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순복음뉴욕교회 영어권 교회, PIF 김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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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ㆍ2007-09-06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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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교회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2세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메아리처럼 들린다. 여기에 하나의 해답이 있다.
뉴욕지역에 있는 한인교회와 관련된 영어권 교회중 가장 성장한 교회는 순복음뉴욕교회 영어목회 교회인 PIF(Promise International Fellowship)이다. 지금은 250명이 출석하며 300명이 등록되어 있다. 주일 1시반과 수요일 오후 8시에 예배를 드린다.
PIF의 성장속에는 김성래 목사가 있다.
김성래 목사는?
PIF 담임목사인 김성래 목사(33)은 김남수 목사의 동생인 김남기 목사(커네티컷 한인선교교회)의 두아들중 장남이다. 김성래 목사는 순복음뉴욕교회에서 94년부터 인턴과 중고등부 전도사를 거쳐 2000년부터 PIF 담임을 맡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순복음뉴욕교회 2층에 위치한 사립학교의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으며, 임시적으로 중등부 영어권 학생을 담당하고 있다. 1인3역을 하고 있는 셈.
김 목사는 밸리포드 크리스찬 칼리지에서 학사를 프린스톤신대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어권 교회를 시작하다
순복음뉴욕교회는 맨하탄과 퀸즈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 40여명씩 출석하던 두 지역의 영어권 교회의 목회자들은 시너지 효과를 위해 맨하탄으로 교회를 합했다.
그러자 김남수 목사는 중고등부를 맡고 있던 김성래 목사에게 퀸즈지역 영어권 교회를 부탁했다. 김성래 목사는 7명의 청년들과 같이 PIF를 시작하여 25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김석래 목사는 “교회가 성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성장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7년동안 씨를 뿌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성장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인중 85%가 한인2세이며 15%가 타민족이다. 처음에는 한인들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타민족들이 늘어났다. 교인중 순복음뉴욕교회에 부모가 있는 2세들은 30%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 더 많다.
처음에는 경험도 없으며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어려웠다. 또 한번 교회가 없어진 후 다시 시작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뉴욕지역 타 한인교회 영어권 교회의 교인들은 많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김 목사는 2세사역이 도전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1세교회에서 영어목회를 하는 2세 목회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1세목회자들과의 의사소통과 이해. 김 목사는 성공의 포인트를 큰 아버지인 김남수 목사의 후원에서 찾는다. 김 목사는 “김남수 목사님이 많은 지원을 했다.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은 힘이 들었을 것이다”고 감사를 돌렸다.
2세들은 헝그리하다
2세들은 1세들과의 갈등, 1세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한국교회를 가지 않고 미국교회를 가려고 한다. 2세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김 목사는 “보기에는 안 그런 것 같지만 2세들은 영적으로 헝그리(Hungry)하다. 겉으로는 자신들이 교회와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도움을 주고 삶을 가이드 할 수 있는 교회를 찾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2세 목회자로서 2세 목회자들도 한인 영어권교회의 침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김 목사는 “먼저 2세 목회자들은 꾸준히 참지를 못한다. 목회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희생을 하고, 뼈를 묻어야 살아난다. 매번 요구만 하고 1세들을 욕하는 상황에서 2세 영어권교회의 부흥은 힘들다”고 말한다.
또 김 목사는 “1세 목회자들도 오픈해야 하지만, 2세 목회자들도 처음에는 훈련을 받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학교에서 처음 나오면 열정만 있고 머리만 너무 커진 상황이 될 수 있다. 나도 이제야 목회가 무엇인지는 조금씩 알게 되는 수준이다. 목회란 처음부터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고생을 하며 조금씩 목회의 경륜이 붙기 시작한다”고 사랑의 충고를 한다.
