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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춘 목사, 성금요일에 하나님의 부르심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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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20-04-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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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교계에 한 획을 그은 퀸즈장로교회 장영춘 원로목사가 4월 10일 성금요일 오후 4시50분에 부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별세했다. 고 장영춘 목사는 플러싱 소재 요양원에 있다 코로나19 증상으로 6일(월) 병원에 입원했으나 호흡곤란과 고통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고 장영춘 목사는 장미은 사모와 사이에 1남2녀를 두었다.

 

장영춘 목사의 장례예배는 4월 17일(금) 오후 7시 퀸즈장로교회 본당에서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장례예배를 드린다. 코로나19 시국 속에 예배실황이 퀸즈장로교회 유튜브채널(KAPCQ)을 통해 온라인으로 중계된다.

 

고 장영춘 목사는 1957년 혜성교회 전도사로 시작하여 58년 전도사 인허를 받았다. 60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64년 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66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68년 유학차 도미하여 72년에는 뉴저지장로교회를, 74년에는 퀸즈장로교회를 개척했다. 77년에는 뉴욕교협 회장, 83년에는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했다. 87년에는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학장, 92년부터는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을 역임했다. 2012년 2월에 퀸즈장로교회에서 원로목사 추대예배를 드리고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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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영춘 목사님 약력 |

KAPCQ Pastor Emeritus, Rev. Youngchoon Chang, The Curriculum vitae 

 

❖ 1932. 11. 23  황해도 장연에서 장덕선 장로와 김은선 집사의 2남6녀중 장남으로 출생 

❖ 1955. 2   마산 창신고등학교 제2회 졸업 

❖ 1957. 10 ~ 1961. 12  혜성교회 (대한예수교 장로회 경기노회: 이하 경기) 전도사, 강도사 

❖ 1958. 5. 17  전도사 인허 (경기) 

❖ 1960. 2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신학교 제9회 졸업 

❖ 1960. 5. 13  강도사 인허 (경기) 

❖ 1962. 10 ~ 1967. 12  신용산교회 강도사, 부목사 

❖ 1964. 10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신학교 신학대학원 제1회 졸업 (Th.M) 

❖ 1966. 5. 12  목사 안수 (경기) 

❖ 1966. 9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국 주일학교연합회 제12대 회장 역임 ❖ 1968. 1   유학차 도미 

❖ 1969. 7. 18  장미은 사모와 결혼 (슬하에 1남 2녀를 두심) 

❖ 1970. 5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신학석사 (Th.M) ❖ 1972. 8. 15   뉴저지 장로교회 설립 

❖ 1974. 2. 24  뉴욕 퀸즈장로교회 설립 

❖ 1977 ~ 1978  대 뉴욕지구 교회협의회 회장 역임 

❖ 1980. 5  Faith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박사 (D.Min) 

❖ 1983 ~1984  미주한인 예수교장로회 총회장 역임 

❖ 1987   미주 기독교 북방선교회 이사장 

❖ 1987 ~ 2018  동부개혁장로회 신학교 학장 

❖ 1989   미주 기독교 복음주의 교회연합회 회장 

❖ 1990. 5  Californ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철학박사 (Ph.D) 

❖ 1990  세계한인 선교대회 공동의장 

❖ 1993. 4 ~ 2019. 1  미주 크리스천신문 발행인 

❖ 1993 ~ 2018  아세아 연합신학교 이사 및 부이사장 

❖ 1996, 2000, 2004  세계한인선교대회 (KWMC) 대표의장 

❖ 1999  세계한인선교대회 (KWMC) 공동의장 

❖ 2003. 2  한인기독교이민 100주년 세계선교대회(하와이) 대표회장 역임 

❖ 2005  뉴욕 미국 교회협의회 (CCCNY) 한국대표 

❖ 2005. 6  대뉴욕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대표회장 역임 

❖ 2012. 2  퀸즈장로교회 원로목사 추대 

❖ 2020. 4. 10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심 

 

수상 | Award 

 

❖ 1993   Comptroller’s Award 수상 (NY시 심계원으로부터) 

❖ 2004. 5. 30  Jersey City 명예시민권과 행운의 열쇠 수상 

❖ 2005. 5. 26 아시안커뮤니티 발전 공로상(Asian-American Heritage Achievement Award)수상 

❖ 2005. 10. 20  Extraordinary Leadership Award 수상(뉴욕 미국교회협의회-CCCNY로부터) 

