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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목사 “대면과 비대면 목회의 개혁주의적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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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20-08-20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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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뉴욕노회는 8월 17일 퀸즈장로교회에서 1일 수양회를 열었다. 수양회에서 이윤석 목사(부르클린제일교회)는 "대면과 비대면 목회의 개혁주의적 입장" 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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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과 비대면 목회의 개혁주의적 입장

(Contact & Non-Contact Ministry in the Reformed Perspective)

 

  

역대상 12장 32절은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은 아는 우두머리가 200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라고 말씀한다. 시세를 안다는 말은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과 통찰력을 의미한다. 리더는 마땅히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지혜가 있어 사람들에게 조언해주는 자이다. 그들은 결코 다수의 대중을 따라 몰려가는 우매한 무리가 아니라, 시대의 영적 타락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선민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자들로서, 미리 알고 반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목회자는 이에 대해 현대사회를 알아야 한다. 개혁주의의 리더들은 오른 손에 들려있는 성경으로 신문과 인터넷의 매스컴으로 이루어져 가는 사회와 문화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발제자는 우리 개혁신앙을 가진 개혁주의 지도자들로서 우리가 이 시대를 알아야 마땅히 행할 것을 말할 수 있기에, 먼저 이 시대에 대해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접근하며 조명하고자 한다.

 

I. 시대를 알자: 지금 이 시대는 어떻게 시대로 흘러가는가?

 

1. 리더인 당신은 지금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잇사갈 자손인가?

 

Post-corona와 With-Corona로 진행은 지금의 현실로 올바로 파악하고 있는가? 과거의 역사적 교훈들이 있지만, 지금의 팬데믹 현상은 과거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는가? 이런 지구촌이 대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사회학과 인류학과 역사학의 교훈에 대해 지각하고 있는가? 그들이 말하듯 BC(Before Corona or crisis )와 AC(After corona or crisis)의 문화와 삶은 과연 어떻게 바뀔 것인가?

 

1) 지금의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럽게 피할 수 없는 전면적인 변화를 알고 있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변화를 살피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변화를 살피는 시선에 가장 약했던 단체가 과연 어디일까? 우리가 한국인이기에 우선 한국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팬데믹 기간의 교회가 왜 특별하게 비판을 받고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중의 하나 중요한 원인은 변화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팬데믹 현상이 발생한지 반년(약 5개월)이 지나며, 지금도 여전히 팬데믹 상태이지만, Post-Corona 시대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시대는 With-corona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는 이런 모든 상황과 함께 인접하여 살아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변화 앞에 우리는 잠자코 있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이런 사회 현상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소위 리더라는 이들은 누군가의 막연한 해석을 기다려야 할 때가 아니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이런 현상이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목회에 적용해야할지 고민해야하며 그것이 임시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기다리는 대중들에게 기준과 해석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기력한 지도자라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이 팬데믹에 대해 해석되고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며 대중적인 의견이 성립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며, 그렇게 한다면 그는 진정한 리더가 아닐 수 있다. Covid pandemic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사회 과학자들은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라는 것을 주장한다. 리더라면 이런 변화의 시대를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좋은 것만 붙잡기에는 시대가 너무도 변하고 있다. 

 

2) 리더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서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현 시대를 보면서 리더들이 질문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이 변했는가?” “무엇이 변하고 있는가?” “무엇이 변할 것인가?” 또한 더 중요한 질문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년도 안 되는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처음 들어본 말들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대면 목회’ ‘비대면 목회’ ‘현장 예배’라는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생소한 단어도 아니다. 예배는 그대로 있는데 방식이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리더들이 이런  변화의 흐름과 과정과 경로를 잘 살핀다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현재의 장소에서 리더들은 철저히 세계적인 안목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여기서 인식하고 지향해야 할 것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특별한 지역적 대안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에 대한 100% 해결의 대안이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의 문제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론의 세계에서만 가능하지, 실제로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특히 영적 리더인 목회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목회에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목회 리더들은 금년 안에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진정된다는 면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고, 이것이 통제되지 않고 가속화 될 수 있는 경우, 혹은 그 중간가 될 수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여러 가지 기반과 전제 안에서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반 자체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시세에 익숙한 지혜로운 리더들은 이런 경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게 될 것이다. 목회의 상황도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데 있어서, 예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의지했던 하나의 도구만 들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잇사갈의 200명 리더와 다른,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3) 변화하는 경로를 보자. 그 경로에는 사건과 사물과 사람과 사회이다.

먼저 어떤 사건이 생길 때, 리더들은 사건의 발생과 흐름과 과정에 대한 현시대의 흐름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의 중심과 저변에서 활동하는 특정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팬데믹의 초반에 한국의 방역은 세계적으로 한류를 이끌어낼만큼, 가장 지혜로운 방역관리로 세계의 칭찬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진정하는 배후에는 질병관리 본부(CDC)라는 기관이 있었고 거기에 본부장이 있었다. 그 기관과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 본부장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였기 때문에 드러난 것 뿐이다. 또한 그 사람들과 기관이 팬데믹에 대해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에 이런 응급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에 준비하고 실험하며 예상했던 그대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잘 대응하고 있다. 사회는 이제 마스크와 관계없었던 사람들이 모두 다 마스크를 쓰게 되었고 거리를 유지하며 손을 씻고 호흡과 발성까지도 조심스러운 사회가 되었다. 이제 리더들은 또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회 현장에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가? 교회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이럴 때 누가 잘 쓰임 받는가? 그래서 목회에 어떤 결과가 어떻게 되고 있는가?

