노회 한인교회들은 이제 그 혼란이 끝나고 “도전과 희망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국장로교내 오피니언 그룹인 동부한미노회의 이런 선언은 미국장로교내 한인교회 연합체인 NCKPC의 분위기와 같다. 미국장로교내 한인교회들은 더 이상 교단의 정책에 이끌려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이 상황에서 교단의 영적심장이 되어 교단을 갱신하고 성경적으로 개혁해 나갈 것을 선언했으며 이제 강력하게 드라이버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동부한미노회의 최고 원로급인 문정선 목사 그리고 중진급인 박상천 목사가 노회의 희망과 같은 다음세대인 손태환 목사와 박순진 목사와 함께 작성한 문서로 “이제까지 수 없이 받아온 도전들 앞에 수세적 입장을 취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공세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20주년 감사예배에서 노회의 다음 20년을 책임질 김대호, 박순진, 손태환, 김형석, 김원재 목사가 중창으로 부른 “어느 민족 누구게나” 찬양도 상징적이다. 

 

동부한미노회 20년의 발자취(1997-2017)

-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

 

레슬리 뉴비긴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인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 단체나 공동체에 대한 접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부한미노회를 이해하는 것은 지난 20년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누구였으며, 무엇을 향해 걸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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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역대 노회장들
 

1. 준비와 태동 (1993-2000)

 

“동부 한인노회의 탄생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당시 미국장로교단에 속한 한인 교회들은 교단 내에서 언어의 제약으로 인한 불이익을 겪고 있었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인 교회들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과제 앞에 직면해 있었다. 이미 서부 한미노회가 1984년 1월에, 시카고 중서부 한미노회가 1994년 6월에 조직되면서 한인노회 조직의 흐름이 서부에서 중부를 거쳐 동부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 동북대회 한인교회협의회(KPC, Synod of the Northeast, 회장 윤명호 목사)는 1993년 5월, 동북부 8개 주 지역을 아우르는 한인 노회 설립을 대회에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 요청을 받아들인 동북대회는 한인 노회 조직의 가능성을 연구하기 위한 특별 위원회(Special Committee To Explore the Feasibility of a Korean Language Presbytery)를 발족시켰다. 하지만 동부 한인노회의 조직은 이후 약 4년간의 지난한 산고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결실을 맺게 된다. 특별위원회는 정보 수집과 제반 협의를 거친 자료 분석을 통해 최종 제안서를 대회에 제출했고(1995년 3월 15일),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95년 7월 한인 노회 설립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the Creation of a Korean Language Presbytery)가 구성된다.

 

노회 조직을 위해 이 위원회에서 논의한 다양한 주제들 중에 ‘노회 존속 기간(12년)’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교단에서는 한인 노회를 다른 비지역 언어 노회들처럼 이민자 수 감소에 따른 한시적 조직(잠정적 노회)로 보았다. 이것이 한인 교회의 독특성과 성장 동력을 이해하지 못한 총회의 근시안적 판단이었다는 점은 2008년 제218차 총회가 서부 한미노회의 ‘영구 노회’ 청원 헌의안을 승인하면서 증명되었다.

 

동부 한인 노회 조직을 위한 실제적인 준비는 1996년 9월 3일에 조직된 행정전권위원회(위원장 이문희 장로)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위원회는 한인노회에 관심 있는 목회자와 당회 대표들을 초청하여 노회 조직과 운영에 관해 설명하며 가입을 독려했다. 이후 1997년 1월 11일 가입 결의를 마친 20개 교회의 목회자들과 전체 회의를 개최했다. 이 날 노회의 한국어 명칭이 ‘동부 한인노회’로 정해진다.

 

노회의 출범은 1997년 3월 15일 뉴욕 한인중앙교회에서 창립 예배와 첫 정기노회를 개최하며 이루어졌다. 창립예배 시 이승만 목사의 설교 제목이 “이방인의 믿음”(눅17:11-19)이었다는 것은 노회가 한인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희망 속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12개의 소속 교회를 이끌 동부한인노회 1대 노회장은 오랜 목회 경험을 지닌 조덕현 목사가 맡았고, 아직 유급 총무와 서기가 없는 상태에서 김영규 목사(산돌교회)와 문정선 목사(찬양교회)가 노회 행정의 초석을 놓았다. 1997년 7월에 초대 총무로 취임한 문정선 목사는 상회와의 원활한 소통과 교류를 유지하는 동시에, 노회 제반 행정의 기초를 세우는 일에 공헌하였다. 