 

저서 | Literary Work 

 

❖ 살아있는 나침반 (어린이 강단) ❖ 아가페와 필레오의 대화 ❖ 예수님의 눈물 ❖ 평화의 이상 ❖ 데오빌로여 (한영 설교집) ❖ 나는 하나님이라 (창세기 강해 설교집) ❖ 창조주 하나님 (God the Creator / 한영 설교집) ❖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For Christ Alone / 한영 설교집) ❖ 복음의 능력 (The Power of the Gospel / 한영 강해 설교집) ❖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I am Sending You / 한영 설교집) ❖ 짝사랑 (한영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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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승 장영춘 목사님을 보내며

이용걸 목사(전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필라영생교회 원로목사) 

 

장 목사님은 제가 중학교때 신용산교회 강도사님으로 오셔서 성경을 가르쳐주시고 신앙으로 지도 해주신 스승입니다. 중학교 1학년때 등록금을 못 내어 퇴학을 당하여 잠시 용산역 주변에서 방황할 때와 중 고등학교 고학시절에 말씀으로 힘이 되어 주셨고 바른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섬기던 후암제일교회 오셔서 큰 교회를 훌륭하게 섬긴다고 칭찬과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1980년 미국 유학시절부터 지금까지 힘이 되어 주시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때문에 영생장로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늘 마음에 존경과 고마움이 있어서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아무리 어려운 부탁을 하여도 거절하지 못하였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총회에서 일하면서 목사님에게 누가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였습니다.

 

지난 2월에 양노원을 방문하면서 어떤 분이 목사님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다하여 제가 “목사님 나 알지요?” 하고 물어보니 웃었습니다. 내가 너를 모를까봐 물어보니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오면서 세월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놓는구나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떠나가셨습니다. Covid19 때문에 목사님의 임종도 못뵈고 장례식도 못 참석하니 사람도리도 못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개혁주의 신학과 목사의 신앙 인격을 가르쳐 주신 큰 스승입니다. 우리는 아쉽고 슬프지만 목사님은 세상의 질병과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시온의 대로를 활보하실 것입니다.

 

좋은 목사님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는 원로목사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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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영춘 목사님을 기리며...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 회장 양민석 목사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 라는 비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고 장영춘 목사님은 교단도 다르고, 연세도 차이가 많아 그리 가까이 뵐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음이 왔습니다. 바로 장 목사님의 열매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고 장 목사님은 스승이셨습니다. 요즘 스승이라는 말을 듣기 희귀한 때임에도 그 분은 스승이셨습니다. 교회와 교계를 이끌어 가시는 영적스승이셨으며, 신학교를 세워 학문적 스승으로 후학들을 세워가셨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장 목사님의 자상하신 인격을 닮고자하는 인격적인 스승이셨습니다. 그리고 교계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마다 함께 앞에서 방향을 제시할 줄 아는 한 발 앞선 스승이기도 하셨습니다.

 

스승은 참된 모범과 존경을 동반하지 않고는 감히 부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이제 고인의 떠난 자리에서 가장 많이 스승님! 이라는 고백들을 듣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열매들이 건실하게 세워져 가고 있음 또한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 영적 스승을 잃은 교회와 교계는 참으로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이제 고 장영춘 목사님의 발자취를 잘 계승 발전시키며, 장 목사님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더욱 아름다운 열매되어 보답하기는 것이 남은 자의 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장 목사님을 사랑했던 유족들의 슬픔에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하며, 천국의 소망으로 위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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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각 목사(효신교회 원로목사)는 “고 장영춘 목사님은 동포사회의 수많은 신학교가 있었지만 가장 경건하고 알찬 교육으로 후배양성에 큰 공헌을 하신 분이고, 이민목회와 교회행정에 탁월한 탈란트를 가지신 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미주에서 문서선교에는 독보적인 수고를 하신 분이고 이민 1세로 이민교회의 고와 락을 다 겪으신 교계 지도자였습니다. 고 장영춘 목사님은 사도바울처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 다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승리하신 분입니다. 드디어 세상수고 끝내시고 꿈에도 그리던 본향 집으로 백의환향하셨군요. 오랫동안 병수발하신 사모님과 자녀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고 추억했다.