 

4) 이제 신조어에 익숙한 사회, 신조어가 공식화된 사회로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저는 이것을 Physical distance로 명명한다)라는 공식화된 신조어와 더불어, 이제 자가 격리, 방역, 해외 유입, 재택근무, 손 씻기, Drive Thru, 검역 등과 같은 용어들이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팬데믹을 통하여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하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개인과 사회 공동체. 개별국가와 국제사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이런 구분들과 함께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반년 동안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예를 들어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해 제한된 시간만 스마트 폰이나 온라인을 사용하도록 규제해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많이 사용해야 할 것을 장려하는 형편이 되었고 사회는 스마트 폰을 더욱 보급하고 있다. 반년 전만해도 학 부모들은 자녀들의 게임중독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원격 교육을 위해 인터넷의 온라인이 필수가 되었다. 교회도 부득불 건물사용을 폐쇄할 때, 만일 온라인으로 모일 수 없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터넷과 온라인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비판의 객체가 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목회자가 온라인을 사용하고 있으며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오히려 이 대체적인 수단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목회자들은 목회적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를 걱정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리더들은 지금까지 작년의 방식으로 유지하고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런 방법도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누구에게나 있는 사각지대 영역들(blind sections)이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이제 리더는 새롭게 배우고 개발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잇사갈 지파의 200명에도 들지 못하는 진부한 사람으로 남게 된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리더들이 진부한 리더로 낙후될 상황에 처해있다. 리더인 우리는 코로나 이전 사람인가? 코로나 이후의 사람인가? 물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5) 직장과 기업과 사업체들은 지금 변화의 상황을 인식하고 신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생존과 삶의 지속을 위해 의식주는 그대로이지만,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입장에 처해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대면하는 기업과 사업이 비대면 사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옛날 방식이 좋다고 그대로 고수하려고 한다면 그런 기업과 회사들은 존재 자체가 없어질 수 있는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만일 옛 방식만을 여전히 주장하는 리더들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과 타자에 의해 스스로를 외면하는 고립상태를 면치 못하게 될 수도 있다.

 

6) 지난 반년 동안 사회학자들 그 변화를 어떻게 숙지하고 있는가? 

그들의 관점의 변화를 살펴보자(Perspective Change)

첫째는 생태학적 관점으로 문명의 성찰이라고 표현할 만한 것이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과거에는 동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지금처럼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가? 이는 사람들이 환경을 스스로 파괴해 왔기 때문이다. 보호하고 상생해야 할 생태환경에 대해 파괴하려고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과 근래에 인간의 살아온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일어나고 있다.

둘째는 정치학적 관점으로서 국가의 귀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 국가의 권리와 지배력과 크기가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었고, 무엇보다 사회는 정부의 역할을 싫어하고 견제했었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정부를 의지하며 착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셋째는 경제학적 관점으로 케인주의 경제의(Keynesian economics)의 복권이다. 이전까지 많은 시간동안 경제의 핵심을 장악하는 것이 시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장경제 중심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나 역할을 매우 싫어했는데,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정부를 의존하고 보호받고 감독을 받는 입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넷째는 사회학적 관점으로서 비대면(non-contact)의 사회의 도래이다. 다양한 부분에서 대면하는 서비스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우리 주위의 사업, 기업, 회사들이 점점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다섯째, 국제정치적 관점으로 탈 세계화의 촉진이다. 이것은 국가주의가 발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목회자와 리더들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를 정확하게 깊숙하게 알아야 한다. 지금은 글로벌 위험사회에 빠졌다. 네크워크 사회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헤게모니(Hegemony)의 부재의 시대로 대신에 포퓰리즘(Populism)이 그것을 장악하고 있다. 팬데믹의 대처에 대하여 지도자를 신속히 대처해야만 그 인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 매우 작은 부분에 집중하지 못했던 미국이나 일본의 리더는 계속 비판을 받고 있다.

다섯째, 지금 당장은 정상적인 가정이 다수이지만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이 1인 가족시대로 가고 있다

이제 목회자들이나 리더들이 만나야 할 사람들은 정상적인 부부들이라기보다 나 홀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주의에 깊이 빠진 사람이 그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대는 이제 1인 가구, 이혼 별거, 노인 독신가구가 늘어가고 있다. 리더나 목회자들이 돌볼 사람들에 대한 모델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와있다. 고립되어진 상태에서 이제는 동기나 고향과 같은 매개체가 다시는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간다. 이에 대하여 교회가 사역의 형식적인 틀을 바꾸지 않으면 엉뚱한 모델을 쓰게 될 것이다. 팬데믹 이후에 이런 문제는 더욱 노출될 것이다. 이런 자들을 대면하는 목회방식도 점점 변화될 것이다.