 

동부한인노회의 태동은 한인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및 시대적 흐름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었다. 한인 교회들의 열정은 교단 안에서 언어적 문화적 벽에 의해 종종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한인 노회 조직이라는 열매로 이어졌다. 요컨대, ‘우리는 누구인가’’를 고심했던 이들이 쓴 역사의 첫 단락이었다. 

 

2. 성장과 발전 (2001-2010)

 

동부한미노회는 2001년 9월 김득해 목사가 제2대 총무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도약과 성장의 단계로 접어든다. 외적으로는, 노회 사무실 구입(2007년 12월), 노회의 명칭을 동부한인노회에서 동부한미노회로 변경, 총무의 명칭을 사무총장으로 변경(2008년 9월)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내적으로는, 계속적인 소속 교회 및 교인 수의 증가로 수 년간 교단 내 노회 성장률 1위를 기록하며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어갔다.

 

창립 당시 12개였던 소속 교회는 10년 동안 33개 교회로 증가했고, 지교회들의 가입과 성장을 통해 활동 교인 수가 1,300명에서 5,000명에 이르렀다. 이 10년의 기간이 미국장로교를 비롯한 미국 내 주류 교단이 교인 수 감소로 고심할 때임을 감안할 때, 동부한미노회의 발전은 교단 내에서도 분명 주목할 만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총회가 노회의 성장을 축하하며 특별상을 준 것은 이를 증명하는 예이기도 하다.

 

이 기간은 노회에서 주최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행사들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였다. 노회는 창립 초기부터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력 증진을 위한 사역을 개발하고 시행했다. 목회자 지도력 향상을 위한 연합 수련회, 세미나 개최, 헌법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평신도를 위해 연합 제직 수련회를 열어 지교회에서의 효과적 봉사가 가능하도록 도왔다. 또한 연합 교사 수련회와 교사 강습회를 통해 2세들을 위한 신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고, 특히 해마다 열리는 에녹 수양회는 지교회의 노인 교우들을 위한 영적 회복과 친목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 2001년 12월 한소망교회에서 그 첫 회를 시작한 예수 찬양 잔치는 노회 산하 지교회들 사이에 교제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적절한 장이었다.

 

노회의 관심이 노회 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장로교단에서는 산하 노회들과 해외 교류 교단 소속 노회와의 자매 결연을 지원하고 있는데, 동부한미노회 역시 한국의 노회들과 결연을 맺으며 선교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였다. 1999년 12월 예장 통합 관악노회와 결연을 맺고, 뒤이어 기장 서울 남노회와 2002년 12월 결연을 맺은 것이 그 열매였다. 또한 해외 선교를 위하여 중국 의료 선교 사역을 노회 차원에서 협력했고, 2010년 7월 유카탄에서의 연합단기선교를 시작으로 중남미 선교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뿐만 아니라, 노회는 국내외 재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지역 교회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상당한 금액의 구호금을 교단 재난국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동부한미노회는 불과 10년 동안 눈에 띄는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 당시 동북대회 총무였던 Clinton A. McCoy 박사는 창립 10주년 축하 행사에 참석하여 노회가 창립 당시보다 지교회가 3배 증가한 사실과 교단 산하 173 노회들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고 급진적으로 성장하는 노회임을 인정하고 축하하기도 했다. 한편, 이 행사에서 “노회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로 삼자”고 한 김선배 목사의 제안은 두고두고 새길 만한 조언이 되었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시작한 노회는 이제 ‘우리는 누구이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할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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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컷팅을 하는 1대 노회장과 20대 노회장 그리고 대회 관계자
 

3. 위기와 갈등 (2011-2016)

 

동부한미노회는 동성애자 안수 및 결혼 정의를 둘러싼 수 년간의 교단 갈등과 더불어 위기의 시간을 맞게 된다. 동성애 이슈는 1976년 동성애자 안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이후로 30년 넘도록 교단 내 첨예한 논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어 왔다. 하지만 한인 노회의 위기는 동성애자 안수를 가능하게 한 개정안(10-A) 통과 이후에야 현실로 다가왔다.

