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찰스톤 총기사건때 왜 한인교회는 한마디도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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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5-10-21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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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러싱제일교회(담임 김정호 목사)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10월 17일(토) 오후 “이민교회 오늘과 내일을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6명의 강사가 섰는데 김동석 상임이사(시민참여센터)는 "지역교회의 시민정치 참여의 사명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주제발표하는 김동석 상임이사(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상임이사는 후러싱제일교회가 40주년을 맞이하여 내부적만이 아니라 외부적인 소리를 들으며 다음 40주년을 준비하는 모습을 높이 샀다. 한인교회들 특히 여력이 있는 대형교회들은 커뮤니티를 섬기는데도 대형이 되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이사는 지난 6월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성경공부하던 9명이 백인 청년에 의해 총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저는 왜 한인교회들이 이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대동강에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후 초기 복음을 받아들이고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조만식 장로와 함께 당회원이었던 할아버지, 작은 시골의 장로였지만 아들이 군대에서 순직한 후 나온 모든 돈을 교회당을 짓는데 다 사용한 아버지 등 개인적인 간증을 했다. 특히 2007년 미의회에서 일본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과정에서 큰 위협을 받았지만 중보기도팀의 도움을 받으며 역사를 이루어내고 개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간증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서신을 읽으면 플러싱 지역이 고린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시대적인 사명을 느낀다며, 2015년판 고린도전서를 써 나갔다. 다음은 주제발표 내용이다.
한인커뮤니티와 교회
(후러싱제일교회와 후러싱한인사회)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의 역사가 115년이다. 이것은 하와이에 한인이 첫발을 내 디딘 때로 부터의 역사를 말하는 년도이고 본격적인 한인이민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이다. LA와 뉴욕, 시카고 같은 대도시내 한인커뮤니티가 이때부터 형성되었다. 그래서 뉴욕지역의 한인사회, 그 커뮤니티의 역사는 그래서 이제 막 40년을 넘기고 있다.
1965년 이민법의 제정으로 아시안들의 합법적 이민의 문호가 열리면서 한인들의 미국으로의 이주가 시작되고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서 1980년대 중반에 뉴욕의 한인사회가 가장 크게 확대 되었다. 맨하탄과 퀸즈의 후러싱을 연결하는 7번 전철은 당시 한인들의 출퇴근 전용 전동차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였다. 자영업 보다는 일용직 노동자의 숫자가 훨씬 많을 때 였다. 생활이 아니고 생존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후러싱에 한인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그 한가운데에 설립된 교회가 후러싱제일교회이다. 일제강점기 때에 세워진 맨하탄의 뉴욕한인교회의 선교과제가 조국독립운동이었다면 한인커뮤니티의 형성과 동시에 설립된 후러싱제일교회의 그것은 한인들의 삶의 정착을 돕는 일이었다. 맨하탄 교회의 몇몇의 성도들이 후러싱으로 와서 교회를 설립개척한 설립배경을 봐도 후러싱제일교회의 개척정신은 철저하게 한인 커뮤니티에 그 기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케네디 공항을 통해서 입국한 한인 이민자들은 누구든지 곧바로 후러싱으로 왔다. 인연에 작은 끈만 있어도 찾아 들어가 그 집에 이민가방을 맡기고서 3-4명의 식구들이 ‘버드나무집’에서 설렁탕을 ‘김삿갓’에서 김치찌개로 요기를 하고 ‘구화식품’에서 쌀 한 봉지와 김치 한병을 샀다. 그리고 도착 이튿날 누구든지 반드시 찾아가는 곳이 후러싱제일교회였다. 교회를 통해서 아파트 구하기, 운전면허증 따기, 직장 구하기, 자녀들 학교에 입학시키기 등등을 시작했다.
교회역할의 100%가 한인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일 이었고, 초기 이민자들의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고 보듬는 일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내용의 중심이 되었다. 교우들의 가정생활 전체를 파악하고 보살피는 일이 교역자들의 임무였다. 당시, 후러싱제일교회를 필두로 한인들의 밀집지역 곳곳에 한인교회들이 생겨났는데 교회설립의 배경이 다 이와 같았다.