 

7) 당신은 이중적인 새로운 표준(New-normal) 시대의 변화를 숙지하고 있는가?

새로운 지구적 경제 질서는 어떻게 급변하는가? 또한 상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가? 모든 방면에 불확실성이 밀려오는 것을 아는가? 경제에 있어서 위협의 뉴노멀이 다가오는 것을 체감하는가?  이 중에서도 경제적 불확실성 때문에 교회 공동체의 상황은 또 어찌될까? 이런 가운데 목회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모든 것이 안정되지 않는 변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회는 재정적인 문제가 안정되고 그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팬데믹이 계속된다면 이 때문에 모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현상에 대한 원리와 대처와 표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런 고민과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리더나 목회자는 긍정적 부정적 변화와 미래에 대해 그 두 가지를 미리 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리더 자신이 생각했던 오직 한 가지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고 그렇게 되도록 환경이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중적 뉴노멀 시대의 키워드를 우리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우리 주위 환경에 있어 경제적인 불확실성과 국가와 사회의 극단적인 저성장, 또한 위험의 고비와 시간성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있다. 또한 안목을 넓혀보면 지구적 사회변동과 새로운 지구적 질서와 4차 산업 혁명(정보 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에 대한 이슈가 계속 제기될 것이다. 

 

8) 다시 강조한다면, 지금 우리는 지금 비대면(non-contact) 사회를 가고 있음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제 매스컴은 모두 다 비대면 서비스,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연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중첩 공간에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조명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바라보아야만 일했던 기업과 사회는 부적응의 상태가 될 것이며 이제는 그 방식을 바꿀 것이다. 건물은 필요하지만, 더 이상 큰 건물이 중요한 사회가 아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면하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원격과 비대면, 재택근무로도 활발하게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기업들도 기계적인 과거의 근무상황보다 소수의 사람들과 더 깊게 교제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장점도 진술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중들은 누구를 신뢰할까? 과연 어떤 단체가 신뢰받을 수 있는 단체가 될까? 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받고 있는가?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며, 동일한 통계를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설문조사에서의 한국교회를 보자. 이런 뉴노멀의 비대면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잇사갈 자손이 아닌 것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질병관리 본부나 의료인이나 이런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플러스 75점이라면, 종교기관이나 언론의 신뢰도는 마이너스 45점이라고 한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받아야 할 신뢰도가 이렇게도 낮다면 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한 시점이 되고 있다. 

 

2. 이런 모든 변화에 대해 어떤 부분을 더욱 성찰해야 할 것인가?

 

우리 목회자와 교회는 이런 이중적 뉴노멀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그리스도의 신부다. 신약의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세기에 모였던 교회 안에는 언어와 습관과 전통이 다른 헬라인, 야만인, 유대인이 다 있었다. 다 가족이며,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가족들이다. 여기서 견고한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 때문에 한 가족이 되었다는 진리의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역사적 예수’라고 말할 때, 예수님, 곧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적 한계를 초월해 계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대라는 제한된 땅에 오심으로 우리 인류가 실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분으로, 역사 속에 오셔서 몸으로 실제를 보여주셨던 분이시라는 의미이다. 성경은 사람의 몸에 대한 은유로 교회를 말씀하신다. 교회는 예수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언제나 실제 공간에서 주님의 역할을 하는 믿음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만찬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 이 지역 사회에 있으면서 중요하게 강조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여기 있는 교회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의 통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우리가 사역할 장소와 시간과 환경을 올바론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적인 해답은 단순하다. 그것은 곧 성육신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 교제, 양육, 그리고 전도와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렇게도 좋은 내용을 바꾸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식(옷)을 바꾸어 보자(입자)는 것이다. 개혁주의 리더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론적인 것보다 현실적으로 밀접한 관계적인 부분들에 있어서, 리더들이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육신적인 교회가 될 것인가? 성육신적인 삶을 살 것인가? 이 질문은 항상 개혁주의 성경적인 리더들이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과제이다. 어떻게 해야 이 시대에 그리스도적으로 사는 것인가? 리더 우리만의 생각과 도구와 방편들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더 배우고 더 연구하고 더 개발하고 더 지혜롭게 할 것들이 있다는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대안들을 생각해보자. 리더들의 기존의 방식으로 해도 해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더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모든 리더들이 위험스런 길을 가고 있다. 이런 With Crisis(Corona)와 Post-Crisis(Corona) 시대에 우리 교회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크고 견고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해보고, 우리의 연약함을 내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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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박3일 일정으로 열리던 뉴욕노회 수련회는 올해는 팬데믹과 날씨로 인해 퀸즈장로교회 본당에서 개회예배와 세미나 발제를 하고 오찬은 파킹랏에서, 포럼과 친교는 친교실에서 진행됐다. 오찬 후 이어진 포럼에서는 참석 목회자들의 열띤 질의응답이 이어졌으며 또 푸짐한 상품이 걸린 친교가 사모들과 함께 진행됐다.