 

안창의 목사(교협 증경회장)는 “우리 교계에 고귀한 버팀목이셨습니다. 유족들과 퀸즈장로교회 교우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소망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74년 퀸즈장로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목양일념하시며, 또한 뉴욕교계를 위하여 힘써 협력하신 목사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미국 한인이민교회의 산 역사의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기억했다.

 

한재홍 목사(교협 증경회장)는 “먼저 장영춘 목사님의 소천에 심심한 조의를 드립니다. 뉴욕지역 한인 기독교 복음전파의 귀한 역군이셨습니다. 교회들의 아버지 역할이었지요. 부족한 종인 저도 뉴욕지역 청소년센터 후원과 일본과 북방선교를 위해 함께 일했던 지난날이 새로워집니다. 남은 가족과 교회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같이 하시길 기원합니다”고 아숴워했다.

 

김원기 목사(교협 증경회장)는 “1976년 이민 와서 처음 수박 사가지고 심방 오신 장 목사님을 뵈웠습니다. 그만큼 섬세한 목회의 열정으로 주님 위한 한길을 달려 오셨습니다. 뉴욕 교계를 위해선 바른 신앙과 보수 신학의 정로를 지키시며 많은 목회자들의 스승이요 모범이 되셨습니다. 제가 한세원 목사님과 방북할 땐 사랑의 선교비를 넣어 주시시며 격려해 주셨든 그 큰 어른의 기도와 희생이 참 좋은 열매로 온 세계에 넘칠 것을 믿습니다”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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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영적 지도자 장영춘 목사님을 그리며”

장석진 목사(교협 증경회장. 뉴욕성결교회 원로목사)

 

장영춘 목사님의 소천에 조의를 표하며, 사모님과 온 가족위에 성령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76년도 뉴저지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창립예배를 드릴 때 뉴저지에 계셨던 장영춘 목사님을 설교자로 초청하여 큰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저를 사랑해 주시고 목회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80년도에는 필라델피아의 Faith 신학대학원에 저를 안내해 주셔서 함께 기숙사 생활도 하며 선배가 되셨습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목회에 대승하신 분입니다. 당시 지역 특성상 조용한 뉴저지에서 한인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퀸즈 플러싱으로 나가시어 한인교회 최초로 교회를 건축하시고, 수천 명의 교인들을 모시고 목회하신 목회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미주크리스천신문의 발행인으로 지면을 통하여 세계의 신학 사조와 목회 정보, 미주 교회의 미래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또한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후배 양성에 힘쓰셨고, 많은 목회자와 교계 지도자들을 배출하신 목회자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아울러 그분의 미주 교회와 이민 사회, 국내외  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를 섬기신 일들은 너무나 크시며, 이 분은 자랑스러운 복음주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이 분의 사랑을 받은 저는 이런 귀한 분을 먼저 보내매 섭섭함을 금하지 못하고, 그분을 기리며 조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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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영춘목사님을 추모합니다.

김창길(뉴저지장로교회 원로목사)

 

성 금요일, 아멘넷을 통해 장영춘 목사님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인생 아니 가는 사람 없는데 장 목사님은 주님이 미리 예비하신 천국에 가셨군요. 할렐루야. 반세기 전 뉴욕메트로폴리탄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선구자 트리오 한진관 목사님, 장영춘 목사님, 박재영 목사님께서 한인이민교회를 개척해 주셨습니다.

 