후러싱제일교회가 교회 창립 40년을 맞이했다. 후러싱의 한인커뮤니티가 이만큼 성장해 온 그 배경엔 후러싱제일교회가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인 커뮤니티의 한 가운데에서 한인사회를 지켜온 교회가 이제 그 역할과 방향(선교의 내용)을 재 점검하고 또 다른 40년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교회의 커뮤니티에 대한 책임
교회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제사) 드리는 곳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이 중심이어야 하고 또한 그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사역)를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늘 평가(회개와 회복)받아야 한다.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룩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그래서 사회(커뮤니티)의 중심이 교회이어야 하고 또한 교회사명의 중심에는 늘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이 위치해야 한다.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또한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는 현장과 현실에 위치해야 함을 설명한다.
지난 40여년 동안 후러싱을 중심으로 하는 뉴욕도시권내 한인사회는 그야말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민사회 구성원들이 달라졌고 이민자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사회 환경이 또한 달라졌다. 유아기나 아동기에 부모의 손에 이끌리어 이민자가 된 세대가 한인커뮤니티의 주역이 되었다. 지금 한인사회의 40대 중반이 그렇다. 소위 1.5세다. 미국의 교육시스템에 의해서 교육을 받은 세대다. 이들의 가치관이나 삶의 환경은 이민 초창기인 40여 년 전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이민 초장기에는 교인들의 요구(Demand)가 정착이었으면 지금은 시민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의 적응이다. 교회가 정착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서 지금 교회는 바른 시민으로의 적응을 위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돌아보고 점검해 보야야 할 것이다.
후러싱제일교회의 또 다른 40년에는...
후러싱제일교회는 후러싱의 한인 이민사회를 책임져야 한다. 이것은 교회 설립당시부터 그러한 역할을 해 왔기도 하다. 지금 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검토해 봐야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후러싱의 한인사회가 일반 시민사회의 당당한 한 부분이 되어야 하고 또한 후러싱이란 다인종 지역을 이끌어 가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다양한 인종의 생업과 주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지역이 후러싱이다.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후러싱 지역을 한인사회가 리드해 나가는 일은 어려운 이민 정착을 완성해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한인이 모범시민이 되는 일을 한인 교회가 책임질 일이다. 한인들끼리만 일상을 유지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타인종, 타민족과 어울리고 협력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를 한인교회가 만들어 내야 할 일이다. 또 다른 40년을 향하는 후러싱제일교회의 지역사회에서의 역할과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후러싱 지역의 한인들에게 모범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역할이다.
지역사회의 참여이다. 이제까지 한인사회내의 한인단체들끼리만 관계하고 소통했다면 이제부터는 교회내에 다양한 인종들이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교회가 그 중심에 서야 할 일이다. 한인들이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일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점적이고 핵심적인 일이 정치참여이다. 미국서 소수계들의 정치참여는 정치의 문제에 앞서서 생존의 문제이다. 동시에 소수계의 정치참여는 모범시민으로 인정되는 가장 바르고 빠른 길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선교 "교육과 참여"
(지역사회의 빈곤, 인권, 평화)
한인사회의 약점은 일반 시민사회로의 참여부족이다. 한인들끼리 만의 일상은 결집이 아니고 고립이다. 1992년 LA의 4.29폭동은 타민족이나 이웃 커뮤니티로부터 고립된 한인사회의 약점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위험스러운 것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례다. 커뮤니티의 이러한 문제는 교회가 앞장서서 풀어내야 할 과제다.