 

II. 팬데믹 시대에 개혁주의 목회자

 

1. 개혁주의 목회자에게 드리는 질문과 진단

 

우리는 여기서 다시 우리가 출발했던 리더와 목회와 교회의 길을 위해 여전히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목회자로서 생각해야 본질과 기초로 돌아가 보자.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성경적 목회가 그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가 항상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교회를 이해하고, 성경에서 가르친 원리대로 목회해야 했던 것이 변해야 할 것인가? 종교개혁기와 근대와 포스트 모던 시대와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와 같이 목회적 환경과 상황에 따라 목회자들은 변화된 옷을 입고 그 시대에 부합되게 외쳐야 할 것인가? 이제까지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이해하고, 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목회를 하는 일 자체가 위기에 와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런 때에 개혁주의의 원리에 충실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첫째 당신은 성경을 완전하고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있는가? 둘째, 당신은 주어진 계시의 역사에 충실하면서, 그런 구속의 역사로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는가? 셋째, 당신은 성경에 가장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 주어져 있다고 믿고, 그런 교회를 구현하는 방식도 이미 성경에 주어져 있다고 믿어 실행하고 있는가? 다시 이 질문을 반복해보자. 첫째, 당신은 과연 고전적 복음주의적인가? 아니면 둘째, 개혁파 성경 신학적인가? 혹은 세 번째, 성경적 교회와 목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진 목회자인가?

개혁주의 목회자라고 고백함으로,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란 원리로 믿지만, 적용에 있어서는 충실하게 따르지 않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유주의적이거나 신정통주의적 목회를 실행하는 목회자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실제로 계시의 역사적 이해에 충실하지 않음으로, 단지 복음주의적인 이해(개혁파가 아닌)라고 말하면서, 성경에 따른 교회를 구현하는 방식에 충실하지 않음으로 복음주의적인 것 같으면서도 실천에 있어서는 매우 관용적이고 실질적인 양보와 절충으로 나아가는 목회자일 수 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있는가? 위에서 말하는 개혁주의의 원리에 충실하다는 것은 모든 방면, 특히 팬데믹의 상황과 국면에 처한 목회자에게 적용되어져야 한다.

  지금 목회자들은 이 Covid Pandemic 이후 상황에서도 개혁주의 원칙에 충실하여 성경이 말하는 교회 이해를 분명히 하고, 그런 교회를 드러내는 목회를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다른 새로운 원리를 선택할 것인가하는 결단의 시점에 서 있다. 팬데믹은 역사에 여러 번 발생했다. 구약시대, 복음서와 사도행전부터 계시록에 나타나는 팬데믹, 초대교회, 중세시대, 종교개혁 시대, 근대시대, 1,2차 세계대전, 최근의 몇 가지  그 역사 속의 각 시기는 각기 그때의 과제와 사명을 가지고 있다. 

 

2. 종교개혁시대의 팬데믹을 헤쳐나간 칼빈의 경우를 살펴보자

 

종교개혁 시대의 개혁주의 리더들인 루터와 쯔빙글리와 칼빈, 볼링거와 베자는 모두 전염병을 거치면서 그들의 사명과 사역과 방향에 있어서 뚜렷한 흔적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 칼빈의 경우만을 살펴보자. 죽음의 사자인 흑사병은 칼빈의 삶의 현장에서 일평생 따라 다니며 하나님의 뜻과 인생의 방향을 깨닫게 하는 영적 교훈을 주었다. 개혁시대의 팬데믹이었던 페스트는 수많은 유럽인들에게 상처와 고통과 죽음을 주는 폭풍과 같았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역병을 죄와 인간의 부패한 관습에 관계된 것으로 보았다.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에서의 칼빈의 추억은 그에게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의 문제에 도전과 극복의 과제를 주었다.

1) 칼빈은 팬데믹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훈련이라는 이중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악한 원수의 세력과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으로서 전염병을 통해 심판하시지만,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죄에 대해 교정의 징계를 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은 개혁파와 가톨릭을 구별하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카톨릭은 우상숭배와 미신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며, 개혁파는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가진 진리를 충분히 실행함에 더욱 나아가지 못한 것 때문에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칼빈 자신도 9년 결혼생활 동안 세 자녀를 잃었고 아내도 병으로 죽었고 자신 또한  종합병동이라는 별명까지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무서운 질병의 고난 속에서도 이웃을 돌보며 최선을 다했다. 칼빈은 지극히 지혜로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질병으로 훈련을 받게 하셨으므로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고 권면했다. 실제로 칼빈은 1542년 태어난 자신의 어린 아들 자크의 죽음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치셨다고 회개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허락하심에서 일어난 정화 훈련의 과정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로서 모든 죄인들은 일평생 이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우연으로 보이는 듯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밀한 추진이었다고 인정하는 신앙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런 전염병이 있을 때 그는 슬픔을 당한 자들을 위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아야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런 사회적 책임은 모든 종교개혁자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우리 주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2) 칼빈은 전염병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에서 바라보는 종말론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그는 역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성도들과 가족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한 메시지를 주었다. 칼빈은 자신의 친구, 자녀, 그리고 아내가 죽었을 때 비통함 속에서 울면서 슬퍼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조차 불행한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죽음에 대한 슬픔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우리를 돌보신다고 믿었다. 그래서 칼빈은 슬픔으로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면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를 두려워하며 공경할 때,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고 유익하게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게으르고 태만하여 스스로 재난을 불러들이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성도는 그런 때에도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힘써야 한다고 권면했다. 그는 우리가 무모함과 자만심을 버리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참된 소망과 신뢰와 용기로 가득하게 하시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위험들을 믈리쳐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칼빈은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보다는 영원한 삶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충만한 사람으로 즐거워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3) 칼빈은 병든 자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며 양질의 교육 여건을 만들어 사회적 책임에 더욱 정진했다.