1972년 8월 13일 주일 Silas condict Park에서 “하늘을 지붕삼아 아름드리 나무 기둥에 기대어 푸른 잔디 깔고 앉아 처음 드린 공원예배”가 장영춘 목사님이 뉴저지에서 개척한 한인동포를 위한 두 번째 교회가 뉴저지장로교회였습니다. 장 목사님께서 씨 뿌려 놓은 교회는 이제 자라 뉴저지 지역의 은혜스러운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교회 창립 30주년에 예닮원(뉴저저장로교회 오클랜드 성전)에 오셔서 공로패를 받으시며 뉴저지장로교회를 크게 발전시켜 주어 고맙다고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옵니다. 그 교회에서 부족한 사람이 31년을 목회하고 은퇴한 것은 목사님이 씨앗을 뿌려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59년 남산 총회신학교 시절 목사님은 본과 졸업반 저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반 예과 1년생으로 먼발치에서 뵈었던 기억이 아른거립니다. 미암교회, 성암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실 때 고교친구 수남이와 은수가 전도사님과 성경퀴즈 하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미국 동부지역에 후학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설립하시고 애쓰셨던 일, 문서선교로 바른 신앙의 길을 잡아 주셨던 목사님, 퀸즈장로교회는 한인장로교회들의 모델이었습니다. 이제 죽음 너머 예수님과 함께 계실 거기엔 교단도 교파도 없는 NAE와 Ecumenical의 논쟁도 필요 없는 그곳에서 부활의 주님과 함께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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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준 목사(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학감)는 “사랑하며 존경하는 스승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평생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생명다해 섬기시고 개혁주의 신앙으로 무장한 신실한 성도들과 주의 종을 세우시기 위해 애쓰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며 주님을 따르시던 스승님이 우리 품을 떠나시니 많이 가슴 아픕니다. 목사가 된 제자들을 매년 수련회를 열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간절히 안수기도 해주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늘 사역에 바쁘셔서 가까이 뵙기 어려웠던 스승님이 몸이 약해지신 후에 더 자주 뵙고 맛있는 식사를 나누며 재롱을 피우며 손을 얼굴로 비비며 주물러 드리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라고 기억했다. 또 허윤준 목사는 “스승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님 품에서 밝은 빛을 발하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모습을 지금 가까이서 뵙는 것 같습니다. 장영춘 목사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퀸즈장로교회 김성국 목사님과 모든 성도님들 그리고 동문들과 학우들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도드립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퀸즈장로교회 김용생 장로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예비하신 면류관을 받으신 장영춘 목사님, 저에게는 믿음의 아버지로서 바른 예배를 위해 항상 애쓰시며 말씀과 찬양이 함께한 선교를 위해 앞장서시고 신학교를 위해 온 정성을 바치시던 목사님 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며 육신으로는 슬프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아숴워 했다. 

 

퀸즈장로교회 글로리아싱어즈 멤버인 이동훈 안수집사는 “늘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시며 걸어가시던 주님의 종, 장영춘 목사님. 뉴욕 땅에 오로지 말씀과 기도의 눈물을 쏟으시며 살아오신 인생 기억하겠습니다”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노기송 목사(뉴욕새예루살렘교회)는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스승인 장영춘 목사를 추모하며 “목사님을 마지막 뵈온지가 유니온 양로원에서 며칠 전이었는데 이런 비보를 들으니 참으로 비통합니다. 1991년도 신학교에서부터 지금까지 목사님의 성품과 언행은 저를 비롯한 모든 제자와 후배들에게 큰 감명과 존경의 대상이셨습니다. 목사님께서 걸어오신 거장의 삶은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과 한국, 전 세계에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많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퀸즈장로교회,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미주크리스천신문사, 세계한인선교회 등등 이루다 기록 못할 엄청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남북통일을 못보시고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저희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간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이 모든 징조가 예수님 곧 다시 오실 사인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 목사님도 함께 뵈올 줄 믿습니다. 이제는 주님과 함께 평안하세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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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춘 목사님을 기억하며”    

이윤석 목사(부르클린 제일교회)

 

목사님 곁에서 8년 동안 부목사로 교회를 섬길 동안 가장 가까이서 뵌 목사님의 모습을 기억해 봅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위해 말씀을 준비하시는 일과 전하시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시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원고를 또 고치고 또 고치면서 강단에서 나아가 말씀을 전하시기 직전까지도 항상 긴장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만큼 성도들을 사랑하는 말씀의 참 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생명을 걸듯이 최선을 다해 기획하며 실행하신 분입니다.

 

또한 마치 컴퓨터처럼 수많은 성도들과 후배와 동역자들을 기억하여 언제든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들을 위한 기도의 열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퀸즈장로교회를 위한 그분의 기도로 지금의 결실을 가져 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충만한 사도행전 교회를 재현하는 교회로서의 일관해 오신 목회관의 열매들이 가득합니다. 이때 목사님으로부터 배웠던 사도행전 교회의 내용은 지금도 제 목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목사님은 부교역자들을 위해 가장 엄하면서도 따뜻한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의와 사랑을 겸한 분이셨습니다. 엄하게 책망하면서도 개인적으로 한 없이 따뜻하게 격려하고 세워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집회를 인도하시거나 해외나 국내 일정을 다녀오실 때는 언제든지 피곤해하지 않고 부교역자들보다 더 빠른 발걸음으로 움직이는 분이셨던 모습은 마치 열정어린 청년과 같았습니다.