1세에 기반을 둔 2세 목회
김 목사는 “신학교를 나오면 기술을 가지고 나온다. 하지만 목회를 모르면서 잘난 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은 보기 싫다. 신학교를 막 나온 2세 사역자가 2-30년간 목회를 하면 어려움가운데 세운 교회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처음 목회를 하면서 생각한 중요한 포인트는 비록 영어권교회를 하지만 3살부터 70세 할머니까지 모든 한인 1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한 것. 그는 1세교회의 목회자가 아무리 미워도 그는 담임목사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원망이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없다는 것.
2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김 목사는 컨퍼런스를 많이 갔지만 사실 지금도 막막하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교회는 성장하지만 2세사역을 반드시 이렇게 하라는 공식은 없는 것 같다. 모든 교회가 상황이 다르니 절대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성서적인 진리는 모든 교회에 다 통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으로 비전은 순복음뉴욕교회의 특성을 살리고 싶은 것. 1세들의 열정으로 선교가 활성화 되고 있다. 이제는 2세들이 1세가 이루어 낸 선교를 뒷받침하려는 것. 1세들이 하드웨어를 세웠다면 2세들은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도울 수 있다.
설교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
그의 설교는 복음에 가슴이 설레일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기자가 그를 만나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설교를 듣고 난후이다.
그는 스스로 설교는 뭐라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김남수 목사가 “진짜, 설교를 하려면 10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정말 그렇다고 본다. 프린스톤에서 좋은 교수에게서 많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설교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또 성령의 역사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설교를 몰두하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한다. 설교에 대해 한가지 말을 할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오시면 설교자가 “God is good"이라고 한마디 말만해도 교인들이 은혜를 입는다고 김 목사는 말한다.
그는 "똑똑하지도 설교준비도 잘하지 못한다"라며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없는 설교는 빈캔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순복음 사립학교 디렉터로
2000년 시작된 순복음 사립학교에서 김 목사는 지난해부터 디렉터로 사역하고 있다. 김남수 목사의 어린이 교육비전에 따라 사립학교가 세워졌으며 성장하고 있다. 현재 Pre K부터 9학년까지 총 175명의 학생이 있다. 3년뒤면 12학년까지 전학년의 과정이 생긴다.
지식교육과 더불어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이 독특하다. 예를 들어 창조론을 가르친다. 또 성경공부가 과정에 있으며 매주 금요일에는 모든 학생들이 예배를 드린다. 현재 45%가 한인 학생들이다. 학년이 낮을수록 어릴수록 비용은 저렴하며 평균 월 비용은 488불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교육환경을 학생들에게 만들어 주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유능하고 신앙이 있는 교사가 있다. 학생들이 너무 많으면 교육에 힘이 드는데 학교는 학생 14명을 한 명의 교사가 가르친다. 또 교육환경이 좋다. 무엇보다 한국말이 통하는 교육디렉터가 있다.
앞으로 학교의 비전은 순복음뉴욕교회가 선교지에 세운 여러 학교들의 본부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위성방송으로 선교지와 동시에 강의를 할 수도 있다. 또 세계를 움직이는 학교로 발전하는 비전이 있다.
김성래 목사의 목회관
김 목사의 목회관은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가슴이라는 것. 어렵고 어두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와주는 목회를 하고 싶어 한다. PIF의 롤모델은 한인목회이다. 한인목회는 어려울 때도 선교의 손을 놓지 않았다. 2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김남수 목사는 3달에는 한번씩 PIF에서 말씀을 전한다.
그는 선배 목회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한다. 두분다 고생을 많이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부모님을 부르신 곳은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 아니라 어려운 곳으로만 불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아버지는 선교사로 나가시기 전에도 쉽지 않은 시골목회를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82년 아프리카에 가서 5년간 선교를 하셨다. 그것도 선교사가 없는 곳을 골라 갔다"고 설명했다.
김남기 목사는 미국에 이민을 와서도 워싱톤주에서 목회를 했는데 한인들이 많은 곳을 벗어나 교회를 세웠다. 4년 동안 목회를 한후 2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키고 자체교회를 세운후 후임을 두고 10여년전 동부로 왔다.