전염병의 공포로 삶은 위험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원 사역과 교육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사역을 통해 그의 세계관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칼빈도 루터처럼 병든 자를 위한 철저한 돌봄을 실천했다. 전염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병자들을 찾아 날마다 심방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사랑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서 자신의 의무와 이웃을 돌보는 삶을 살았다. 특별히 칼빈은 프랑스 구호기금을 받아 제네바의 종합 구빈원을 후원했으며, 그는 또한 의료 서비스 사역이 지속적인 업무가 되도록 제네바 시와 협력해 그것을 제도화하고 정착하게 하였다. 칼빈이 전염병을 통해 우리에게 준 교훈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회개와 겸손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헌신과 사랑과 돌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의 모습은 팬데믹의 상황에 처한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살며, 세상에 대해서는 진정한 사랑과 책임을 다하며, 모든 방면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참된 지혜를 교훈해준다.

 

2. Post-Pandemic 혹은 With-Pandemic 속에 목회자는 어떤 목회적 상황을 대면할 것인가?

 

개혁주의 목회자이지만 이런 국면과 상황에 대하여 목회자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개혁주의 목회자가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에 대한 성경적인 구분과 선택이 필요시 된다. 팬데믹의 상황에 대한 분석과 변화시키기(transforming)를 위한 도전 앞에 선 목회자는 다음의 상황에 대한 개혁주의적 정답을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1) 대면 접촉이 기피되는 사회이니 교회 공동체도 주로 대면하지 않는 식으로 하는 목회를 개발해야 하겠다는 시도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성도들은 송출되는 인기있고 탁월한 설교를 얼마나 많이 시청하는지에 집중하게 되어, 목회자는 ‘구매자 위주(consumer-centered)’의 설교 목회를 추구할 가능성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2) 계속되는 팬데믹으로 교회의 선교의 관심과 집중에 있어 후퇴하고 있는 형편에 처하며, 이에 With pandemic이 계속되거나 post pandemic의 시기에 이르기까지도 선교 자체를 축소하거나 소홀히 할 불가피한 교회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3) 다양한 모든 상황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에 대해, 이제 성경과 대면하여 성령님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목회에 있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SNS를 통한 소통(communication) 중심으로 목회의 방식을 전환할 수 있다.

 

4) 팬데믹 가운데 위기에 처한 인간심정을 잘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심리학적 기제들(psychological mechanism)과 인간의 문제와 욕구를 그대로 수용하려는 사람의 필요중심(people need centered)의 목회를 지향할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와 목회로 점점 변화되어 갈 수 있다. 이에 따라서 그들은 성경적 가치관을 초월하여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에 참여하며 예배 외의 다른 모임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된다.

 

5) 경제적인 위축으로 인해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헌금을 못할 수 있는 형편에 이를 수 있다. 이때 목회자는 그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동정하며 위로하며 권고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헌신에 대한 강조와 설교보다는 위로와 격려와 그들의 심정에 도움을 주는 일을 전력함으로 헌신과 훈련과 책망의 교훈에 대해서는 점점 희박하게 될 수 있다.

 

6)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러 새로운 옷을 입는다는 의식 하에 교회 공동체의 필수적인 것도 양보하게 되어, 형식과 본질의 차이를 혼동하게 될 상황이 이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사용하여 성찬을 할 수 있게 된다.

 

7) 성도들로 하여금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도록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진력함으로, 시대에 걸맞은 목회자로 성도들에게 인정받는 목회중심으로 되어가기 위해 이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8) 팬데믹의 경험을 통해 강력한 행정부의 방역에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교회로 하여금 필요한 경우에 행정부가 교회 공동체의 모임에도 강제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허용할 수도 있다.

 

3.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대면과 비대면의 목회관

 

개혁주의적이란 성경 중심적인 신학과 신앙관을 말한다. 개혁주의 목회자라면 여전히 종교개혁의 5대 기치를 팬데믹 시대에도 적용할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핵심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가 목회의 모든 방면에 시시각각 적용되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개혁주의 목회자라면, 이런 초유의 팬데믹 상황 가운데서도 성경이 말하는 성경적 교회를 제시하고, 그런 성경적 교회의 모습을 이 상황 속에서 명확하게 표현하는 목회적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교회 모습이 무엇인가?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난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고전 1:2). 어떤 상황에서도 교회다움이란 그리스도인 다움이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복음이란 본질이 침투되고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핵심이 적용되는 교회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근거하여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경우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1) 비대면(non-contact) 목회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이고 보충적이고 대체적인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예배에 있어서도 비대면 예배란 매우 임시적인 예배가 될 수밖에 없다. 비대면 예배는 인격적, 영적, 공동체적 요소들을 매우 삭감시킬 수 밖에 없다. 불가피하게 비대면 예배, 곧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 성도들의 건강과 특히 지역사회를 위해서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예배는 노약자를 중심한 취약계층이 드리는 예배가 될 것이다. 그런 비대면 예배는 매우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예배에서도 대면예배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도함이 필요할 것이다. 