 

또한 신학교를 위해서는 개혁신학의 방향을 위해 꼼꼼한 노력을 기울이며 세심하게 생각하며 굳건하게 유지하려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아마도 미주에서 가장 든든한 개혁신학의 내용을 갖추려는 목사님의 노력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합니다. 

 

문서선교 사역인 신문의 편집인으로서 항상 기도하며 최상의 문서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목사님이셨습니다. 노회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노회 안에 있는 연약한 교회들을 위해서도 배려하고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 주신 것도 기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최선을 다해 달려오셨던 생애가 귀하고 귀하며, 선한 싸움 다 싸우시고 믿음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셨으니 천국의 상급이 기다릴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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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봉 목사(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전 총회장)는 “장 목사님은 6.25 혼란 중에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성경을 손에 들려주시면서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펴보아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과 북으로 헤어지셨다. 그 후 장 목사님께 아버지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이요 길목이었다. 성경을 기준 삼는 데는 한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으셨고 사람을 대하는 데는 꼭 아버지의 인자한과 따스함을 경험하게 하셨다. 항상 격려와 힘을 주셨다. 한 생애 하나님 앞에 사는 자의 본이 되는 분이다”라고 기억했다.

김남수 목사(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전 총회장, 아가페장로교회)는 “먼저 삼가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사모님과 유족들 그리고 퀸즈장로교회 교우들 위에 우리 주님의 위로하심과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단 설립을 주도 하셨으며 교단 발전과 미주 교계를 위하여 큰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빈자리가 벌써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30년 넘게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목사님은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셨으며 정도 많으셔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번은 한국에서 만나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꼭 택시 타고 가라면서 택시비를 손에 쥐어 주셨던 자상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수고와 일들은 다 잊으시고 천국에서 면류관 쓰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라고 애도를 했다.

조문휘 목사(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부총회장)는 고 장영춘 목사를 추모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6.25 전쟁 후 어려운 시대를 사시면서도, 평생을 하나님께 충성되게 사신 믿음의 사람, 장영춘 목사님이셨습니다. 척박한 초창기 이민 터전 위에서 목양일념으로 많은 희생을 하시면서 퀸즈장로교회를 세우시고 모범된 교회로 부흥성장시키신 참 목회자 장영춘 목사님이셨습니다. 보수신학을 추구하시면서 수많은 인재들을 키우셨고, 신학교를 통해 많은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을 배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신 장영춘 목사님이셨습니다. 총회와 교계, 언론, 한국과 미국,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 지경을 넓히는 데 강력한 리더, 장영춘 목사님이셨습니다. 훌륭하고 귀한 목사님을 갑자기 이 어려운 때에 보내드리게 되어 마음이 많이 안타깝습니다만, 이제는 천국에서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수고 많이 하신 장미은 사모님과 가족 분들, 퀸즈장로교회 김성국 목사님과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큰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전했다.

구자범 목사(총신 신대원 미동부 동문회장)는 “뉴욕 교계의 큰 어른이셨던 고 장영춘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국 총신대학교와 총신 신학대학원 동문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후배들을 지도해 주셨으며, 평생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셨던 목사님을 기억해 봅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를 마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쉬실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와의 작별로 마음 아프신 사모님과 자녀손들, 그리고 퀸즈장로교회 김성국 목사님을 비롯한 성도 여러분께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라고 조사를 했다.

이숙규 목사는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스승인 장영춘 목사를 “평생을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성도들을 사랑하셨던 목사님, 이제는 다시 이 땅에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목사님을 그의 품에 있게 하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장영춘 목사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추모했다.

이종태 목사(주기쁨교회)는 “목사님, 주님의 고난과 함께 기억하게 하시려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셨지요. 목사님, 청렴한 삶을 끝까지 지키려 이 어려운 시기에 부름에 응하셨지요. 목사님, 평생 살아온 곧고 단정한 삶을 기억하게 하시려 홀로 조용히 주님께 가셨지요. 목사님, 지금껏 교회와 교계에 이루어 놓은 많은 일들을 자랑하지 않기 위해 오늘을 기다리신 거였죠. 목사님,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함께 하셨음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목사님, 하늘의 상급이 크고 영광이 됨을 인하여 기뻐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목사님, 꼭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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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춘 목사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김재열 목사(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전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제가 장영춘 강도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55년 전이었다. 그 분은 강습회 강사로, 난 주일학교 교사로서 여름성경학교 강습회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1965년 도였습니다. 아주 핸섬하고 창백한 얼굴에 완전 엘리트였습니다. 한 주간 동안 온 종일 성경을 얼마나 잘 가르치시지 흠뻑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장 목사님은 나의 신앙과 삶의 첫 사랑이었고 흠모의 짝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서울신학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신학교 도서관에 가면 맨 먼저 교계 신문에서 장영춘 목사 이름 석자를 찾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만약에 찾으면 그 분 교회에 가서 한 없이 더 배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을 찾아도 그 분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미국 유학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내 맘에 아쉬움이 녹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24년이 지났습니다.
 
