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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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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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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거의 모든 지식은 착한 것과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 특히 대학 교수가 사기를 치거나 불륜을 저지르면 사람들은 배운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며 분개해 합니다. 지식인들에게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는 아직도 18세기 수준입니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지식이 윤리와 도덕, 즉 사람답게 사는 착함과 관련이 깊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지식은 착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대학 교수가 파렴치한 죄를 짓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현대의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착하고 선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 배우고 훈련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의 대형 범죄는 지도층 인사와 지식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지식의 요람이라고 할 대학이 시장논리에 지배되는 것도 같은 요인 때문일 것입니다.

그 같은 이유와 요인에 대하여 분석할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의 지식인에 대한 낙후된 기대가 지식인들로 하여금 위선적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지식인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하급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명예와 존경까지를 당연히 자기들의 몫이라고 여기는 위선은 현대 정신과 가치관이 만들어 낸 병리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무턱대고 지식인들을 존경하지 않지만 아직까지 지식에 아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위선이 오히려 존경과 인기를 얻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날 지식인이었던 선비도 인기와 돈에 자유롭지 못했지만 오늘날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식과 함께 사람답게 착하고 선하게 사는 것도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가난하게 되어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하급 가치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국에는 저축은행 비리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검찰총장이 “저축은행 수사를 끝까지 수행해 서민 피해를 회복시키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 묻은 개가 떠올라 낭패감이 더할 듯싶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어느 나라에서든지 금융권의 부정이나 비리를 척결하는 것이 검찰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입니다. 금융권의 부패의 고리가 그만큼 복잡하고 정부 고위층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사법적 잣대만으로는 다스리기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금융권에서 천문학적인 사기와 부정이 저질러져도 정치와 사법계와 종교계까지를 압도하는 “경제성장과 안정”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누가 될까싶어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은행을 턴 강도보다 나쁜 죄인도 처벌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정부가 수습을 위해 수조원의 국민 혈세를 쏟아 붓는 실정입니다.

이 메가톤 급 부정과 부패에 관련된 사람들 중에 배우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모두가 많이 배운 자들이고 지도층 인사들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축은행 부정은 고위 정치인들과 부정을 감독하라고 세워 놓은 감사원과 금융감독원까지 얽히고설켜서 만들어 놓은 풀기 어려운 고차연립방정식인 셈입니다. 금융사고의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에게로 돌아가고 문제를 일으킨 새님들은 기업에서 정가에서 대학에서 심지어 교회에서 경제적 이익과 더불어 명예와 존경까지를 알뜰히 챙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범법자를 처벌하는 법이 솜방망이에 불과한 것도 문제이지만 사회나 교회가 아직도 그런 위선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거짓과 위선의 죄는 법으로 다 다스릴 수 없고 최소한의 인간됨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됨의 교육이 실종된 상황에서 인간됨의 사표가 되어야 할 지식인이 위선에 가장 취약하다는 사실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에 더욱 어렵게 합니다.

거짓과 위선에 더욱 취약한 사람들은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인들 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여러 종교 중에 윤리와 도덕을 가장 강조한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치 또한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은 오늘날의 사회정신과 가치관을 비판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그 어느 누구도 선하지 못합니다. 선하지 못한 인간이 선하게 보이는 것은 위장술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철저히 거짓되고 무능하다고 가르치는데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이 의롭고 정직하며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를 기대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위선자입니다. 미워하면서 미워하지 않는 채 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채 하고,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채 합니다.

어느 정도의 위선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지나치지 않는 위선은 염치가 되어 오히려 유익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 진심은 아니지만 좋게 말하는 것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위선이지만 그런 위선까지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행동이나 말이나 태도는 삼가야 할 위선입니다. 교회 지도자들 중에도 노골적으로 돈을 탐내는 이들이 없지 않겠지만 돈보다는 명예와 인기를 탐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그 점에 있어서 매우 취약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겸손하고 희생적이어서 칭찬을 듣는 것이야 장려해야 할 일이겠지만 인기와 인정을 얻기 위해 거짓과 과장과 위선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인기와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사도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무모하게도 성령님까지 속일 수 있을 것으로 착각을 하였으며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 되어 불행하게 죽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탐낸 것은 바나바의 인기였습니다. 바나바의 본래 이름은 요셉인데 사도들이 그에게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바나바의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서 가난한 자들이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고 불렸던 것인데 그 이름이 그에게 합당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자기의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그 결과 온 교회는 그를 칭찬했지만 그는 자기를 들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형식적으로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도록 교회에 내 놓는 것처럼 했지만 자기 몫을 따로 챙겼습니다. 선행은 자원하여 하는 것이고 강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삽비라에게 그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물질적으로도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기를 원하는 욕심은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치의 질서에서 볼 때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인기는 하급 가치에 속하고 사랑과 정의와 희생과 봉사 같은 것은 고급 가치에 속합니다. 고급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희생이 따르고 하급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위선이 동원됩니다. 말로는 고급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하급 가치를 추구하는 자는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도덕 감정론”에서 양심의 소리라는 것도 타인이 자기를 평하는 것의 반향(反響)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는 인간의 양심까지도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양심을 믿어서도 안 되고 오직 절대 권위인 객관적 계시의 말씀에 의존하여 자신이 위선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가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바나바는 그 점을 인식하고 자기보다 능력 있는 바울을 찾아가 데려다가 동역을 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유명하게 되었고 자기는 무명의 인사로 자처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고급한 가치는 교회요 복음이었기 때문에 바울의 유명세를 탐내지 않았습니다. 바나바는 신앙과 인격과 행동이 일치했습니다. 바나바도 위선에 취약하기는 우리와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성령을 좇아 착하고 겸손하여 그 취약점을 극복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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