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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은 양심을 마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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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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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아담의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순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또한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도 개인보다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더 잘 순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개인과 집단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 인간 행복에 기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는 고통이 찾아 왔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연이 가져다주는 고통입니다. 즉 자연재해는 인간에게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태풍, 지진, 홍수, 전염병 같은 것은 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의 악이라고 하였습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자연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많이 극복이 되어가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연이 가져다주는 재난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댐을 쌓아 홍수와 가뭄을 막고, 예방약을 개발하여 질병을 막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여 추위와 더위를 막고, 동물과 해충들의 공격으로부터의 피해를 극복해 가고 있는데, 인간의 문명은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고통의 원인은 인간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에 대하여”라는 그의 책에서 모든 인간 고통의 5분의 4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농노의 아들이 장군의 개를 괴롭혔다 하여 그 장군은 그 아이를 부모가 보는 앞에서 한 겨울에 발가벗겨 놓고 개로 하여금 물어뜯어 죽게 합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콜린 월슨은 “인류의 범죄역사”(A Criminal History of Mankind)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고대 아시리아의 피에 굶주린 사디즘(sadism)에서 시작하여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근대의 계획적 범죄, 그리고 현대생활의 스트레스와 긴장의 상징적 표출인 성범죄와 연쇄살인 등 인간의 다양한 범죄양상을 리얼하게 해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아이에게 권력을 준다면, 그 아이는 세계를 파괴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범죄성을 지름길을 택하려는 인간의 유치한 성향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 있든지 빼앗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철저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도 인간의 악함은 인간의 범죄 때문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악이 생겨났고 그 악은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옛날에 비하여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고통을 인간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래 창조질서에서는 인간관계와 집단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순종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범죄 한 이후 인간의 악함은 인간관계와 집단을 통하여 점점 더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요점은 첫째, 사회 집단의 도덕과 사회적 행동은 개인의 도덕과 행동보다 현저하게 도덕성이 떨어지고 저하 된다는 것, 둘째,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를 구별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 셋째,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도덕적인 사람들까지도 자기가 소속된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기적이 되기 쉽다는 것, 넷째, 개인적인 덕목의 수행과 실천만으로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은 Karl Marx의 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에 한 때 한국에서는 문교부 지정 금서로 취급받았습니다. 이 책의 이론적인 면은 어느 정도  마르크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미국에서 니버만큼 공산주의를 효과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충격적인 것은 인간과 집단을 다 비도적이라고 하였는데 개인보다 집단이 더 이기적이라고 한 점입니다.

책 제목은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이지만 사실 그는 사석에서 그 책 제목을 “비도덕적인 인간과 좀 더 비도덕적인 사회”라고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 책 부제가 ‘윤리와 정치에 관한 연구(A Study in Ethics and Politics)라고 한 것을 보면 집단 간의 관계에서는 윤리가 있을 수 없고 투쟁과 타협의 정치만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개인도 이기적이지만 이기적인 개인이 집단을 이루면 그 개인들의 이기심을 합친 것보다 집단이 되었을 때의 이기심은 몇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가끔 타인의 이익을 배려할 수도 있지만 집단은 그럴 능력이 전혀 없으며 심지어 개인의 비이기적인 충성마저 집단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활용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집단이 이렇게 철저히 이기적이라는 지적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인들은 정직하지만 정직한 일본인들이 일본이라는 국가 집단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 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이 되고 악하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고 그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집단도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인데 그래도 어느 정도의 이타심과 양심이 있는 개인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 어떻게 그렇게도 이기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고만을 많이 하였습니다.

꽁뜨나 칼 막스를 비롯하여 인간 집단의 그 독특한 생리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는 많지만 집단이 개인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니버의 통찰은 나에게는 처음이었고 또한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개인이 집단에 속하여 집단의 이름으로 행동하게 되면 일단 양심도 얼굴도 가려지게 되어 개인이 철저히 익명적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도 이기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는 이름과 체면과 사회적인 지위와 인간관계를 생각하여 도저히 할 수 없는 이기적인 말과 행동도 집단의 이름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정당화 될 수가 있습니다. 국가를 위한다면 테러가 충성이 되고, 국가를 위한다면 이기심도 애국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그렇게도 살벌하고 유치하게 싸우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교회라는 집단에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감춰지기 때문입니다. 집단에 양심과 얼굴을 감추고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을 방패삼아 온갖 나쁜 행동과 비난과 정죄와 욕설과 저주까지도 거침없이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집단에 속하였고 우리의 행동과 말이 집단을 위하는 것일지라도 반듯이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한 것은 그 집단에 속하므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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