9.11테러 이후인 2000년대 중반의 미국 사회분위기는 극도의 반 이민분위기였다. 서류미비자들을 불법체류자라 명명하면서 운전면허증 발급을 정지시켰다. 소위 ‘Real ID Act'(리얼 아이디법안)라는 신분증을 도입시켜서 불법체류자를 색출해서 추방하는 광풍이 불었다. 주로 남미계 이민자들이 이에 해당되었다.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인 남미계들의 추방을 막으려고 성당의 신부들이 거리로 나와서 투쟁을 했다. LA, 시카고, 뉴욕의 추기경과 주교 그리고 신부들이 남미계 불법체류 신분의 이민자들을 추방에서 보호하려고 거리에 몰려 나왔다.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서 한인교회 목사님들이 들고 나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가 아니다. 신분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한인들이 아직도 적은 숫자가 아니고 빈곤과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에 시달리는 한인들이 아직 많다. 교회들간 경쟁적으로 펼치는 중남미, 중국, 중동으로의 단기선교 만큼이나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사람들을 돌보는 문제도 중요한 선교다. 어쩌면 후러싱제일교회가 위치한 이 후러싱이 한인 이민자들의 땅끝이다.
후러싱 한복판에서 40년을 견뎌온(?) 후러싱제일교회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왜 여기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 답을 우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40년동안 한인커뮤니티의 한복판에 교회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정직하게 회개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선의 회복은 교회창립에 나섰던 믿음의 선배들의 당시의 결단과 목표에 진지하게 오늘날의 교회모습을 투영해 봐야 할 일이다. 뉴욕도시권의 한인사회가, 또한 후러싱 권역의 수많은 소수계 이민자들이 "여기에 왜 교회가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가?"란 질문에 답하는 일로 또 다른 40년을 시작해야 할 일이다.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한인교회들의 분규에 대해서 후러싱제일교회가 그 돌파구를 만들어 내야 할 일이다.
사회적 소수자, 경제적 약자, 정치적 소외자를 돌보고 보호하는 일에 나서지 않고서는 후러싱 한복판에 이 교회가 있어야 할 답이 없음을 잘 이해해야 할 일이다. 후러싱제일교회가 이민소수계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어쩌면 200만 이상이 출석하는 전 미주지역 한인이민교회의 갱신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와같은 위험스러운 절망이 도사리고 있다. 수많은 한인교회들의 모범을 기필코 만들어 내야 할 일이다. "한인 기독교인들은 모범시민이다"라는 등식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이다. 흑인교회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힘차게 나섰던 것이 바로 1950년대 중반부터 들불같이 일어난 흑인 민권운동이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다양한 이민 소수계들이 후러싱제일교회를 바라 보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그러한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을 기대해본다. 후러싱제일교회의 커뮤니티 참여, 사회참여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사명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주제발표하는 김동석 상임이사(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상임이사는 후러싱제일교회가 40주년을 맞이하여 내부적만이 아니라 외부적인 소리를 들으며 다음 40주년을 준비하는 모습을 높이 샀다. 한인교회들 특히 여력이 있는 대형교회들은 커뮤니티를 섬기는데도 대형이 되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이사는 지난 6월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성경공부하던 9명이 백인 청년에 의해 총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저는 왜 한인교회들이 이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대동강에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후 초기 복음을 받아들이고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조만식 장로와 함께 당회원이었던 할아버지, 작은 시골의 장로였지만 아들이 군대에서 순직한 후 나온 모든 돈을 교회당을 짓는데 다 사용한 아버지 등 개인적인 간증을 했다. 특히 2007년 미의회에서 일본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과정에서 큰 위협을 받았지만 중보기도팀의 도움을 받으며 역사를 이루어내고 개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간증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서신을 읽으면 플러싱 지역이 고린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시대적인 사명을 느낀다며, 2015년판 고린도전서를 써 나갔다. 다음은 주제발표 내용이다.
한인커뮤니티와 교회
(후러싱제일교회와 후러싱한인사회)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의 역사가 115년이다. 이것은 하와이에 한인이 첫발을 내 디딘 때로 부터의 역사를 말하는 년도이고 본격적인 한인이민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이다. LA와 뉴욕, 시카고 같은 대도시내 한인커뮤니티가 이때부터 형성되었다. 그래서 뉴욕지역의 한인사회, 그 커뮤니티의 역사는 그래서 이제 막 40년을 넘기고 있다.