 

제 219차 미국장로교총회(2010년 6월)에서 교회 제직이나 목사의 안수에 있어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의 언약을 맺어 정절하게 살거나 독신으로 순결하게 살도록 요구(W-4.9001)”하는 문구를 삭제하고 공의회의 시취와 판단에 따라 동성애자 안수 가능성을 열어주는 개정안(10-A)이 통과된다. 

 

각 노회에 수의하여 투표할 당시 동부한미노회는 만장일치로 반대하였으나, 전체 노회 중 찬성 97 반대 74로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2011년 5월 11일 마침내 개정안이 확정되었다.

 

이후 교단 내 모든 한인 교회와 노회는 빠르게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동부한미노회는 즉시 성명서를 발표하여 “교회는 성경에 의하여 개혁되는 것이지 교회가 성경을 개혁 할 수는 없다”는 근거하에 동성애자 안수 반대에 대한 노회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당시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NCKPC)는 제40회 총회(2011)를 통해 교단의 헌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교단 “산하 다수의 교회들과 연대하여 교단을 갱신하고 성경적으로 개혁해 나갈 것”을 천명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단 내 한인 교회를 향한 의혹과 비난은 거세게 밀려 들어왔다. 많은 언론들이 개정안(10-A) 통과 소식을 알리며 곧 결혼에 대한 정의 역시 수정될 것임을 예상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노회 소속 교회들 가운데 교단 탈퇴에 대한 필요성 혹은 당위성을 논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혼란을 더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었다. 실제로 교단 관계 해소를 신청한 교회가 생기면서 노회는 긴 아픔과 상처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2012년 12월4일 제3대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조문길 목사는 특유의 목회적 리더십을 보여주며 위기 속에서 돌파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 나갔다.

 

역설적이게도, 한인 노회의 위기(危機)는 ‘위험’인 동시에 ‘기회’로 주어졌다. 제221차 총회(2014년 6월)에서 결혼에 대한 ‘권위적 해석’(Authoritative Interpretation)이 보고됨에 따라 한인 교회는 새로운 가능성의 국면에 접어든다. 이 새로운 유권 해석의 핵심은, “교역 장로나 당회가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분별하는 것에 맞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맞지 않는다고 믿는 혼인 예식을 교역 장로에게 집례하라고 강요하거나, 당회에게 교회 건물의 사용을 인가해주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W-4.9006)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결혼의 정의가 “두 사람의, 전통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바뀌더라도 한인노회가 동성애 결혼을 반대하면서 교단 내에서 존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노회는 2014년 6월 23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교단의 결혼 정의 수정 헌의안 채택에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노회와 소속 교회는 동성 결혼은 어떤 형태로든지 시행하지도 참여하지도 않을 것임을” 밝혔다. 아울러 NCKPC와 함께 한인 총회의 입장을 소속 교회 교인들과 이민 사회에 명확히 밝히는 노력을 지속해갔다.

 

결혼에 대한 총회의 ‘권위적 해석’은 그 동안 혼란 속에 있던 노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찾도록 해 주었다. 한인 교회들이 교단을 떠나지 않고 머물 이유를 찾은 동시에, 교단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나름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사명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동부한미노회는 NCKPC와 함께 교단 내 보수 그룹인 Fellowship of Presbyterians Movement와 연대하면서 교단 내 복음주의적 목소리를 냈고, 교단은 이런 한인 교회의 입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노회는 쉽지 않은 위기 속에서도 나름의 명확한 방향성과 역할을 찾았다. ‘우리는 누구이어야 하는가’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까지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 년간 노회가 겪어온 갈등은 급격히 변해가는 시대적 흐름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한 탓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미국 교회들이 30년 넘도록 동성애에 관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토론하는 동안, 한인 교회들은 신학적 성찰을 게을리 했고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노회와 개교회 발전에는 헌신적 노력을 다했지만, 교단 내 흐름에는 언어적 문화적 한계를 이유로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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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의 다음 20년을 책임질 목회자들의 찬양  

 

4. 도전과 희망 (2017 -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를 먼저 알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장로교회의 긴 역사 속에서 과연 한인 교회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20년이라는 발자취에 담긴 영광과 실패를 정직하게 맞닥뜨릴 때만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동부한미노회는 제4대 사무총장 김현준 목사의 취임(2016년 12월 6일)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고 여전히 남겨진 갈등을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놓여 있다. 이제까지 수 없이 받아온 도전들 앞에 수세적 입장을 취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공세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부르심의 푯대를 향한 끊임없는 순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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