  더 나아가 Post pandemic에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함이 얼마나 귀하고 복되며 성경적인가를 깊이 새기면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도록 하며, 그 예배를 통해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mission)을 온전히 이루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일상생활로 하나님을 섬겨 가는 일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공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구체적인 한 장소에 모여서 유일하시고 참되신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교회이다(신 4:10, 바울서신서의 지역교회들).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마 18:20), 즉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시행되는 곳에 교회가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이기를 폐하지 않고 힘써 모여야 한다(히 10:25)는 변치 않는 명백한 성령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신앙고백 21장의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대해서(1항-8항), 신자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고, 공적 집회에서 더 엄숙하게 예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집회를 임의로 소홀히 하거나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21:6). 성도는 질병 혹은 감염의 이유로 발생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으로는 모여 예배하는 것을 더욱 사모해야 하며, 혹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2) 팬데믹 시기의 ‘성찬’에 대한 개혁주의 목회자의 입장도 분명하다. 주께서 친히 명하신 교회가 표지가 되는 성찬을 시행하지 못하는 이런 때에는 모든 성도들이 죄에 대해 회개하며 징계를 받는다는 의식을 가지고 모두 수찬 금지를 함으로 성경의 명령을 따를 수 있다. 또 성찬을 위생적으로 봉인해 나누었다가 분잔 때 각자가 제거하고 마시도록 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목회자들 중에 각 가정에서 비대면(online) 성찬을 유도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영상 기술을 이용해서 성찬을 한다면, 성찬의 참된 의미를 변용시키는 것이 되고 성찬의 의미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성찬은 반드시 대면적이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또한 그가 우리에게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가 되신다는 것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몸으로 체험하는 방식으로, 손으로 떼고, 혀로 맛보고, 온 몸에 녹아드는 방식으로 함께 모여 맛보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이것을 ‘눈에 보이는 말씀’이라고 칭한다. 팬데믹 동안에 포도주를 제외하고 떡만 주던 중세적 관례가 오용되어 타락을 부채질하였듯이, 영상으로만 성찬을 진행한다든지, 가상현실로만 체험하도록 하는 것은 교회를 다시 로마 가톨릭적 오류에 빠지게 하는 우를 범하게 할 수 있다.

 

3) 팬데믹 이후 목회자는 진정한 성경적 모습, 이전에 경험해 보지 않은 경험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목회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인간 무능과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더 겸손하게 하고, 당장에 필요한 도구와 조치에 의존함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존하도록 팬데믹의 교훈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는 더욱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적이 되어야 한다. 팬데믹의 기간이 장기간이 되어갈 때에도 비대면의 목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식을 강화하면 안 된다. 비대면의 시대에도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예배의 대면적 중요성이 필수적으로 회복되도록 해야 하며 가르쳐야 한다 

 

4) 다시 강조하여 가르쳐야 할 것은 팬데믹 이후에 팬데믹 시간의 경험을 근거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대면하지 않고도 제대로 신앙생활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지지 않도록 권면하고 강조해야 한다. 이런 팬데믹을 신앙적으로 경험한 성도들은 성도의 교통(koinonia)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생각하면서, 이전보다 더 깊이 있는 성도의 교통에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대면의 교제가 중심이 되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비대면의 교제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보충적이고 제한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5) 성도들은 팬데믹의 모든 상황 속에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으며 시험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은 성경과 역사 속의 팬데믹을 만난 참 성도들과 같이,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시고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더욱 더 분명히 해야 한다(롬11:33-36).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이 세상 모든 악들을 종국적으로 극복하시고, 이 모든 악들을 종국에는 선으로 변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던 순교자들의 믿음과 소망의 내용이다(계6:9-11)

 

6) 교회는 늘 주변 사회를 분명하게 돌볼 책임을 가지고 있다. 초대 교회 때에 역병이 돌 때 교회 공동체는 희생하면서도 지역 주민들을 잘 돌아 보는 일을 감당했다. 개혁시대 루터, 칼빈, 쯔빈글리, 불링거, 베자 등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사역에 있어 가장 모범적이었다. 교회는 늘 많은 지속적인 도움을 시행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그 지역 사회에 있는 것이 유익이라는 인식이 이 사회에 전달 될 수 있도록 긴급하게 돕는 일을 잘 수행해야 한다. 지 교회들이 지역(local)에서 구제와 긍휼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복음의 사역임을 가르치며 실행할 것이며, 더불어서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미자립 교회를 여러 기관들을 통해 돕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 

 

7) 모든 목회자들이 그래야 하지만, 특별히 개혁주의 목회자라면, 성경적 교회가 되는 계속되는 과제를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수행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극치에 이르게 하시기까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교회답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잘 드러내도록 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개혁신앙을 가진 목회자와 교회의 사명이다.