1965년 이민법의 제정으로 아시안들의 합법적 이민의 문호가 열리면서 한인들의 미국으로의 이주가 시작되고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서 1980년대 중반에 뉴욕의 한인사회가 가장 크게 확대 되었다. 맨하탄과 퀸즈의 후러싱을 연결하는 7번 전철은 당시 한인들의 출퇴근 전용 전동차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였다. 자영업 보다는 일용직 노동자의 숫자가 훨씬 많을 때 였다. 생활이 아니고 생존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후러싱에 한인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그 한가운데에 설립된 교회가 후러싱제일교회이다. 일제강점기 때에 세워진 맨하탄의 뉴욕한인교회의 선교과제가 조국독립운동이었다면 한인커뮤니티의 형성과 동시에 설립된 후러싱제일교회의 그것은 한인들의 삶의 정착을 돕는 일이었다. 맨하탄 교회의 몇몇의 성도들이 후러싱으로 와서 교회를 설립개척한 설립배경을 봐도 후러싱제일교회의 개척정신은 철저하게 한인 커뮤니티에 그 기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케네디 공항을 통해서 입국한 한인 이민자들은 누구든지 곧바로 후러싱으로 왔다. 인연에 작은 끈만 있어도 찾아 들어가 그 집에 이민가방을 맡기고서 3-4명의 식구들이 ‘버드나무집’에서 설렁탕을 ‘김삿갓’에서 김치찌개로 요기를 하고 ‘구화식품’에서 쌀 한 봉지와 김치 한병을 샀다. 그리고 도착 이튿날 누구든지 반드시 찾아가는 곳이 후러싱제일교회였다. 교회를 통해서 아파트 구하기, 운전면허증 따기, 직장 구하기, 자녀들 학교에 입학시키기 등등을 시작했다.
교회역할의 100%가 한인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일 이었고, 초기 이민자들의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고 보듬는 일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내용의 중심이 되었다. 교우들의 가정생활 전체를 파악하고 보살피는 일이 교역자들의 임무였다. 당시, 후러싱제일교회를 필두로 한인들의 밀집지역 곳곳에 한인교회들이 생겨났는데 교회설립의 배경이 다 이와 같았다.
후러싱제일교회가 교회 창립 40년을 맞이했다. 후러싱의 한인커뮤니티가 이만큼 성장해 온 그 배경엔 후러싱제일교회가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인 커뮤니티의 한 가운데에서 한인사회를 지켜온 교회가 이제 그 역할과 방향(선교의 내용)을 재 점검하고 또 다른 40년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교회의 커뮤니티에 대한 책임
교회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제사) 드리는 곳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이 중심이어야 하고 또한 그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사역)를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늘 평가(회개와 회복)받아야 한다.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룩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그래서 사회(커뮤니티)의 중심이 교회이어야 하고 또한 교회사명의 중심에는 늘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이 위치해야 한다.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또한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는 현장과 현실에 위치해야 함을 설명한다.
지난 40여년 동안 후러싱을 중심으로 하는 뉴욕도시권내 한인사회는 그야말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민사회 구성원들이 달라졌고 이민자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사회 환경이 또한 달라졌다. 유아기나 아동기에 부모의 손에 이끌리어 이민자가 된 세대가 한인커뮤니티의 주역이 되었다. 지금 한인사회의 40대 중반이 그렇다. 소위 1.5세다. 미국의 교육시스템에 의해서 교육을 받은 세대다. 이들의 가치관이나 삶의 환경은 이민 초창기인 40여 년 전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이민 초장기에는 교인들의 요구(Demand)가 정착이었으면 지금은 시민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의 적응이다. 교회가 정착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서 지금 교회는 바른 시민으로의 적응을 위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돌아보고 점검해 보야야 할 것이다.
후러싱제일교회의 또 다른 40년에는...
후러싱제일교회는 후러싱의 한인 이민사회를 책임져야 한다. 이것은 교회 설립당시부터 그러한 역할을 해 왔기도 하다. 지금 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검토해 봐야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후러싱의 한인사회가 일반 시민사회의 당당한 한 부분이 되어야 하고 또한 후러싱이란 다인종 지역을 이끌어 가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다양한 인종의 생업과 주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지역이 후러싱이다.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후러싱 지역을 한인사회가 리드해 나가는 일은 어려운 이민 정착을 완성해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한인이 모범시민이 되는 일을 한인 교회가 책임질 일이다. 한인들끼리만 일상을 유지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타인종, 타민족과 어울리고 협력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를 한인교회가 만들어 내야 할 일이다. 또 다른 40년을 향하는 후러싱제일교회의 지역사회에서의 역할과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후러싱 지역의 한인들에게 모범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역할이다.