오매불망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장 목사님이 내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토론토에서 목회할 때 노회 강사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사모했고 흠모했던 목사님을 첫 대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난, 나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그 긴 세월 묻어왔던 그 연모했던 사랑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30대의 젊고 예리했던 신선한 옛 모습은 사라지고 대머리에 뚱뚱한 모습에 여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아! 추억은 가슴에 묻혀 있을 때 진짜 추억임을 그 때만치 실감있게 깨달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난 뉴욕으로 목회지를 옮겨왔습니다. 장 목사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빈번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언제나 먼저 불러서 후배들에게 후하게 베푸셨습니다. 교회가 한 참 어렵고 힘들 때였습니다.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사주시면서 4시간을 격려해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장 목사님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기관들 그리고 사회에 좋은 리더십과 영향력을 나눠주시고 가셨습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모두가 잘 아는 대로 지대한 공적을 남기셨습니다.

먼저는 모범적인 퀸즈장로교회를 설립하셨고 500명 이상의 목회자들을 배출하셔서 미주 땅의 신학계를 이끄셨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신문 사역을 통하여 바른 신앙과 기독 문화 변혁 운동에 앞장을 섰습니다. 또한 개혁주의 보수 신앙의 KAPC 총회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장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이제는 평안한 곳에서 풍성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셨던 남은 가족들과 평생 바쳐 사랑하셨던 퀸즈장로교회 성도들 또한 미주 땅에 남겨 놓고 가신 모든 후배들… 모두가 장 목사님의 뒤를 힘차게 따를 것을 새기며 환송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시 천국에서 만나세요! 2020.4.11. 성 금요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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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각오의 정신은 아직까지 나의 가슴에 남아”
이지용 목사(뉴욕겟세마네교회)

본인이 94년에 미국에 처음와서 출석할 교회를 찾기 위해 퀸즈에 있는 5개 교회를 5주 동안 방문하면서 최종 등록한 교회가  퀸즈장로교회였다. 이유는 담임목사이셨던 장영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정착하게 되었는데 설교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유모도 없고, 예화도 없었지만 성경을 깊이 있게 풀어서 말씀을 전해 주셨다. 감리교 배경에서 자란 내게는 충격이었다. 장로교는 보수적이어서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인식하고 있던 내가 설교내내 눈물도 설교를 듣게 되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1년 쯤 되었을까 고된 이민생활 속에 신학교에 가게 된 것도 매주마다 장 목사님을 통해서 듣게 말씀이 내 가슴을 고동침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 몇 개월의 작정기도를 통해 응답받고 교회내의 동부개혁신학교 가을 학기에 등록하게 되었다.

입학하여 약 1년 동안은 낮에는 야채가게에서 일하며 다녔고, 2년 차에는 낮에는 치과 기공소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신학교를 다녔다. 어느덧 3년이 되어가니 졸업하게 되었고 졸업식때 장 목사님의 훈시를 기억한다. "앞으로 교회에서나 선교지에서 사역 할 때 매일 성경을 최소 30장 이상 읽어라. 그리고 바울처럼 크게 쓰임 받으려면 매일 50장은 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졸업생을 대표로 답사하면서 꼭 그렇게 순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말씀공부가 너무 좋아 필라델피아에 비브리칼신학교 입학하여  4년을 더 공부하게 되었다. 그 후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때는 장엄하고 무섭게만 보이던 나의 은사 장영춘 목사님을 작년 년말 함께 신앙생활 하던 청년 자매와 양로원에 면회 갔을 때는 연약하고 쇠약모습으로 바라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장 목사님은 가셨지만 그분의 가르침과 예수님을 향한 일사각오의 정신은 아직까지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장 목사님, 인생의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으시고 주님 곁에서 편히 쉬세요. 끝내 마무리 못하신 사역은 저희 제자들이 하겠습니다.