김남기 목사는 친구가 있다고 뉴저지로 안가고 커네티컷 한인이 많이 없는 곳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2가족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250여명으로 성장하고 자체 교회를 구입했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뉴욕지역에 있는 한인교회와 관련된 영어권 교회중 가장 성장한 교회는 순복음뉴욕교회 영어목회 교회인 PIF(Promise International Fellowship)이다. 지금은 250명이 출석하며 300명이 등록되어 있다. 주일 1시반과 수요일 오후 8시에 예배를 드린다.
PIF의 성장속에는 김성래 목사가 있다.
김성래 목사는?
PIF 담임목사인 김성래 목사(33)은 김남수 목사의 동생인 김남기 목사(커네티컷 한인선교교회)의 두아들중 장남이다. 김성래 목사는 순복음뉴욕교회에서 94년부터 인턴과 중고등부 전도사를 거쳐 2000년부터 PIF 담임을 맡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순복음뉴욕교회 2층에 위치한 사립학교의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으며, 임시적으로 중등부 영어권 학생을 담당하고 있다. 1인3역을 하고 있는 셈.
김 목사는 밸리포드 크리스찬 칼리지에서 학사를 프린스톤신대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어권 교회를 시작하다
순복음뉴욕교회는 맨하탄과 퀸즈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 40여명씩 출석하던 두 지역의 영어권 교회의 목회자들은 시너지 효과를 위해 맨하탄으로 교회를 합했다.
그러자 김남수 목사는 중고등부를 맡고 있던 김성래 목사에게 퀸즈지역 영어권 교회를 부탁했다. 김성래 목사는 7명의 청년들과 같이 PIF를 시작하여 25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김석래 목사는 “교회가 성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성장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7년동안 씨를 뿌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성장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인중 85%가 한인2세이며 15%가 타민족이다. 처음에는 한인들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타민족들이 늘어났다. 교인중 순복음뉴욕교회에 부모가 있는 2세들은 30%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 더 많다.
처음에는 경험도 없으며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어려웠다. 또 한번 교회가 없어진 후 다시 시작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뉴욕지역 타 한인교회 영어권 교회의 교인들은 많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김 목사는 2세사역이 도전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1세교회에서 영어목회를 하는 2세 목회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1세목회자들과의 의사소통과 이해. 김 목사는 성공의 포인트를 큰 아버지인 김남수 목사의 후원에서 찾는다. 김 목사는 “김남수 목사님이 많은 지원을 했다.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은 힘이 들었을 것이다”고 감사를 돌렸다.
2세들은 헝그리하다
2세들은 1세들과의 갈등, 1세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한국교회를 가지 않고 미국교회를 가려고 한다. 2세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김 목사는 “보기에는 안 그런 것 같지만 2세들은 영적으로 헝그리(Hungry)하다. 겉으로는 자신들이 교회와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도움을 주고 삶을 가이드 할 수 있는 교회를 찾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2세 목회자로서 2세 목회자들도 한인 영어권교회의 침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김 목사는 “먼저 2세 목회자들은 꾸준히 참지를 못한다. 목회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희생을 하고, 뼈를 묻어야 살아난다. 매번 요구만 하고 1세들을 욕하는 상황에서 2세 영어권교회의 부흥은 힘들다”고 말한다.
또 김 목사는 “1세 목회자들도 오픈해야 하지만, 2세 목회자들도 처음에는 훈련을 받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학교에서 처음 나오면 열정만 있고 머리만 너무 커진 상황이 될 수 있다. 나도 이제야 목회가 무엇인지는 조금씩 알게 되는 수준이다. 목회란 처음부터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고생을 하며 조금씩 목회의 경륜이 붙기 시작한다”고 사랑의 충고를 한다.
1세에 기반을 둔 2세 목회
김 목사는 “신학교를 나오면 기술을 가지고 나온다. 하지만 목회를 모르면서 잘난 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은 보기 싫다. 신학교를 막 나온 2세 사역자가 2-30년간 목회를 하면 어려움가운데 세운 교회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처음 목회를 하면서 생각한 중요한 포인트는 비록 영어권교회를 하지만 3살부터 70세 할머니까지 모든 한인 1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한 것. 그는 1세교회의 목회자가 아무리 미워도 그는 담임목사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원망이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없다는 것.
