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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 물린 말에게도 채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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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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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에게는 재갈을 물리고 소에게는 코뚜레를 뀁니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고 소에게 코뚜레를 꿰는 것은 그것들이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에게 재갈을 물리고 소에게 코뚜레를 꿰어도 또 채찍이 필요합니다. 재갈을 물린 말이나 코뚜레를 한 소는 고삐를 잡아당기면 상당히 고통스러운데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때를 위해 채찍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채찍은 소나 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람은 어릴 때만 채찍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어린아이에게 채찍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든 어른에게는 채찍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가 성년이 되면 말을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불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칼이 무서운 줄도 모릅니다. 칼을 가지고 놀려고 하는 아이에게 “안 돼, 위험해, 아야 한다, 손 벤다.”라고 해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말을 안 들을 때는 불이 무서운 것과 칼이 무서운 것을 체험을 통해서 깨닫게 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채찍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불에 데는 것이나 칼에 베는 것보다는 채찍에 한 대 맞는 것이 낫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채찍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육에서는 아이들에게 채찍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계몽주의 이후 낙관론이 지배적일 때 사람들은 아이들을 8살까지만 잘 교육하면 좋은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단 교육학적인 이론이 아니더라도 강조되어야 할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교육만으로 인간을 좋은 사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교육지상론입니다. 그러한 신념은 특히 가톨릭교회가 강조하여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그런 교육지상론을 믿는 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것을 믿는 이들도 적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가치관의 변화로 교육이 좋은 사람 만드는데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믿지는 않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반성경적인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여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만을 힘쓴다면 능력보다 선과 의가 중요함을 채찍으로 가르치십니다.

구약에 나오는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하여 사는 20년 동안에 외삼촌의 딸들과 결혼도 하고 많은 자녀도 낳고 재물도 많이 모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인색하고 몰인정한 사람이라서 부당한 일을 숱하게 당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게 하시고 야곱 덕분에 라반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그곳 밧단 아람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없어서 외삼촌의 집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정을 붙이고 살 수 없어서 도망쳐 나왔지만 그것은 야곱이 그곳을 빠져나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도망쳐 나오는 야곱의 방법은 옳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나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살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야곱의 의무입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을 도망 나오는 길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또한 그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복수하러 달려 나온 형 에서를 만나는 사건에서도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보호하셔서 외삼촌이나 형이 야곱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왔지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입장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야했고, 야곱은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야할 곳이나 야곱이 돌아가야 할 곳은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약속한 곳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심도, 야곱으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심도 다 그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에 있어서 지역적 구별이나 민족적 구별은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구별을 위한 방법이고 수단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목적이라면 가나안 땅이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구별은 수단이고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이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공식을 외우다보면 나중에 원리를 알게 되는 수학처럼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을 따라 살다보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이라는 울타리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구별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사용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간섭과 지키심으로 외삼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형과도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과 약속한 벧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에 아무 방해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하고 난 후 야곱은 세겜 성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성의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 일이 야곱의 온 가족들에게는 근심거리가 되었지만 하몰은 야곱에게 통혼할 것을 제안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분노를 속으로 감추고 그들의 제안에 응하는 척 하다가 잔인한 보복 살해를 하였고 야곱은 가나안 사람들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자식들의 보복행위를 나무랐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과의 통혼의 위협이 어린 딸의 인생이 망가지는 사건을 통해 다가왔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곳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심으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때 야곱은 온 가솔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우상인 모든 신상을 버리고 사치한 귀고리를 버리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하고 거룩한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가족들에게 신상과 사치물을 제하여 버리도록 명령했습니다. 채찍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가르칩니다.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잠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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