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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냄새와 그리스도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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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20-02-1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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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서 배운 가장 기억에 남는 중요한 테마 중 ‘Class Crystalization’ 즉 ‘계급 결정화’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결정화’라는 뜻은 결정을 생성하는 과정 즉, 기체 혹은 액체의 물질을 냉각하여 고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1988년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기점으로 계급이 굳어져 더 이상 신분상승이나 계층 간 이동이 제한되었고, 미국은 이미 1960년대 이전부터 흑인들은 백인마을에 기웃거리거나 백인 빌리지 근처를 얼씬거릴 수조차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은 88올림픽 이전만 해도 정주영 회장이나 시골농부나 달동네 잡역부나 막걸리 마시고, 마신 후의 술주정하는 모습까지 흡사했지만, 88올림픽 이후에는 철저히 계급사회가 되어 계층간 이동이 급 단절, 어려워졌다는 이론이었습니다. 무척 흥미진진하나 참으로 웃픈 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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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10일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가 연일 화제의 중심입니다. 정말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기쁜 일입니다. 특히 아카데미 영화 수상의 문화적 파급력은 마치 월드컵 우승에 버금가는 일로써, 대한민국의 국격, 국력은 물론 기술력과 창의력 등 세계 속에서 코리아의 브랜드를 업그레이드 한 크나큰 경사입니다. 

 

오늘의 관점은 그가 좌파니 우파니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가 정의당 당원이었고 반미주의자였던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영화 아카데미 등 좌파문화 카르텔의 지지 속에 성장했던 과거도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던 그가 전향을 한 것인지(?) 미국기업 넷플릭스에서 600억의 투자를 받아 ‘옥자’를 제작하는 이중성을 보였던 것도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영화를 통해 뉴욕타임스에서 한국의 ‘조국 사태’를 다시 조명(학력위조 장면 등장)하게 되었고, 한국의 반지하 주거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심지어 ‘짜파구리’ 라는 농심 라면도 덩달아 덕을 보고 있으니... 문화의 힘은 정말 놀랍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주목해야 할 시선 즉, 그의 무서운 전체주의 가치관입니다. 언제나 일관되게 막시즘의 가치관을 세련되고 탁월하게 대변하는데 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제가 어렸을 때 영화를 공부하면서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라며, 그 말을 한 영화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를 언급했던 바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것은 실로 공감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개인적인 것의 ‘개인’을 거대한 산업사회의 작은 톱니바퀴 중 일부로 인식합니다. 영혼은 물론 없고 자유의지는 물론 화석화된, 그의 영화 제목처럼 인류의 99% 인생들을 <기생충>으로 인식합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오직 “지배자와 기생충” 두 부류만 있을 뿐입니다. 

 

<설국열차>, <옥자> 그 이전에 <괴물> 이라는 영화에서 일관되게 모두 그의 메시지는 계급이었고, 구원이었으며, 그 결말은 언제나 “가혹한 극소수 지배자와 태생부터 악취가 나는 기생충”의 적대적 모순관계와 화해할 수 없는 원초적 대립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결국 그는 인간과 기생충의 동거와 동락을 그동안 누구도 들이대지 못한 앵글과 누구도 상상치 못한 화법으로 버무려버린, 타고난 거짓말쟁이일 뿐입니다. 

 

봉 감독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빛과 어둠’의 세상이 아닙니다. ‘어둠 VS 어둠’의 세상일 뿐입니다. 다만 1%의 어둠은 배부르고 고상한 어둠이 들이고, 99%의 어둠이 들은 배고프고 찌질한 어둠들일 뿐입니다. 

 

<기생충>의 첫 제목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대칭을 이룬다는 의미의 ‘데칼코마니’였다고 합니다. 하류층들은 세상의 온갖 더러움이 떠내려 오는 낮은 곳에서 살아갑니다. 상류층들이 넓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텐트를 치고 쏟아지는 폭우를 유희로 즐길 때, 그 폭우는 하류층들의 터전을 범람하고 일상을 파괴하는 고통으로 묘사됩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부자 동네에서 가난한 동네로 흘러 내려가며, 이를 따라 도망치듯 터전으로 돌아가는 <기생충>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건, 민망함을 넘어 마치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강요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중산층은 부자들을 위해서 노동을 제공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하류층은 부자들의 음식을 몰래 훔쳐 먹으며 살아갑니다. 집 주인을 위해 만들어진 그 룰에 따라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룰의 틈새에 숨어서 음습한 ‘바퀴벌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의 시선은, 모든 개개인은 사회에 종속되어 살아간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생충>에서는 하층민 가족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 몸에서 나는 지하실의, 하류인생의 ‘냄새’를 지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냄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하철 냄새, 책방 냄새, 노인네 냄새, 특히 반지하 냄새..! 하지만 육의 냄새와 거죽의 냄새는 얼마든지 치장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그저 그 순간과 상황의 냄새일 뿐입니다. 이 땅에서의 신분이라는 이름값에 걸 맞는 돈 냄새일 뿐입니다. 