훗날에 천국에 뵙기를 소망합니다.
목사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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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거인 고 장영춘 목사님을 그리며”
이만호 목사(교협 증경회장, 뉴욕안디옥교회)

먼저 삼가 조의를 표헙니다! 제가 처음 퀸즈장로교회를 방문 했을 때 “사도행전을 재현하는 교회”와 “행복으로의 초대”라고 하는 글귀에 친근감을 느끼면서 목회자인 저에게 영적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 후 뵐 때마다 목사님은 조용기 목사님의 안부를 물으시며 “나도 순복음의 성령운동을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한번은 전화로 부르시더니 아프리카 케냐에서 미주크리스천신문사 주최 한인대회에 강사로 수고해 달라시며 “순복음교단 대표로 부르는 거야”라고 하시며 손을 잡고 자상하게 기도를 해 주시고 “식사하러 갈까?” 하시며 내내 인자하심과 배려하심에 또한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 후 교단목사가 아님에도 저의 가정사에도 신경을 써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목사회 회장과 교협 회장을 할 때도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몸이 불편 하실 때 목사님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티 없는 어린이처럼 반겨 주셨고 나올 때는 힘든 계단을 짚고 1층 현관까지 배웅해 주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 고 장영춘 목사님은 영적인 거인이셨고, 목양일념의 훌륭한 목회자 이셨고, 훌륭한 신학자이시며, 행정가이시며, 인간미 있으신 자상한 인품을 가지신 아버지 같으신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을 또다시 뵐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정말 뉴욕교계 큰 별 되시는 어른이셨습니다.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과 믿음 지키신 목사님께 천국의 의의 면류관이 예배 될 것이라 믿습니다. 남은 유가족과 김성국 목사님과 퀸즈장로교회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넘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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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장영춘 목사님을 추모합니다. 
목사 김춘식 (전북 김제 중앙장로교회 담임)

황해도 출신이신 목사님은 6.25 전쟁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한 땅에 오셔서 군산에 도착하신 후 잠시 머므신 후 마산으로 옮겨가셔서 마산의 창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총회신학교를 졸업하신 후 목사가 되신 것을 말씀 하신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은퇴가 얼마 남지 않는 시간에 불편하신 몸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과 선교에 헌신하시는 중 저희 교회에 오셔서 사일 간 말씀을 전하시고 신앙의 자유의 귀함과 복음 증거의 열정으로 큰 은혜를 끼쳐주셨습니다.
 
그 때 목사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남한 땅에 오셔서 정착하셨던 군산과 마산을 보시고 싶다 하셔서 목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와 마산 일대를 안내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형이었지만 철조망 속에 반공 포로들과 계속해서 북쪽을 고집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대치하고 있는 모형을 보시고 깊이 신음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 하였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깡촌에서 목회하는 후배 촌놈을 잊지 않고 사랑하여 뉴욕을 구경시켜 주셨으며 본인이 섬기시는 퀸즈장로교회의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특권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본인이 그 때 느낀 퀴즈장로교회의 놀라운 상황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한국 교회는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나 주일 저녁 예배나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들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라져 버리고 많은 부분에서 형식화 되어 버렸지만 태평양을 건너가서 신앙생활을 하는 퀸즈장로교회에서 변하지 않는 한국의 사오십년전의 순수한 성도들과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은 퍽이나 감동이었습니다.

진리를 사수하시는 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릅니다.  
사모님 강령하십시오.  
참으로 귀한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 가시는 퀸즈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먼저 가신 목사님의 빛나고 자랑스러운 기쁨이 되십시오. 

 

(고 장영춘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나 조사를 보내주세요, USAame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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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2012년 원로목사 추대예배에서 장영춘 목사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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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의 댓글

성도 ()

10년쯤 후러싱 전주해장 식당에서 밥을 먹던중 갑자기 식당에서 밥을 먹고있던 손님들이 모두 일어나 고개를 숙이던 일을목격했읍니다. 저도 모두 일어서는걸보고 일어섰읍니다. 그떄 장목사님이 들어오시는걸 목격했읍니다.
요즘 애들말로 RESPECT 이라고 하죠 교계과 한인사회의 큰어르신도 코로나로 가시는군요  그분의 주님품으로 가셨을거라 믿음니다
편히 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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