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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과 보상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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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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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선물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에 몰두한 프랑스의 인류학자요 사회학자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Give and Take’로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고받는 선물 속에도 의무감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선물을 주고받는 교환의 형식은 자발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실상 철저히 호혜성(互惠性)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후기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의 사상적 원천이 되고 있는 그의『증여론』에서 호혜성이란 타인에게 선물을 줄 의무(증여), 주는 선물을 받아야만 할 의무(수혜), 받은 선물에 대해 무엇으로 든 되갚아줄 의무(답례)-즉각적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의무-의 구성을 지닌다고 하였습니다.

자발적인 행위로 포장이 되어 있지만 이면에는 사회적으로 해야만 하는 의무가 존재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상당한 갈등이 유발된다고 하였는데, 고금을 막론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의 총체적 현상인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몽테뉴가 일찍이“거저 받은 선물만큼 비싼 것은 없다”고 촌철살인의 일갈로 보험성 선물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지만 요즘도 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정치 사회 경제적 대형 부정 사건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제가 주고받은 것이 선물이냐 뇌물이냐 하는 것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내가 어릴 때는 선물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받아 보지 못했으니까 물론 선물을 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가니까 사람들이 생일 선물을 주고받고, 또 성탄절에는 교회에서 선물교환도 하고, 수고한 성가대원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생전 처음 교회에서 선물을 받아보았습니다. 그 때만해도 선물은 참 귀했습니다. 물론 요즘도 정성어린 선물은 귀하고 그렇게 정성이 깃든 선물이 아니더라도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물이 그 때처럼 귀하지 않습니다. 물론 요즘도 귀하고 값진 선물이 있지만 그저 성탄절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성의 없는 선물은 좀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갖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이라고 설명하기엔 오늘날의 선물의 의미가 너무 세속화되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선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성경이 구원을 선물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간에게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선물은 악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선물이 보험성의 성격을 띨 때 뇌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금품을 뇌물로 규정했지만 사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합니다. 주고받을 때는 선물이든 것이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서 선물의 진가가 뇌물로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가가 어려운 소년 소녀 가장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는 공직자에게 주는 선물은 보험성 선물로서 그 진가가 뇌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가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거의 모든 부정부패는 보험성 선물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러한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을 정해 놓았습니다. 연방의원은 연 100달러 총액 안에서 50달러 미만의 선물만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미국인들의 선물은 아주 소박합니다. 주로 과자나 비누나 양초나 초콜릿 같은 것을 선물합니다. 미국의 세무당국이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는 기준을 25달러로 딱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25달러가 넘어가면 뇌물로 취급합니다. 모든 선물이 25달러가 넘는가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을 때 그것이 선물이냐 뇌물이냐를 판단하는 한도액이 25달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정이 보험성 선물을 다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물 문화를 검소하게 하는 데는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편 보험성 선물은 선물이기 보다는 뇌물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해야 할지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 주인의 재물을 낭비한 청지기가 직분을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의 일부를 탕감하여 줌으로 후일을 도모한 것에 대하여 주인이 칭찬하였다고 하였고, 주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불의의 재물이란 부정직하게 얻은 재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의 보화”에 반대되는 세상 재물을 가리킵니다. 그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라는 교훈입니다. 선한 행위로 구원 얻는 것은 아니지만 선한 행위에 대한 하늘의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마르셀 모스는 인간관계를 호혜성(互惠性)을 바탕으로 한 ‘Give and Take’로 파악했고, 몽테뉴는“거저 받은 선물만큼 비싼 것은 없다”고 하여 보험성 선물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성경은“거저 받은 선물”과 그 본을 따른 Give and Take가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모습임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자에게 줄 때도 거저 주어야 합니다. 받기를 바라고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행이나 선물에 대한 보험성의 기대를 가져도 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선행은 이미 받은 것에 대한 보답차원에서 행하는 것이므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사랑과 선행을 장려하는 차원과 또 은혜 차원에서의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기에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많은 세모에 그리스도인들은 소중한 선물이 세속적인 보험성 선물이 되지 않도록 사려 깊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마 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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