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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과 문화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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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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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급진적인 종교개혁을 주장했던 재세례파(再洗禮派, Anabaptist)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아세례가 비성경적이라고 하여 다시 세례를 받는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첫 세례라고 하였지만 가톨릭교회 측에서 붙인 이름이 재세례파입니다. 그 당시의 법에 따르면 재세례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였습니다. 또한 재세례파들의 신앙에 따르면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국가로부터 독립해야 하며, 죄인을 처벌하는 것이 국가의 유일한 존재 이유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로운 전쟁을 행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도 반대했으며, 시민 선서를 하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이런 신앙 때문에 수천 명의 재세례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재세례파들은 중세 교회의 개혁을 목표로 삼지 않았고, 초대 교회의 제도와 정신을 복원하고자 하였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평등과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이들의 운동에서 생겨난 종파가 아미쉬파 후터파 메도나이트파들입니다. 17세기 이후 종교적 탄압을 피해 유럽에서 미국과 카나다 등으로 이주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랭케스터에 가면 아미쉬 마을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동차나 전기, 전화 등의 현대문명을 거부하며, 종교적 이유로 외부세계로 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켜왔으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여 군대에 가지 않고, 공적연금을 수령하지 않는 등, 정부로부터 어떤 종류의 도움도 받지 않습니다. 또 대부분이 의료보험에 들지 않습니다. 주로 단순하고 소박한 아무런 장식이나 액세서리도 없는 검은색 계통의 옷만을 입고, 대부분 전통적 방식의 농축 산업에 종사합니다. 몇 차례 그곳을 방문하였지만 그들의 독특한 생활상은 볼 때마다 신기하기만 합니다.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머리핀이나 브로치(brooch)나 옷의 단추도 없고 일체의 액세서리를 하지 않습니다. 화장도 안 하고 액세서리나 색깔도 다 사치로 여깁니다. 지나친 개발과 과소비로 인하여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고통을 당하는 이 시대에 아미쉬나 메도나이트들과 같은 생활 태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문명의 이기를 탐닉하는 이 시대의 문화를 반성하게 합니다.

나는 모든 문명을 거부하는 그와 같은 태도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문명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차가 있고, 천연가스를 이용한 냉장고가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에게도 발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정도의 차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지나친 개발과 과소비로 인하여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미쉬 같이 생활하는 것도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28절을 흔히 문화명령이라고 합니다. 이 문화명령에는 그야말로 문화, 즉 모든 학문과 자연과 과학과 사회를 발전시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문화명령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주어진 명령이기 때문에 타락한 이후에는 이 명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어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명령보다는 전도명령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문화명령과 전도명령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전도명령은 전도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은 복음을 전하라는 것 뿐 아니라, 밭 갈고 논을 갈아 곡식을 심고 김을 매는 일과,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뿐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작곡하고, 전기를 수리하고, 길을 만들고 보수하고, 컴퓨터를 관리하고, 마당을 쓸고 음식을 만드는, 그야말로 인생사의 모든 일이 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주님의 뜻을 따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오늘날의 기독교는 창조 때 주신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등한시하여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당신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맡아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문화명령을 통하여 당신의 창조 사역을 계속하신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일로 하나님의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지금도 계속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하나님께서 인간을 설계하실 때“우리의 형상대로”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겉모양이 아니고 다스리는 주권을 의미합니다. 인간을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주권적 존재로 만드셨음을 뜻합니다. 톱은 나무를 자르는 데 사용합니다. 톱을 바늘로 쓸 수는 없습니다. 톱을 만든다면 나무를 자르는 데 효과적으로 자를 수 있도록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만물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는데, 그 잘 다스리도록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라는 만드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4:5절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형상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인데,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 하지 말고 지체의식을 가지고 선하고 진실하게 모든 사람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지체로 설명하는 것도 단순한 비유가 아니고 거기에는 인간 본래의 사명과 목적을 깨우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화명령을 주신 후 당신의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에는 창조기사 이후에 인간이 그 명령을 어떻게 수행했는가를 보여주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이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대목에서는 문화명령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장에서 아담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4장에 가면 그의 아들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타락한 인간의 특징을 드러내는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5장은 아담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고, 6장에 가면 세상은 온통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이 만든 문화라고 할 수 없는 타락한 문화의 특징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바벨탑을 쌓으므로 하나님을 대항하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서 인간이 처음 창조될 때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 모든 것을 잘 못 다스리고 잘 못 돌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스리라는 말의 뜻은 통치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돌보라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스리다”를 뜻하는 라히브리어 “롸다”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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