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목사 은퇴소감 “현대우상은 숫자우상, 사랑이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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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ㆍ2018-03-08 09:1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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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예수마을교회 김진호 목사가 65세가 되는 3월 25일(주일)에 20여년 목회를 은퇴한다. 김 목사는 뉴욕에 예배와 중보기도 운동을 하는 ‘다리 놓는 사람들’ 사역을 위해 뉴욕에 온 선교사였으나 파라처치 사역의 어려움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1997년 1월 예수마을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해 왔다.
▲주일예배를 통해 3월 25일 은퇴하는 예수마을교회 김진호 목사
은퇴후 김진호 목사는 한국으로 가 안식년을 가진다. 이후 사역은 확정되어 있지 않지만 북한사역을 하게 될지 아니면 다시 뉴욕에서 ‘다리 놓는 사람들’ 사역을 하게 될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게 된다.
은퇴를 앞두고 김진호 목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광야학교 20년, 목회를 통한 실천광야 20년을 통해 느낀 점을 나누었다. 특히 20여년의 목회를 통해 ‘현대우상은 숫자우상이다’와 ‘사랑이 부흥이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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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진호 목사는 찬양과 경배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70년대 중반에 간사로 섬겼던 예수전도단에서 찬양을 인도하며 한국교회의 경배와 찬양 운동에 첫바람을 불러일으키는데 쓰임을 받았다. 당시 ‘우리에게 향하신’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곡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필리핀 YWAM에서 대학생선교를 개척하면서(1984~88) 가졌던 예배에 많은 질문들을 가지며 한국 교회를 바라보게 되었고, 귀국 후에 예배에 대한 강의 요청에 의해 쓰여진 <숨겨진 보물 예배>는 한국에서 열린 예배학교의 첫 교과서가 되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를 전공한 김진호 목사는 장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전도사로 교목활동 중에 선교의 도전을 받아 총회파송 선교사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대학생 사역을 했다. 그리고 뉴욕으로 와서 YWAM 코너스톤의 전신인 안디옥 커넥션에서 사역을 했고, ‘다리 놓는 사람들(Bridge Builders)' 미국 대표로 사역하던 중 97년 1월 첫 주일에 예수마을 교회를 개척했다. ‘다리 놓는 사람들’은 1997년에 한국의 다드림 선교단을 비롯한 4개의 선교단체와 미국의 Bridge Builders 사역과 연합된 통합선교단체로 그리스도의 몸에 예배를 알리고 예배자를 세우는 일과 그리스도의 몸이 함께 사역할 수 있도록 섬기는 네트워크이다.
2.
작년 말이 다가 올 때 주님은 나에게 굵은 타임라인을 하나 그으셨다. 그것은 65세가 되는 2018년 3월에 목회은퇴를 명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학교 20년, 목회를 통한 실천광야 20년을 통해 저의 마음에 두 가지씩 비에 새겨주셨다. 광야학교에서는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권리포기’였고, 실천광야에서는 ‘현대우상은 숫자우상이다’는 것과 ‘사랑이 부흥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네 가지를 풀어가는 열쇠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주님이 주시는 ‘복’에 있음을 창세기 1장 28절 속에서 보게 하셨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주셨던 복의 실상이 ’성령과 말씀의 기름 부으심’으로 확신케 하셨다. 히브리어의 ‘복(바라크)’에 예배자의 자세인 ‘무릎을 꿇다’는 의미가 있듯이, 성경이 말하는 ‘복(福)’은 ’하나님(示)으로 가득찬(畐) 상태’라는 의미에서 그 의미를 재확인케 하셨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과 말씀으로 기름 부으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복이 되게 하신 이유는 세상의 복을 따라가는 것이 우상이 됨을 말씀하셨다. 지난 봄에는 “예배 리콜(Worship Recall)”이라는 단어를 던져 주시면서 글쓰기를 명하셨다.
이제 임무를 마치고 다시 목회자에서 선교사로 돌아간다. 지경을 넓히시는 주님의 다스림을 앞두고 주님의 손길 안에서 다시 빚어주시는 은혜를 갈망하게 된다. 3월에 은퇴를 하면 4월 말에 한국에서 열리는 'YWAM 뉴 코리아 40일 24시간 예배’에 남북한을 위해 집중 기도하는 한 사람의 중보자로 섬기면서, 주님의 후반전을 위한 영혼육을 정비하는 안식년을 갖게 될 것이다. 이후 혹시 북한을 여셔서 가라고 하시면 가족을 한마음으로 만드셔서 그리하실 줄 믿는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뉴욕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여주셔서 들어왔던 땅이기에 다시 이곳에서 ‘다리 놓는 사람들’ 사역을 시작하게 하시면 이곳에 유럽과 아프리카를 향한 네트워크의 중심지이기에 하고 싶은 마음의 소원은 있다.
3.