 

8) 다른 전문가들이 post-corona, with-corona를 통해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를 주장할 때, 우리는 이에 귀를 기울이고 대응하지만, 개혁주의 교회는 우선적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하되, 그 원리로부터 신앙적인 유추(analogy of faith)를 통해 팬데믹에 대처하는 원리와 방식을 가르치는데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천국의 제자를 양육하며,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과 문화관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을 개혁주의 안목으로 불 수 있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팬데믹 사태에 대한 변화를 예측하고 진단하며, 대처한 것은 구약의 잇사갈 지파의 200인과 같이 지혜로운 일이며 필요한 일이지만, 신약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그 복음을 전하여 제자 삼아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은 어떤 시대와 국면과 환경에 상관없이 계속되어야 할 개혁주의 교회의 본질임을 자각하고 이에 대한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

 

4. 팬데믹시대의 시민의 의무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

 

1) 교회가 추가 감염을 예방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성도들을 일정기간 격리시킴에 있어 성경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레위기 11-15장의 정결법은 부정하게 된 사람이 성막과 공동체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진영 밖으로 격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들은 히브리서 10:19-22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믿음과 회개를 통해 성도들이 제의적으로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정결한 몸과 마음을 얻게 됨으로 근본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레위기 15:31, 민수기 5:2-3과 19:20의 말씀처럼, 공동체를 전염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정결법 제정의 목적은 오늘날도 여전히 적용되는 율법의 용도라고 할 수 있다(율법의 시민적, 교육적, 규범적 용도). 교회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전염병에 걸렸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성도들의 예배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위의 말씀들을 적절하게 실천하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2) 국가와 정부에 대한 태도를 올바르게 인도한다. 성경은 신자들이 올바른 국가와 사회의 평안을 도모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고 가르친다(롬13:1-7).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읍(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그리고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렘29:7). 세상 통치자들을 위한 기도는 나라를 위한 성도의 의무이다(딤전2:1-2).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23장은 국가와 위정자에 대해(신앙고백이 수립될 때의 배경 때문에, 다양한 이견들과 수정들이 있었지만), “각 국가의 건전한 법률에 따라 경건과 정의와 평화를 유지할” 책임이 위정자들에 있다고 명시한다(23장 2항). 또한 성도들은 이런 국가의 평안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또 시민으로서 협력해야 한다(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23:4). 이런 과정 속에서 교회는 평안 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다할 기회를 얻고(렘29:7, 딤전2:2),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서 복음 전도가 더욱 더 큰 힘을 얻게 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3) 많은 전염병들은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 대해, 개혁주의 목회자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적인 심판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전염병(헬, 플레게, plague, 계13:3, 12,14)의 유행은 종말의 징조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깨어 기도하며, 이웃을 돕기 위해 힘쓰되 바울 사도가 말씀하듯,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라는 말씀이 열매를 맺도록, 이런 섬김이 지역사회 공동체로부터 다른 나라(global community)에 이르기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5. 개혁주의 목회자의 가르칠 내용(필요성)

 

이 시대를 진단하고, 성도들을 보호하며, 영적 삶을 인도할 책임과 사명을 가진 목회자들은 금주 한 동안도 성도들에게 신령한 영적 가이드를 제시할 임무가 막중하기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전할 것을 제안한다.

 

1)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그리스도 중심적 메시지가 필요하다.

예배를 올바로 드릴 수 없게 되고, 경제적 위기가 밀려오며, 가족들이 바이러스의 침투를 당하며, 총체적 위기가 각 성도들과 교회 공동체, 직장과 삶의 생활터전에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설교자는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영적 위로와 그리스도로 인한 평안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선한 목자가 되어 성도들이 쉴만한 물가로 평강의 길로 인도하도록 두려움에 대한 메시지로 성도들을 위로해야 한다. 사망의 위협 속에서 두려움을 극복했던 바울의 간증을 증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설교자는 환란의 시대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날개를 외쳐야 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의 위로의 메시지를 전파할 것(요14장 25-31절)을 제안한다.

 

2)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담대한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메시지를 필요로 한다

Covid Pandemic 위기 속에서 성도들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담대한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와 위로 의 메시지를 증거해야 한다. 풍랑이 일어나 견딜 수 없는 환경의 바다를 항해할 때, 거센 파도를 보고 두려워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마14장 22-33절) 주님의 목양 정신으로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이다. 모세의 리더싶을 이어받은 여호수아에게 주었던 미래에 부딪힐 모든 종류의 커다란 장애물 앞에서 약속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수1장 1-9절). 시대의 암울함 속에 비관하던 포로기 직전의  물과 불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한다는 이사야의 미래지향적 선포의 메시지를 전해야한다(사43:1-13). 사명을 가지고 주님께 순종하려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 메시지를 전할 것을 제안한다.

 

3)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의 메시지로 영적 회복에 대해 역설할 필요가 있다.