2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김 목사는 컨퍼런스를 많이 갔지만 사실 지금도 막막하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교회는 성장하지만 2세사역을 반드시 이렇게 하라는 공식은 없는 것 같다. 모든 교회가 상황이 다르니 절대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성서적인 진리는 모든 교회에 다 통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으로 비전은 순복음뉴욕교회의 특성을 살리고 싶은 것. 1세들의 열정으로 선교가 활성화 되고 있다. 이제는 2세들이 1세가 이루어 낸 선교를 뒷받침하려는 것. 1세들이 하드웨어를 세웠다면 2세들은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도울 수 있다.
설교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
그의 설교는 복음에 가슴이 설레일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기자가 그를 만나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설교를 듣고 난후이다.
그는 스스로 설교는 뭐라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김남수 목사가 “진짜, 설교를 하려면 10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정말 그렇다고 본다. 프린스톤에서 좋은 교수에게서 많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설교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또 성령의 역사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설교를 몰두하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한다. 설교에 대해 한가지 말을 할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오시면 설교자가 “God is good"이라고 한마디 말만해도 교인들이 은혜를 입는다고 김 목사는 말한다.
그는 "똑똑하지도 설교준비도 잘하지 못한다"라며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없는 설교는 빈캔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순복음 사립학교 디렉터로
2000년 시작된 순복음 사립학교에서 김 목사는 지난해부터 디렉터로 사역하고 있다. 김남수 목사의 어린이 교육비전에 따라 사립학교가 세워졌으며 성장하고 있다. 현재 Pre K부터 9학년까지 총 175명의 학생이 있다. 3년뒤면 12학년까지 전학년의 과정이 생긴다.
지식교육과 더불어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이 독특하다. 예를 들어 창조론을 가르친다. 또 성경공부가 과정에 있으며 매주 금요일에는 모든 학생들이 예배를 드린다. 현재 45%가 한인 학생들이다. 학년이 낮을수록 어릴수록 비용은 저렴하며 평균 월 비용은 488불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교육환경을 학생들에게 만들어 주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유능하고 신앙이 있는 교사가 있다. 학생들이 너무 많으면 교육에 힘이 드는데 학교는 학생 14명을 한 명의 교사가 가르친다. 또 교육환경이 좋다. 무엇보다 한국말이 통하는 교육디렉터가 있다.
앞으로 학교의 비전은 순복음뉴욕교회가 선교지에 세운 여러 학교들의 본부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위성방송으로 선교지와 동시에 강의를 할 수도 있다. 또 세계를 움직이는 학교로 발전하는 비전이 있다.
김성래 목사의 목회관
김 목사의 목회관은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가슴이라는 것. 어렵고 어두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와주는 목회를 하고 싶어 한다. PIF의 롤모델은 한인목회이다. 한인목회는 어려울 때도 선교의 손을 놓지 않았다. 2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김남수 목사는 3달에는 한번씩 PIF에서 말씀을 전한다.
그는 선배 목회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한다. 두분다 고생을 많이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부모님을 부르신 곳은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 아니라 어려운 곳으로만 불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아버지는 선교사로 나가시기 전에도 쉽지 않은 시골목회를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82년 아프리카에 가서 5년간 선교를 하셨다. 그것도 선교사가 없는 곳을 골라 갔다"고 설명했다.
김남기 목사는 미국에 이민을 와서도 워싱톤주에서 목회를 했는데 한인들이 많은 곳을 벗어나 교회를 세웠다. 4년 동안 목회를 한후 2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키고 자체교회를 세운후 후임을 두고 10여년전 동부로 왔다.
김남기 목사는 친구가 있다고 뉴저지로 안가고 커네티컷 한인이 많이 없는 곳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2가족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250여명으로 성장하고 자체 교회를 구입했다.
ⓒ 2007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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