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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열 목사 ② 다민족선교 - 이민교회 위기 대처 및 극복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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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ㆍ2019-02-1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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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열 목사(뉴욕리폼드신학대학 학장)는 다민족 선교를 한인이민교회 미래의 하나의 대안으로 보고 “이민교회의 위기 대처 및 극복 방안: 다민족선교”라는 주제로 5회에 걸쳐 글을 연재합니다. 

 

[이전기사] 유상열 목사 ① 다민족선교 - 이민교회 위기 대처 및 극복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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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선교의 이해

 

A. 성경적 선교

2. 동기와 목적

a) 동기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다. 한국성서신학교 교수를 역임한 박영호는 선교의 동기를 먼저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고 있는 구원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다. 즉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선교 사명에 생포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다. 전심으로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해야할 의무감을 통감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이 동기가 가장 강력하다. 이 두 가지의 동기들은 공통된 기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란 조직신학적 측면에서 본 성부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 Covenant College 선교학 과장을 역임한 존 M. L. 영(John M. L Young)은 제1세기 기독교인들의 복음전파의 동기를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를 증거하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자연스러우며 자발적인 그들의 갈망에서 찾는다. 그에 의하면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순수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세기가 지나면서 지도자들의 세상적인 야망과 교만에 의해서, 그리고 그러한 지도자들에 의해 인정된 특권을 가졌던 우상숭배 자들로 인하여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가졌던 복음전파의 자발적 갈망이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영(young)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세기를 통해서 그 동기는 교회의 정치적, 종교적 지배를 다른 지역으로 넓혀 교회의 영광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갈망으로 바꿔져 버렸던 것 같다. 새 땅에 대한 군사적 정복과 발견은 기독교 문화의 설립을 위해 필요한 문이 되는 기독교를 위한 승리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선교 사업은 이방지대를 정치적으로 정복해 자국의 문화를 뿌림과 동시 이교도 지역과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무역을 갖기 위한 일이 고작이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난 후에도 선교국과의 대규모의 무역을 위한 일을 하므로 혼합된 선교의 동기가 있어왔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각은 그리스도와 말씀으로 되돌아갔다. 17세기 말엽에 모라비안 형제는 당시 정치적, 경제적 동기나 또는 서구 문화의 보급을 목적으로 한 선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했다. 그들의 정신은 1세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잃어버린바 된 자들에게전하러 나감으로 그리스도에 헌신했던 그런 정신보다 더 이상의 것이었다. 

 

17세기에는 생명을 죽이는 이성주의 물결에 휩쓸림을 당해오다가 마침내 19세기에 일어난 미국과 영국에서의 영적인 각성운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새롭게 일으켰다. 19세기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선교세기로 기억되는데 가끔 그 동기가 그리스도 사상으로 나타나 서술되거나 혹 그의 명령을 순종하거나 잃어버린 자에 대한 긍휼 혹은 현대 문화와 발전의 큰 빛에서도 어둠에 허덕이는 자들을 돕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영(young)은 이제 다원주의와 현대과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의 선교 목적이 인간 중심적인 박애주의나 현대적 학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지식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을 회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발전을 위한 교육과 업무에 강조점을 두게 됨으로 인하여 수많은 학교와 병원들을 설립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소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빗나간 선교의 동기를 지적하는 것으로 잘못된 시작은 잘못된 결과를 낳게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 속에서 선교의 동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그의 아들을 보낸 이면의 동기는 하나님 자신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다시 말해 최초의 선교사인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이다.  

 

한편 바울의 경우를 보면 영혼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메시지, 곧 복음을 전하려는 그의 근본 동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선교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사랑이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 건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로마서 9장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부르심의 역사와 그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대 계명을 선교의 대 사명으로 고백을 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의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1-3).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위대하고 뜨거운 것이었다. 그 사랑을 발견한 바울은 이제 자신의 민족 유대인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드러내며 자신의 생명을 받쳐서라도 그 사랑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바울의 선교는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다. 이방인을 포함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될 것을 생각할 만큼 그에게 있어서 복음전파는 부득불 해야 할 일이었다. 그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롬 1:14)라고 말한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빚이란 십자가의 사랑의 빚이다. 그러나 이 빚은 하나님께 갚을 빚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의무를 의미하는 바울의 신앙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역 전도 혹은 세계 선교를 말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빼놓고 설명한다면 그것이 비록 겉으로 보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늘 부족한 설명이 되고 말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사랑을 강조한 이유가 이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선교사역을 통해 전달되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복음전달 뿐만이 아니라 구제와 봉사 등의 모든 희생적 섬김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선교의 동기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역의 업적이 아무리 훌륭해보여도 그 자체가 선교의 동기가 된다면 그 동기는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다. 우리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선교의 순수한 동기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b) 목적 

 

