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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 목사 “오상아(吾喪我): 옛 나를 묻고 다시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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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5-10-1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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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상 아(吾 喪 我)

 

1980년 초, 누군가 선물로 준 책 한 권이 기억난다. 당시 베스트셀러가 된 이문열 씨의 소설 『사람의 아들』이란 책이었다. 책을 처음 받고 첫 장을 여는 순간 “나는 죽었다 그러므로 난 살았다.” 이 한 문장이 그 책을 미친 듯이 읽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 이 소설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 것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과 자신이 다시 살았다는 의미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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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목사로서 로마서에서 밝힌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고 연합한 자가 되었기에 그의 부활하심에도 연합한 자가 되었다는 이 고백, 내가 죽고 다시 산다는 것은 오직 예수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믿고 살아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나는 죽었다 그러므로 살았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리지는 않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오상아(吾喪我)라는 말을 접하면서 새삼스럽게 나는 죽었다 그러므로 살았다는 말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오상아에 대한 글을 심도 있게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오상아(吾喪我), 직역하면 내가 나를 스스로 장사 지낸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고인이 된 많은 분을 장사 지내주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상으로 가셨기에 그분들의 장례를 정중하게 치러드렸다. 그런데 오상아(吾喪我)? 내가 나를 장사 지낸다? 참 신비한 문장이다.

 

내가 남을 장사 지내주었다는 것은 고인이 된 그분은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뜻인데 내가 나를 장사 지냈다면 나 역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던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홍해를 가르고 건너갔다면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여겨진다.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누구와 함께 죽었는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되었다면 나 역시 다시 산 자로 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죽고 다시 산다는 믿음이 나의 삶 속에서 현실화되어야 마땅한 것 아니던가.

 

목사가 되어서도 그때 그 책 『사람의 아들』에서 나온 문장을 뼛속 깊이 새겨 두었다. 난 이제 죽었다.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것이 나를 미국으로 이민 오게 한 동기가 되었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래서 태평양을 건넜다. 즉 상징적으로 홍해를 건너 미국으로 왔다. 목사가 되기 전의 삶이 아닌 목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태평양에서 나는 죽었고 미국에서 다시 사는 삶이 된 것이다. 이것이 오상아(吾喪我)이다.

 

그런데 목회가 어려워지고 아울러 삶 자체가 흔들리면서 오상아(吾喪我)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는데 다시 돌아가야만 살 수 있다는 미련함이 고난 속에서 끊임없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죽은 몸으로 장사된 내가 다시 산 것이다.

 

한국으로 가려 하니 갈 수 없는 죽은 몸이라는 현실이 엄습했다. 단돈 1불이 없으니 한 걸음도 문 앞을 나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동료 목사의 자녀 결혼식에도 못 갔다. 장례 예배에도 갈 수가 없었다. 사람 관계도 돈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끊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 관계가 끊어지니 이미 사회적으로 죽었음을 실감했다. 그렇게 죽었다면 당연히 장사되어야 할 텐데, 죽었다고 고백하면서도 다시 살아서 현실을 이겨내려고 얼마나 몸부림치면서 살아왔던가.

 

목사가 되면 당연히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다. 종은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종은 주인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된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고 굶으라면 굶어야 한다. 그게 종의 자세다. 그런데 주인 허락 없이 먹을 것을 훔친다든가 일이 힘들다고 마음대로 낮잠을 잔다든가 한다면 이미 종으로서의 자격은 상실된 자가 되듯, 목회가 힘들다고 종의 사슬을 끊어 버린다면 종으로 살아야 할 존재가 다시 주인이 되겠다는 망상 아니겠는가.

 

건너갈 수 없는 강을 건너 수십 년을 목회하고 은퇴한 목사들은 다시 오상아(吾喪我)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로 인해 살아왔던 모든 것을 또다시 장사 지내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교자의 길을 가야 한다. 목회 40년이 나의 훈장이 되고 내 이력이 된다면 결단코 다시 사는 삶은 없을 것이다.

 

다 버려야 한다. 다 무덤에 장사 지내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복음의 나팔수가 되어야 진정한 오상아가 되는 것 아닌가. 목회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진정한 목사의 자세가 아니던가. 은퇴는 이제 나를 장사 지내고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가라는 소명이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다.

 

적잖은 목사들이 죽고 다시 사는 말씀의 의미는 잘 알고 있고 또 죽어서 다시 사는 삶을 설교는 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모습은 하나도 죽지 않고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가. 설교는 설교로 끝나고 삶은 별도인 것 같다. 아무리 외쳐도 자기 고집과 생각은 옛 모습 그대로 가지고 교계 일을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아가 다시 살아나 끊임없이 교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현실을 보면,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이 실천하는 오상아의 삶이 성경 말씀을 능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늘 씁쓸하다.

 

나는 죽었다 그러므로 난 살았다. 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존재를 가졌다면 현실의 삶에서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 오상아(吾喪我)가 실현되는 삶이 진정한 목사의 길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상아를 실현해 본 사람은 오늘을 마지막 날인 것 같이 사는 삶도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한준희 목사(뉴욕목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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