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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를 좇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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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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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일에 웃고 싫은 일에 화를 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인격의 수양이 된 사람은 좋다고 경박스럽게 웃지 않고 싫다고 즉각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조금만 좋아도 경박스럽게 웃고 싫으면 즉각 싫은 것을 표정으로 또는 말로 표현하고 맙니다. 그러는 자신이 늘 맘에 들지 않아서 나도 남들처럼 하고 싶은 말도 참고 감정 조절을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늘 실패하고, 나의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러한 나의 수준 때문에 좋은 친구를 많이 잃은 것을 못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많은 친구들과 폭넓은 교제를 통하여 얻을 수 있었을 유익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나의 모자라는 부분들이 자신에게 아픈 경험으로 교훈이 되어 조금이나마 신앙과 인격의 성숙을 위해 노력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성경의 가르침에 어렴프시 눈 뜨고 개혁주의 신학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의 눈에는 인격적으로 폭 넓고 존경할 만한 분들은 언제나 개혁주의를 비껴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이 용납하지 않는 문제들까지 포용하므로 성경보다도 자신들이 더 성경적이라는 주장을 하는 셈입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절대 진리를 세속화 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폭 넓은 복음주의 권 안에는 신학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의 경향을 지닌 분들 중에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은 반면 보수주의 권 안에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성경과 교리와 신학에 무지하고 무례한 이들이 유난히도 눈이 많이 띄었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반응은 나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어느 왕이나 지도자도 받지 못했던 관심과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격이 소탈하고 소박하며 겸손했고 무엇보다 욕심이 적었던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연소 추기경이 된 것을 보면 그분의 인품과 실력도 출중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계각층으로부터의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추모하는 모습은 고인이 평소에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말해 주었습니다. 물론 전 세계를 포괄하는 가톨릭교회를 배경으로 하고 결혼도 하지 않는 사제였기에 가족부양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이 사심 없이 덕을 쌓기에 남다른 조건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신학적으로 폭이 넓은 가톨릭의 유연성은 절대를 거부하는 시대정신에 깊은 인상으로 어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자라면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평가와 추모는 결코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올 곧은 개혁주의 신학은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물론이거니와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로부터도 냉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시대만 탓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와 안목은 너무나 절실합니다. 내가 우려하는 바는 넓게는 복음주의 권 안에서 조차 존경받는 지도자를 배출할 토양이 극도로 산성화 되고 피폐화되었다는 점입니다. 학력 좋고 설교 잘 하는 목사가 소위 인기를 끄는 풍토에서는 존경 받는 지도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규모 면에서 세계 랭킹 10위 권 안에 든 교회가 많고 인기 있는 지도자도 많지만 존경 받는 지도자가 얼마나 될지는 회의적입니다. 지금 개신교계에서는 존경 따위(?)는 요구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인기와 실력(?)만 요구됩니다. 이것이 오늘 날 기독교가 직면한 참담한 현실입니다.

보수주의는 교리와 신학을 강조하다가 삶을 소홀히 하여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진보적인 신학을 표방하는 자유주의는 삶을 강조하다가 복음과 교회를 세속화시켰습니다. 보수 쪽에서는 욕심 때문에 윤리를 상실했고 진보 쪽에서는 교만 때문에 교리와 윤리를 모두 함께 손상시켰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고 교회의 직분 자는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이 시대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존경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인기만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의 직분 자의 덕목으로 외인으로부터 받는 선한 증거를 요구하십니다. 아무리 신학이 건전하고 신앙이 깊을지라도 외인으로부터 받는 선한 증거도 있어야 합니다.

현실은 신실한 개혁주의 신학자가 외인으로부터 선한 증거를 받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자라면, 더구나 교회의 지도자라면 누구도 그 요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타협할 수 없는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고 증거 하려고 하면 필경은 편협하고 배타적이라고 비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도 돌려대는 너그러움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선한 행실로 묵묵히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부족한 점은 용납해야 하고 인내와 성실로 질서를 따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부부 간에도 마음 맞추기가 쉽지 않고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많지만 쉽게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원리 때문입니다. 원리는 비껴가면 안 되고 좇아가야 하는데 원리를 비껴가는 이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답답하고 안타깝고 두렵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 롬 8:4; 고후 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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