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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못되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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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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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의 “사랑”에 나오는 의사 안빈은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석가여래의 사상과 교훈을 몸소 실천하려 하였고, 그의 아내 옥남은 그러한 남편을 하나님 같이 믿습니다. 간호원 석순옥은 그에게 감화를 받아 교원 생활을 접고 그의 병원에 자원하여 들어갔습니다. 안빈에 대한 석순옥의 지순한 사랑과 아내 옥남의 남편에 대한 하늘같은 믿음을 통해 독자들은 안빈의 사람됨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춘원이 성산 장기려를 안빈의 모델로 삼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춘원과 성산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춘원은 성산을 평하기를 “그는 성인이 아니면 바보다.”라고 하였는데, 한 번은 춘원이 성산에게 직접 “당신은 바보다.”라고 하자 성산은 혼자 말처럼 “내가 재대로 살기는 살고 있는가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복음병원을 운영할 때 직원 월급을 직급에 따라 주지 않고 가족 수에 따라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가족을 북에 두고 왔기 때문에 가족이 없어서 원장이지만 월급을 가장 적게 받았습니다. 어느 날 가톨릭의대에서 강의료 6개월 치를 선불로 주었는데 집으로 오다가 길에 앉아 구걸하는 불쌍한 거지에게 다 주어버렸습니다. 거지가 거액의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그를 연행하여 조사하였고, 그가 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성산은 경찰서까지 가기도 하였습니다. 입원 치료비가 없어 퇴원을 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조용히 “내가 오늘 밤에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의 제자 김윤경 박사가 북한과 중국 당국의 양해를 얻어 북한에 살고 있는 그의 아내를 중국에서 만나도록 주선하였지만 그는 그 기회를 기어코 사양하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내와의 만남을 사양한 이유가 기가 막혀 가슴이 먹먹합니다. “내가 그런 특권을 누리면 다른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혹시 아내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일로 서울 의대의 교수인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아내에 대한 그리움의 아린 가슴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의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은 1990년 6월에 쓴 “망향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여보,….” 성산은 돈에 대해서도 바보였고, 사랑에 대해서도 바보였습니다.

신앙적으로는 무교회 주의자인 김교신과 함석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 물질과 외형과 통계와 음악과 예술 등으로 평가되는 교회를 싫어하고 비판했지만 보수적인 한상동 목사나 함석헌 선생과의 교분을 소중히 여겼던 것으로 보아 신앙의 정통성(Orthodoxy)의 문제보다는 신앙의 정체성(Identity)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는 신앙과 삶에서 언행일치, 신행일치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으로 굴절된 삶으로 비난받는 이 시대에 경건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나 사회의 부패를 지적하는 일에 열을 올리지 않았고, 개혁을 소리 높이 외친 적도 없습니다. 인권이나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한 일도 없습니다. 테니스를 좋아했던 것을 보면 수도사처럼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개선하는데 누구보다도 더 큰 기여를 하였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성산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바보가 되어 바보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바보처럼 살았던 그의 삶이 인권과 민주화와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권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인권을 존중했고 약한 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혼인의 신성함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재혼을 권유하는 여러 사람들의 권유에 “결혼은 오직 한번 하는 것이다.”는 자신의 신념을 따라 40년이 넘도록 홀로 살아 혼인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백편의 설교보다 영향력이 클 듯싶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는 무교회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모두에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복음병원 옥상에 있는 스무 평짜리 옥탑 방에서 무소유로 살다가 갔습니다. 성산 장기려는 바보처럼 사는 것을 예수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을 돌려대는 것,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해 주는 것, 겉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는 것, 베푸는 것, 차라리 손해 보는 것이 낫다는 것, 무엇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가장 어려운 사람을 먼저 사랑하는 사랑의 경제학 등 이 모두를 예수님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그를 “바보”라고 하는 것에 매우 만족해하였습니다.

나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 너무 계산이 빠르고 이기적이라서 사람들에게 한 번도 “바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가끔 모임에 가면 선물이나 기념품을 나눠 주는데, 모인 사람들보다 준비된 선물이 모자란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도록 양보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나에게까지 안 돌아올까 봐 마음이 쓰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면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 금방 화가 목구멍을 넘어옵니다. 비판하는 일에 열을 잘 내기 때문에 “이빨”, “칼”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착하다.”혹은 “좋은 사람이다.”는 말은 별로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착한 사람보다 똑똑한 사람으로, 따뜻한 사람보다 냉철한 사람으로 드러나기를 바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똑똑함이나 냉철함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려는 교만 때문에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일에 실패하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보처럼 사셨고, 제자들에게 바보처럼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보의 원조이십니다. 그런데 나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온갖 꾀를 다 부리고 잔머리를 굴리며 살았던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한국교회사에도 여러 유형의 탁월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박형룡, 박윤선과 같은 신학자들이 있고, 길선주, 이기풍, 최봉석과 같은 부흥운동가들이 있고, 주기철, 한상동과 같은 신앙운동가들이 있고, 손양원과 같은 순교자가 있고, 김교신, 함석헌과 같은 무교회주의자도 있고, 유재기, 김용기와 같은 농촌운동가도 있고, 그 외 여러 분야에 여러 훌륭한 분들이 있지만 유독 성산 장기려를 생각하면 나는 바보가 못되어 부끄럽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 행 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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