선교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물론 우리는 영혼구원을 통한 교회설립이나 그 외의 다른 사역들에 목적을 둘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 목적의 범주 내에서 설정된 종속적인 작은 목적들이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바울에게 있어서 선교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감당할 자신의 목적을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것에 두었다. 사실 “성경은 처음부터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개인들로 구성되는 공동체 형성이 선교의 목적”임을 말한다. 바울은 그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선교를 통하여 새롭게 세워진 공동체를 하나님의 권속(엡 2:19),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 신령한 집(벧전 2:5) 등으로 묘사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화란 자유주의대학 신학교 교수였던 요한 H. 바빙크(Johan H. Bavinck)는 이러한 교회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영적인 교제이고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이며 이러한 교회만이 몸을 증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활동은 그것이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렀거나 잘 조직이 되었다 하더라도 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결국에 가서는 무기력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빙크의 말과 맥락을 같이하여 로랜드 알렌(Roland Allen)은 교회설립과 관련한 바울의 선교에 대해 “바울의 선교 활동과 우리들의 선교와의 큰 차이는 바울은 교회를 세운 반면, 우리는 선교부(missions)를 세웠다. 선교부 설립이 현대 선교의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선교부는 교회가 아니다” 라고 기술한다.  

 

우리는 바울의 선교목적을 그의 선교전략을 통해서도 알게 된다. 대한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인 김연진은 바울의 선교전략을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는 거점 선교이다.

바울은 한 전략적 장소를 선교를 위한 거점으로 정하고 그 주변 지역을 선교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선교 거점은 그 지역의 지리적 중심지거나 혹은 그 지방의 수도였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의 대도시들은 그 당시 그 지방의 상업, 교통, 정치, 종교 등의 중심지였다. 바울은 이러한 중심지에 기독교 공동체를 세워 이들로 인하여 주위 지역의 복음화를 기대했던 것이다.

 

둘째는 동역 선교이다.

바울의 선교 활동에는 언제나 바나바를 시작으로 하여 여러 다양한 동역자들이 있었다. 이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보면 첫 번째는 가장 가까이에서 도왔던 바나바, 실루아누, 디모데 등이고 두 번째는 바울을 협력하면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디도 등이며 세 번째는 지역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에바브로디도, 아리스다고, 가이오 등이다. 바울은 이러한 동역자들을 지역 교회와 협력하는 연결 통로로 사용했다. 또한 교회들은 이들을 통하여 바울의 선교 운영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의 이와 같은 선교전략은 교회의 핵심적 기능이 선교이며 또한 선교의 목적도 교회의 설립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영(young) 또한 선교사의 목적이나 교회를 내보내는 데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이방인들 사이에 새로 결심한 자들로 된 토착교회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선교사가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선교의 정확한 개념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독립된 한 인격체로서 하나님을 만나고 일대 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인간을 인격적 독립체로 지으신 동시에 각자가 고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의 수직적 관계는 물론이고 같은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 안에서 온전한 삶을 영위하도록 만드셨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의한 인간의 기본적 존재양식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무릇 내 이름을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는 이사야 43장 7절 말씀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따라서 선교의 사명을 수행에 나감에 있어서 각 단계마다 갖게 되는 일차적 목적들은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궁극적 목적에 종속된 과제들이다. 

 

선교사는 때때로 병자를 치유하고 굶주린 자에게는 음식을 나누어 주는 섬김의 일들을 해야 한다. 또한 사회의 공공 편리와 이익에 부합하는 다양한 측면의 일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삶의 태도이지 그 자체가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선교는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대사명이다. 그러므로 선교의 목적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져야 한다. 박영호는 오늘날 기독교 선교사역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으로부터 이탈하여 지나치게 사회봉사에 치우쳐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이는 경계삼아야 할 지적이다. 

 

“자유주의 교회의 사회봉사는 물질적인 것, 경제적인 것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기에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하게 되어 버렸다. 아니면 우리의 선교를 확장 발전시키고, 우리의 교파, 우리의 활동에 너무 집착하게 되어 주님 자신의 피로써 사신 그 분의 교회와 주님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때때로 우리는 약간의 조그만 목적에 적당히 진전해 나가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주요 목표에는 얼마나 미달되고 있는가를 통감하지 못한다. 우리가 실제로 탈선하지는 않았을 때에도 우리는 지엽적인 일들에만 몰두할 때가 많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이 선교에 있어서 궁극적 목적임을 일관성 있게 여러 곳에서 증거를 한다. 비록 우리가 선교의 목적을 다양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바빙크는 구약의 이스라엘의 모든 소망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요소는 하박국 2장 14절 말씀 곧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바빙크는 또한 신약의 산상수훈에서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말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풍부한 표현들을 발견하게 될 수 있음을 주지시키며 다음의 말씀을 소개하고 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12). 

   

우리가 교회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그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할 명확한 답은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이렇게 명령한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선교가 예외일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가 이뤄가야 할 선교의 궁극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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