고난과 위기에 대한 성경적 원리들과 신학적 핵심을 가지고, 고난 속에 자신의 영적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교회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이제까지의 삶의 양태들을 겸손히 회개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갖도록 교훈할 것(계3장 14-22절)을 제안한다.

 

4) 말씀 운동과 기도 운동의 적극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각각의 위기 시대마다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는 것이 사는 길이었다. 사무엘 시대의 미스바 운동, 느헤미야 시대의 수문광장의 말씀 운동의 역사적 현장을 현 시대와 목회적 상황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시대가 위기 봉착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 기도운동과 말씀 회복 운동이 절실하다.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처럼 악한 길에서 스스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그분의 얼굴을 찾을 때, 죄 사함과 더불어 땅을 고치시겠다는 약속(대상7장 11-18절)이 따르는 기도운동과 에스라의 말씀운동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그동안 중지되었던 기도운동, 말씀운동이 회복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도록 인도할 것을 제안한다.

 

5) 성경적인 종말신앙으로 각성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말세의 징조 중 하나가 역병(전염병)이지만 이것이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가르치는 극단적 종말론주의는 지양해야 한다. 동시에 물질만능 시대. 향락 중심의 만연된 시대에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이 반드시 온다는 영적 각성을 위한 종말 신앙을 심어줄 신앙교육의 기회이다. 깨어 각성하는 삶,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벧전 4장7-11절),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가는 삶을 종말의식으로 시대를 진단하는 삶의 원리를 선포해야 한다. 계시론, 신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바른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선용의 시간을 가지도록 제안한다.

 

6) 선교사와 선교지를 후원하며 사회봉사 및 나눔 운동에 동참하도록 적극 독려할 필요가 있다.

성도들 가운데 고용인, 기업인, 사업주인, 집주인 등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이번 기회에 피고용인, 종업인, 세입자 등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최대한의 선을 베풀 수 있는 복음에 근거한 생각의 전환, 주께서 말씀하시는 나눔의 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마25장 31-46절). 또한 교회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선교지와 선교사를 소홀히 하거나 외면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선교 현장은 가속화되는 재정적 어려움이 닥쳐올 것이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와 선교하는 교회(mission church)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가르치며(마28장 16-20절), 선교사들의 생활과 사역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물질적인 헌신을 감당하도록 가르치며 최우선적인 협력을 강조할 것을 제안한다.

 

7) 나라를 위한 애국심과 고취하며 국가와 지역 관공서와 의료기간을 위해 기도하도록 해야 한다.

미주에 있는 개혁주의 목회자라면, 개혁주의 신학적 국가관을 가르치며, 청교도의 경건한 삶을 회복하고 건국이념에 충실한 국가로 유대 그리스도적 전통(Judeo-Christian tradition)의 성경적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함을 가르쳐야 한다. 국가 위정자들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기도하되 교회가 진영싸움에 휩쓸리지 않고, 성경적 국가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한 참다운 민주주의 국가가 실현되도록 솔선수범하여 나라 사랑에 힘쓸 수 있도록(롬9장 1-3. 10장 1절) 말씀을 가르치길 제안한다.

 

8) 하나님 나라의 열망과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한 비전을 선포해야 한다.

이 위기를 보면서, 결국 세상 나라는 종말이 있고, 영원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직접, 간접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땅에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갈등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고, 하나님 나라, 정의와 평화의 나라 실현을 위하여 성도와 교회가 어떻게 살 것인가(계5장 9-10절)에 대한 깊이 있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가르치길 제안한다.

 

<결어> 

 

개혁주의 목회자는 분명한 신학과 신앙을 가지고 변화하는 세계(changing world) 속에 변치 않는 말씀(unchanging Word)을 붙들고,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상실하지 않으면서 시대를 변화시키는(transforming) 개혁주의 목회자의 사명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지고, 사나 죽으나 우리에게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기를 추구할 것이다. 아울러 성육신하신 주님을 본받아 모든 초월적이며 상관문화적 상황(cross and inter-cultural context)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켜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위한 사명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다는 자각과 의식을 적용함으로 점점 더욱 열매를 맺도록 주안에서 성령으로 최선의 수고와 최고의 열심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개혁주의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확신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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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성도님의 댓글

성도 ()

사진안에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고 마스크도 없고 심히 걱정되는 모습입니다

김만득님의 댓글

김만득 댓글의 댓글 ()

그렇습니다. 마스크 쓰고 6피트 거리 유지하고 기념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뉴욕시에서 요즘도 하루 6백명씩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저렇게 마스크도 안쓰고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아멘넷님의 댓글

아멘넷 댓글의 댓글 ()

저 사진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실제 교계나 교회의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할 정도로 대부분 엄정하게 예방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단체사진을 찍을 때 팬데믹 초기에는 다 마스크를 쓰고 찍었으나 뉴욕의 팬데믹 상황이 나아진 요즘은 마스크를 쓰고도 찍지만 기록을 위해 잠시 벗고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에도 마스크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K방역이라고 자랑하던 한국이 요즘 어려움을 겪는 것에서 보듯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모자람이 없는 상황입니다. 만약 한 명이 문제가 있으면, 뉴욕교계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좀 더 인내하고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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