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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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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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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대생이 십자가 목걸이를 한 것을 보고 교수가 물었습니다. “이봐, 학생,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했지 언제 목에 걸고 다니라고 했나?” 그러자 학생이 재치 있게 “교수님, 가끔은 질 때도 있어요. 십자가가 등 뒤로 넘어가기도 하거든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여대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도사들처럼 경건하게 살지도 않으면서 십자가를 액세서리로 하고 다니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두 가지 십자가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면 누구나 지고 가야할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신자가 믿는 복음을 상징하고, 신자 각자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신자 각자가 저야 할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와 깊은 관련이 있긴 하지만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어느 누구도 대신 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군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에게 강제로 대신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비록 강제로 진 것이긴 하지만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으로, 예수님의 짐을 덜어드린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구레네 시몬도 로마 군인들도 예수님의 짐을 덜어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 형벌의 원칙은 십자가에 달릴 죄수로 하여금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까지 형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군인들이 임의로 예수님이 지고가야 할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지고 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한 것은 예수님이 고문을 심하게 당하여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십자가를 골고다까지 운반할 책임이 있고 예수님은 그것을 운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레네 시몬에게 지고가게 한 것입니다. 만약 구레네 시몬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군인들이 십자가를 골고다까지 운반했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레네 시몬이 헌신적인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성경에는 일체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한 뜻을 구레네 시몬이 실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당시 로마제국의 권력에 의해서 징집된 것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도 대신 질 수 없는 십자가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기 때문에, 만약 구레네 시몬이 자원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다고 해도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에 동참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 누군가가 예수님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해도 그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사하는 대속의 죽음이 될 수 없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은 예수님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실 때 분명하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기 십자가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십자가를,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기 십자가에 대한 오해가 또 있습니다. 자기의 인생고를 십자가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에 대한 또 다른 오해입니다.

신자들 중에는 벗어버리기 어려운 특별한 문제를 십자가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만약 십자가를 그렇게 생각하면 그 어려움이 사라지게 될 때 십자가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난치병이나 사업의 실패나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을 십자가로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가 있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35절에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는데, 3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직후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주님의 제자가 된 자들이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고 동기와 대상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질병이나 실패나 좋지 않은 인간관계나 가난이나 어려움 같은 것이 십자가가 아니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불이익을 말합니다. 그냥 고생하는 것이나 질병이나 실패 같은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자기 목숨을 “잃으면”라는 말씀은 어쩌다 실수를 해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 잃을 것을 예상하고 각오하고 예수를 믿고 복음을 위하다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다 순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 즉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고 복음을 위하다가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고 참되고 바르게 예수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믿다가 어떤 이들은 실제로 순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순교하지 않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죽는 것도 각오한 태도로 산다면 비록 순교를 하지 않아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십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일차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곧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새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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