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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물리적 환경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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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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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그의 “전쟁과 평화”에서 평화를 전쟁과 대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작품을 통해 전쟁이라는 환경도 진정한 평화는 빼앗을 수 없음을 역설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 1805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유럽을 석권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러시아 군인으로 전쟁에 출전한 청년 공작(公爵) 안드레이 포르콘스키는 아우스테르리쯔의 결전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문득 제정신이 들어 눈을 떴을 때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이 너무나도 광활하고 장엄함에 그의 마음이 크게 감동하여 “어째서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을 보지 못하였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렇고말고! 이 넓고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이 하늘 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중얼 거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기의 야심과 명예욕, 위대한 인물로 숭배하고 있었던 나폴레옹 등이, 사실은 보잘 것 없이 사소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가 쓰러져 쳐다본 광활하고 장엄하고 푸른 하늘은 영원을 상징하고, 그것에 비교하여, 이 지상의 영광이라든지 욕망 따위가 극히 사소한 것으로 느껴져, 안드레이의 인생관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사실 평화입니다. 개인과 집단과 국가 간의 모든 분쟁과 갈등도 결국은 평화를 지향합니다. 심지어 전쟁까지도 평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반드시 거창한 국제관계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교회에서도 평화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 평화는 누구나 필요로 하고 또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내기 때문에 평화를 이루는데 기여하지 못합니다. 또한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이루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고 꼭 평화를 깨는 쪽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평화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추구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 평화는 하나님께서 이루려고 하신 목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평화를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늘 소원하신 것도 평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사는 언제나 “평안할 지어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평화는 반드시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하늘나라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 평화가 특징이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는 하나님의 뜻이요 인류의 사명입니다. 진정한 평화만 있다면 다른 것은 조금 부족해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든 것이 풍족해도 평화가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환경을 통해서도 평안을 주시지만, 좋은 환경을 잃어도 평화를 잃지 않게 하십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염려는 환경 때문입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잠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활동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안정과 평안을 누리며 살지만 그런 것들을 잃게 되면 평화도 잃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안정과 평화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에 의아했었지만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에 놀라게 됩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불안합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가경제부도위기가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는 비단 그리스나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부족한 자원과 식량도 무기화 되고 있어서 많은 나라가 안보적 차원의 정책으로 대응합니다. 게다가 자연재해와 대형 사고와 전쟁과 폭력이 세계 곳곳에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가족을 잃고 직장과 땅을 잃고 있습니다. 농촌과 어촌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가 도시 빈민이 되고, 도시에서 직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노숙자가 됩니다. 해수면이 높아져서 바다가 저지대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이들의 집과 어장들을 삼켜버렸고, 국가들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식량을 생산하던 농부는 더 이상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진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이들도 많습니다.

도무지 내일을 낙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선인과 악인의 밭에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지만, 홍수와 가뭄과 지진과 해일과 전쟁과 폭력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평화를 주시며 그것들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들을 빼앗습니다. 성경은 사단이 의도하는 것은 단 하나,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경우를 통해 볼 때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것을 빼앗습니다. 사단은 평안한 가정과 교회에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다가 지리멸렬 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사단이 우리의 물리적 보장을 빼앗아가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모든 좋은 것들을 잃어도 평안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좋은 환경이 망가져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믿음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면 우리는 좋은 환경을 잃어도 평안을 잃지 않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환경을 통하여도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지만, 단지 좋은 환경만으로 평화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환경을 통하여도 평안을 주시지만 좋은 환경을 잃어도 평안을 잃지 않게 하시고 누리게 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 시 4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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