지역사회의 참여이다. 이제까지 한인사회내의 한인단체들끼리만 관계하고 소통했다면 이제부터는 교회내에 다양한 인종들이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교회가 그 중심에 서야 할 일이다. 한인들이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일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점적이고 핵심적인 일이 정치참여이다. 미국서 소수계들의 정치참여는 정치의 문제에 앞서서 생존의 문제이다. 동시에 소수계의 정치참여는 모범시민으로 인정되는 가장 바르고 빠른 길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선교 "교육과 참여"
(지역사회의 빈곤, 인권, 평화)
한인사회의 약점은 일반 시민사회로의 참여부족이다. 한인들끼리 만의 일상은 결집이 아니고 고립이다. 1992년 LA의 4.29폭동은 타민족이나 이웃 커뮤니티로부터 고립된 한인사회의 약점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위험스러운 것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례다. 커뮤니티의 이러한 문제는 교회가 앞장서서 풀어내야 할 과제다.
9.11테러 이후인 2000년대 중반의 미국 사회분위기는 극도의 반 이민분위기였다. 서류미비자들을 불법체류자라 명명하면서 운전면허증 발급을 정지시켰다. 소위 ‘Real ID Act'(리얼 아이디법안)라는 신분증을 도입시켜서 불법체류자를 색출해서 추방하는 광풍이 불었다. 주로 남미계 이민자들이 이에 해당되었다.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인 남미계들의 추방을 막으려고 성당의 신부들이 거리로 나와서 투쟁을 했다. LA, 시카고, 뉴욕의 추기경과 주교 그리고 신부들이 남미계 불법체류 신분의 이민자들을 추방에서 보호하려고 거리에 몰려 나왔다.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서 한인교회 목사님들이 들고 나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가 아니다. 신분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한인들이 아직도 적은 숫자가 아니고 빈곤과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에 시달리는 한인들이 아직 많다. 교회들간 경쟁적으로 펼치는 중남미, 중국, 중동으로의 단기선교 만큼이나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사람들을 돌보는 문제도 중요한 선교다. 어쩌면 후러싱제일교회가 위치한 이 후러싱이 한인 이민자들의 땅끝이다.
후러싱 한복판에서 40년을 견뎌온(?) 후러싱제일교회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왜 여기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 답을 우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40년동안 한인커뮤니티의 한복판에 교회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정직하게 회개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선의 회복은 교회창립에 나섰던 믿음의 선배들의 당시의 결단과 목표에 진지하게 오늘날의 교회모습을 투영해 봐야 할 일이다. 뉴욕도시권의 한인사회가, 또한 후러싱 권역의 수많은 소수계 이민자들이 "여기에 왜 교회가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가?"란 질문에 답하는 일로 또 다른 40년을 시작해야 할 일이다.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한인교회들의 분규에 대해서 후러싱제일교회가 그 돌파구를 만들어 내야 할 일이다.
사회적 소수자, 경제적 약자, 정치적 소외자를 돌보고 보호하는 일에 나서지 않고서는 후러싱 한복판에 이 교회가 있어야 할 답이 없음을 잘 이해해야 할 일이다. 후러싱제일교회가 이민소수계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어쩌면 200만 이상이 출석하는 전 미주지역 한인이민교회의 갱신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와같은 위험스러운 절망이 도사리고 있다. 수많은 한인교회들의 모범을 기필코 만들어 내야 할 일이다. "한인 기독교인들은 모범시민이다"라는 등식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이다. 흑인교회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힘차게 나섰던 것이 바로 1950년대 중반부터 들불같이 일어난 흑인 민권운동이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다양한 이민 소수계들이 후러싱제일교회를 바라 보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그러한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을 기대해본다. 후러싱제일교회의 커뮤니티 참여, 사회참여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사명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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