마흔에 결혼을 하게 하셨다. 그리고 뉴욕에 선교사로 들어왔다. 뉴욕은 계시록의 ‘사데교회’가 있는 지역과 같은 곳이라 ‘예배 운동과 중보기도 운동’을 두 축으로 ‘미국 다리 놓는 사람들” 사역을 시작했었다. 교회를 섬기는 선교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파라처치의 정체성 안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 사역에 나오는 분들로 인하여 목회자들에게 오해와 불편함이 되고 있음을 듣게 되면서 실망 속에 떨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주님은 “네가 목회를 시작하라”고 체질에도 맞지 않는 사역을 명하셨다. 결국, 명하신 주님이 신기하게도 마음을 돌리시고 비전까지 주시며 달리게 하셨고, 그 순종한 목회가 부흥의 생장점을 터트리는 시점이 왔을 때 성령축제 주일에 아내를 통해 “내가 여기에 모인 이들을 다 흩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이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 욥이 생각났으나 그의 결국을 알기에 그 주권적 다스림을 꾸역꾸역 받아 삼켰다. 사실, 그 당시 다녀간 초청 강사 두 분에 의해도 주님께서 그러한 생각을 하고 계신 것에 대한 힌트를 주셨지만, 주님의 존귀한 그 이유를 보지 못한 것은 영혼을 향한 사랑에 사로잡히지 못하고 비전에 사로잡힌 열심이 특심이 되어 나 자신을 입증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교회의 세속화로 인해 복음마저도 성공을 위해 각색된 복음의 현주소 바이러스가 바로 비전 안에 숨겨져 있음을 주님의 시각으로 보기를 원하셨음을 조금씩 보게 하셨다. 바로 그 주님은 십자가의 빼기(-)가 없이는 부활의 더하기(+)가 없음을,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정욕과 탐심이 죽는 것이 믿음의 주요 원리임을 알게 하셨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가치)으로 주님의 마음(뜻)을 따라 다윗처럼 달려갈 때만이 복음이신 주님이 이 땅에서 보이신 은혜와 진리의 방정식임을 보게 하셨다.
바로 그 주님 안에 계신 영존하신 하나님께서(사9:6) 타락하기 이전에 아담에게 주신 복의 실상이 “성령과 말씀의 기름 부으심” 임을 창세기 1장 28절을 통해서 보게 하시면서, 교회의 세속화의 독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집어 주셨다. 타임라인을 통해서 저의 삶을 다스리신 주님께서 개인광야학교 20년을 졸업하는 날 “졸업(Commencement)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 않느냐?”고 하셨던 말씀이 바로 목회로 밀어 넣으신 주님이 시작하신 실재 광야과정 20년이었음을 알게 하셨다.
알고 보니 실재 광야였던 예수마을 교회는 현대 교회를 들여다보게 하신 실험실이었다. 주님은 먼저 조수 역할을 하는 저를 실험 대상 삼으시고 쓰레기 같은 자존심이 주 안에 자존감으로 세워지도록 깨뜨리시는 에누리 없으신 사랑은 동굴이 터널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이었다. 그래서 저에게 ‘예수마을 교회에 몸을 이루어 왔던 모든 이들’은 평생 빚진 자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빚을 갚아야 할 아름다운 형제자매들로 제 안에 있게 하실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이렇게 고백하게 하신다. “주님의 실험실에서 조수의 역할을 하면서 주님은 나에게 ‘깨달음의 영성’에서 ‘깨어짐의 영성’으로 변환시키는 길을 보여주셨다. 예배자의 기본이 바로 그 길 안에 있음도 알게 하셨다. 그리고 때가 찾을 때 목회자에서 선교사로 다시 부르셔서 ‘예수님의 후반전 운동’을 시작하는 ‘세상을 향한 다리놓는 사람’이 되라는 메세지를 주셨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아버지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던 아들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듯이, 이제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육신 속에 요엘 선지자의 예언처럼 성령님을 부으셔서 바로 그 힘과 성품을 힘입어 ‘예수님의 후반전’을 살아가야만 한다. 복음교리가 아닌 복음진리 안에서 일어나 빛을 발하여야 한다.”
4.
지난 목회의 총결산은 ‘사랑이 부흥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려고 할 때에 사랑이 가장 힘든 것임을 알았다. 누군가 사랑은 노동이라고 했다지만 참으로 힘들었다. 이때, 사랑이 위선을 낳을 수 있음을 알았다. 나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죽어야 성령의 사랑이 부활의 생명력으로 일어나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게 하심을 알았다. 바로 그분께서 내 안에 충만해질 때 나의 눈이 바뀌는 것을 알았다. 위선된 모조품과 같은 사랑에 생명의 기운이 올라왔다.
바로 그 사랑이 생명을 얻고 풍성케 함을 알았다. 원래 인생의 뇌 안에는 사랑의 채널이 없다는 것을 논문을 통해 알았다. 증오의 채널을 빌려서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인생은 사랑할 수 없는 장애인임을 알았다. 이러한 장애 인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이 이 사랑 채널을 복원하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이 죽으신 순종의 틀 십자가! 바로 그 십자가에 인생의 정욕과 탐심을 못 박으신 주님의 십자가! 이젠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되었다.
예수마을 실험실은 나를 변화시킨 존귀한 곳이다. 이 실험실의 무대에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위한 드려진 제물들이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서 쓰임 받은 복덩이들이었다. 내가 얻은 진정한 사랑의 총결산은 생존을 위한 서바이블 게임이 아니라 리바이블 시키는 거룩한 사랑임을 나의 후반전을 위해 배웠다. 그래서 나는 예수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진 예수님의 후반전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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