 

흥미롭게도 냄새는, 인간의 후각이라는 것은 영혼과 직결됩니다. 냄새는 영과 가장 잘 통하는 코드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집 아이가 부잣집 안방에 들어갈 때 수치를 느끼는 영화나 소설 속 장면에 우리는 크게 공감합니다. 향수산업이 발달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와 생명에 이르는 냄새..! 이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4-16)” 

 

성도는 빛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개인들입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고유하게 알아가며 이 땅을 선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고 찬양하며, 이 땅과 저 하늘을 복음으로 통일하는 이들입니다. 

 

생명을 열매로 거두며 전진할 수 있는 기회가, 그 빛의 창이 열린 기회가 있다고 믿고 오늘도 주어진 달란트를 통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계급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합니다. 내게 주어진 계급과 계층을 벗어날 수 없고, 평생을 주어진 이 신분에 따라 살아가야한다는 시각은 편협함을 넘어 무척 위험한 적 그리스도적 시각입니다. 

 

본래부터 지울 수 없는 영원한 반지하방 ‘냄새’ 따위는 기독교인의 세계관 속에는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넘을 수 없는 선과 경계의 빗장들과 오를 수 없는 계단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단 하나 그 선을 넘는 것이 있습니다. 냄새입니다. 다송은 기택 가족에게서 모두 똑같은 냄새를 맡습니다. 지울 수 없는 반지하 냄새입니다. 냄새는 공간에서 비롯됩니다. 영화에서 공간은 계층을 상징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의의 향기, 믿음의 향기, 원초적인 그리스도의 신부의 향기”를 낼 줄 알아야 하고 맡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내면의 향기는 한갓 훅 불면 날아갈 육체의 냄새를 다 지울 수 있습니다. 

 

봉 감독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뒤 유일하게 영어로 말한 “오늘 밤, 술 마실 준비가 됐다(I'm ready to drink tonight)”라는 마지막 한 마디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의 윗트 어린 수상소감과 관중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언변은 글로벌 상류사회에 참으로 기특한 동양인 천재감독으로 기억될 것이지만 말입니다. 

 

성도들은 그런 영광스런 자리를 빌어 “오늘 밤,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밤을 새워 새벽이 맞도록 주를 노래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멋지게 고백할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크리스천 영화인과 작가들과 문화인들이 나오길 중보드립니다.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27-28)” 

 

전체주의의 독재자는 아비의 영으로 대치되어야 하고, 계급주의 가치관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경제가 풀어져야 할 시즌에 와 있고, 교회와 공동체는 나눔과 섬김으로 네오 막시즘을 꺾어내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의 허무주의와 집단 우울증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전제주의 배급시스템과 공산주의 거짓경제로 끊임없이 우리의 불신의 귀와 의심의 눈을 침탈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미디어와 원래부터 존재치 않는 관념철학을 통해 거짓메시아를 앞세우려고 합니다. 

 

깨어 기도하며 분별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미디어의 전쟁과 거짓과의 전쟁이 매일 일상 속 진행되고 있음을 성도는 경계하고 대적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할렐루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시록 5:6-8)”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을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21:17) 

 

성도의 생활은 배우는 생활임과 동시에 싸우는 생활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생활임과 동시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커져가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기독교는 철저한 생활종교요 생활영성입니다. 삶과 분리된 모든 종교와 획을 긋는 리얼 라이프 영성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4:7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선한 싸움을 날마다 그리고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다윗이 가나안 땅에 신정국가를 건설하는데 가나안 땅에 공존할 수 없는 무리들인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임으로 나라는 튼튼해지고 하나님의 목적인 이스라엘의 가나안 거주는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이 시대에도 블레셋의 거인들과 마주해야 합니다. 오늘 등장하는 다윗의 용사들처럼 악한 사단의 군대를 이기고 구원과 축복과 성화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용사로 싸울 때, 승리는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선한 싸움을 할 때 하나님은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용기 충천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적진에 들어가 적진의 대장과 붙어 적진의 큰 장 수를 죽이는 자, 바로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등장하는 다윗의 장수처럼 17절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외치며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차지하며, 용기가 있는 용사가 되어야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여호수아나 갈렙처럼 용기 있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는 두려움은 금물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모시는 전쟁, 예수님과 동행하는 생활, 천국을 마음에 이루는 삶, 예수님을 닮는 성화와 영화의 전쟁,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내는 전쟁, 성령의 열매를 맺는 전쟁, 예수와 십자가만 증거 하는 전쟁을 매일매일 하여야 합니다. 할렐루야!! 

 

세상의 즐거움을 죽이고 성령의 기쁨으로, 세상의 자랑을 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내 스펙을 버리고 예수라는 이름의 능력으로,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십자가의 지혜로, 인간의 능력을 멸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즉 나의 자신감이 아닌 하나님의 자존감으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김철현 집사(아리랑컵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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